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과 기사와 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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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기적
여러분 살면서, 기적을 경험하신 적이 있습니까? 인간의 상식으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할만한 기적을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 저는 제가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생후 1개월 때에 뇌수막염에 걸려서 수술을 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해도, 살아날 확률이 반반, 그리고 장애가 생길 확률이 반반이라는 말씀을 듣고 저희 가족과 아버지가 목회하시던 교회의 교인분들이 기도를 열심히 해주신 덕분에 멀쩡하게 수술을 잘 마쳤다 라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왔습니다. 놀랄 만한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죠.
중학생 때는 부모님과 차를 타고 여름 휴가를 가다가 고속도로에서 차 앞바퀴가 펑크가 났어요. 시속 120키로로 달리고 있는 중에 앞바퀴가 펑크가 났는데, 천만다행으로 전복되지 않고, 가드레일을 박고서 수평으로 빙글빙글 도는 바람에 속도가 천천히 줄어서 짐도 사람도 멀쩡해가지고, 그대로 렌터카 빌려서 휴가를 마저 다녀왔던 것도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또 제가 군대를 공익으로 다녀왔지만 한달간 논산훈련소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는데, 제가 가진 총이 총기 훈련중에 총이 두갈래로 찢어질 정도로 큰 폭발이 있었는데, 전혀 다친 곳이 없어서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훈련병들 중에 하필이면 제 총이 터진 것도 놀라운데, 그 가운데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도 다치지 않은 일을 보고, “이건 기적이다”라고 많이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저희가 살면서 “이건 기적이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라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어떻게 일어났는지 모를 일들을 저희가 경험하기 마련인데요. 저희가 신앙인으로서 그러한 기적들을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라고 고백할 때가 많습니다. 저도 앞서 언급한 경험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고 인도하신 일이다”라고 믿어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요, 이건 그저 우연의 일치로 일어난 것은 아닐까요? 아주아주 낮은 확률이긴 하지만, 공장에서 총알 불량품 하나가 나와서 총이 폭발할 수도 있죠. 앞바퀴가 터지는 사고가 나도, 제가 몸무게가 하도 무거워서 안뒤집어졌을 수도 있죠. 기적이 일어났다고 해서,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꼭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이야기할수 있을까요?
성경 속 사람의 기적들
성경 속 사람의 기적들
성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는 기적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주 대표적으로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찾아가서 기적을 행했을 때에 애굽의 마술사들도 똑같이 했던 걸 볼 수 있습니다.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지팡이를 뱀으로 바꾸는 기적에서 그렇게 했구요. 그 이후에 물을 피로 바꾸는 일이나 개구리가 튀어나오는 일도 똑같이 따라 했습니다.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사도행전에서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시몬이라고 하는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기적같은 일들을 행하니까 사람들이 “이야 이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쓰는구나!”라고 하면서 따르기도 했습니다.
이 시몬이라는 사람은 나중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다니니까, 그걸 보고 찾아가서 “제가 돈을 낼 테니까 성령을 받도록 저에게도 권능을 주세요!”하는데 베드로가 크게 혼을 내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권능과 기사와 표적
권능과 기사와 표적
이처럼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의 일상 속에서도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성경에도 수많은 기적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지만, “기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인 사도행전 2장 22절 말씀 역시 바로 이런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로 말하고 있는데요, 함께 한 목소리로 읽어볼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세 가지를 베푸셨다고 나옵니다. 큰 권능, 기사, 그리고 표적 이렇게 세가지를 베푸셨다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오늘 말씀의 제목이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라고 정했는데, 바로 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베푸셨다는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오늘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권능 δύναμις
권능 δύναμις
먼저는 권능입니다. 권능은 헬라어로 뒤나미스(δύναμις)라고 하는 단어로, 힘, 기적, 능력, 권능, 군대 등등 주로 “힘”을 이야기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원래 이 단어는 뒤나마이(δύναμαι)라고 하는 단어에서 나온 건데요, 이 단어는 “할 수 있다, 가능하다”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하는 것, 힘, 능력이죠.
저희가 아는 찬양 중에도 이런 찬양이 있죠.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나의 능력 주 하나님~” 바로 그 찬양처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권능이고 능력입니다.
