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다.
나의 자랑, 십자가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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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I. 본문 해설
I. 본문 해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 네 마디의 유언과 같은 말씀을 거의 한 번에 쏟아놓으셨다.
그것들 중 마지막 말씀이 가상 제 7언인데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은혜를 받고자 하는 본문, 곧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하신 말씀이다.
II.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다.
II.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다.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기도는 이제 당신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드린다는 마지막 기도로 끝을 맺는다.
십자가에서 첫 번째 가상인 말씀인 가상 제1언에서도 마지막 말씀인 가상 7언에서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부르신 호칭은 “아버지”였다.
육신이 찢어지고 유혈이 낭자하게 흐르는 극한의 고통 중에서도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완전한 교제를 누리시는 가운데서 찢어진 제자와 두고 가시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셨을 것이다.
A. 성소의 휘장.
A. 성소의 휘장.
성소는 거룩한 장소로써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장소를 일컫는다.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이다.
창세기에 나타난 성소
수직적 성소의 개념(3구분)
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창조에서 나타난 3층 구조,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심(창 1:1).
3층천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장소(하나남의 하늘), 2층천은 하늘과 우주적인 장소, 때론 영적인 세계를 표현하기도 함(하늘), 1층은 땅으로써 하나님 지으신 지구(땅과 바다)를 의미한다.
2. 수평적 성소의 개념(3구분)
가장 안쪽 동심원은 에덴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나님의 거니심), 바깥 원은 동산으로 사람을 두시고 경작(섬김,예배)하고 지키게(보호) 하신 장소이다. 마지막 가장 바깥 원은 에덴 동산과 구별된 바깥 세상이다.
에덴의 출입구, 동쪽, 그룹들이 지킴, 금(성막 안에 금으로 장식)과 보석들이 풍성함(훗날 대제사장의 옷에 보석), 경작과 지킴은 제사장의 직무와 같은 단어를 사용. 네 개의 강의 흘러 적심-생명, 나무
일주일에 한번씩 안식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께 예배로 나아가게 설계하셨다.
타락한 인류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막혀 하나님과의 만남, 임재의 장소로 갈 수 없는 비참한 존재가 되었다.
이 개념이 확장되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써 제단이었다(아담-가인과 아벨-족장들).
출애굽기에 나타난 성소
모세에 이르러 성막을 통하여 형상화 됨.
성막의 3중 구조
첫째 출입문이 동쪽에 있어 성소 뜰이 있다. 이곳에 물두멍(바다)과 제단이 있다. 죄를 씻고 불태움.
둘째 서쪽 방향으로 성소의 출입문으로써 휘장을 지나 성소로 들어간다. 이곳은 금으로 벽이 둘러 싸여 있고 등잔대(생명나무 상징)와 진설병(말씀, 양식), 그리고 분향단(영광, 보지 못하게 함)이 놓여 있다. 여기까지 제사장이 들어올 수 있다.
셋째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하늘을 상징한다. 이 휘장을 지나면 법궤가 놓여 있는 공간이 있다. 법궤 위에 하나님의 천사들, 그룹이 덮고 있다. 여기는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 장소로써 상징성을 갖는다.
성전의 역사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는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솔로몬 성전 시대이다.
가장 화려했던 성전이었으며 거기에 투입된 금만 약 272톤. 2025년 9월 현재 한국 시장 가격으로 환산할 때 약 50조 원어치였다.
이 성전은 주전 586년에 바벨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 2세에 의해 거의 다 파괴되었다.
두 번째로는 스룹바벨 성전 시대다.
주전 538년 고레스 왕의 칙령에 따라 바벨론 포로 상태에서 해방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그 성전을 건축하였다.
이 성전은 주전 516년에 완공되었는데 이것은 솔로몬 성전에 비해 규모가 현저히 축소된 초라한 성전이었다.
세 번째로는 헤롯 성전 시대이다.
기원전 20년경 헤롯 대왕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스룹바벨 성전을 대규모로 확장하고 증축하였다.
그리하여 기존의 성전을 매우 거대하고 아름답게 단장하였으니 예수 시대의 성전이 바로 이 해롯 성전이었다.
이 성전은 주후 70년 로마 제국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무너져 버렸다.
네 번째로는 현재의 성전시대이다.
헤롯성전 파괴 후 로마와 비잔틴 제국을 거쳐 7세기에는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지배하게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자리는 7세기 후반에 지어진 황금돔 사원과 8세기 초 지어진 알아크사 모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슬람의 황금돔 사원은 이슬람 교도로의 마호메트가 승천했다고 믿는 바위 위에 세워졌다.
헤롯 성전 시대 제원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헤롯성전의 가장 중요한 공간은 역시 성소와 지성소였다.
