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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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가 425, 302장
민수기 6장의 말씀을 통해 은혜받고 가는 귀한시간되길 소망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여자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우리 학교는 두발자유화까진 아니었지만 머리 길이에 특별한 규칙이 없어서, 염색과 지나친 펌만 아니면 크게 제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반 아이들 머리 길이가 정말 다양했어요. 그중엔 머리가 엉덩이 밑까지 내려오는 친구들도 있었고, 쉬는 시간엔 제가 그 친구들 머리를 따 주며 장난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뜨개질 모자를 만들어 해외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캠페인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기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소아암 어린이들을 위한 머리카락 기부가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어요. 긴 머리를 기부해 맞춤 가발로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반에서 가장 머리카락이 길던 친구가 어느 날 단발로 나타난 겁니다. 거의 평생 길러 온 머리를, 딱 잘라서 내어놓고 온 거죠. 그 친구의 뒷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저는 배웠습니다. 머리카락이 단지 ‘스타일’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사랑과 헌신의 표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오늘 본문 민수기 6장에 등장하는 나실인의 머리털도 그렇습니다. 나실인으로서 머리카락을 밀지 않습니다. 머리카락 자체에 특별한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구별되었다는 표시였기 때문이에요. 하나님께 구별되었다는 왕관(네제르) 같은 징표는 결국 우리가 주께 속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나실인에 대해서 오늘 말씀, 민수기에서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남자나 여자가(2)거룩은 ‘자발성’으로 여는 보편의 길
남자나 여자가(2)거룩은 ‘자발성’으로 여는 보편의 길
말씀은 이렇게 시작하죠. 2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남자나 여자가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 대해서 나오는데, 사실 고대 사회에선 드문 표현이에요. 모세 오경의 많은 규정들은 기본 주어가 남성으로 놓고 서술이 되는데 나실인의 규례는 예외적으로 여성도 동일 자격으로 서원에 참여하도록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태생과 신분으로 구별되는 길도 있을 텐데,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자발적 구별의 길을 마련하셨어요. 말하자면 원하면 누구든지 오라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건 강요가 아니라, 주어진 규례니까 지켜야 하는 법이 아니라 기쁨으로 선택하는 관계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잘 보면 4절에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이라고 나오고, 5절에도 “구별하는 모든 날”이라는 말씀이 여러번 등장 합니다. 이 말은 나실인으로 서원하는 과정은 기간을 정해서 서원하는 것입니다. 물론 삼손과 같이 하나님이 직접 정하신 평생 나실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 말씀처럼 규정 자체는 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자리, 각자의 형편을 아세요. 그래서 “두 달이면 두 달, 한 달이면 한 달—네가 정하고 오라” 다른 말로 나실인으로서의 길이보다 하나님을 향한 방향을 잡으라고 말씀하세요.
이게 민수기 6장의 첫 메시지예요. 거룩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은 소수 특권층의 업적이 아니라, 누구나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나아오면 시작할 수 있는 길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누구든지 거룩의 자리로 초청하고 계시는 거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거룩의 방향성을 세우시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원하는 거룩자 자리가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마음인 것 처럼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오늘의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표지 셋(3–7) 기쁨·자아·사랑의 재배치
표지 셋(3–7) 기쁨·자아·사랑의 재배치
이제 나실인으로서 하나님이 멀리하라는 3가지의 금지사항을 주셔요. 포도 소산 금지, 머리에 삭도를 금하시고, 시체 접촉을 금합니다.
(1) 포도 소산 금지 — “기쁨의 원천을 재정렬”
(1) 포도 소산 금지 — “기쁨의 원천을 재정렬”
말씀을 보면 포도에 관한 모든 것을 금하세요. 금하시는 걸 보면
포도주와 독주(강한 술)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식초)나 독주로 된 초(식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포도 주스)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포도에 관한 모든 것을 금하시면서 동시에 독주라고 표현되는 보리나 대추로 만들어진 강한 술, 알코올성 음료를 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포도가 나빠서가 아니라, 포도와 포도주는 축제와 같이 즐거움의 상징이었어요. 그래서 나실인의 기간 만큼은 즐거움의 중심을 하나님께 맞추라는 뜻이에요. 즐거움 자체를 금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을 하나님께 다시 맞추자는 거예요.
