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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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오늘 다시 기도, 5번째 시간 / 지금까지 성경 안에서 여러 기도의 사람을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신약 성경으로 넘어와 바울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전에 주일학교 선생님이 예배 때 이렇게 기도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 “하나님, 우리 학생들이 예배를 감정적으로 드리지 않게 해주세요” / 저는 이 기도를 들으면서 감정적인 것은 좋지 않은 거구나, 특히 영적인 것에서는 어떤 신비함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한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대부분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 신비적이고, 체험적인 것은 위험한 것이다 / 그래서 우리는 올바른 교리와 말씀을 기반으로 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신비한 것은 위험한 것이ㄴ깐요 / 장로교에서 오래 신앙생활한 분일 수록 더더욱 그럴 겁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의 기도는 우리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지식을 넘어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너희는 지금 교리적인 지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어. 풍성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너희들이 경험하기를 원해” / 바울은 이 기도를 그냥한게 아닙니다.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 바울의 기도는 지나치게 교리 중심으로 치우친 우리를 사랑의 체험쪽으로 이끕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의 기도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기를 기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의 깊이냐 /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만큼의 영적인 경험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죠.
1. 왜 필요한가
1. 왜 필요한가
자, 그렇다면, 영적체험이 왜 필요한가 / 굳이 필요한 것인가
바울은 에베소서를,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에 있는 에베소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들에게 보냈는데요 / 이말인즉슨 오늘 바울의 기도는 이미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였다라는 겁니다.
이 점이 이 기도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17절과 2장 22절을 보세요.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바울은 17절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에 거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 2장 22절을 보면, 이미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너희 안에 거하신다”고 말했습니다. / 근데 또, 18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에베소 교인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있었습니다. / 심지어 1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간절히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바울은 왜 이미 알고 있는 것/ 이미소유한 것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걸까요?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고 칩시다 / 법적으로 이 재산은 여러분 것입니다 / 그런데, 상속받은 계좌번호를 몰라서 돈을 뺄 수 없다면, 여러분에게 그 유산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죠 / 법적으로 여러분은 부자지만, 실제로는 그 부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죠.
바울이 기도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고 아는 것’과, 그 사랑을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것입니다. / 그래서 바울은 무릎을 꿇고 이미 가진 것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중요한 두가지가 있습니다. / 첫 번째 의미: 이것이 ‘보통의 상태’다
바울의 이 기도가 여러 교회,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여졌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적으로 알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 지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 진리가 실제 삶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속사람에 대해 기도합니다 / 속사람은 우리 존재의 중심, 의식과 인격의 중심을 말하는데요 / 겉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과 내면 깊숙한 곳에서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사랑받고, 완전히 받아들여졌다는 복음의 진리를 지식적으로는 아무리 알고 있다 하더라도, 삶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 나의 본성과 감정에 영향을 /끼치지 못해요 / 나의 생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나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내면 깊은 곳에서 복음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이것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의 ‘보통 상태’라는 것입니다 /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기도하지 않았죠 / 어떻게 기도했다고 합니까?
…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성경을 읽어보면, 사람들이 기도할 때 보통 서서 기도했다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예수님도 마가복음 11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
‘서서’ 기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기도의 자세였습니다. / 그런데, 무릎을 꿇었다는 건 강렬할 감정과 열정을 가지고, 진심으로 이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죠. / 바울은 왜 이렇게까지 간절히 기도한걸까요?
생각해보세요, / 당시 바울이 처한 상황은 질병과 전염병, 전쟁과 적들의 위협이 가득한 상태였습니다. / 얼마나 기도할 제목이 많았을까요?
하지만, 바울이 기도한 단 하나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들의 속사람 가운데 역사하여 주옵소서 ”
아마 여러분들 중에 시급한 기도제목,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을 내 인생의 재정적인 문제의 해결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내 인생은 괜찮아질 것이다.” / 또 어떤 사람은 건강의 문제나, 관계의 문제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은 말합니다. / “여러분의 삶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기도 제목은 그러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그리스도의 사랑만 있다면, 충부히 다 감당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삶에 가장 중요한 것,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는 충만함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러기에 여러분 많은 기도제목들이 있겠지만, 지식을 넘은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물론 여러분, 영적 여정 가운데 광야의 시기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임재의 충만함이 아니라 부재의 충만함이죠 / 하나님이 전혀 안계신 것 같은 영적인 어두움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해 놓고, 왜 하나님께서는 왜 이러한 어두움의 시기를 허락하실까요?
