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f the Twenty-Ninth Week in Ordinary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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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극단(율법주의<>방종), 대화(신자들, 신부님, 수녀님, 하느님)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우리 신앙인에게는 죄와 관련해서 두 가지 극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율법주의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비판하시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의 율법주의이지요. 구원받기 위해서는 율법대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이 참 복잡다단하지 않습니까. 율법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우리 삶 전부를 다 다룰 수가 없지요. 율법학자들이 율법을 연구하면서 세세한 세부 규정들을 만들었지만, 그렇게 해도 글로 쓰인 법은 인간 삶을 다 다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와서는 율법주의가 세심증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정말 하느님 말씀대로 잘 살고 있나, 십계명대로 잘 살고 있나 이런 것을 너무 세세하게 따지는 겁니다. 나의 생각, 감정 하나하나까지. 물론 깨끗하게 살려는 노력은 좋지만, 세심증은 우리를 법에 매이게 합니다.
율법주의의 반대편에 방종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데 뭘 해도 용서해 주시지 않겠어?’라는 사고방식이지요. 하느님의 사랑, 은총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뭘 해도 괜찮다’라는 논리가 생기는 것이지요. 뭔가 자유롭고 좋은 것 같지만, 이렇게 살다 보면 오늘 독서에 나온 대로 우리가 죄를 짓게 되고, 그에 따라 죄의 종이 됩니다.
그 두 가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가는 게 건강한 신앙인이 되는 길입니다. 저는 대화를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다른 신앙인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지요. 신자들과 대화하고, 신부님과 대화하고, 수녀님과 대화하면서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도라고 합니다. 하느님과 대화하면서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 지 여쭤보고, 그분의 답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웃과의 대화,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 더 바른 길을 찾고, 의로운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더 지혜롭게 만들어 주시기를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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