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of the Twenty-Ninth Week in Ordinary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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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담(신부가 되고 보니..), 조건부 사랑, 십자가 사랑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저는 신학생 때에는 나중에 신부 되면 그냥 신자들하고 하하호호 하면서 살면 될 줄 알았습니다. 사제 서품을 받고 본당에서 살면서 어떤 때에는 싸워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신자들하고 싸운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세상적인 것, 세상적인 악에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세상적인 악에는 무엇이 있을까.. 물론 많은 것이 있겠습니다. 저는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청년들 주로 만나지요. 어떤 면에서 어린이들, 젊은이들은 세상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릴 적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가서 세상과 마주한다면 점에서 최전선에 있는 것이지요. 물론 어른들도 세상 한가운데에 있지만, 아이들은 처음으로 세상과 마주한다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마주하면서 아이들은 세상을 배웁니다. 세상의 좋은 측면도 배우지만, 나쁜 측면, 악한 측면도 배우지요. 그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이 조건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건부 사랑. 다시 말해, ‘네가 어떠어떠하면 너를 사랑할게’, 아이들의 입장에서 ‘나는 어떠어떠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거야’라는 것이지요. 대표적으로 학업 성적이 있지요. 선생님이나 부모님이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은연중에 이런 암시를 줍니다. ‘네가 공부를 잘하면 너를 사랑할게, 네가 성적이 좋으면 너를 사랑할게, 네가 대학을 잘 가면 너를 사랑할게’ 그러면 아이들은 ‘내가 공부를 잘 하고, 성적이 좋으면 사랑받을 수 있겠구나’라고 알게 모르게 생각하지요.
예수님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은 반대입니다. 조건부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 사랑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씀하시죠. 이 불은 십자가 사랑을 의미합니다. 또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맞으실 십자가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 십자가 사랑 앞에서 누군가는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따르며 살고, 누군가는 거부하고 부정하면서 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가족들, 주변 이웃들에게 무조건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조건부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이 시간 잠시 성찰해 봅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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