그래서 아모스서에보면, 하나님이 일으키신 나실인에게 포도주를 강요하던 시대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시대를 책망하는 말씀이 등장합니다(암 2:11–12). 오늘로 옮기면, 세상이 주는 자극과 쾌락이 즐거움의 주인되어버린 것을 책망하시는 말씀이죠. 하나님은 나실인에게 즐거움의 중심도, 기쁨의 중심도 하나님께 맞춰라 라고 말씀하세요.
(2) 머리 보존 — “자아의 영광을 하나님께”
(2) 머리 보존 — “자아의 영광을 하나님께”
두번째로 서원 기간 동안은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습니다(6:5). 히브리어 ‘나실인(나지르)’와 ‘관(네제르)’가 같은 어근이에요. 머리털은 ‘나는 주께 속했다’는 왕관 같은 표지였습니다.
나실인의 머리털하면 가장 먼저 삼손이 떠오르는데, 삼손 이야기의 핵심도 머리카락 그 자체가 아니라, 서원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마음의 서원이 먼저 잘렸을 때, 머리카락이 잘리며 영광도 떠났습니다(삿 16장). 핵심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서원의 정신입니다.
(3) 시신 접촉 금지 — “사랑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3) 시신 접촉 금지 — “사랑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시체의 접촉을 금하시는데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그의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말미암아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
가장 가까운 가족의 장례라도 접촉하지 말라고 하신 건, 그 기간 만큼은 가족과의 정을 끊으라는 말씀이 아니에요. 레위기에서 저희가 사람의 시체는 ‘부정’으로 분류됐었죠. 그리고 나실인으로 있을 때는 한시적이지만 제사장급의 거룩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그 기간만큼 부정에서 멀어지라는 뜻입니다.
촉을 금하신 건 애통 자체를 금지한 것이 아니라, 그 기간 동안 생명의 하나님께 시선을 먼저 고정하라는 훈련이에요. 그래서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 나는 주께 속했다는 왕관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거룩 안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후에 서원이 끝나면, 그는 정결하게 회복된 몸과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슬픔을 함께 짊어지게 됩니다.
넘어짐과 다시 시작(9–12) 7과 8의 리듬
넘어짐과 다시 시작(9–12) 7과 8의 리듬
그런데 성경은 굉장히 현실적인 말씀을 남겨요. 나실인으로 서원해서 일정기간 거룩함에 나아가는데 9절에
누가 갑자기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내가 주께 속했다)를 더럽히면 그의 몸을 정결하게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일곱째 날에 밀 것이며
라는 말씀이 나와요. 나실인으로 있지만 갑자기 누가 곁에서 다양한 사유로 죽을 수 있죠. 이런 불가항력에 의해서 부정이 닿으면, 아까 말씀드렸듯이 나실인이 제사장급의 거룩함을 그 기간동안 지켜야 했기 때문에 이것을 처리하는 절차를 주십니다.
일곱째 날에머리를 밀어 부정을 끊고, 8일째에 산비둘기·집비둘기로 속죄제와 번제를 드려 관계를 회복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12절에 보면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 년 된 숫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물로 드릴지니라 자기의 몸을 구별한 때에 그의 몸을 더럽혔은즉 지나간 기간은 무효니라
다시 서원해서 1년된 숫양 1마리로 속건제를 드리고 “지나간 날은 무효니라.”라고 말씀하세요. 어떻게 보면 냉정해 보이지만, 복음으로 보면 회복의 문을 다시 여는 절차입니다. 오늘 다시 시작하라는 말씀이죠.
