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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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Romans 9:3 NKRV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환영
할렐루야~ 앞 뒤 옆사람과 이렇게 인사합시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예배 후 이룸청년부 정기총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룸청년부로 부르신 뜻을 알고,
하나되어 함께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길 소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라는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교회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3가지 이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공동체와 교회를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그리스도인은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본받아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이타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남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기 때문에
교회와 공동체를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영혼들이 모여있는 곳이
공동체와 교회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에 있든지 내가 속한 공동체와 교회를 사랑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다른 지역이 아니라
대한민국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모였습니다.
오륜교회나 명성교회로 모인 것이 아니라
서울제일교회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동구 주민을 섬기고, 서울제일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공동체와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살아 생전에 한번도 외국 여행을 다녀오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안에 사시면서 계속해서 유대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지금의 교회공동체인 유대인 성전공동체를 사랑하셨고,
자신이 부르신 12제자 공동체를 사랑하셨습니다.
얼마나 이스라엘 공동체를 사랑하셨는지 울기까지 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신 기록이 3번 등장합니다.
한번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위해 우셨고,
또 한번은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며 우셨고,
마지막 한번은 멸망당할 예루살렘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모두 자신이 사랑했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울음이었습니다.
이처럼 참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자신이 속한
공동체, 민족, 영혼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크리스천의 공동체 사랑
그런데 크리스천이 말하는 교회사랑, 공동체 사랑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공동체 사랑과는 달라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말하는 공동체 사랑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
세상의 모임과 교회 모임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요?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 ‘앙드레 지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레네 산맥을 두고 이쪽과 저쪽에서 그 의미가 달라지는 애국이라면
그것은 참다운 애국일 수 없다.”
유럽 지도를 보면 피레네 산맥을 중심으로
아래쪽에는 스페인, 위쪽에는 프랑스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든 나라의 역사가 그렇듯이
스페인과 프랑스는 서로 침략과 전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의 애국자는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침략자로,
반대로 프랑스의 영웅
스페인 사람들에게 정복자로 여겨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도 마찬가지죠.
일본 사람들은 ‘이토 히로부미’를 일본의 기틀을 만든
위대한 애국자로 추앙하며 일본 지폐에 새겨넣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게 ‘이토 히로부미’는 나라를 빼앗은
악명높은 침략자로 여겨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
우리나라에서 애국 지사로 존경받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영웅을 죽인 폭도일 뿐입니다.
만약 이런 것을 두고 애국, 민족 공동체 사랑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결코 크리스천이 추구해야할 공동체 사랑은 아닙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공동체 사랑은 진리 안에서의 사랑입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공동체 사랑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스페인에서도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 공동체 사랑의 차이점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공동체 사랑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동체 사랑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 그 집단을 사랑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는데 반하여,
크리스천들은 공동체 사랑, 교회 사랑출발점으로 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 모임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투쟁으로 하고, 정치에 참여하고, 민원을 넣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불이익은 안중에 없습니다.
자기 모임만, 자기 지역만, 자기 가족만 잘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자기 공동체만 생각하게 되면,
서로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갈등은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반면에 크리스천들은 나의 공동체, 내 교회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다른 모임, 다른 공동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 사랑이웃 사랑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이스라엘 집으로 가라
예수님은 12제자를 선택하여 훈련시키시고 처음 전도를 보내실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Matthew 10:5–6 NKRV
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방인의 길로도, 사마리아인의 고을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이스라엘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이스라엘 유대인만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사명을 통해 사마리아와 이방인, 온 세계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면 먼저 사마리아인, 이방인 제자들을 포함시켜서
훈련시키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순수하게 유대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선택하셨고,
그들에게도 처음 전도를 보낼 때, 유대인에게 먼저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단은 먼저 이스라엘 유대인 공동체가
이 사명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함께 이웃 사랑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애와 결혼,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
연애와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은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인 가정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가정은 가장 작은 단위의 사명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혼자 살 때는 부모님 밑에서 신앙을 전수받아
함께 부모님의 사역을 도와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혼자 독립해 살면서 ‘나’라는 한 사람
이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나의 삶, 나의 말과 행동, 예배, 습관, 관계 등을 통해서
이웃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다 배우자를 만나서 이 길을 함께 걷는 것입니다.
