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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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러나 너는

본문: 디모데전서 6장 6-19절

찬송: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임재의 기도

말씀을 통해서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오늘 나눌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말씀해 주옵소서.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되게 하시고,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이기게 하는 뜨거운 능력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습니다.
본문 7절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참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진리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올 때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았습니다. 빈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땅을 떠날 때도 빈손으로 떠납니다. 아무리 많이 가진 사람도,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채우려 합니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많이 모으려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될 때 그것이 우리를 만족시켜 주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 아들 디모데를 향해 “그러나 너는”이라고 운을 떼며 모든 시간 속에서 함께 해주셨고, 지금도 함께 하시며, 앞으로도 영원토록 함께 하실 분이 누구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우리도 본문을 통해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귀한 은혜를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첫째, 우리는 주님만으로 족합니다.

이제 함께 본문 6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디모데전서 6:6 NKRV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본문에 나온 ‘자족’이란 말은 자기 스스로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자족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이 땅에 왔지만, 주님을 만났습니다. 가난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때도 주님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부족했던 때도 있었지만 주님 한분으로 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자족의 모양입니다.
2025년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력은 세계 13위이며, 군사력은 5위에 이른다고 합니다.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삼성과 LG에서 만든 가전제품을 제일 신뢰하며,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최첨단 무기도 수입하려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한국의 음악과 드라마를 통해 전 세계가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풍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엄청난 변화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6.25전쟁을 겪으신 분도 계시고, 보릿고개를 넘으셨던 분들도 계십니다. 그 시절 우리는 정말 빈손이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고구마가 우리의 식사였습니다. 아침에도 고구마, 또 점심에도 고구마, 그리고 저녁에도 고구마를 먹었습니다. 매일 매 끼니가 고구마였어도, 배가 고팠기에 고구마 한 개가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고, 그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밥상에 반찬이 많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김치 한 가지만 있어도 온 식구가 둘러앉아 웃으며 식사를 했습니다. 입을 옷도 변변치 않았습니다. 형이 입던 옷을 동생이 물려받고, 그것을 깁고 또 깁어 입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그때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음은 풍요로웠습니다. 적게 가졌지만 많이 누렸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전부였기에, 그것으로 만족했습니다.
무엇보다 그 시절 우리에게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 눈밭을 헤치고 교회에 올 때면 누군가 한 사람이 찬송을 부르면 모두가 따라 부르며 교회를 다녔습니다. 교회에서도 찬송을 부를 때면 목이 터져라 불렀습니다. 기도할 때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헌금은 적었지만 정성을 다해 드렸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제게 그 시절의 신앙이 참 순수하고 뜨거웠다 간증을 들려주십니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 보니 우리를 채워준 것은 물질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많고 부유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 10절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돈이 문제다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갈망하는 것이 온갖 종류의 악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뿌리가 된다고 바울은 경고합니다.
우리가 고구마 한 개로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마음에 주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낡은 옷을 입어도 부끄럽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것은 교회가 있었고 주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절에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13절에서 그 비결을 밝힙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바울의 자족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능력을 주셨기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형편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17절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공급자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빈손으로 왔을 때 주님은 채워주셨고, 우리가 가난했을 때 주님은 만족이 되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부족했을 때 주님은 우리의 풍요로움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한 분이면 족합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면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우리는 주님만 붙들어야 합니다.