저희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난미 앞에서 실패합니다. 계획한 구별들, 하나님 앞에 했던 서원이 깨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땐 7일째에 끊고, 8일째에 다시 시작하는 것 처럼 다시하면 됩니다.
올해 사순절날 저희가 저녁을 안먹기로 했는데 점심먹으면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안먹기로 했어요. 그런데 사역하다보면 여러 심방이 잡혀서 한 3시쯤 뭘 먹어야 되는 때가 있어요. 마음 같아서는 사순절에 하나님과 약속한 거라 지키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도 있었어요. 그럴때 오늘 말씀처럼 끊고 다시 시작하라는 것 처럼 다시 하나님에 나아가면 됩니다.
신약으로 와서 동물 제사를 드리진 않지만,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회개와 재헌신으로 나실인의 정신을 이어갑니다. 거룩은 실패가 없는 길이 아니라, 실패가 회복으로 이어지는 길이에요. 오늘 우리를 거룩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 곁에서 회복의 거룩함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복으로 끝나는 이야기(13–27) “여호와는 x 3”
복으로 끝나는 이야기(13–27) “여호와는 x 3”
이제 나실인으로서의 서원이 끝나면 회막문, 곧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6:13). 나실인의 날이 차면(6:13) 하나님 앞(회막문)에서 속죄제·번제·화목제를 드리고(6:14–17), ‘나는 주께 속했다’는 머리털도 감사의 불 위에 올려 태웁니다(6:18). 그리고 요제를 흔들고 그 후부터 포도주를 마실 수 있게 됩니다.(6:20).
하지만 이 모든 절차의 핵심은 22절 이후의 말씀인데 하나님이 나실인을 통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직접 주십니다. 24-26절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보호)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은혜)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결국 하나님은 얼굴(임재)의 방향을 우리에게로 돌리셔서, 지킴–은혜–평강의 완결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마침표는 6:27입니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여기서 “이름”은 인격과 임재, 권위를 뜻합니다. 곧 하나님이 그분의 이름을 백성 위에 두심(신 12:5)으로, 자기 이름으로 보증하여 복을 실제로 베푸시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다 끝나면 목사님이 축도해주시잖아요. 그 이유가 축도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의 선포가 축도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희가 드리는 예배가 축도로 끝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복주기는 원하신다고 하셨는데 제사장과 오늘의 목회자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이 축복해주시는 거예요.
결론
결론
오늘 민수기의 마지막 문장이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으로 끝났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별은, 하나님이 복으로 끝을 맺으셨어요. 그해서 자원해서 드리는 우리의 서원과 수고이지만 그 중심은 하나님을 향한 방향을 잡게 했고 회복하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 넘어졌다면 끊고(7), 오늘 여기서 다시 시작(8) 하는 회복의 은혜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얼굴을 두시면서 지키시고 은혜주시며 평주시기리를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한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 기도 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점점 추워지는 새벽에 우리를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민수기 6장의 말씀으로, 누구나 자원하여 주님 앞에 구별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두신 주님의 마음을 봅니다. 억지보다 기쁨으로, 형식보다 진심으로 주께 나아가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우리의 기쁨이 세상의 것에 기울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더 소중히 여기게 하시며, 주님을 먼저 사랑함으로 이웃을 더 바르게 사랑하게 하시고, 미뤄 두었던 순종과 높아진 마음을 온유히 돌이키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얼굴을 비추사 은혜를 더하시며, 얼굴을 향하사 평강을 주시는 축복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 말씀대로 우리 가정과 일터, 교회 위에 주의 이름을 두며 주신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히옵소서.
은혜의; 주님 계절이 차가워지는 때에 연약한 지체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어르신들과 어린아이들, 병중에 있는 이들을 감염과 합병증에서 지켜 주시고, 치료와 회복에 은혜를 더하사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돌보는 손길에도 지혜와 힘을 공급해 주옵소서.
오늘 하루가 주의 보호와 은혜와 평강으로 감싸 안음 받게 하시고, 복으로 마무리되는 은혜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