청소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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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청소하시는 하나님
[서론]
예전에 충격적인 bbc 영상을 본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청년들을 인터뷰한 내용이었는데 그 중 몇몇 청년들의 집이 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정말 사람이 사는 곳이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쓰레기가 발 디딜 틈없이 쌓여 있었습니다.
심지어 누울 자리조차 없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좀 치우고 살아라, 이렇게 게을러서 어디다 쓸래?’
그런데 제작진이 만난 청년들의 이야기는 달랐습니다.
그들도 한때 성실하게 살았던 사람이었고, 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 앞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좌절과 외로움, 반복되는 실패에 마음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 무너진 마음이 결국 일상도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 영상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집상태가 우리 마음의 상태를 드러낼 수도 있겠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루 하루 쌓인 감정의 쓰레기들이 있습니다.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죄책감, 애써 감춰둔 수치심, 힘을 빼놓는 좌절감.
이 모든 것들은 단지 우리의 내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결국 우리 삶의 일상에도 드러나게 됩니다.
삶의 공간에도 나타날수 있습니다.
일상의 잘못된 패턴을 만들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표정, 관계 속에서도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성경에서도 이런 원리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월절이 다가오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집 안의 모든 누룩, 즉 곰팡이를 깨끗이 제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오면 대청소를 합니다.
여기서 누룩은 ‘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버리라고 말씀으로만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집에서 곰팡이를 제거하며 행동으로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바라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뭔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계신가요?
그럼 그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인 역대하 29장은 무너졌던 유다가 다시 회복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정치 개혁이나 군사 훈련같은 거창한게 아니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명령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먼저 ‘청소’부터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그 ‘청소’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론1]
우리의 정체성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이러한 정체성을 지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때로는 용기가 부족하고, 때로는 지혜가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드러내면 냄새가 나고, 드러나면 향기가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회식하는데 저는 그리스도인이라 술 안 마셔서 회식 안간다고 하면 어떨까요?
회사동료를 만날 때마다 전도하려고 하면 어떨까요?
커다란 십자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예수님 얼굴을 앞에 크게 붙여놓으면 어떨까요?
다같이 밥먹는 자리에서 혼자 식기도를 길게 하면 어떨까요?
금요예배가야 한다며 자신만 야근을 빼달라고 요구하면 어떨까요?
이게 신앙이 좋은 건가요?
용기가 있는 건가요?
아니면 어리석은 것일까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5절입니다.
여기에 나온 대부분의 이야기는 열왕기서에 나오지 않는 역대기서만의 기록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유다의 가장 큰 위기 속에서 왕이 됩니다.
그는 아버지 아하스때문에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나라를 물려 받았습니다.
이때 히스기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일까요?
보통 사람같으면 아마 군사력을 보강하려 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다른 강대국과 조약을 맺어 도움을 청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달랐습니다.
그는 나라의 위기가 신앙의 타락에서 온 것을 알았기에 신앙을 회복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신앙 회복은 청소부터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때문에 더럽혀진 성전, 버려진 제단을 깨끗히 청소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레위인들에게 스스로 성결하라고 명령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성결’입니다.
‘성결’이란 쉽게 말해서 ‘거룩하게 구별하다’는 의미입니다.
거룩한 성전을 청소하기 전에 너부터 청소하라는 의미입니다.
레위기를 보면 제사장과 레위인은 성전 사역을 하기 전에 먼저 목욕하고, 속죄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죄와 부정으로 오염된 상태로 하나님을 섬길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원리가 적용됩니다.
무엇인가 변화되기를 바란다면 내 마음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해결되지 않고 쌓아두고 감춰둔 죄책감, 수치심, 분노…
이것들을 방치한 채 다른 것을 바꾸려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청소는 나를 돌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집에만 있더라도 깨끗하게 씻고, 머리를 단정히 하고, 옷도 깔끔하게 입고, 몸도 가꾸어야 합니다.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나를 가꾸는 것 그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외적인 변화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외면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의 성결입니다.
내 마음에 쌓인 감정의 쓰레기들을 청소해야 합니다.
과연 어떻게 할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날마다 묵상하는 삶입니다.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고, 하나님께 내 내면을 점검받는 것,
그것이 청소의 시작입니다.
일기도 큰 도움이 될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일기란 단순한 삶의 기록이 아닙니다.
하루의 감정, 생각, 실수, 감사 등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솔직하게 내어 놓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기 역시 묵상이 확장된 형태입니다.
내 마음이 우울하고 복잡할수록,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나를 깨끗히 하는 일입니다.
몸과 마음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을 단정하게 가꾸고, 마음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청소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정결해졌다면, 이제 그 마음이 머무는 삶의 공간도 청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 내면만 깨끗하라고 하신 게 아닙니다.
우리 삶의 자리,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성결하기를 원하십니다.
[본론2]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성결함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서 우리의 가정과 학교, 직장, 교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청소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하려는 태도와 마음가짐입니다.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를 아십니까?
그는 투수이자 타자 둘 다의 영역에서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쓴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밝힌 습관 중 하나는 매우 놀랍습니다.
너무 단순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타니는 어디를 가든지 쓰레기를 줍습니다.
특히 경기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이런 습관이 그를 자리까지 만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단순하고 쉬운 청소 습관 하나도 삶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어떤 삶의 공간을 만들어야 할까요?
우리 역시 우리가 사는 집, 회사, 학교, 교회에서 먼저 나서서 청소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만 치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흔적들도 청소해야 합니다.