사명 공동체로서 함께 이 사명을 이루어갈 동역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종교가 달라서, 성격이 달라서 매일 싸우고, 뜻이 맞지 않고,
그러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공동체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애를 할 때, 결혼을 전제로 만나라는 것이고,
결혼은 반드시 신앙생활을 하는 믿음있는 사람을 만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과 교제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하려고 연애한다. 결혼하면 교회 다닐게.”
결혼을 해야만 전도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전도를 안했다는 반증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음에 대해 반성하고,
전도를 따로 하면 되는 것이지, 결혼으로 전도를 대신하려 하지 마세요.
결혼과 전도의 법칙
예를 들어,
믿음 50 = 1년에 1명 전도 / 믿음 60 = 2명 전도
믿음이 있지만 전도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50 이상부터 전도를 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믿음 70 = 3명이 아니라 4명 전도
<믿음과 전도의 법칙 - PPT>
왜냐하면 주변을 보면, 전도한 사람을 보면 그래프가
정비례 직선으로 올라가지 않아요. 곡선으로 확 올라가요.
그래서 전도 많이하는 큰교회에서 전도시상을 하면
1등과 2등 차이가 엄청 납니다.
1등 50명 / 2등 40명 / 3등 30명 - 이렇게 되지 않습니다.
보통 1등 100명 / 2등 50명 / 3등 10명
이렇게 곡선으로 전도인원 상승합니다.
그래서 제가 믿음과 전도의 법칙이라고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10 올라갈 때마다
전도인원이 제곱으로 늘어난다는 거에요.
그래서 계속 이어서 계산해보면
믿음 80 = 8명 전도 / 믿음 90 = 16명 전도 / 믿음 100 = 32명 전도
믿음 10 + 믿음 50 = 믿음 60 / 2명 전도
믿음 20 + 믿음 60 = 믿음 80 / 8명 전도
(0명 전도) + (2명 전도) = 2명 전도 -> 8명 전도(+6명)
이게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아름다운 사명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믿음 100인 사람과
믿음이 아예 없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해봅시다.
그렇게 되면 어쩔수 없이 믿음있는 사람이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포기하고 가정에 헌신해야 할 부분이 생깁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의 믿음은 마이너스 입니다.
믿음 100 + 믿음 -10 = 믿음 90 / 16명 전도
(32명 전도) + (0명 전도) = (32명 전도) / - 16명
그래서 둘이 결혼함으로 16명의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가정 공동체, 사명 공동체가 하나가 안되면,
그 안에서 갈등과 분쟁으로 오히려 연합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입니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믿음과 전도를 예로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하나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입니다.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는 결혼도 하나가 되지 못하면
영혼을 살리는 일에 마이너스가 되는데,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교회 공동체가 하나가 되지 못하면
더 큰 사명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공동체 사랑
Romans 9:3–4 NKRV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나의 형제, 친척, 내 민족을 위해 예수님과 끊어지는
저주를 받을지라도 나의 공동체를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게 양자의 영광, 율법으로 세우신 예배와
약속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도바울의 고백을 들어보면,
상당한 민족주의자로 보일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바울은 철저한 민족주의자요,
국수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뒤 바울은 더이상 민족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유대 공동체를 사랑했던 바울
이제 세계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로마인을 위해서
로마에서 자기 목숨까지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왜 처음부터 이웃 사랑, 세계 선교를 먼저 시작하지 않고,
내 교회, 내 공동체를 먼저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말씀하셨지,
교회사랑, 공동체사랑을 율법처럼 명령으로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 교회, 내 공동체, 내 가족, 내 사람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사람
절대 이웃과 모든 민족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하나님의 계명 중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하냐고 묻자, 주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그런데 이때 예수님께서 단순히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네 몸과 같이, 즉 내 자신을 사랑하듯이 남도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듯이
내 공동체를 사랑해야 다른 공동체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지상 대명령, 세계 선교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라는 기적
사랑하는 이룸 청년 여러분, 기적은 언제 일어날까요?
