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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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요즘 ‘러닝’이 유행입니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혹은 취미생활로 달립니다. 러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페이스 조절’입니다. 러닝에서 페이스를 망가트리는 경우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뒤를 돌아보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얼마나 왔는가 돌아보면 앞으로 가기가 힘들어 질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페이스를 따라가다가 뒤엉켜서 쳐지기도 하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실력보다 더 과하게 해서 금방 지치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러닝이 신앙생활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달리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마치 롯의 아내과 같이 자주 뒤를 돌아보며 살 때가 있습니다. 과거의 성공을 자랑하며 “그때는 참 좋았지” 하거나, 과거의 실패에 묶여 “그땐 왜 그랬을까” 하며 후회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과 나의 믿음을 비교하면서 서로 다른 믿음의 분량으로 인하여 시기하기도 하고 안주하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우리의 신앙의 경주에 있어 페이스를 망가트립니다. 우리의 믿음의 경주의 페이스를 어떻게 하면 조절할 수 있을까요?

배경설명

빌립보서를 바라보는 많은 시각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빌립보서가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에 쓰여졌다고 봅니다. 빌립보서는 자신의 사역을 돕기 위해 재정을 보낸 빌립보교회에 감사와 사랑을 담은 편지입니다. 또 다른 한편, 교회 내에 들어와있었던 거짓교사들, 유대주의자들을 향한 경고와 하나되지 못했던 공동체를 권면하기 위한 편지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바울의 목표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의 삶을 달리는 일에 비유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간다.”
그가 잡고자 했던 것은 부활의 영광,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참여하여 그와 하나됨을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잡았다는 표현이 아니라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붙잡기 위해서 어떻게 달려왔는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강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잡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자기를 붙잡으셨기 때문에 달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분을 알게 되었고, 그 분을 얻게 되었으며 그 분으로 인하여 새롭게 발견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발견한 복음이었습니다. 이전에 바울의 삶은 “상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야 하는 삶” 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에 그가 만났던 복음은 “너는 이미 예수 안에서 붙잡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붙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웠기에 열심히 노력했으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붙잡으셨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동일합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열심히 달려서 쟁취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붙잡기 위해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붙잡혔기 때문에 힘을 얻어 달리는 것이다. 우리가 상을 얻기 위해서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붙잡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바울은 뒤이어 이렇게 말합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라

오직 한 가지 일, 뒤에 있는 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바울의 삶을 살펴보면 그의 뒤에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창피한 실패와 영광스러운 성공입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앞서서 열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 중에서도 괴수라고 표현합니다. 또 동시에 누구보다 앞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교회를 세워갔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어떤 일들을 했는지 잊어버리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오직 한 가지 일, 앞에 있는 부르심의 상을 잡을 그 날까지 믿음의 여정을 그저 달려갈 뿐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삶에서도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있게 살아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도 있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으로 말미암아 풍성함을 누렸던 순간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실패의 모습들도 있는 것을 봅니다. 연약함으로 인해서 절망하고 베드로처럼 그리스도를 뒤로 하고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려 했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손에 잡히지도 않고 기도보다는 염려를, 불만과 불평만을 내뱉었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뒤에 있었던 일은 잊어버린다고 고백합니다. ‘그때는 그랬지.’,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과거의 일에 매달리면 지금 최선을 다해 앞으로 가야하는데에 방해가 됩니다. 러닝을 할 때에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만큼 왔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가야하는지입니다. 목적지를 바라보고, 목표를 바라보고, 바울의 말과 같이 푯대를 바라보고 달려야만이 페이스를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붙잡고 계십니까? 어디를 바라보고 계십니까? 지금까지 내가 이루어 낸 일들 혹은 부족했던 일들을 바라보고 계시다면 이제 시선을 돌려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는 일 뿐만 아니라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저렇게 노력했는데 또는 내가 이런 저런 상처들을 입었는데!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잊어버려야 할 뒤의 일’로 여길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가 감당하고 있는 사역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한 선한 사역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사역을 ‘잊어버려야’ 마땅한 줄로 압니다.
뒤를 잊어도 괜찮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잊은 과거를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과거를 그분의 선하심으로 새롭게 바꾸어서 새로운 오늘로 선물해 주십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은혜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에 ‘새 날’이라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 새 날에 새롭게 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입니다. 어제는 뒤로하고 우리를 잡아주신 그리스도 예수를 향하여 부단히 달려가는 것입니다.

