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다 하심을 받은 세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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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8:9-14
눅 18:9-14
오늘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세리’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겠습니다. 25년도에서 위피라는 소셜앱에서 25~34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연애에 대한 설문 조사였어요. 이성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무엇이냐? 질문했는데, 남자와 여자는 1위가 각각 달랐습니다. 남성이 여성을 볼 때 가장 1순위가 뭘까요? 우리는 당연히 외모라 생각할 건데요, 아니였습니다 73퍼센트로 성격이 1위였어요, 2위가 64퍼로 외모였어요, 반대로 여성은요? 1순위가 외모 70.6퍼센트, 2위가 65.5퍼센트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한정적인 통계이긴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마다 이성을 바라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요즘 사람들의 취향과 생각이 얼마나 다양합니까. 최근에 임원들과 딕싯이라는 보드게임을 했잖아요. 카드에 대한 설명을 하면, 그 설명을 가지고 카드를 추리하는게임인데, 어떤 사람은 시계하면, 카드에 보는 기준이 다르죠. 저게 시계를 나타내는거다. 이처럼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이 가진 생각이나, 기준, 관점들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관점과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바라보죠, 그리고 나름대로 판단을 합니다. 그리고 그 판단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존경을 하기도 하고요, 어떤 사람은 낮고 하찮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뭐냐면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기준이나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을 보기보다는, 하나님의 기준에서 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이 필요하다는거에요, 그럴 때 우리는 사람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요즘 캄보디아 범죄 때문에, 참 시끄럽습니다. 저는 이 범죄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일까라는 질문을 다시금 하게 되었어요. 이 범죄의 특징은, 사람이 사람이 아닌거에요. 사람은 그냥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지, 사람의 존엄성은 사라져버린 곳이 범죄집단이라는거에요. 사람을 납치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지인을 불러드립니다. 무엇 때문에요? 자신의 이익 때문에요. 팔아넘기는거죠. 그 사람은 그곳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사기를 칩니다. 범죄집단은, 그 사람을 철저히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해요. 이게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인거에요. 이런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우리가 가져야 되는 사람에 대한 인식은 세상이나, 인간적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뭐냐면요, 우리가 한번쯤 들어봤을만한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요 이 비유를 통해 중요한 진리를 교훈하고 계셔요. 이 내용은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듣고 있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누가복음 18: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대상들은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비유의 대상이 됩니까? 안됩니까? 안되어야겠지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우리 가운데 있따는거에요. 여기서 의로움이라는 것은요,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로움이 아니라, 스스로 내 생각에 의해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반드시 스스로 의롭다고 나는 괜찮다고 믿는 사람들은요, 다른 사람을 멸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의 의로움은 반드시 형제 위에 자신을 놓게 되어 있어요.
오늘 본문 전에 1절을 보면,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기도에 대해 가르치셨어요, 이 비유를 듣고 있는 대상들은, 제자들도 있었고요, 17장 20절에 보면 몇몇 바리새인들이 왔다는 것을 보면, 바리새인들도 있었을거에요. 사실 이 교훈은 제자들과 바리새인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비유의 내용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바로 바리새인과 세리입니다. 이 두 사람이 뭐해요?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어요. 당시 바리새인과 세리는 극명하게 사람들의 평가가 나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의 평가 때문에 나쁜놈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아니에요. 바리새인하면요, 당시에 대다수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아주 생활이 경건하고, 율법에 정통한 선생입니다. 그들은 말로만 그런게 아니라요. 아주 생활에 있어서도 철저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와 반대로 세리는요? 세리는 매국노에요. 쉽게 말하면, 로마에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일제강점기 시절에 보면, 친일파들과 같은거에요. 세리는 당시에 사람들에게 존경은 커녕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람이 어찌 저럴 수 있나, 어찌 나라를 팔아먹을 수 있나, 세리는요 로마를 위해서 일했고요, 세금을 거두면서요, 일부러 세금을 과도하게 더 부과합니다. 그리고 그 남은 돈을 챙겨서 착복하는, 천하의 죄인인거에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동일하게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이 성전은 헤롯 대왕이 지었던 헤롯 성전이에요. 성전에 뭐하러 갔어요? 기도하러 갔어요. 당시에 유대인들이 공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오전 9시와 오후 3시에 기도했어요. 바리새인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누가복음 18:11–12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왜 감사해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 그리고 저기 기도하는 세리와 같지 않음에 감사한다는거에요. 죄를 짓지 않는거에 감사할 수 있죠. 그리고 또 뭐에 감사해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한다, 이레는 일주일입니다. 일주일에 두 차례씩 경건의 의미로 금식을 해요, 그리소 소득의 십일조도 아주 철저히 합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했다고 합니다. 뭐 전통적으로 모세가 시내산에 월요일에 올라가서 목요일에 내려왔다나, 그래서 그 날은 금식했어요.
