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붙드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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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붙드는 기도
소망을 붙드는 기도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2 “어느 고을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3 그 고을에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그 재판관에게 줄곧 찾아가서, ‘내 적대자에게서 내 권리를 찾아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4 그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얼마 뒤에 이렇게 혼자 말하였다. ‘내가 정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
5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 ”
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7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요즘 기도가 잘 되십니까?
언제 기도하며,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까?
기도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언제입니까?
이런 질문은 단순한 영적 점검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의 온도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런 마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눅 18:1)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의도는,
“끈질기게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된다”는 식의 단순한 교훈이 아닙니다.
이 비유의 중심에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믿음의 인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 1. 본문의 배경 —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
▣ 1. 본문의 배경 —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들
이 비유는 누가복음 17장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옵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게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눅 17:20–21).
예수님은 노아의 시대와 롯의 시대를 예로 들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즐기던 그때, 하나님의 심판이 갑자기 임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사람 모두가 자기의 욕구만 해결하기위해 전심을 쏟는 사이에 홍수가 임했고 불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때를 아무도 알 수 없도록 임하기 때문에 항상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일은 오랜 인내와 믿음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맥락 위에서 예수님은 오늘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보다,
“그 나라가 올 때까지 어떻게 믿음을 지킬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 2. 비유의 이야기 — 절망 속에서 포기하지 않는 과부
▣ 2. 비유의 이야기 — 절망 속에서 포기하지 않는 과부
어느 도시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었는데, 매일 그 재판관에게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원수를 재판하여 제 권리를 찾아주십시오.”
하지만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이 여자가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졸라 될 것이니 귀찮아서 안되겠다. 해결해주어야겠다.”
과부의 끈질김에 재판관이 항복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시려는 말씀은 “끈질기면 얻는다”가 아닙니다.
이 말씀의 논란은 이후부터 시작이 됩니다.
7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 3. 오해된 해석 — “강청하면 된다”는 왜곡
▣ 3. 오해된 해석 — “강청하면 된다”는 왜곡
우리는 이 말씀을 종종 이렇게 이해합니다.
“계속 졸라야 하나님이 들어주신다.”
“기도원에서 작정하고 금식하면 돌파된다.”
이것은 옳은 해석이 아닙니다. 이 비유는 응답을 받아내는 기도의 기술을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유심히 보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모른체 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입니다.
누가 오랫동안 과부와 같이 기도하고 있다는 말일까요?
바로 17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기도해야 될 사람들입니다.
오랫동안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믿음을 지키며 기도해야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지침들을 또 가르쳐 주십니다.
20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을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인자의 날들 가운데서 단 하루라도 보고 싶어 할 때가 오겠으나,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더러 말하기를 ‘보아라, 저기에 계신다’, [또는] ‘보아라, 여기에 계신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따라 나서지도 말고, 찾아다니지도 말아라.
세상의 어떤 일들을 말세의 징조라고 여기며 말하는 사람들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예측들에 대하여 따라다니지 말라고 주의를 부탁하십니다.
왜 그런가 이미 우리는 마지막 종말의 시간을 살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주님이 오시는 때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응답받는 기도의 기술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믿음의 방향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비유는 응답을 받아내는 요령이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물으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눅 18:8)
이 질문은 단순한 의문이 아니라 주님의 탄식입니다.
기도의 문제는 “하나님이 들으실까?”가 아니라
“우리가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의 문제입니다.
▣ 4. 첫 번째 교훈 —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붙드는 믿음
▣ 4. 첫 번째 교훈 —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붙드는 믿음
과부는 세상적으로 아무 힘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남편도, 권력도, 보호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붙잡은 것은 상황이 아니라 소망이었습니다.
믿음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결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십니다.”
— 로마서 8:26
우리가 지쳐 기도하지 못할 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다시 기도하라”고 속삭이십니다.
이것이 희망을 붙드는 기도입니다.
📖 예화 | 빅터 프랭클의 희망 실험
홀로코스트 생존자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 책에서 말했습니다.
“살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살 이유’는 바로 하나님 나라의 소망입니다.
기도는 그 소망을 매일 새롭게 불러일으키는 행위입니다.
▣ 5. 두 번째 교훈 —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기도
▣ 5. 두 번째 교훈 —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기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구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죠.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마 6:10)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가 모든 기도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과부가 재판관에게 요구한 것은 사치가 아니라 “내 권리를 회복해 달라”는 호소였습니다.
자신의 어떤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구하는 간청이 아니었어요. 더 달라는 것이 아니었어요.
가지고 싶은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번영신학에 너무도 많이 길들여져있다. 기도하면 잘된다는 믿음!
신앙생활의 목적이 자기 만족을 위한 것. 예수님의 요구는 정 반대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오늘 빼앗긴 우리의 권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녀 백성의 권리입니다.
하나님 나라안에서 살아가는 백성된 권리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장 먼저 기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땅에 오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자녀, 백성의 권리를 다시 찾게 해 주십시오 기도입니다.
📖 예화 | C.S. 루이스의 말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기도하는 내가 하나님께 설득되어 가는 과정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이 하나님의 뜻 쪽으로 움직여 가는 일입니다.
▣ 6. 세 번째 교훈 — 믿음을 지키는 기도
▣ 6. 세 번째 교훈 — 믿음을 지키는 기도
예수님은 “인자가 올 때 믿음을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응답이 아니라 믿음의 보존입니다.
일을 오래하지 못하는 이유, 시도하고 배우는 것을 오래 하지 못하는 이유
그 일의 대한 신뢰부족
사람들이 신앙에서 쉽게 낙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을 신뢰하지 못해서입니다.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나의 길은 너희의 길과 다르다.” (이사야 55:8)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보다 더 깊은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래서 기도는 기다림의 훈련입니다.
낙심하지 않고 계속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기도의 목적이 여기에 있지 않고 저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 예화 | 농부의 인내 (야고보서 5:7)
“형제자매 여러분, 주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듯 기다리십시오.”
농부는 오늘 씨를 뿌리고 내일 거두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때를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 결론 — 응답과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기도하라
▣ 결론 — 응답과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기도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절망가운데 희망을 붙든 사람만 기도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되, 가장 선한 때에 응답하십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나라를 기다리며 믿음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사람은
응답보다 임재,
결과보다 관계,
즉 하나님과의 동행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밤낮으로 부르짖는 그 백성의 권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눅 18:7)
그러므로, 응답되든 아니든,
오늘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며 기도하십시오.
그림 왓츠의 희망
제목인 *‘희망’(Hope)*이 역설적입니다. 모든 줄이 끊어진 거문고, 눈을 가린 소녀, 맨발 등의 이미지가 절망이나 무력감을 암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한 줄’과 ‘연주하려는 시도’가 희망을 나타냅니다.
작가는 “단 하나의 코드(줄)로라도 연주할 수 있다면 그것은 희망”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박진성 작가, 아저씨 그림…
모든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행복을 위한 준비, 억누른 슬픔, 감정
📌 적용 질문
📌 적용 질문
나는 요즘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가? — 내 나라를 위한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가?
응답이 지연될 때, 나는 낙심하는가 아니면 믿음을 붙드는가?
내 기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신뢰하겠습니다”라는 고백이 있는가?
🙏 마무리 기도
🙏 마무리 기도
주님, 응답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보이지 않아도 믿음을 잃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가 소망을 붙드는 믿음의 고백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