그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영적인 성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상황에서 오직 말씀의 등불만 의지하고 걸어가는 훈련은 이 때만 가능하고, 이때만 배울 수 있는 겁니다. / 어두울 때만 경험할 수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생한 임재를 기대하면서도, 영적인 밤을 맞이할 것을 각오해야 되는거에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성장시키고, 은혜 주시기 위해 이 두 시기를 다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압도적으로 체험하는 푸른 초장에서 누이는 경험을 기대하면서도 / 영적으로 건조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의 경험을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 이 두 시기를 경험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빚어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임재 중심 신앙의 사람은요
영적인 밤이 오면 “하나님이 날 버리셨나, 내가 죄를 지어서 하나님이 벌 주시는걸꺼야” / 지나치게 자신을 정죄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부재 중심 신앙의 사람은요 / 말씀과 교리, 순종을 강조하지만, 영적 체험에 대해서는 불편해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사도 바울이 기도했듯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충만하게 경험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 왜냐하면, 그 경험 없이는 결코 변화되지 않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저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때 기도합니다 / “하나님, 제 설교가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만나주시고, 경험해주세요. 더디사이플 예배가 그러한 하나님의 임재를 충만하게 경험하는 예배가 되게 해주세요 / 속사람이 채워지고, 변화되는 예배가 되게 해주세요”
여러분, 많은 기도제목들이 있겠지만, 그 어떠한 것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그 임재의 충만함을 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 그것이 무엇인가
2. 그것이 무엇인가
자,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 바울의 세가지 간구가 있는데요.
첫 번째 간구 : 속사람의 능력을 강건하게
첫 번째 간구 : 속사람의 능력을 강건하게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이미 언급했지만, 속사람은 마음을 말하는건데, 성경은 속사람이 우리의 깊은 소망이 있는 곳이라 말합니다 / 나의 행복과 나의 감정, 나의 기쁨의 기반이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속사람은 내가 삶 속에서 무엇을 행동하고,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느끼는지를 결정하는 전인격적인 통합센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속사람이 변하면, 나의 모든 것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다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속 사람을 강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 간구 :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
두 번째 간구 :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
그렇다면, 속사람이 강하게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 두 번째 간구입니다.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속사람의 능력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능력입니다. / “이게 무슨 능력이야, 나는 이미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 바울은 말합니다.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 지식을 초월해서 아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 있죠 / “우리 결혼했지만, 결혼한 것 같지 않아” / 이게 무슨 말일까요? / 법적으로는 부부지만, 사랑받는 것 같지 않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죠.
바울이 성령께서 너희 속사람을 능력있게 하사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죠 / 그 지식을 넘어선 경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끔 간증에 이런 간증이 있죠
이전에도 예수님을 알았는데, 어느날 예배 때, 수련회 때, 금요철야 때 기도하다가 그게 실제로 믿어지지 시작했습니다. / 예수님의 사랑이 만져질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온 경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랑을 경험하면요 / 그 어떤 부모의 사랑, 남녀간의 사랑,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채움과 평안함과 자유함과 확신이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요동하지 않게 되죠 / 예전에는 그렇게 중요하게 보였던 것들이 이제는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 크게 연연해하지 않아요
예수님의 대한 사랑이 추상적인 지식이나 개념이 아니라 나에게 실제로 경험되어지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견딜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 속사람이 강해진 것이죠. / 이게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능력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속사람이 강건한 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이 경험은요 / 어떠한 사람에게는 강렬한 경험으로 나타날 때가 있고요 / 어떠한 사람에게는 미미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대부분, 이러한 경험을 매일 하는 건 아닙니다. / 하지만 분명한 건 바울이 기도했듯이 우리 모두는 이 경험을 기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에프라서 그런거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은 분들이 있으실텐데
T냐 F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 그렇게 따진다면 바울도 F여야 할텐데, 바울서신을 보면 알겠지만, 바울은 T가 확실합니다.