십일조는 뭐에요? 자신의 소득의 10퍼센트를 드리는거에요, 여기 한글로 보면 소득의 십일조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원어로 보면, ‘모든’이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보통 구약의 율법에 보면 십일조에 대해 명하고 있는데요, 보통 어떤 특정한 농산물에 대한 십일조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어찌했다고요?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서 모든 것에 십일조를 드렸대요. 심지어 바치라고 명하지 않은 소득, 농산물 까지도, 성경에 보면, 박하, 운향, 채소 이런것까지도 십일조를 드렸대요. 얼마나 경건합니까? 그는 이런 이유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반대로 13절에는 세리의 기도가 등장합니다. 누가복음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그는 실제로 죄인이 맞습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누구하나 존경하지 않는, 죄인으로 낙인 찍힌 사람이 바로 세리입니다. 그는 성전에 올라갔지만 멀리 떨어져서 서서 혼자 기도합니다. 당시에는요 쫌 경건한 사람들이 기도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건 뭐내면, 눈과 손을 하나님을 향해 올리고 기도하는 것이 기도 자세에요. 그런데 세리는요?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웅크려 가슴을 계속 칩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불쌍히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는거죠. 그의 기도의 내용은 사실 별게 없습니다. 수려한 말이나, 문장 역시 없어요. 그저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자각하며, 애통하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했어요.
이 기도의 결과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14절에 보면요, 누가복음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저 바리새인이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이 말을 청중들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결론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경건하다고 생각하고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모범적인 바리새인이 아니라 저런 매국노, 천하의 죄인, 몹쓸 쓰레기 같은 인간이 하나님께 옳다하심을 받고 내려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준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그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지만 그 감사 기도의 내용에는 결코 하나님께서 하신일이 없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내가 저런 사람과 같지 아니하고 나는 금식과 십일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기도의 내용 전부였습니다. 나의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 그의 기도의 전부입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자신의 의를 자랑하며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하찮게 여기거나 깔보았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세리의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했습니다. 자신의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고백했습니다. 이 세리가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받고 내려갔습니다.
이 예수님의 교훈은 하나님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옳게 여기시는가? 어떤 사람을 의롭다고 생각하시는가?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우리 나름대로의 의인의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아주 선한 인품을 갖은 사람, 부모님께 효도를 잘하는 사람, 교회에서 봉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는 사람, 십일조를 철저하게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사람이겠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이런 행위로 우리를 옳다 여기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바리새인처럼 이 모든 행위가 나를 자랑하거나 내 공로가 되거나 내 공로를 통해 은근슬쩍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깔보고, 정죄하는 마음으로 자리 잡았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내가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사람, 그 은혜 때문에 정말로 감사하며 봉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옳게 여기십니다.
사람이 볼 때 바리새인과 세리는 한명은 의인이고 한명은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바리새인과 세리는 둘 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자비가 아닌 자신의 공로를 자랑했으며 세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철저히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함으로 시작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너무 먹고 살만해서요.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립니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도 인지하지 못하구요. 하나님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해도 조금만 이따 오시라는 생각을 하구요. 내 일상 삶에서는 하나님이 전혀 필요하지 않지만 죽음 이후 혹시 모를 지옥 때문에 천국을 보장 받기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자신의 죄인 됨을 철저히 깨닫게 됨으로 회심이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끔찍한 삶을 살았으며, 더러우며, 비참하며, 부끄러우며, 내가 하나님이 아니고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믿음으로 의롭다하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이것은 믿고 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합시다. 지금도 여전히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아니고서는 이 세상에 내 마음을 빼앗기는 것과 죄악에서 우리의 마음을 지키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의 자비를 간절히 구하는 자를 옳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런 자를 하나님은 높이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결코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간절히 구하며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남은 한 주간의 삶이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