성소와 지성소는 성전의 동쪽 입구로 들어와서 문을 통과하면 마주하게 되는 공간이다.
성소는 동서 방향으로 약 200평방미터, 곧 약 60평이 되는 공간이었으며 거기는 금촛대 진설병과 분향단이 있었다.
거기서 반차당 수백에 이르는 24개 반차의 제사장들이 일주일씩 교대로 순번을 돌아가며 성전에서 섬겼다.
당번 제사장들이 기본적으로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는 상번제와 개인들을 위해 제사를 담당해야 했다.
그 외에도 성소의 금촛대 관리, 매주 안식일을 올리는 진설병의 교체, 아침과 저녁에 올리는 분양과 각종 정결의식, 그리고 율법 교육 및 판결, 성전관리 및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지성소는 성소의 서쪽 끝에 위치한 가장 신성한 공간이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파로켓”이라고 불리는 두꺼운 휘장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그 의미의 단어의 “휘장, 덮개, 가리개”등을 뜻하였다.
성소에서 “파로켓” 곧 휘장을 지나 들어가면 지성소가 나오는데 거기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오직 1년에 단 한 차례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헤롯 성전의 지성소를 넓이는 약 100m²이고 곧 30평쯤 되는 공간이었다.
솔로몬 성전 시대에는 그곳에 언약개궤가 비치되어 있었으나 헤롯성전 시대에는 이미 그곳에 사라진 후에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었다.
다만 지성소에는 이전에 언약궤가 있던 자리를 표시하는 기초석이라는 바위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있었는데, 이것은 청색실과 자색실과 홍색실과 베실로 천사인 그룹들의 형상을 화려하게 수놓아 만들어졌다.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은 얇은 천이 아니었다. 매우 두껍고 튼튼하게 직조된 직물이었다.
예수 그리스와 거의 동시대를 함께 살았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자신의 유대 전쟁사 제5권 5장 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구조 중에서 가장 경이로운 것은 휘장의 강도였다. 그것은 결코 찢어진 적이 없었으니 비록 두 쌍의 말들이 각 부분을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긴다 할지라도 그것을 찢을 수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 놀라운 것은 요세푸스의 증언에 의하면 그 두꺼운 휘장이 태양 빛은 통과시킬 수 있도록 직조되었다는 사실이다.
천사들의 형상을 수놓아 청색과 자색, 홍색과 가는 베실로 두껍게 직조되었으면서도 햇빛을 투과시킬 수 있었으니 아마도 지성소에서 성소의 등잔 불빛을 언뜻언뜻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파로켓”이 그렇게 신비하도록 아름다웠다고 한다.
휘장의 크기는 가로 길이가 약 10m 그리고 높이가 약 15m로서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아 빈틈없이 완전히 구분하는 거대한 휘장이었다.
B.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
B.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
첫째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
이것도 역시 펄럭이는 큰 바람에 우연히 휘장이 찢어진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초자연적 현상이었다.
공관복음 비교(주경)을 통한 죽음과 휘장 찢어짐의 연결성
누가복음에는 그냥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니라.” 고 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장면을 보도하는 마태복음에는 예수께서 영혼이 떠나신 후에 “이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라고 되어 있다(마 27:50-51).
또한 마가복음에서도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신 후 이에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니라” 고 되어 있다(막 15:37-38).
예수께서 숨을 거두신 것과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마태복음이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 것을 보도하고, 곧이어 예수의 죽으심을 보도한 것은 시간의 차이라기보다 관점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죽으심과 성전 휘장이 찢어진 두 사건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마태는 전자(죽으심)를 통해 후자(휘장의 찢어짐)를 해석하고 싶었고
마가와 누가는 후자(휘장의 찢어짐)를 통해 전자(죽으심)를 해석하고 싶었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 시간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사건의 배열들 중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이냐를 가지고 논쟁할 필요는 없다.
다만 두 사건 곧 예수께서 죽으신 사건과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 사건이 구속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게 한결같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은 구속사적으로 다음 두 가지의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휘장 찢어짐의 방식
1. 하나님이 찢으심
1. 하나님이 찢으심
첫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종하실 그때의 휘장이 찢어졌다.
누가복음에는 그냥 “성소의 휘장이 한 가운데가 찢어지더라”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나온다.
따라서 여기서 “한 가운데”라고 함은 상하좌우의 한 가운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좌우를 기준으로 “한 가운데”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예수의 죽으심과 함께 이와 같이 성소의 휘장 좌우의 한 가운데가 찢어져 둘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휘장 찢어짐의 의미
이것이 찢어져 둘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성소와 지성소의 구분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헤롯성전과 성소 주변의 건축학적 구조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당시 헤롯 성전은 가장 멀리 이방인의 뜰이 있었고, 거기에 낮은 돌 울타리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곳을 넘어가는 이방인은 죽음으로 그 값을 치를 것이라는 경고문이 새겨져 있었다.