저는 오히려 바울이 T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메섹에서의 강한 빛을 보게 되는 체험을 주신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자신의 논리와 생각 안에 갇혀 있는 바울에게는 그 모든 것을 깨트리는 강력한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T들에게 더욱 이러한 체험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역사상 이러한 간증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19세기 미국 복음주의 목사 드와이트 무디는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기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1850년대 뉴욕 거리를 걷다가 하나님의 강렬한 임재를 체험합니다 / 이게 너무나 강렬하다 보니깐, 하나님, 이제 그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조지 휫필드는 일기를 썼는데, 그 내용을 보면 휫필드는 종종 밤에 기도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강렬하게 부어져 잠을 잘수 없을 정도였다라고 기록합니다.
제가 자주 소개했던 16세기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 중 한 사람이었죠 / 파스칼이 죽은 뒤 그가 입은 외투 안쪽에 쪽지가 발견되었는데, 1654년에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것을 생생하게 적은 글이었습니다. / 이 경험은 파스칼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고, 이후 파스칼은 믿음의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평생 그 기록을 자신의 심장 가까이에 두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인 테레사 수녀는 기도할 때의 경험을 이렇게 썼습니다 /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빛의 달콤함은 비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이 상태는 영광스러운 어리석음이며 하늘의 광기였습니다. 나는 취한 듯이 하나님의 사랑에 빠졌고, 그 기쁨이 너무나 커서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성별도 다르고, 출신도 다르고, 다른 문화, 다른 세대, 다른 기질의 사람들이지만, 모두가 동일한 경험을 했다라는 것이죠.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을 알게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내면 깊이 들어와 능력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 이것이 바울의 두번째 간구입니다.
세 번째 간구 : 충만하게 하시기를
세 번째 간구 : 충만하게 하시기를
….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충만함은 삶의 충만함을 말하는 겁니다. / 단순한 감정적 체험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충만한 인 것이죠 /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면 깊이 경험했다면, 그 사랑이 충만하게 우리의 삶을 덮고 덮어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했다면 참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예배당을 나갔는데,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초조하고 여전히 이기적이다면, 내면 깊숙히 체험을 한 것이 아닙니다 / 삶의 충만함까지 나아가기 못한 것이죠.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제 경험했다면, 그 하나님의 충만함이 우리 삶에 충만함이 되어 우리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에 실제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바울은 그것을 위해 기도한 겁니다 / “영적 체험이 체험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충만함까지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물론 여러분, 한번에 모든게 다 변하는 것이 아니죠 / 점진적으로 서서히 변화됩니다. / 하지만, 분명한건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면,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영원히 변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 “하나님, 오늘 예배 가운데, 당신의 임재의 충만함이 우리의 삶에 충만함으로 이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이 예배당을 나갈 때, 작은 변화일지리도 예수님을 더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는 충만하심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3. 어떻게 받는 것인가
3. 어떻게 받는 것인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어떻게 해야 바울이 말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일까. / 두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임재를 끊임없이 추구하라
1) 하나님의 임재를 끊임없이 추구하라
첫번째, 너무나 당연한지만 중요한 것,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끊임없이 구하는 겁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 내면 깊숙히 체험되어야 한다라고 기도하죠 / 여기에는 어떠한 방법론도 없습니다 / 오로지 예배하고, 오로지 기도하는 것 뿐입니다.
19세기 중국에서 헌신한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성경을 읽을 때 책갈피에 이러한 문구를 적었두었다고 합니다. / “주 예수님, 제게 살아있는 빛나는 현실로 나타내 주세요” / 허드슨 테일러는 매일 이 기도를 했을 겁니다. / 여러분들도 여러분만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끊임없이 추구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 더디사이플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의 충만한 경험이 있는 예배가 되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제가 바라는 것은 찬양이 좋고, 설교를 잘하는게 아닙니다 /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저의 바램이고 기도제목입니다.
여러분들도 많은 기도제목들이 있겠지만,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을 최우선의 기도제목으로 삼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물론 여러분, 지식도 필요합니다.
19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기 원한다라고 했을 때의 단어를 헬라어 원문 의미로는 “붙잡으라”는 겁니다. /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넓고 높고 길고 깊은지 붙잡으라”
그런데, 여러분 이 단어는요. / 단순히 붙잡는 것을 넘어 상대방을 압도해 넘어트리고 빼앗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며 복을 주지 않으면, 끝까지 놓지 않겠다라고 말했듯이, 하나님에 대한 진리와 교리와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고 파악하라는 것이죠 / 그러면서 하나님의 임재의 체험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나친 신비주의도, 지나친 지성주의도 아니죠. / 말씀을 공부해야 하고, 교리를 공부해야 합니다. /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신비적이어야 합니다. / 머리와 마음의 결합, 속사람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요
만약 부흥이 일어난다면 오순절교단의 교회는 더욱 더 장로교다워 질 것이고, 장로교 교회는 더욱 더 오순절교회다워 질 것이다라는 글이였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체험중심적이고 뜨거운 오순절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선 이미 체험중심적이기 때문에 / 말씀과 교리에 대한 열심히 일어나야 된다는 것이고요.
