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삶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7 views
Notes
Transcript
#Intro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 중에는 취업에 준비 중이신 분들도 계실 거고 혹은 대학교에 들어가고자 입시 공부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이렇게 우리는 어디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험 혹은 면접을 보는데요. 그 전에 우리가 먼저 보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격 요건’입니다. 어느 곳을 가든지 내가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 요건이 필요합니다. 물론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여서 자격요건이 다 부합하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학, 내가 원하는 회사 등등 가고는 싶지만 자격 요건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 마음이 어떠신가요? 슬프고 낙담하고 불안할 것입니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있나? 내가 어디를 갈 수 있지? 와 같은 생각들로 인해 불안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린 늘 ‘어떻게 하면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놀랍게도 이 질문에 오늘의 본문 말씀이 대답해 줍니다.
Complement1.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의인과 교제하시길 원하신다.
시편 15편의 정확한 시대 배경이 나오진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시를 ‘성전 입장 예배시’로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1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1절은 ‘주의 장막에거할 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청중들에게 던집니다. 이는 주님이 임재하신 ‘주의 장막’에 들어가기 전 예배자가 드렸던 ‘성전 입장 예식’ 질문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누가 들어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머무르다’의 원어를 보면 ‘구르’라 하여서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닌 잠시 동안 머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임재 안으로 잠시 머물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으로 해석할 수 있죠.
성전에 입장하기 전 왜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요? 이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시고 우리와 교제하시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누구나 들어갈 수는 없으며 영원히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부터 중요합니다. 이런 장소에 들어가려면 어떠한 자격이 필요한 지 2~5절 말씀이 알려줍니다.
Complement 2. 의인은 세상의 방식과 정면으로 대치하며 우리의 힘으로 도달할 수 없다.
2절부터 5절 중반까지는 윤리적인 기준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매우 놀라운 기준입니다. 그 시대는 고대 근동입니다. 고대 근동 때에는 신전에 들어가기 위해서 제의적, 신체적 정결함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것보다 이웃 간 그리고 개인이 윤리적으로 잘 살아내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조건이 단순한 의식 참여가 아니라, 삶 전체의 거룩함에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2절~5절의 기준들은 의인과 악인들의 모습들이 대조되며 나옵니다. 이 대조를 잘 보여주는 4절 말씀을 보면 망령된 자들을 멸시하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라고 합니다. 한 사회가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행동들을 묵인하거나 용인한다면 그 사회는 폭력을 승인한 사회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매 맞는 여성에 대해 귀담아듣지 않는 사회는 사실상 여성 폭력을 허락하는 사회인 것입니다. 즉, 망령된 자들을 보고도 멸시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인정한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 사는 삶은 이웃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에 악인들을 멀리하고 의인들을 가까이하라는 주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의인의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4절 외 다른 기준들도 이처럼 의인을 따르는 삶의 기준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정직하게 행하고 비방하지 말고 악을 행하지 말고 이자를 위해 돈을 꾸어주지 말고 뇌물 받지 말라는 등등 윤리적 기준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주의 장막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의 기준이죠. 의인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러분은 이 기준에 부합하십니까? 우리는 성전에 입장할 수 있는 의입니까? 우리가 이 윤리적 기준들, 마치 거울과 같은 이 기준들을 보면 우리의 모습은 죄인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린 성전에 입장할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할 수밖에 없죠. 우리의 힘으로는 단 한 순간도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일까요?
Complement 3. 의인은 세상 속 불안함에서 벗어나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마지막 구절 끝을 보면 이전 구절들을 모두 지킨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일단 저는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럼 누가 이 기준들에 부합할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기준에 부합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유혹 속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하셨으며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사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삶’의 근거가 되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 그분만이 흠 없는 유일한 의인이십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 여러분, 예수님은 자신이 의인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지만, 화목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되게끔 하셨습니다. 이는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의 희생으로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던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드릴 수 있는 상황으로 역전된 것입니다. 즉, ‘이런 일을 행하는 자’의 뜻이 바뀐 겁니다. 성전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윤리적 기준이었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이제는 예수를 믿는 자로 바뀐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는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희생으로 얻어진 이 예배를 사모하십니까? 우린 예배를 드릴 수조차 없던 죄인이지만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진 이 예배를 사모하시느냐 이 말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약 만 명 정도 되는 대형교회의 손자로서 예배에 참석했어야 했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목사님이셨기에 성도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전 그 사랑이 싫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저에게 와서 만지고 인사하라고 하는 것 등등 그분들의 사랑이 저에겐 버거웠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있는 시간이 버거웠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전 모르는 사람들에게 시달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처음으로 수련회를 갔습니다. 이전에는 율동만 했었는데 갑자기 찬양과 기도를 하고자 하니 어색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 걱정하던 중 저에게 있었던 아픔들을 주님 앞에 내놓았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요’, ‘저는 왜 예배를 드려야만 하나요’ 하지만, 주님은 이때 저에게 처음 다가오셔서 저를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날 처음 인격적인 주님을 만난 것이죠. 이날 이후 저는 예배를 사모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예배를 사모하고 주님을 사모하다 보니 주님이라는 기준이 생기고 이에 맞춰 살아가다보니 세상의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유혹이 많습니까? 세상이 기준이 되지는 않습니까? 이렇게 해서 성공하더라, 스펙을 더 쌓아라, 새로운 것을 만들라고 등등 세상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 말하며 성공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성공하면 흔들리지 않습니까? 결국 흔들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와 안정은 스펙과 사회의 인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은혜를 누릴 때 완전한 안정함을 누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예배를 더욱 사모하십쇼. 예배를 다시 세우십쇼. 예배를 힘써 지키십쇼. 예배를 통해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이 주시는 안정감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을 흔들려고 하는 세상 속에서 불의와 타협하는 대신 정직과 공의를 선택하는 ‘거룩한 예배자’로 살아 가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