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서 드리는 가장 높은 찬양 2025 1020 눅1: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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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나의 비천함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만날 때, 내 삶은 비로소 찬양이 됩니다.
서론: 엔케렘 언덕, 절박한 만남과 위대한 찬양
서론: 엔케렘 언덕, 절박한 만남과 위대한 찬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이스라엘에 머물던 시절, 예루살렘 외곽의 작고 아름다운 마을 엔케렘(Ein Karem)을 방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포도밭의 샘'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그곳은 세례 요한의 부모님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살았던 동네로 전해집니다.
엔케렘 언덕 중턱에 자리한 ‘마리아 방문 기념 교회’ 마당에는, 전 세계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된 마리아의 찬가, ‘마니피캇’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곳에서 낯익은 한글로 선명하게 새겨진 마리아의 찬양을 보며 깊은 감동과 함께 한 가지 질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대체 이 어린 소녀는 어떤 마음으로 이 위대한 찬양을 터뜨릴 수 있었을까?
오늘 본문의 바로 앞 구절인 누가복음 1장을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할 것을 알리며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순종한 뒤, 곧바로 길을 떠납니다. 성경은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눅 1:39) 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빨리’ 길을 떠났다는 것은,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녀가 살던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산골 엔케렘까지의 거리는 약 150km, 험준한 산길을 고려하면 건장한 남자도 나흘은 꼬박 걸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적대적인 사마리아 땅을 피해 다녔기에, 임신한 어린 소녀는 훨씬 더 멀고 위험한 길을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왜 마리아는 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 먼 길을 서둘러 달려가야만 했을까요?
마리아는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그녀는 지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을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혼전임신이라는 오해 속에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끔찍한 상황입니다. 완전한 사회적 고립, 죽음의 공포 속에서 그녀의 기적을 이해하고 함께 기도해 줄 단 한 사람, 바로 기적적으로 잉태한 엘리사벳을 향해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험난한 여정 끝에, 두 여인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절박한 만남의 자리, 가장 낮고 외로운 자리에서 마리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오늘 이 새벽, 마리아의 찬가를 통해 찬양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이 어떻게 찬양으로 변화될 수 있는지, 그 놀라운 영적 원리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본론: 내 삶이 찬양이 되는 세 가지 이유
본론: 내 삶이 찬양이 되는 세 가지 이유
1. 찬양은 '나의 비천함'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시작됩니다.
1. 찬양은 '나의 비천함'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시작됩니다.
마리아 찬양의 첫 소절은 놀랍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눅 1:46-47) 이라고 선포한 뒤,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눅 1:48).
여기서 '비천함'으로 번역된 헬라어 '타페이노시스'(ταπείνωσις)는 단순히 겸손한 마음가짐을 뜻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사회적으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객관적인 낮음, 무력함, 보잘것없는 실제 처지를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찬양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위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이 무시하고 나 자신조차 하찮게 여겼던 바로 그 '비천한 나'를 인격적으로 찾아오시고 주목하셨다는 그 사실 하나에 온 영혼이 감격하여 찬양을 터뜨린 것입니다.
(적용) 성도 여러분, 우리의 찬양은 언제 시작됩니까? 모든 문제가 해결된 후에야 마지못해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혹시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삶의 고단함, 실패감으로 얼룩진 나의 연약함 때문에 기도조차 할 수 없다고 느끼십니까? 바로 그 자리가 주님을 만나는 최고의 자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시 138:6). 하나님은 우리의 비천함(타페이노시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바로 그곳으로 찾아와 우리를 굽어살피시는 분입니다. 이 새벽, 나의 가장 낮은 곳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찬양은 '세상을 뒤엎으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할 때 깊어집니다.
2. 찬양은 '세상을 뒤엎으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할 때 깊어집니다.
마리아의 찬양은 개인적인 감격에 머무르지 않고,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선포하는 장엄한 교향곡으로 발전합니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가치와 질서를 완전히 뒤집어엎는 '하나님 나라의 대역전(The Great Reversal)'에 대한 선언입니다. 세상은 힘과 부, 권력을 숭배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오히려 낮고 가난하고 굶주린 자의 편에 서시는 분임을 마리아는 확신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태중에 잉태된 생명을 통해, 이 위대한 역전의 드라마가 이제 곧 시작될 것임을 온 세상에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무엘상 2장에 나오는 한나의 노래와 정확히 맞닿아 있는, 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일관된 성품입니다.
(적용) 혹시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며 절망하고 계십니까? "가진 것이 없어", "배운 것이 짧아", "힘이 없어" 낙심하고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의 가치를 전복시키는 혁명가이십니다. 내가 약할 그때 강함 되시고, 내가 낮아질 그때 높이시며, 나의 가난함 속에서 하늘의 부요함을 채우시는 분입니다. 이 역전의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의 찬양은 단순한 신세 한탄을 넘어 세상을 향한 담대한 믿음의 선포가 될 것입니다.
3. 찬양은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 때 완성됩니다.
3. 찬양은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 때 완성됩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찬양의 근거를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이 아닌,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에 둡니다.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마리아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 놀라운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 아님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수백 년, 수천 년 전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이 마침내 자신을 통해 성취되는, 구속 역사의 장엄한 클라이맥스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녀의 믿음은 흔들리는 감정이 아니라, 결코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단단한 반석 위에 서 있었습니다. 자신이 그 위대한 언약의 성취를 위한 통로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개인적인 두려움은 구속사를 감당하는 사명자의 확신으로 변화했습니다.
(적용) 우리의 신앙이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현실 앞에서 흔들릴 때,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합니까? 바로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마리아가 아브라함의 언약을 붙들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그 모든 약속의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선포합니다.
고린도후서 1:20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내 상황이 어떠하든, 내 감정이 어떠하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었습니다. 이 진리 위에 우리의 믿음을 세울 때, 우리의 찬양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반석 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결론: 나의 삶을 '마니피캇'으로
결론: 나의 삶을 '마니피캇'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리아의 찬가는 우리에게 참된 찬양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것은 좋은 환경에서 나오는 세련된 노래가 아니라, 나의 가장 비천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이로운 사건입니다.
나의 비천함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임재, 세상의 가치를 뒤엎으시는 그분의 능력, 그리고 영원한 약속을 마침내 성취하시는 그분의 신실하심.
이 세 가지 진리를 가슴에 새길 때, 우리의 고단한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가장 아름다운 찬가, 바로 우리의 '마니피캇'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 세상이 외면하고 나조차 외면하고 싶었던 여러분의 '비천함'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 자리에서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며, 찬양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