비교하지 마라

또 한 가지 바울이 신앙의 경주에 있어서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학생 때에 깜지를 써 보신 기억이 있으십니까? 깜지를 쓰는 일은 분명 경쟁이 아닙니다.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입니다. 그런데 괜히 옆에 있는 친구들과 묘한 경쟁이 붙습니다. 서로 빨리 내려고 하는 과정 속에서 깜지가 엉망이 되기도 하고 깜지의 원래 목적이었던 암기와 이해는 온데 간데 없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는 함께 안 하는 경우입니다. 우리 같이 늦게 내자. 괜히 세월아 내월아 끄적이면서 시간을 버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역시 깜지의 원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신앙의 경주가 경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삶을 통해서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해진 믿음의 분량을 주십니다. 각 사람은 정해진 페이스가 있습니다. 걸음의 보폭이 빠른 사람도 있고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다양한 믿음의 분량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입니다.
신앙의 경주에 있어서 본질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부르신 그분을 만나 받을 상을 위하여, 이미 잡힌 바 된 내가 그리스도를 잡기 위하여 주어진 분량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본질입니다. 다시말해 내게 주신 은혜가 내게 족하다는 것으로 여기고, 내게 주신 감동대로 하나님을, 이웃을 사랑하며 하루하루 나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로 물들이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주에서는 속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의 경주에 비교라는 방해꾼이 비집고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내 생각에 저 정도면 이 정도 분량은 되어야 하는데’, ‘아 나도 저 정도 분량은 되어야 하는데.’ 이 비교라는 방해꾼이 들어오면 방향보다 속도가 중요해집니다. 우리 경주의 페이스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 비교가 우리의 믿음에 촉진제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에게 시기심과 우월감, 안주하는 태도를 가져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분명 정답인데, 이 정도는 따라와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있고 분명 저것이 맞는 줄로 아는데 나도 따라가고 싶은데 역부족일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온전히 이룬 자들은 나 바울과 같이 앞의 것들만을 생각하라. 혹시 나와 생각이 다르다면, 하나님께서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낼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판단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는 다른 사람이 있다면 또는 다른 사람의 생각만큼 내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길을 제시해 주시고 우리의 걸음을 인도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바울과 같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 붙잡힌 바 되었기에 달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끝까지 완주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회는 우리 교회보다 넓고 활발하게 사역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소극적인 사역을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바라보며 시기를 할 필요도, 부러워 할 필요도, 작아질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믿음의 분량이 있고 이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 안에서 속도가 아닌 방향에 신경쓰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의 상을 받는 그 날을 향해 최선을 다해 믿음의 경주를 진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합니다. 말씀을 준비할 때에 되새기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설교자는 자신에게 먼저 설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15절과 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빌 3:17)
잠시 설교할 의지 자체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구절이었습니다. 제 삶에 나타나는 그리스도를 보시고 본받으십시오. 제 삶에 맺힌 성령의 열매들을 보시고 본받으십시오. 나는 이 말을 해 본적이 있는가? 지금 내 삶은 누군가에게 본받으라고 이야기할 만 한 삶인가?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드는 본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또 우리 교회가 본받을만 한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말은 교만한 선언이 아니라, 복음을 삶으로 경험한 자의 고백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스스로에게 선포했습니다. 이전 일은 지나갔으되,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바울은 자신이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역시 여전히 달리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삶은 이렇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분이 나를 붙잡으셨습니다. 나는 그 분을 붙잡기 위해,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이 길의 끝에서 내게 주실 상을 받기 위해 달려갑니다. 나는 달리기에 집중하기 위해 이전에 내가 행한 모든 일들을 잊어버리기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어떠함과는 상관없이 내게 주어진 분량대로 최선을 다해 달려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를 본 받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을 본받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실패였던지 성공이였던지 뒤는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위해서 달려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날을 주셨습니다. 나를 붙잡으신 그리스도를 향해, 부활의 영광을 향해, 은혜로 달려가십시오. 우리의 신앙은 경쟁이 아닙니다. 비교가 아닌 함께 세워감으로 다름은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은혜와 믿음의 분량 안에서 나의 페이스대로 최선을 다해 달려가십시오.
그리하면 우리도 곧 바울처럼 말하게 될 것입니다. “형제들아,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또 머지않아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꽃피워질 복음의 열매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달려가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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