함께 본론 11-12절을 읽겠습니다.
디모데전서 6:11–12 NKRV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바울은 젊은 디모데를 향해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릅니다. 디모데의 이름을 불렀다 해서 이것이 디모데만을 가리킨 말씀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들을 피하고”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탐욕분쟁교만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와 경건믿음사랑인내온유를 따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것은 영적 싸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2절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고 디모데를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명령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이 바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중입니다. 가끔 성도님들 중에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보면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여전히 주일이면 하나님을 기억하고 이 자리에 나오십니다.
어떤 분은 지팡이를 짚고 나오시고, 또 어떤 분은 다른 이들의 부축을 받아 나오십니다. 몸이 아파도 진통제를 드시고 나오시는 분도 계십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며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바로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붙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비가오나 눈이오나 새벽제단을 쌓는 분들도 계십니다. 타지에 있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헌금을 드리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젊은 디모데만 싸움이 따로 있고, 어르신들의 싸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끝까지 주님을 붙드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며 우리는 이것을 통해 영생을 취하게 되는 것입다.
영생은 죽어서 가는 천국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생은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예수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을 취한다는 것은 지금 내 삶에서 주님을 단단히 붙잡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생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단단히 붙잡은 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베드로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는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돈 얼마를 얻을까를 생각하여 베드로를 부르자 베드로가 그를 바라보며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얼나 걸으라”(행 3:6) 명령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은과 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귀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었습니다. 그 이름이면 충분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붙들 것돈과 명예와 권력 등 세상에서 언제가 없어질 것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붙들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뿐입니다. 그 이름 하나면 족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세월과 싸우고 있습니다. 세상의 유혹과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싸움 속에서도 우리는 주님만을 붙들어야 합니다.
주님만을 붙드심으로 언제나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우리가 빈손으로 이 땅에 왔지만, 주님을 만났고, 주님 한 분으로 족했습니다. 고구마 한 개로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며 지금도 우리는 주님을 붙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몸은 약하지만 믿음은 강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미래는 어떠할까요?
17-19절은 부한 자들을 향해 말씀하지만, 이것은 우리와 무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이 부러워하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영적 부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선을 행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어르신들이 이미 하고 계신 새벽기도의 중보, 작은 헌금의 정성, 사랑의 나눔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모든 섬김이 장래에 좋은 터가 되어 참된 생명을 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고 빈손으로 갑니다. 하지만 처음 빈손과 마지막 빈손은 다릅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제는 주님을 압니다. 처음엔 빈손이 초라했지만, 이제는 빈손이 아니라 주님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오직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빈손으로 이 땅에 왔지만 주님을 만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아봅니다. 가난했던 시절도 있었고,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주님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고구마 한 개로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지금 우리의 몸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기억력도 떨어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여전히 강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주님을 붙들고 있습니다. 이 연약한 몸으로도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새벽기도와 중보기도와 작은 헌신을 기억해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부자입니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주님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섬김이 천국에 쌓이고 있음을 믿습니다. 장래에 좋은 터가 되어 참된 생명을 취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이제 우리가 결단합니다. 과거에도 주님으로 족했고, 지금도 주님을 붙들며, 미래에도 주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우리 손에 쥐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붙드시는 주님의 손을 굳게 붙잡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우리 모두가 세상이 아닌 주님을 바라보며, 탐욕이 아닌 자족으로, 불평이 아닌 감사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시고, 천국까지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빈손으로 이 땅에 왔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주님 한 분이면 족합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께 드리는 헌금을 받아주옵소서.
십일조를 드린 [이름들]을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의 십분의 일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이 신앙을 기억해 주옵소서.
감사헌금을 드린 [이름들]을 축복합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이 고백을 받아주옵소서.
선교헌금을 드린 [이름들]을 축복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는 이 헌신을 기뻐 받으옵소서.
생일감사헌금을 드린 [이름들]을 축복합니다. 한 해를 더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하는 이 마음을 받아주옵소서.
성전 꽃꽂이 헌금을 드린 [이름들]을 축복합니다. 주님의 집을 아름답게 하려는 이 정성을 기뻐 받으옵소서.
주정헌금과 구역헌금과 성미와 봉사로 섬기신 모든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정성을 다해 드리는 이 믿음을 기억해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드린 이 헌금은 비록 작을지라도 우리의 진심입니다. 고구마 한 개로도 감사했던 그 마음으로, 오늘도 우리가 가진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이 모든 헌금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게 하시고, 장래에 좋은 터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헌금하신 모든 성도님들의 삶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그 가정과 사업을 지켜주시고, 범사에 형통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하옵소서. 연약한 몸을 강건케 하시고, 지친 심령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끝까지 주님을 붙들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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