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풍성한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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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니느웨의 사람들이 요나가 선포한 말 “40일 후면 니느웨 성이 무너지리라” 단 한 문장을 듣고서 왕과 모든 백성, 심지어 가축들까지도 금식하고 재를 무릎쓰고 회개하였습니다.
이방인들이 그렇게 쉽게 마음을 열고 회개한 것은 기적이라고 말씀을 나누었지요. 이에 요나는 그것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좀 사랑 받을 만한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어주어도 모자랄 판에, 전혀 사랑 받을만 하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눠주시니 마음으로 너무 싫어서 분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지난 주에 요나는 그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하나님께 조차도 함부로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차라리 나를 죽이시라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옳음을 혹은 자기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요나의 그러한 행동까지도 받아주셨다라고 지난 주에 말씀을 나누었지요.
오늘 본문 5절에서 요나는 성읍 동쪽으로 나가 니느웨가 어떻게 될까하는 마음으로 성읍을 지켜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기로 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았는데,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해주실 것을 알았는데, 왜 또 굳이 동쪽에 앉아서 성읍이 어찌될까를 살펴보고 있었을까요?
그 성읍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경치를 즐기기 위해서거나, 그 성읍이 어떤 복을 받을까하는 기대감보다는,
아마도, 그 이방인들의 회개가 진실한 회개가 아니었기를 그래서, 회개한 이후로 그들이 또 다시 과거의 죄된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제 다시 하나님께서 그 성읍에 재앙을 내리실 것을 기대하며 앉아 있었던 것이지요. 아직도 요나의 마음에는 니느웨가 저주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비와 용서의 하나님이시며, 이방인들에게도 자비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우쳐 주셨고, 그와 같은 하나님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요나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셨는데, 여전히 요나는 자비와 용서보다는 심판과 정죄의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 마음에 새겨져 있는 이기심과 공명심, 즉 자기자랑의 마음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보다는 정죄하고 심판 받기를 기뻐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마음은 세상의 마음입니다. 다른 종교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권선징악의 세계관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나는 항상 선에 속하고 다른 사람은 항상 악에 속하게 되지요. 그래서, 이 둘을 명확하게 갈라놓고 자기는 복을 받아야 하고, 자기의 뜻은 반드시 관철되어야 하지만, 다른 이들은 저주를 받아야 하고 그들의 생각은 전혀 쓸데 없고 무시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우리는 어려서부터 배웠고 몸에 익혔습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시험을 보고 나면 교실 복도에 1등부터 100등까지 이름을 등수대로 써서 붙이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공부만 잘하면 모든 면에서 좋은 대우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우리들 마음은 사랑과 자비보다는 정죄와 체벌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했다고 하더라도, 또 때로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우리 마음에 새겨진 비복음적인 세계관은 항상 되살아나고 되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주제로 하는 요나서를 라틴어로 번역할 때, 우리에게 불가타 버전이라고 알려진 라틴어 번역본이 있습니다. 제롬이라는 인물이 번역하면서 박넝쿨을 다른 식물인 아주까리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 때에 이 번역을 가지고 카르타고 동쪽에 있던 도시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도 전해집니다. 그리고, 제논과 어거스틴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에도 영향을 미쳤다고도 합니다.
아직까지도 악인을 향한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자비를 이해하지 못한 요나에게 하나님은 작은 기적을 통하여 다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루 밤 사이에 박넝쿨이 크게 자라서 요나의 머리에 내리쬐는 햇볕을 가리게 하셨습니다. 중동 지방의 무덥고 건조한 날씨를 생각해보면 박넝쿨이 요나에게 얼마나 위로를 주었는지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박넝쿨로 인하여 요나가 크게 기뻐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 다음 날 벌레를 예비하셔서 이튿날 새벽예 박넝쿨을 다 갉아먹게 하셨고, 또 해가 뜰 때에 아라비아 사막에서 부는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셔서 완전히 박넝쿨이 말라버리게 하셨습니다. 결국 요나는 햇볕을 피할 그늘이 없이 강렬한 햇볕 아래에서 정신이 혼미하여 졌습니다. 더위를 먹은 것이지요. 결국 요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 올라서, 두 번째로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하여 준비하신 회초리이지요. 요나는 그 사랑의 회초리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하고, 회초리를 맞은 것에 반발심과 분노가 가득했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의 잘못과 좁은 생각을 전혀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초리를 맞은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에 가끔 내 잘못이 아닌데도 매를 맞거나 체벌을 받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런 것은 교훈을 주기보다는 안좋은 기억만을 남기게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일에 대해서 정당한 체벌은 생각을 고치고 변화하여 성장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결국 하나님께서는 네가 애쓰것도 아니요 재배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그 박넝쿨을 네가 아꼈다면, 저 큰 성읍 니느웨에 십이만명이 사람과 가축들은 얼마나 귀하겠느냐고 질문을 하시고 요나서가 마무리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잃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오늘 날의 세태를 우리는 한탄합니다.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
그러면서, 우리들도 사람보다 다른 것들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음식은 우리들의 삶에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음식이 사람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음식은 생명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다툼을 일으키는 것은 음식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나면, 자기의 아들을 죽기까지 내어주실 정도로 사랑하셨습니다. 천하의 어떤 것보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그렇습니다. 요나서가 하나님의 질문으로 끝나는 이유는 오늘 날 우리들이 날마다 그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라는 것입니다. 너에게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느냐? 네가 하는 말과 행동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 기초가 된 것이냐?
<기도 제목>
심판과 정죄, 미움과 다툼 보다는 사랑과 용서를 우리 마음에 두게 하옵소서.
홈리스 사역(자격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증거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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