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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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눈물

본문: 요한복음 11장 28-37절

찬송: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말씀의 문을 열며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배우며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 넘어져서 울려고 하면 “남자가 그렇게 약해서 어떡하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억울해서 눈물이 나려 하면 “남자가 그정도 가지고 울려고 하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자는 강해야 하고 눈물은 약함의 표시라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눈물이 정말 약함만을 의미할까요? 아니죠. 눈물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어서 흘리는 눈물, 힘들어서 흘리는 눈물도 있습니다. 이런 눈물은 분명 약함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눈물은 분명 연약함 때문입니다. 하지만 뉘우치는 눈물도 있고, 기쁨의 눈물도 있습니다.
장례식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웁니다. 그런데 그 눈물들이 다 같은 눈물은 아닐 것입니다. “왜 그때 더 잘해드리지 못했을까…” 후회하며 울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우니 따라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앞으로 자기 인생이 너무 걱정되 울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참 많은 사람이 울지만, 그 눈물의 의미는 장례식에 참여하는 사람만큼 다양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세 가지 눈물이 나옵니다.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마리아가 울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유대인들도 함께 울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같은 장소, 같은 사건 앞에서 흘린 눈물이지만 그 의미는 달랐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눈물은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곧 나사로를 다시 실리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부활과 생명의 주님이신데, 왜 눈물을 흘리셨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눈물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의 죽음의 눈물과 예수님의 생명의 눈물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예수님의 눈물이 우리에게 어떤 생명을 주는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죽음의 눈물

마르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돌아와서 동생 마리아에게 가만히 말합니다.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마리아가 이 말을 듣자마자 급히 일어나 예수님께로 나갑니다.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나가자 집에서 마리아를 위로하던 유대인들이 뒤따라 나옵니다. 그들은 마리아가 무덤으로 곡하러 가는 줄 알았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벌써 나흘이나 지났지만 마리아는 여전히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마리아가 예수님 계신 곳에 와서 주님을 뵙습니다. 그리고 그 발 앞에 엎드립니다. 완전히 무너진 모습입니다. 그리고 입을 엽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언니 마르다가 했던 말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울지 않았지만 마리아는 울었습니다. 소리 내어 흐느껴 울었습니다. 왜일까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이 말 속에 아쉬움이 담겨 있습니다. "왜 더 일찍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조금만 더 일찍 오셨더라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텐데…" 그 안타까움이 눈물로 터져 나옵니다.
사랑하는 오빠가 죽어 갔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살려달라고 기도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분이 안 계셨습니다. 죽음 앞에서 마리아는 철저히 무기력했습니다.
우리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조금만 더 일찍…" 우리도 죽음 앞에서 마리아처럼 무너집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애써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코로나 때 얼마나 많은 분들이 가족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습니까? 격리된 병실에서 홀로 보내야 했던 그 무력함을 우리는 압니다.
마리아를 따라온 유대인들도 마리아가 우는 것을 보고 함께 울었습니다. 그들은 장례 절차를 돕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장례 문화에는 일주일 동안 곡을 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리아를 위로하고 함께 울어주었습니다.
진심 어린 동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우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자연스럽게 함께 슬퍼지고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형식적인 면도 있지 않았을까요? 남들이 우니까 나도 우는, 그런 울음도 섞여 있지 않았을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의 신앙도 때로는 그렇습니다. 예배를 드리지만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도를 하지만 형식적입니다. 찬양을 하지만 진심이 없습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마리아의 눈물과 유대인들의 이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의 무력함입니다.
아무리 많이 울어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진심으로 슬퍼해도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마리아는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했지만, 이미 오빠는 죽었습니다. 나흘이나 지났습니다. 났습니다.
인간의 눈물은 여기까지입니다.
우리는 슬퍼할 수 있습니다. 아파할 수 있습니다. 동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생명의 눈물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우는 것과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33b)
이 말씀을 원어로 보면 놀랍습니다.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라는 말은 사실 '분노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화가 나셨습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기사’'자신을 괴롭히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분노하셨고, 동시에 괴로워하셨습니다.
누구에게 화가 나셨을까요? 마리아에게? 유대인들에게?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슬프게 만든 죄와 죽음의 권세에 화가 나셨습니다.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죽음, 모든 희망을 앗아가는 죽음에 대한 거룩한 분노였습니다.
그리고 괴로워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깊은 사랑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셨습니다. 곧 십자가로 가야 하는 그 고뇌가 예수님의 심령을 짓눌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어디 두었느냐"(34) 물으셨습니다. 행동하기 시작하신 겁니다. 그리고...
35절은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짧은 문장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짧은 문장이 온 우주를 울립니다.
마리아와 유대인들은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깊은 곳에서 나오는 눈물이었습니다.
이 눈물은 무엇일까요?
첫째, 인간을 향한 깊은 연민의 눈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아무리 잘 살아도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 부활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인생이 가장 불쌍한 인생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보시며 우셨습니다.
둘째, 죄와 죽음에 대한 거룩한 분노의 눈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화내신 게 아닙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죄와 죽음에 화가 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셋째, 십자가를 향한 사랑의 결단입니다. 이 눈물이 나사로를 살렸습니다. 그리고 이 눈물이 예수님을 십자가로 가게 했습니다. 나사로가 살아나자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우셨습니다.
이것이 생명을 주는 사랑의 눈물입니다!
마리아는 절망했지만 예수님은 소망을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무기력하게 울었지만 예수님은 행동하시며 우셨습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 무너지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 한주간을 지내면서 눈물을 흘릴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가 눈물을 흘릴 때 그 눈물이 어떤 눈물인지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눈물은 어떤 눈물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절망에 머물러 있는 죽음의 눈물입니까? 아니면 생명을 주는 사랑의 눈물입니까?
예수님처럼 이 땅의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이번 주간 한 사람을 위해 매일 기도하십시오. 죄와 죽음의 권세에 거룩하게 분노하십시오. 무감각해진 신앙을 깨우십시오. 그리고 행동하십시오. 힘든 이웃을 찾아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이제 예수님처럼 생명을 주는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눈물을 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십자가로 가신 주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 생명을 주시는 사랑을 보여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고백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메말랐습니다. 영혼을 보아도 눈물이 없었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도를 해도 형식적이었습니다. 내 유익만 구하고 다른 영혼들에게는 무관심했습니다. 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결단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생명을 주는 사랑의 눈물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눈물, 죄와 죽음에 거룩하게 분노하는 눈물, 십자가를 따라 행동하는 사랑의 눈물을 흘리기 원합니다.
이번 주간 한 영혼을 위해 매일 기도하게 하옵소서. 힘든 이웃을 찾아가 함께 울어주게 하옵소서. 무감각해진 신앙을 깨우고 진심으로 주님을 예배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중앙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성령 충만, 믿음 충만, 말씀 충만한 교회 되게 하옵소서. 영적 침체를 깨뜨리고 새로운 은혜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생명을 살리는 교회, 이 땅의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승리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모든 기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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