한 사람이 위대한 일을 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묶으실 때 일어납니다.
사람은 본래 서로 다른 존재들입니다.
성격도, 생각도, 은사도, 살아온 환경도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 완전한 하나됨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되게 하실 때,
서로의 다름은 갈등이 아니라 조화가 되고,
경쟁은 협력이 되어 더 큰 힘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의 약점을 메워주고, 강점을 격려하며 힘을 더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우리를 통해 일어나게 됩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하나님 나라‘우리’를 통해 세워집니다.
하나님은 혼자가 아닌 공동체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를 사랑하는 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실 통로를 지키는 귀한 사명입니다.
이제 예배 후 정기총회를 하면서 새로운 임원이 세워질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이룸청년부가 ‘우리’라는 이름으로
다시 새롭게 세워지는 순간입니다.
누군가는 앞에 세워지고, 누군가는 뒤에서 섬기며,
각자의 자리에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때,
그 모든 역할과 헌신이 합쳐져 ‘우리’라는 기적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시간 우리가 “기대”라는 찬양을 함께 고백하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찬양의 첫 가사를 보면 “주 안에 우린 하나”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완성된 공동체가 아닙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유기체, 주님의 몸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품고, 용서하고, 세워갈 때,
하나님은 이 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 임원으로 세워지는 사람들
‘우리’라는 기적을 이어갈 하나님의 손과 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손과 발을 함께 연결시켜줄 각각의 지체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앞에 세워진 사람만 일하기 위해 뽑혀지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데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허브라는 생각으로
내년 2026년을 함께 세워가는 아름다운 이룸청년부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일어나셔서 “기대” 찬양하시면서
준비하신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찬양 - 기대
기도제목
나의 신앙이 개인의 믿음에 머물지 않고, 교회와 공동체를 세우는 믿음으로 자라가게 하소서.
새롭게 세워질 임원들과 모든 청년들이 서로 존중하고 도우며,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소서.
이룸청년부가 한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며 하나님 나라를 꿈꾸게 하소서.
우리교회가 지역과 세상을 품는 선교적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마무리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혼자가 아닌 함께 할 때
더 큰 역사를 경험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불평이 아닌 격려로, 분열이 아닌 사랑으로
서로를 세워가며, 교회라는 부르심의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섬기게 하옵소서.
우리 이룸청년부가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고,
이웃과 지역사회를 따뜻하게 품는 사랑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오늘 임원 선출의 자리가 하나님 나라의 기적이 시작되는
거룩한 순간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헌금기도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과 시간,
물질과 마음을 허락해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우리의 정성과 사랑을 담아 예물을 올려드립니다.
이 예물이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드리는
믿음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받은 은혜를 세어보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드리는 모든 손길 위에
더 큰 하늘의 복과 은혜를 부어주시고,
이 예물이 교회와 다음세대를 세우고,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데 아름답게 쓰임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일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근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광고
사중복음 축도문
이제는 우리를 죄와 어둠에서 건지시고 중생케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우리를 거룩함과 성결의 삶으로 부르신
하나님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과,
우리의 영과 육을 신유의 은혜로 회복케 하신
성령 하나님의 역사 교통하심이,
이룸청년부로 부르신 그 뜻을 따라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며
함께 모인 그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고, 세계를 품기 원하
여기 모인 이룸청년부와 모든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과 일터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정기총회 기도문
주님, 우리를 서로 다르게 만드셨지만,
그 다름 속에서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세우고 섬기는 이룸청년부로 부름받았음을 믿습니다.
이시간 진행되는 정기총회를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한해동안 이룸청년부를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일을 함께 나누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며 임원을 세울 때,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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