어떤 능력들이 있죠?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과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마치 기적과도 같은일, 안되는 것을 되게 할 수 있는 종류의 힘인 권능이 있구요.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한 권능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드러나는 권능, 즉 “통치”하는 권능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는 “권세”라고도 할 수 있겠죠.
악한 권능, 억압
악한 권능, 억압
그런데 여러분, 권능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하는 힘” “통치”라고 한다면, 권능은 “항상 좋은” 권능만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처럼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머리와 열 뿔달린 짐승을 탄 큰 음녀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요, 천사가 이 열 뿔이 열 명의 왕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절대 좋은 종류의 능력이 아니겠죠?
또한 권능이 뒤나미스라고 하는 헬라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권능 앞에 “아래로”라고 하는 뜻을 가진 전치사가 붙어서 카타듀나스테v보(καταδυναστεύω)라고 하는 단어가 쓰이기도 하는데요, 이 헬라어는 억압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에서도,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다 할 때에 이 단어가 쓰이구요,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신약에도 부자가 가난한 자를 억압한다 할 때에 이 단어가 쓰입니다.
그러니까 권능은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는 힘과 통치하는 권세를 뜻하지만,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악한 통치를 세우는 권능일 수도 있고, 약한 자를 압제하고 억압하는 종류의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권능은 성령의 은사
그리스도인의 권능은 성령의 은사
그럼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권능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린도 전서 12장에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요, 여기에서이 능력 행함, 즉 권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권능은 “성령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나의 힘”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선물,” 즉 “성령의 은사”가 곧 그리스도인의 권능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인의 권능은 “성령”이 임하실때에 받는 권능입니다. 그리고 이 받은 권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권능입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흔히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을 사업장이나 집에 붙여넣으시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요, 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말씀은 돈을 잘 벌거나, 하는 일이 다 잘되거나, 건강한 몸을 갖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12절과 함께 읽으면 이 말씀은 내가 비천에 처하든지 풍부에 처하든지 배고프든지 배부르든지, 내가 아프든지 건강하든지 간에, “내게 능력 주시는 성령 안에서 내가 복음 전하는 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일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멸시 천대 받고, 고난 당하고, 감옥에 갇히면서 남들은 “저봐 저봐, 저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라고 할 때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고백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고백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저의 고백이 바로 이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악한 통치가 아니라,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억압하는 힘이 아니라, 성령님이 주신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억눌린 자를 자유케하시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권능을 가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사, τέρας
기사, τέρας
두번째로, 기사라고 하는 단어는 헬라어로 테라스(τέρας)라고 하는 단어인데요, 기적, 불가사의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놀랄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린 제가 경험한 일들도, 놀랄 만한 일, 기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구요, 애굽의 마술사들이 행한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일 같은 것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마술사였던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이 행한 일도 사람들이 보기엔 놀랄만한 일이기에 기적이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요, 놀랄 만하게 나타난 현상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눈에 보이는 것에 자주 끌리기 마련이죠.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다른 신을 섬기자고 하는 말을 듣지 말라고 하십니다. 막 예언을 해가지고 정말로 그게 일어났다고 한들, 그러한 기적과도 같은 “현상,” “눈에 보이는 것” 자체는 아무것도 아닌겁니다.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우상숭배하는 기적도 있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6장에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오병이어의 “기적”이 등장하는데요, 그리고 그 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서 막 쫒아다니기 시작하다가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떡과 물고기가 막 말도안되게, 기적처럼 불어나서 배부르게 먹은 “현상”만 보고서 예수님을 찾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신 건 기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표적”을 위한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표적, σημεῖον
표적, σημεῖον
표적은 헬라어로 세메이온(σημεῖον)이라고 하는데요, 영어로는 사인 sign이라고 합니다. 횡단보도에서 빨간불이 들어오면 저희는 멈추고, 파란불이 들어오면 건너죠? 빨간불, 파란불 자체는 그냥 빛의 색깔일 뿐인데, 왜 그렇게 하죠? 빨간불에는 멈춘다, 파란불에는 나아간다는 표지, 다른 말로하면 신호등에 그런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에 저희가 빨간불에는 멈추고, 파란불에는 건넙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수많은 기적들은 보고 놀라라고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안에 담겨있는 의미가 무엇이냐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신 것은 먹고 배부르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결코 주리지 않고 결코 목마르지 않도록, 예수님이라고 하는 생명의 떡을 먹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으라는 표적을 보여주신 겁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의 말미에는 요한복음을 기록한 이유를 아주 명료하게 써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표적을 보여주셨는데, 다 기록하지 못하고 일부만 기록했어도, 이 기록의 목적 자체가 예수님을 믿게 하고 생명을 얻게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표적” 그 안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하는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가짜를 경계할 것.