소위 이방인의 뜰을 앞에 둔 돌담은 넘어서면 여인의 뜰이 있었는데, 유대인 남녀라면 누구나 출입이 가능했다.
거기서 화려하게 장식된 구리로 만든 문을 지나면 이스라엘의 띠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오직 의식법적으로 정결한 남성들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었으며 거기에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었다.
거기서 다시 금으로 장식된 웅장하고도 큰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성소에 도달하게 된다.
거기서 더 들어가서 전방 20m 앞에 이르면 천정부터 바닥까지 건물 전체를 가로막는 듯한 휘장을 만나게 된다.
거기서 그 “파로켓”, 곧 휘장을 지나면 바로 지성소에 이르게 된다.
이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신학적 사실을 의미한다.
첫 번째로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구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성소와 지성소 사이 구분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와 마주하기 위해서 위하여 오직 대제사장들만이 1년에 한 차례 들어가도록 구분된 공간인 지성소에 이제는 제사장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영원하고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셔서 이루신 구속의 결과다.
두 번째로는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믿는 모든 신자들을 제사장으로 불러주셨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 2장 9절).
이제 신약의 제사장들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든지 어떠한 인간 중보자의 도움 없이도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성소를 지나 지성소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람의 중보도 없이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써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뿌려진 핏기를 자기의 자기의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서 찢어진 휘장을 지나 거룩하신 하나님 보좌에 이를 수 있게 하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구원받을 모든 인류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이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차별이 사라졌다.
또한 남자와 여자, 종과 자유인,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 차별이 없어졌다.
적용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에 접붙여져 영적으로 한 몸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결코 더 이상 인간중보자 곧 제사장이나 대제사장의 도움 없이 거룩한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어디에서나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당신을 만나고자 찾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은 만나주신다.
히브리서는 성소의 휘장을 예수님의 육체로 해석합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아야 함을 교훈합니다.
믿음: 담대함(19절)- 나아가자(2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소망: 위대한 제사장(21절)-붙잡자(23절).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사랑: 보살피자(24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을 따르지 말고 모이기에 힘쓰자.
2.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짐.
2.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짐.
둘째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종하실 때 성전의 휘장은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
이것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구분을 없이 하였다.
그런데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진 것은 그 일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실행하신 일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휘장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래로 온 인류의 비극의 근원은 인간의 영혼과 하나님 사이의 생명적 교통의 단절이었다.
이것은 곧 인간의 영혼이 마땅히 받아 누림으로써 참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상실한 것을 의미했다.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인간이 겪게 된 가장 큰 비참은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여기서 “이르지 못하더니”라는 말은 그리스 언어적으로 “미치지 못하다. 모자라다”를 의미한다.
범죄하기 전에는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영광에 다 다를 수 있어서 신적 생명 혹은 영원한 생명, 영적 생명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인간 영혼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보고 그분과 사랑으로 교제하며 하늘에 신령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범죄함으로써 인간은 그 모든 좋은 특권들을 한 번에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죄인이 된 상태에 있는 인간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이었다.
예화
덫에 걸린 채 몸부림치다가 죽은 멧돼지의 상흔과 눈물, KBS 같은 데서 특집으로 촬영을 했는데 덫을 놓은 거야.
거기에 이제 멧돼지가 걸렸어. 그런데 이제 탁 채워지잖아.
그러니까 막 이렇게 이렇게 발을 집어놓으면 탁 날라와서 이렇게 양쪽을 이렇게 탁 채워버리는 것은 빠져나올라고 막 몸부림 치니까 이게 살갗이 다 찢어지고 마지막에는 피가 나고 뼈까지 드러나는 거야.
그런데 결국은 거기서 못 나오는 거지. 예를 들면 움직일수록 점점 더 쪼여 오니까 그래서 이제 죽은 건데 인간의 처지가 그랬었다 그 얘기예요.
적용,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믿음
인간의 영혼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도록 태어났고 육체는 그러한 영혼과 동행하도록 태어났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대부분 인간이 절대자를 찾아가는 것이지만 기독교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선도권을 가지고 인간을 찾아오시는 종교다.
그래서 하나님(God) 당신께서 믿게 하시지 않고 믿게 된 자가 없으며 그분이 믿게 하신 자는 믿지 않게 되는 법이 없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이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믿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믿지 않았다고 변명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자에게는 믿을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그 소원을 이루게 하시지만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믿지 않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심판이 있다. 잊지 말자.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우릴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하나님께서 주도하셔서 일어난 일이다.
이는 모든 믿는 자들로 하여금 구원의 공로를 자기에게 돌리지 못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 대신 오직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께만 찬성과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C.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짐.