그 반대로 장로교회는 성경과 교리에 대한 지식은 이미 충만한데, 딱 거기까지인거죠 / 머리에 있는 성경의 교리가 속사람까지 체험되지 못하니깐, 삶에도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저는 장로교 목사로써 싶은 말은 이겁니다 / “뭐야. 장로교회 예배가 왜 이렇게 뜨거워, 여기 오순절교회도 아닌데, 왜 이렇게 뜨거워”
여러분 우리에게는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임재가 필요한 거에요 / 말씀의 장작에 성령의 임재가 불타오르는 부흥이 필요한 겁니다.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청교도 신학의 특징은 말씀 중심, 오직 성경입니다. / 하지만 존 오웬은 말합니다 / “기독교 교리를 달달 외우고, 종교적인 의무들을 다 하더라도 마음에 조금의 은혜도 없을 수 있다” / 그래서, 말씀과 교리에 대한 지식은 체험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체험인 것이죠 / 그리고나서 청교도로서는 파격적인 발언을 합니다.
“빛이 감정을 변질시키고 사랑보다 앞서는 쪽보다, 사랑이 지성을 누르고 빛을 앞지르는 편이 낫다”
- 존 오웬
어차피 균형이 깨지게 되어 있다면, 교리에는 약하더라도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느껴 가며 생동감 넘치는 기도 생활을 하는 쪽이 교리적으로 완벽하지만, 냉랭하고 완고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성경을 몇번을 통독하고, 신학적인 지식과 교리가 있으면 뭐합니까? / 그 안에 뜨거움이 없고, 기도가 죽어있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갈망이 없는데 / 차라리 이제 새신자반 막 끝냈더라도, 열정있는 예배자가 더 낫다라는 것이죠.
여러분, 저도 모태 신앙으로 마른 장작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있었지만, 제 안에 마른 장작으로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 내 삶에 어떠한 능력도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예배 가운데 임재의 불을 경험하게 되니깐, 속사람이 능력으로 타오르는거에요 /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제 삶을 압도하고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이 경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일어나는 자동적인 경험이 아닙니다 / 그런거라면 바울이 기도하지 않았겠죠 / 예배하고, 기도하는 자리, 하나님을 추구하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 여러분, 그 자리를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2) 공동체적으로 추구하라
2) 공동체적으로 추구하라
첫번째,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끊임없이 추구하라 / 공격적으로 씨름하듯이
두번째는 공동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놓치기 쉬운데, 바울은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붙잡으라고 말합니다 / 혼자서 붙잡지 말고, 함께 붙들라는 것이죠.
여러분, 이미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 지난주에 목장이 개강했는데, 혼자 묵상하는 것보다 함께 묵상하는 것이 더 풍성해지고요 / 기도할 때도 함께 기도할 때 풍성함을 얻게 됩니다.
예배할 때도 혼자 예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울은 우리에게 “모든 성도와 함께 예배하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모이는데 힘쓰고, 모여서 뭐 시켜 먹고 여러 활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 함께 모여 예배하고, 함께 모여 말씀을 나누고, 함께 모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목장끼리 모여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특별히 함꼐 모여서 기도하는 금요기도회에 여러분 힘써 나오시길 바랍니다 / 금요기도회가 여러분이 기도로 씨름하는 얍복강가가 되길 바랍니다. / 목장끼리 함께 나오세요 / 함께 앉아서 끝나고 나서 목장끼리 강단에 올라가 기도하십시오.
더함 소모임, 기도모임 말씀모임 찬양모임 더 창업하시길 바랍니다. / 예배 전 기도모임에 나오세요.
이렇게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에서 함께 씨름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구할 때에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가운데 경험될 줄로 믿습니다.
[반주]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 바울이 그토록 기도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입니까?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 그리스도의 사랑의 폭의 너비가 얼마나 넓을까요?