가짜를 경계할 것.
요즘에도 있습니다마는 막 치유집회, 신유기도회라는 이름으로 막 와서 기도받으면 다 치유받고 뭐 하면서 안 나으면 기도와 헌금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집회들이 있습니다. 자기에게막 신유의 은사가 있다고 자기 집회에 오라고 하는 거죠.
혹은 거리에 나가서 스피커폰 잡고 정치 집회를 여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자기 말만 맞다고 자기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물론,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는 것, 치유를 위한 기도를 하는 것 너무 좋지요. 하나님의 통치를 위해서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지요. 그런데 보기 좋고 듣기 좋은 것들, 놀랄 만한 일들 “기적”과도 같은 “현상”을 볼 것이 아니라, “표적”을 보아야합니다. 무슨 의미가 담겼는지를 잘 들여다봐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 끝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잘 분별할 수 있어야합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오늘 본문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베푸셔서 자신을 증언하셨다고 한다면, 사탄의 활동을 따라서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보이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불의로, 진리가 아니라 속임으로, 사랑이 아니라 악한 마음으로 일어나는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 있다고 사도바울은 이야기합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제가 바로 이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잘 분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듣기 좋다고, 보기 좋다고 다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놀랄 만한 기적’이 나타났다고 다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표적’이 가리키는 끝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잘 분별해나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분별하는 방법
분별하는 방법
제가 지금 성경과 오해, 라고 하는 제목의 시리즈로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요, 성경에 대해서 저희가 “그냥 믿어왔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알아보는 시간들을 가져왔습니다. 성경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서 오늘날의 저희들의 손에 들리게 된 과정, 과학자들이 부정하지만 여전히 진리를 담고 있는 성경의 창조,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들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왔는데요.
제가 처음 이 수요예배에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까꿍”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드릴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희가 함께 성경 말씀을 살펴보면서 알아본 것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그냥”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들입니다.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면 “와 좋다!” 하면서 우르르 달려가는게 잘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게 잘 전한다고 또 막 우르르 달려가서 듣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소동이 일어나서 베뢰아로 넘어갔는데요,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지 보세요. 먼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데, “이것이 정말로 사실인가?” 하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의심과는 다릅니다. 성경을 잘 살펴보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분별하는 게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분별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면, 주시고, 받았으면 믿음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제자들이 배타고 가다가 바다 위로 예수님께서 걸어오셨을 때 베드로가 어떻게 했습니까?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베드로가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향해서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하고 구했습니다. 유령인지 예수님인지 모르겠으니 분별할 수 있게 물 위로 걸으라고 말씀해주세요, 하고 구하는 겁니다. 그리고 “오라”라는 말씀을 받으면 걸어가는 겁니다.
그러니 물위를 걷는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납니다. 기적이죠. 하지만 중요한건 기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로 향해서” 가는 것, 물 위를 걷는 이 표적에 끝에 예수님을 두고 걷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이 아니라 바람을 보았을 때는 빠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분별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구하고,” 구했으면 “받고,” 받았으면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제가, 그냥 믿는 사람이 아니라, 잘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잘 믿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고,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께 구하고 받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결론
결론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의 권능은 성령님께 선물로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한 권능입니다. 다른 사람의 위에 서서 교만한 통치를 하는 권능도 아니고, 누군가를 찍어누르는, 억압하는 힘도 아닙니다. 심지어 저희의 권능도 아니라, 성령의 은사로서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권능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권능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기사와 표적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합니다. 권능과 기사가 나타났다고 다 쫒아갈 것이 아니라, 그 표적이 가리키는 끝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는지,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생명이 있는지 잘 분별해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냥 믿는 사람이 아니라 잘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권능이든, 기사든, 표적이든, 설교든, 성경공부든지 간에 먼저는 성경을 잘 상고하며 묵상하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고, 받은 것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게 성령의 은사로 받은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해내며, 기사와 표적을 잘 분별하여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며,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는, 잘 믿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