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 97-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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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편의 총 22연 가운데 오늘 본문은 13, 14연 입니다.
13연은 97절에서 104절 까지 이며 지혜의 원천인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사랑의 열정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14연은 105절에서 112절까지 이며 고난과 역경 앞에서도 변치 않는 말씀 사랑의 열정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먼저 13연을 보겠습니다.
새벽마다 119편을 살펴보는 우리에게 시인의 말씀에 대한 사랑의 고백은 당연하게 들려집니다.
그런데 시인의 고백이 그냥하는 고백으로 들려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시인의 말씀사랑의 고백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9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시인은 말씀에 대한 중요성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는 고백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듣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 처럼 말씀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예배때나 시간을 정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일, 숨을 쉬듯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 연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원수보다, 모든 스승보다, 노인보다 그들의 지혜를 능가하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말씀을 묵상하면 할 수록, 사랑하면 할 수록 그 안에서 예상치 못했던 심오한 진리들을 발견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주시며 그의 마음을 적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인은 말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시인이 발견하고 고백하고 있는 말씀의 진정한 가치 입니다.
이러한 시인의 깨달음은 시인의 것만이 아닙니다.
시편 111편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0.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은 지혜와 훌륭한 지각을 주십니다.
이 지혜는 시인의 고백과 같이 우리의 원수보다, 스승보다, 인생의 깊은 연륜을 지닌 노인보다 더욱 지혜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시며 묵상하고 계십니까?
일주일에 한번 말씀 듣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생명의 말씀을 결코 소홀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매일 말씀을 가까이 묵상하시면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말씀의 지혜와 지식으로 기뻐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무엇입니까?
101절 입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여기서 발을 금하다 라는 표현은 주로 생포한 야생 짐승을 가두거나 죄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쇠사슬을 채우거나 구류하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즉, 시인은 죄와 관련해서는 아예 자유가 없는 생포된 동물이나 죄인에게 대하는 태도로 자신을 억제하고 제어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왜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않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표현은 모든 악한 길 입니다.
시인은 그를 범죄에 빠뜨리고 죄악의 길을 걸어가게 하는 것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즉, 조금만 발을 잘못 내디디면 그를 파탄에 빠뜨릴 수 있는 그릇된 길이 그 앞에 무수히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길을 어떻게 피해 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한다고 해서 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결단으로 죄를 짓지 않으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죄로 인해 우리는 수도 없이 무너지고 또 무너집니다.
그 가운데서 수도 없이 좌절하고 낙심하고 실망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야 말로 죄를 우리의 노력과 결단과 결심으로 끊을 수 없음을 잘 반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시인의 고백을 통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인에게 주시는 엄청난 깨달음과 지혜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발걸음을 죄가 아닌 축복과 생명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인지, 죄를 죄로 깨닫게 하는 지혜를 주심으로 죄의 길을 걸어가지 않도록 하는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인의 삶은 죄와 점점 멀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기쁨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기쁨을 누리는 시인은 더 이상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삶을 살 수 없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10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죄 가운데 걸어가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게 하는 이 말씀이 시인에게는 어떤 음식보다도 귀하고 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또한 10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어두운 죄와 삶의 현실 가운데 그가 붙들고 살아갈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 말씀 없는 세상은 그 자체가 어둠 뿐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어둠과 같은 절망과 저주 뿐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참으로 빛을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빛되신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붙잡고 구원을 향해 생명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의 빛을 붙들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이 빛이 없으면 세상의 어둠 가운데 우리는 좌절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인의 이런 깨달음이 그의 삶에 죄가 없고 세상의 유혹이 없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고난과 시련과 유혹이 있지만 빛 되신 말씀의 능력을 붙들고 살아갈 때 어떤 위기 가운데서도 소망을 갖게하는 참되고 온전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고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말씀의 능력을 붙들고 믿음으로 이 땅 가운데 살아갈 때에 꿀송이 보다 달고 내 발에 등이며 내 길에 빛이 되시는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