요한계시록을 보게 되면, 마지막 날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모여서 / 어린양되신 예수님 앞에 예배하게 될 것이다고 말합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내가 십자가에서 들려질 때, 모두를 내게 이끌겠다. / 계급, 인종,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 누구도 상관없이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었고, 다시 사셨다라는 것을 믿을 때 누구든 구원을 받습니다.
크리스탐린 거룩 영원히 / “모든 세대 엎드려 주를 예배하네 어린양께 찬양 드리네 / 이전에 세대와 다가올 세대 함께 어린양께 찬양 드리네”
마지막 날에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나가 되어 예수님 앞에 예배하는 겁니다 / 그리스도의 사랑의 폭의 넓이죠
길이는 또 얼마나 길까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시고, 찬양의 가사와 같이 시간을 뚫고 시공간 속으로 들어와 우리를 위해 배신당하고, 거절당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오신 그 사랑의 길이가 여러분 가늠이 가십니까?
어노인팅의 “알파와 오메가라는 찬양이 가사는 이렇습니다.
주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되시네
주는 알파와 오메가 시간의 주인 되시네
아무도 알 수 없는 시작과 끝
그 영원을 정하시고 스스로 되신
우리가 얼마나 거대한 손길 속에 있는지 아는 것이 복음
죄마저 덮는 그 손길
별과 별 사이보다 먼 시작과 끝 그 사이, 그 시간을
우리의 인생을 채우시는 주님
예수님의 사랑의 깊이는 또 어떠할까요?
만약에 성경 66권의 모든 구절이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쓰여져 있더라도, 우리는 지식적으로는 그 사랑을 알겠지만, 지식에 넘치는 사랑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빌립보서는 말하죠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하나님과 동등됨이라는 높이에서 냄새나는 이곳 낮은 곳으로 오셨죠 / 아니, 더 나아가 십자가에서 버림받아 지옥을 경험하실 정도로 밑바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찾아오신 사랑의 깊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깊이입니다.
높이는 또 어떠합니까?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창세 전에 누렸던 그 영광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높은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실 줄로 믿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높이의 영광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 우리의 죄의 깊이가 깊은 만큼, 우리가 받을 영광의 높이는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사망의 골짜기에서 영광의 부활로 우리를 이끄시기까지 / 우리에게 부어주신 그 사랑 / 그 놀라운 폭과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상상해보십시오. /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 그래서 바울을 외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이 기도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여러분, 그 영광을 갈망하십시오 /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채우실 것입니다.
🙏 마지막 기도
하나님, 우리 안에 있는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지식에 넘치게 알게 하소서.
그 사랑이 내 삶 전체를 덮어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신앙이 단순히 ‘아는 것’에서 ‘사는 것’으로 / ‘교리’에서 ‘경험’으로 / ‘지식’에서 ‘충만’으로 나아가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우리의 예배의 현장이 그 현장이 되게 하옵소서.
🎵 찬양
🎵 찬양
하늘의 문을 여소서 이 곳을 주목하소서
주를 향한 노래가 꺼지지 않으니 하늘을 열고 보소서
이 곳에 임재하소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기도의 향기가 하늘에 닿으니 주여 임재하여 주소서
이 곳에 오셔서 이 곳에 앉으소서
이 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소서
주님의 이름이 주님의 이름만이
오직 주의 이름만 이 곳에 있습니다
(8)-V-C-(8)-V-C-C-C-(4)
🙏 통성 기도 제목
🙏 통성 기도 제목
하나님의 임재의 충만한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 능력대로 우리들의 간구함을 넘치도록 능히 하실 주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 찬양과 경배를 돌릴지어다
🌾 봉헌기도
🌾 봉헌기도
하나님, 주님을 경험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고,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것임을 오늘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깨닫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주님 우리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어떤 특별한 감정적인 체험만을 구한다면, 우리는 길을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갈망이 경험 자체를 위한 갈망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기를 원합니다.
오직 주님만 찾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 안에서, 예배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이 일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어, 충만함으로 채워지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향한 영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목장모임 기도
우리가 드리는 이 예물 속에 우리의 사랑과 헌신을 담습니다.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되게 하소서.
이 예물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쓰이게 하시고,
드린 손길마다 주님의 충만한 사랑과 은혜로 채워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축도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오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살기를 소망하는
이곳에 모인 청년들에게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