C.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짐.
셋째로, 예수께서 숨을 거두실 때 땅이 진동하여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
땅이 진동함의 의미
이 놀라운 사건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말해주는 초자연적 사건이었다.
이는 예수가 인간이기 전에 창조주요, 구속주임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죽으심은 우리와는 다르게 인류 구원의 대업을 이루기 위한 죽으심임을 보여준 것이다.
대지가 진동한 것은 그분의 죽음이 가져올 심판의 경고였고 바위가 터진 것은 그분의 죽음이 가져올 구원의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무덤이 열려 죽은 사람이 일어남의 의미
또한 무덤들이 열려 살아난 것은 사탄의 마지막 카드인 죽음이 무효가 된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무덤에서 살아난 그들로 하여금 친히 예수의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성도들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살아서 예수 그리스의 부활을 증거했을 것이며 자신들의 수를 다 누리고 자연사하였을 것이다.
이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진 이 사건은, 또한 앞으로 주 예수 당신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 나타날 부활의 소망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세레모니(예수님의 죽음은 우주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두고 일어난 여러 초자연적 현상들을 생각해 보라.
온 땅을 뒤덮은 칠흑과 같은 어둠이나 땅에 땅이 흔들리는 지진 그리고 바위들이 터지고 무덤에서 죽었던 성도들이 다시 살아난 사건 등은 예수의 죽음이 갖고 있는 우주적 의미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예수의 죽음을 통해 구원받을 인류를 위해 필요하고 충분한 대리적 속죄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그 사건들을 목격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 놀라운 인류 구원의 역사적 중심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모두 십자가의 구원을 믿게 하려는 동시에 그분이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을 미리 보여줌으로써 이제 사탄의 마지막 카드가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음을 선포하는 사건이었다.
역사신학적 관점
이에 대하여 초대 교회 교부인 유세비우스 소프로니우스 히에로니무스(342-420)는 자신의 책 마태복음 주석 제4권 27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진이 일어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원소들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죽인 사람이 평범한 인간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또한 현재의 심판의 두려움을 보여주고 모든 이를 미래의 심판으로 초청하기 위함이었다.
바위들이 찢어진 것은 돌 같은 유대인들의 완고한 마음을 깨뜨려 부활을 증언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무덤들이 열린 것은 죽은 자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살아나게 될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이자 비밀(경륜)
온 세상과 인류와 우주에 대한 경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접혀져 있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자 비밀이다(고전 2:7, 골 2:3).
그리고 이것이 시간과 공간 속에 펼쳐진 것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이다.
그래서 한 교회의 세워짐은 물론 나 같은 한 사람의 죄인이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된 것조차 하나님의 우주적 경륜과 연결되어 있으니 그것의 한 부분이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씨줄과 날줄이 되어서 한 사람의 구원과 멸망 그리고 한 교회의 설립과 흥망을 서로 엮어 가면서 구원사의 직조물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그 구원 역사는 세속 역사와 함께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듯이 상호 관련을 맺으며 전개되는 하나님의 경륜의 밑그림을 그려 준다.
적용
우리가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사실이 있다.
한때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던 죄인들이었다는 사실과 오직 독생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설교자인 찰스 하돈 스펄전 목사(1834-1892)는 자신의 설교 <애통하는 자의 위로>에서 죄에 대한 애통과 눈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말하였다.
“마른 눈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죄와 아직 이 땅에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 나라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는 성도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위로와 하늘나라의 실체를 경험할 수 없다.
III. 적용과 결론
III. 적용과 결론
도대체 그리스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인생살이는 마치 쏟아지는 폭우에 다 젖은 옷과 물에 흠뻑 젖은 운동화를 신고 질척이는 뻘밭을 걷는 것과 같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우리의 영혼의 날개가 없어서인가?
있기는 있어도 짊어진 세상 염려와 사랑이 너무 무거워서 파닥이는 날갯짓에도 불구하고, 날아오르지 못하기 때문이지 않는가?
삶을 통해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면 참으로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죽음을 통하여 삶을 보지 않으면 참으로 해아래서 우리가 누리는 복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 다음 예수께서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구원받을 우리 때문에 기쁨으로 그 큰 십자가의 고통을 모두 감당하셨다.
그때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우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그분을 위하여 울어드릴 때이다.
그때는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피 흘리셨고 이제는 우리가 그분을 위하여 거저 얻은 생명을 바칠 때이다.
이 땅에서 선한 싸움을 다 마치고 천국에서 그분의 품에 안기는 날까지 시간이라는 편지지에 눈물을 먹물 삼고 피를 물감 삼아서 그분을 향한 사랑을 마음껏 쓰고 그리자.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물과 피를 모두 흘리신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당신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우리를 반드시 도와주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