내가 저지른 죄의 자취들, 깨진 관계의 조각들, 거짓과 타협의 껍질들도 함께 치워야 합니다.
5절 후반절입니다.
히스기야는 성결해진 레위인들에게 성소의 더러운 것을 없애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더러운 것’이란 아버지 아하스의 우상숭배의 흔적들, 죄의 흔적들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처럼 유다가 위태로워진 이유를 군사력 부족이나 외교 실패에서 찾지 않습니다.
그는 신앙의 타락에서 그 원인을 찾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장 먼저 성소 안의 죄의 흔적부터 치우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청소를 홀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2절부터 14절입니다.
14명의 레위인 지도자들이 자발적으로 앞장섭니다.
이들이 다른 레위인들도 설득하여 성전 정화 작업에 동참합니다.
그들은 16일 동안 성전 곳곳을 다니며 깨끗히 청소합니다.
성전 안에 있던 모든 우상숭배의 기구들을 가져가 성밖 기드론 골짜기에서 불태워 완전히 제거합니다.
다시는 되돌릴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그럼 우리 삶에서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습관들이 있다면 제거해야 합니다.
은밀한 죄의 흔적들, 회복되지 않은 관계, 오래된 타협과 무관심…
하나님이 거하실 우리 삶의 자리에 이런 흔적들을 방치해 두어서는 안됩니다.
히스기야의 명령을 듣고 결단한 레위인들이 먼저 나섰듯이, 우리도 나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의 공간을 청소할때 우리의 삶도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 삶의 자리를 청소하고 나면 다 끝나는게 아닙니다.
청소한 자리에 무엇을 다시 채울 것인가도 중요합니다.
히스기야는 성소를 깨끗하게 청소한 후, 하나님을 위한 신앙의 질서를 세우기 시작합니다.
[본론3]
요즘 제가 정리수납전문가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는데 어떤 강사님이 이것을 묻더라구요.
“청소와 정리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청소는 더러운 것을 치우는 것이라면 정리는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 것입니다.
청소만 필요한게 아니라 정리 정돈도 필요합니다.
정리정돈을 통해 공간에 질서를 부여해야 언제든지 원하는 것을 쉽게 찾을수 있습니다.
19절입니다.
레위인들도 성전을 깨끗하게 청소한 후 하나님의 성전 기구들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습니다.
모두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임재하실 성전에서 드려질 예배 준비가 끝난 것입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단순히 죄를 회개하고 감정을 청소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이 진짜 회복입니다.
우리가 청소를 통해 준비해야할 최종 목적도 예배입니다.
단지 주일에 한 시간 드리는 예배만이 아니라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
그것이 우리 삶의 질서를 바로 잡는 열쇠입니다.
예배는 단지 찬양하고 말씀듣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내 삶을 재배치하고 다시 맞추는 과정입니다.
무엇이 내 삶에 중심에 있어야 할지, 무엇을 옮겨야 할지, 무엇을 버려야 할지
하나님의 시선으로 내 삶을 점검하고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루틴을 갖고 살아 왔습니까?
깨끗이 청소한 시간과 공간에 거룩한 영적 질서, 영적 루틴을 세워야 합니다.
아침이나 저녁에 묵상하는 습관,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기도로 여는 습관,
일기쓰는 습관,
모두 삶의 예배를 회복하게 하는 거룩한 루틴입니다.
삶이 어지럽고 마음이 혼란스러울수록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이러한 거룩한 습관들입니다.
그것들이 바로 우리의 일상을 다시 예배로 바꾸는 영적인 정리정돈의 힘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며 한가지 짧은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내 마음의 그리스도 집’이라는 작은 책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책장에서도 찾아보실수 있습니다.
그 책에는 2층으로 된 집이 하나 등장하는데, 그 집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그 집 주인은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합니다.
그리고 서재, 주방, 거실, 작업실, 오락실, 침실까지 모두 예수님께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방들의 주인이 되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이 갑자기 집에서 썪은 냄새가 난다고 하십니다.
냄새를 따라가보니 그 곳은 벽장인데 자물쇠로 잠겨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죽고, 썪은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곳만큼은 숨기고 싶었지만, 결국 예수님께 열쇠를 넘기고 그 공간까지 열어 드립니다.
그리고 그는 깨닫게 됩니다.
“내가 내 힘으로는 이 집을 다 깨끗이 청소할수 없구나.”
1층을 청소하면 2층이 더러워지고, 이 방을 청소하면 저 방이 더러워지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진짜 변화는 내 힘으로 완성할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집의 소유권을 그리스도께 넘겨주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 집의 주인은 예수님이 되시고, 그 집의 청소와 정리도 모두 예수님 손에 맡겨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히스기야의 성전 전화를 통해 청소의 힘을 깨닫게 됩니다.
그 시작은 먼저 자신을 청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삶의 자리들을 청소하는 것이고, 마지막은 하나님의 질서인 예배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 마음의 집도 청소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감둬놓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감정의 쓰레기들, 깨진 관계의 파편들, 숨겨둔 죄의 흔적들을 제거하기 원하십니다.
주님께 내 마음과 삶의 방 키를 드려야할 때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려 하면 절대 내 마음의 집, 삶의 집을 깨끗히 치울수 없습니다.
그 분을 삶의 주인으로 모실때 내 삶의 새로운 질서가 세워질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주님, 이제 제 마음을 깨끗히 청소해 주세요. 제 삶의 헝크러진 질서를 바로 잡아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