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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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여 처음 꺼낸 말은 본이이 몰랐던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던 베드로도 하나님께서는 다양성을 인정하시고 차별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서 사람을 판단하신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방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로로 말미암은 화평의 복음이 전해지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그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만 혹은 혈통적으로 비슷한 사마리아까지는 주어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그 복음이 혈통을 넘어서 이방인에게까지도 선포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이제 베드로는 곧 입을 열어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마암은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화평의 복음”이란 화평을 가져오는 복된 소식을 말합니다.

이 때 화평은 히브리어로는 “샬롬”, 헬라어로는 “에이레네” 입니다.
샬롬: 완전, 조화
에이레네: 묶다. 결합하다
이것을 한국말로 번역할 때에 화평, 평화, 평안, 화목 등으로 나누어서 번역을 했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다 같은 말입니다. 화평이나 화목이 없다면 평화나 평안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미묘한 차이를 생각해보면, 화평이나 화목은 하나님과 혹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관련한 것입니다.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에이레네는 결합하다 묶다라는 뜻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평화는 전쟁이나 분쟁이 없는 고요한 상태를 말하고, 평안은 내 마음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내면적인 안정과 만족을 의미합니다.
결국 성경에서는 이 모든 것의 시작, 즉 평안과 평강, 화목, 화평이라고 구분된 모든 것 중에서 화평을 가장 기초로 하여 나머지가 주어지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화평은 단지 마음에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평화로운 상태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한 상태가 화평이고, 그것으로 인하여 사회적인 평화, 또 개인의 마음의 내적인 평안 혹은 평강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화평의 복음”이란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복된 소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화평을 얻는다면, 우리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복음이 가져오는 참된 평화입니다.

38절부터 43절까지의 내용은 그렇게 하나님과의 화평을 가져오는 복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먼저 38절은 만유의 주인,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아무런 죄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선한 일을 하시고 사람을 고치시는 일을 하셨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39절의 근거가 됩니다. 그가 나무에, 곧 십자가에 달아 죽였는데,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라, 아무런 죄가 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40절에 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41절에서 그가 모든 택한 증인 가운데 부활하셔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그들이 직접 눈으로 본 증거를 말하고 있고,
이제 42절과 43절은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깨달은 미래적 사건이며 복음의 핵심을 선포합니다. 바로 부활 승천하신 예수가 심판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손에 버림 받고 저주받고 조롱당하여 죽으신 분이 이제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 재판장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그 재판장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43절, 그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힙입어” 곧 그가 이루신 일들을 인하여 죄 사함, 곧 구원을 얻는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심판주로 오신 예수님 앞에서 사람들은 다른 어떤 행위와 뉘우침으로 죄 사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오직 그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백 팔배를 하고, 고행을 하고, 뭘 좀 도덕적으로 살고 애쓰며 살아야 구원에 겨우 이를 수 있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는다면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복음으로 다가오시나요? 아니면, 말도 안되는 것으로 여겨지시나요?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선하다고 여기면서 이 복음을 전혀 복음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다만 불합리하다고 비판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자신의 행위를 살펴보고 구원에 이르기 위해 애쓰고 전심으로 수고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진짜 자신이 찾던 해답이요. 복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깨닫고 나니 기뻐서 목욕하던 중 알몸으로 뛰어나가 외친 “유레카”
자기 자신의 죄인됨에 대한 처절한 이해, 스스로 구원에 이를만한 자격을 갖출 수 없다는 자각이 있을 때에만,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루터가 이 점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수많은 고해성사와 금식과 철야기도 등 금욕생활을 통해서도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괴로워하던 시간들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1:17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로 이 성경구절을 읽을 때에 루터는 천국의 문이 열리는 같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나는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느꼈고, 열린 문을 통해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전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를 미워하시는 무서운 속성이라고 생각했으나, 이제 그것이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자비의 의임을 알았다.”
결국, 베드로가 선포한 화평의 복음은 그를 믿는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죄를 사함받기 위하여 다른 어떤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간에 사제가 있어서 사람의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오직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혹은 믿을 수 없는 주장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는 로마 교황청의 횡포와 비성경적인 모습에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95개조의 반박문 혹은 토론문을 써서 붙였습니다.
그 주된 내용이 면벌부를 통한 죄용서는 거짓이라는 점입니다. 죄 용서는 하나님의 권한이지, 교황이나 사제들, 그리고 한낱 종이에 불과한 면별부가 죄에 대한 처벌을 면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고해성사나 면벌부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에 지속적인 내적인 변화입니다. 교황은 죄를 용서해줄 아무런 권리나 능력이 없고,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그렇습니다. 화평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지는 평안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용납 받았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때에, 우리는 평안을 누립니다. 그리고, 더욱 예수님을 사랑하고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고 싶어지게 됩니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복음으로 하나님과 화평에 이르게 된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평안을 누립니다. 자신을 짓누르던 죄책감에서도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그 죄로부터도 자유로워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능력과 도움을 받으니 걱정과 염려가 없습니다.
이것이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나 기대와 감사로 일을 해나가는 것이고, 건강한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관리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화평하면, 내면의 안식과 만족이 찾아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평화가 찾아옵니다.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마음에 평안, 혹은 다른 사람과의 평화가 무너져 있다면,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아무 공로 없이 오직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하나님과 화평하게 해주신 그 복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과 화평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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