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서 가는 길 2025 1026 삼상6:7-12

사무엘상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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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amuel 6:7–12 NKRV
7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8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9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10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1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서론) 길 잃은 시대, 길을 묻는 청년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혹시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어보신 적 있으시죠? 내비게이션은 우리에게 '가장 빠른 길', '가장 편한 길'은 잘 알려줍니다. 그런데 혹시 '가장 의미 있는 길'을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션은 본 적 있으신가요? 아마 없을 겁니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바로 그 '의미 있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지, 어떻게 하면 안정적인 삶을 사는지에 대한 정보는 세상에 넘쳐나지만, 정작 '내 인생의 사명은 무엇인지',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는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주 이상하고 특별한 여행을 떠나는 두 마리 소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청년들에게 원하시는 바로 그 '사명의 길'이 어떤 모습인지 발견하고자 합니다. 길을 잃었다고 느껴지는 바로 오늘, 이 이야기가 우리의 삶에 가장 확실한 이정표가 되어줄 줄 믿습니다.

(본론 1) 본능을 거스르는 부르심: 희생과 소명의 자세

오늘 본문은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두려움에 빠져, 빼앗았던 하나님의 궤를 어떻게 돌려보낼지 고민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기 위해 한 가지 시험을 제안합니다. 그런데 그 조건이 참으로 기이하고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갓 낳은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수레를 메워 길을 떠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이제 막 새끼를 낳은 어미 소에게 가장 강력한 본능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의 새끼에게 달려가는 것입니다. 새끼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젖을 물리고 싶은 그 마음이 어미 소의 온 존재를 지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를 실은 수레는 정확히 그 반대 방향, 송아지들이 없는 벧세메스를 향해 가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르심'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때로 우리의 가장 깊은 본능, 즉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하고,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것을 지키고 싶어 하는 우리의 마음을 거슬러 찾아옵니다.
이 소들의 첫걸음은 '희생'이었습니다. 사명의 길은 내가 가장 아끼는 것, 나의 '송아지'와도 같은 존재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눈물의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청년의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송아지들을 품에 안고 살아갑니까? 나의 시간, 나의 재능, 내가 쌓아온 인간관계, 내 미래에 대한 안정된 계획.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놓지 못하는 송아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송아지를 내려놓고 내가 가리키는 길로 가라." 하나님은 우리가 쓰고 남는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그 희생을 받으십니다.
동시에 이 소들은 자기가 원해서 나선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 보면 사람들이 소들을 '끌어다가' 멍에를 메웠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사명 역시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하는 취미 활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부르심, 거절할 수 없는 '소명'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이 길은 나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바로 이 소명감이, 우리가 흔들리고 넘어질 때에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됩니다.
오늘 우리 청년들이 주일에 교회에 나온 것도? 그냥 나온 것 같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나왔다. 그런 의식으로 예배에 참석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에 요구하시는 '본능을 거스르는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편안함이라는 송아지를 떼어놓고, 주님이 가리키시는 벧세메스를 향해 첫걸음을 내디딜 용기가 우리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본론 2) 훈련되지 않았으나 순종하는 걸음: 모험과 연합의 자세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소들이 한 번도 '멍에를 메어 보지 않은' 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길을 걷는 훈련, 짐을 끄는 훈련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말 그대로 '아마추어'였습니다. 그런데 12절을 보십시오. 이 두 마리의 소는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갔다고 기록합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그 길을 마치 오랫동안 훈련받은 베테랑처럼 망설임 없이 나아갔습니다. 이는 우리의 사명이 나의 경험이나 능력, 훈련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단순한 순종에 달려있음을 보여줍니다.
훈련되지 않은 일에 순종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험'입니다. 많은 청년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 모험을 주저합니다. "저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저는 자격이 없어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힘만큼 일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만큼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미숙함은 사명을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날 최고의 조건이 됩니다.
또한 소들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고 성경은 강조합니다. 이것이 '절대 순종'의 모습입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송아지의 울음소리, 주변의 수많은 갈림길과 유혹 속에서도 오직 목적지를 향해 곧장 나아갔습니다. 청년의 때, 우리를 유혹하는 세상의 길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달라도, 때로는 이해되지 않아도, 주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사명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위대한 사명은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의 소가 함께 감당했습니다. 신앙의 여정은 결코 혼자 가는 고독한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함께 멍에를 멜 믿음의 동역자, 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이 '협동하는 자세'입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기도하며, 때로는 서로의 짐을 대신 져주며 함께 걸어갈 때, 우리는 이 고되고 힘겨운 사명의 길을 완주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격 없음' 때문에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까? 나의 능력이 아닌, 나를 부르시고 이끄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순종의 모험을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본론 3) 눈물과 함께 걷는 사명의 길: 증인과 헌신의 자세

오늘 설교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입니다. 12절은 암소가 길을 갈 때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사명을 감당한 것이 아닙니다. 뒤에 남겨진 송아지들을 생각하며 울부짖으면서도, 자신의 길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명의 길의 진짜 모습입니다. 사명의 길은 기쁨과 감사만 넘치는 꽃길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 때문에 눈물 흘리고, 아파하며 걷는 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눈물이 사명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 눈물은 그들의 순종이 얼마나 진실하고 값진 것인지를 증명합니다.
이 눈물 젖은 여정을 누가 지켜보고 있었습니까? 바로 블레셋의 방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소들의 울면서도 흔들림 없는 그 기적적인 걸음을 보며,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능력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을 보이는 자세', 즉 '증인의 삶'입니다. 우리가 눈물 흘리면서도 믿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때, 우리의 삶 자체가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걸어 다니는 성경'이요, 살아있는 '표징'이 됩니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의 고난과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예수 이름 때문에 힘들고 눈물 흘리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해라!
마지막으로, 소들은 목적지에 도착하여 '책임감'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은 무엇이었습니까? 편안한 휴식이나 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끌고 온 수레의 나무 위에, 하나님을 위한 번제물로 드려졌습니다.
사무엘상 6:14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이것이 청지기 사명의 최종 목적지, 바로 '겸손한 헌신'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나의 영광을 위해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나 자신을 온전한 제물로 드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이 길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세상의 환호가 아니라,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주님의 따뜻한 음성입니다.

(결론) 당신의 걸음이 메시지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미 소들의 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희생과 소명, 모험과 순종, 눈물과 헌신이 담긴 한 편의 위대한 설교였습니다. 그들은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걸음' 자체가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이 시대의 '벧세메스로 가는 소'로 부르십니다. 세상의 가치라는 본능을 거스르고, 준비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 순종하며, 때로는 눈물 흘리면서도 묵묵히 사명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의 삶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의 그 거룩한 걸음이 길 잃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유일한 메시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울면서 가더라도, 끝까지 주님만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결단찬양>
나의 삶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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