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f the Twenty-Ninth Week in Ordinary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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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담(중학생과의 대화)>머리에서 전인격으로>회개의 급박함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몇 주 전에 어떤 중학생 친구들과 치킨을 먹으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학생 친구가 아주 질문이 많고, 또 심도있는 질문을 던지는 친구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가 하와가 죄를 지을 거를 예상하셨으면서 왜 낙원에 선악과를 두셨나, 자유의지는 왜 선물이냐, 사람이 알아서 잘 살면 되지 선교가 굳이 필요하냐, 무신론자도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가지 않냐, 이런 심도 깊은 질문이었습니다. 저도 제 생각과 배운 것으로 대답을 하고, 그 친구도 다시 반론과 질문을 하고, 또 다른 친구들도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면서 작은 토론의 장이 열렸지요. (저는 그저 치킨을 먹고 싶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렇게 토론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가톨릭 신앙은 인간의 머리를, 다시 말해 지성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우리 지성을 통해서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에 인간 지성이 멈추는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가 멈추는 지점, 우리가 알려고 노력을 해도 알 수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신비라고 하지요. 예를 들어, 머리를 써서, 추론을 해서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삼위일체라는 사실은 우리가 지성적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지요. 이 신비의 영역은 머리로만 알 수 없습니다. 머리 뿐만 아니라 몸과 가슴으로, 지성만이 아니라 감정과 인격으로, 다시 말해 우리의 전 인격을 투신해야 깨달을 수 있는 영역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를 고소하는 사람이 있으면 재판관에게 가는 길에 합의해라. 이 말씀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회개하고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전인격을 하느님께 투신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시대에 나의 전인격을 투신해서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더 성장하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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