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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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4:1-18
여호수아 24:1-18
찬송가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오늘은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리라’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겠습니다. 요즘 시대를 바라보면 보면, 믿음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는 시대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뭐냐, 믿음의 무게보다는, 나라는, 자신이라는 무게가 더 무거워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죠, 나라는 무게가 더 무거워 질 수록, 믿음, 즉 하나님에 대한 무게는 더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점점 줄어듭니다. 내 힘과, 지식과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많아집니다. 예배를 드리지만, 마음은 세상에 있을 때도, 기도를 하지만 기도보다는 인간적 계산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신앙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출애굽을 경험하고,
가나안 땅까지 들어왔지만, 그들의 마음은 점점 세상의 신들을 향해 기울고 있었습니다.
가나안의 풍요, 바알의 신, 편안함과 안정을 약속하는 우상들에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던 거죠.
그때 여호수아가 백성을 세겜으로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신앙의 현실은 여호수아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바알의 이름으로,
‘성공’, ‘안정’, ‘인정’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 모두가 그 길을 택할지라도,
“나는 그 길을 가지 않겠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
이 새벽,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 중심의 믿음이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
나는 정말 누구를 섬기며 살고 있는가?오늘 그 질문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 중심, 하나님만을 섬기는 믿음의 삶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먼저는 오늘 본문 1절부터의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는 모든 백성들을 세겜에 모아놓고, 옛날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가신 것으로 시작으로, 이삭 야곱 모세를 거쳐, 지금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게 모든 과정들을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잘 정착해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 너희들의 능력으로 결코 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였고, 은혜였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가 우상숭배하고 있을 때에, 불러내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께서 불러주시지 않았으면, 그는 우상숭배자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찾아가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셨습니다. 이들의 조상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지만,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을 전적으로 세우셔서, 그들을 이끌어내셨습니다.
그 땅에 10가지 재앙을 내리고, 홍해를 가르고, 광야에서 만나를 주시고, 아모리 왕과 바산 왕을 물리치시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한 분 역시 오직 하나님이셨습니다.
13절에 여호수아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고,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을 너희가 거하여,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을 먹게 하였느니라”
여호수아가 강조하는 것은, 너희가 도대체 여기 서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어떻게 서있게 되었느냐 강하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고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 어느 터전 하나, 누리고 있는 어느 조건 하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누릴 수 없는 것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을 돌아보십시오. 내가 이 땅에 난 것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삶 역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없이는 어떻게 가능한 삶입니까, 우리는 등따숩고 풍족할 때, 더 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베풀어주셨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 기억이 우리 마음을 다시 세우고, 감사와 결단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불평과 원망의 길에서, 감사와 기쁨의 길로 돌이키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길 바랍니다.
두번째 우리가 살펴볼 부분은요, 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기억한 사람은요, 그 은혜 앞에서, 결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은혜라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응답을 요구하는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셨던 그 은혜를 말하고 난 후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라고 결단을 촉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가나안 땅에 들어왔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세상의 신들과 섞여 있었습니다. 막상 들어와 보이니깐 섬기기에 좋은 신들이 보이는거죠, 비를 관장한다고 말하는 바알신, 농사의 결실을 약속하는 아스다롯, 이런 우상들이 그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분명히 결단을 촉구합니다. 도대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이 누구냐? 이제 분명히 하라, 너희가 누구를 섬길 것인지, 어디에 마음을 둘 것인지, 그 선택을 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종교적인 권면을 넘어서서, 삶의 주인을 명확히 하라는 요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이러한 우상들이, 물질이나, 사람의 인정이나 세상의 것들이 우리를 지배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나는 그리고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다” 모든 백성들 앞에 선언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여호수아의 고백은 신앙도 잡고 세상도 잡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다라는 신앙의 본질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때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도 필요하지만, 세상도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오늘날 바알이라 불리는 것들은 아닐지라도, 세상에 우상처럼 보이는, 돈이나, 이 땅의 것을 같이 섬기고 싶은 마음을 우리 가운데 없습니까?
어제 들었던 말씀처럼, 내가 지켜야 할 것이 있으면요, 우리는 떄로는 예수님 조차도 신앙조차, 확실한 말씀조차도 거부하고 밀어내느 것이죠, 그 지켜야 할 것이 뭐에요? 바로 하나님 외에 우상들인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촉구합니다. 오늘 택하라, 오늘 당장 택하라, 너희가 여호와를 섬길 것인지, 아니면 우상들을 섬길 것인지, 이런 말이 뭐에요. 이리저리 휘둘리지 말고 하나만 하라는거에요.
우상은요, 다른게 아닙니다. 하나님 말고, 우리 인생을 지켜줄 것 같은, 우리 인생을 좋은 길로 인도해줄 것 같은, 하나님 외에 내가 좋아보이는게 바로 우상입니다.
이곳에 모인 저와 여러분들이 이 여호수아의 고백처럼, 나와 내 집은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결단할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을 위하여, 우리의 삶을 두고 주 앞에 나아가는 이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살펴볼 부분은요, 이 여호수아의 결단과 고백은, 그 한 사람의 개인적인 고백과 결단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믿음의 결단은요,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호수아의 마음과 믿음을 공동체 전체가 함께 고백하게 됩니다.
본문 16절에 보십시오. 여호수아 24:16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백성들 모두가 똑같이 대답하는거에요, 여호수아의 고백처럼, 자신들 역시, 여호와만 섬기겠다 고백하고 있는거에요.
이 모습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여호수아의 믿음 하나가, 공동체 전체의 믿음을 세우는 불씨가 된 것입니다.
진짜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은 이런거에요. 다른 사람을 핑계대기 보다는 내가 먼저 믿음을 선택하는게 진짜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지적질 하거나 폄하하면서 나를 은근히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핑계삼는 사람이 아니라요,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든, 양다리 걸치고 살든 상관없이 나는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반대로 행동해요. 다들 그렇게 산다. 교회 다니는 사람도, 어떤 목사님도 어떤 장로님도 그렇게 살더라,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게 중요한게 아니라요.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가냐가 중요한거에요. 여호수아에게는 그게 제일 중요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말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냐,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여호수아처럼 한 사람의 결단이 가정을 바꿉니다. 한 가정의 결단이 공동체, 교회를 변화시킵니다. 이 교회가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거에요. 여호수아의 믿음은 나에서, 가정으로 확장되어졌고요, 가정에서 공동체 전체로 확장되어졌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변화는요 결국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여호수아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핑계삼지 마십시오. 세상을 핑계삼지 마십시오. 교회를 핑계삼지 마십시오. 오늘 내가 결단해야 합니다. 그 나의 결단이, 그 나의 믿음이 결국 모든 변화의 시작이 되어지는겁니다.
여호수아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백성 앞에서 가장 중요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다른 신들을 버리십시오. 오직 여호와만 따라야 합니다.” 이 믿음이 바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신앙의 중심입니다.
오늘 새벽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누구를 섬기며 살아갈래?”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오직 나와 내 집은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이 고백을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이 새벽 시간, 오늘 하루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생명을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이 안미친 것 없음을 압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은혜로 걸어왔음에도, 하나님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는 것처럼 세상을 기웃거리거나, 의지했던 우리의 모습이 있다면 주님 용서하여 주시고, 여호수아의 고백처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는 믿음의 결단이 우리 가운데 있게 도와주옵소서, 이런 작은 결단인 것 같지만, 주님께서 사용하여 주셔서, 나의 믿음이 우리의 가정을 변화시키고, 우리 가정이 우리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우리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의 삶도 주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매순간마다, 주님 지혜를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 거하는 복된 하루 되게 도와주옵소서,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