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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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94장
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라오디게아는 골로새에서 서쪽으로 16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터키 지역에 있는 이 두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는 아니지만 두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직접 얼굴을 보지도 못한 성도들입니다. 1절에 보면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이라고 나와있습니다. 라오디게아에 있는 사람들은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들을 위해 바울 자신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기를 바란다고 표현합니다.
바울의 직접적인 복음을 받은 자들은 아니지만 에바브라를 통하여 세워진 교회입니다. 바울에게서 복음을 들은 에바브라가 터키 지역에 세워서 돌보고 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니 에바브라는 바울과 계속해서 서신하며 복음에 대하여 배우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배우고, 성도들을 돌보는 일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은 에바브라를 통해서 골로새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에바브라가 바울에게 새롭게 믿음을 가지게 된 자가 있으면 편지를 써서 보냈을 것이고요. 문제가 있으면 지혜를 구하고자 편지를 써서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은 에바브라가 돌보고 있는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에바브라를 통해 교회 소식을 들으면서 기도하며 애써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지역 교인들에게 내가 너희를 생각하며 늘 애쓰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골로새지역의 교인들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에바브라가 돌보고 있는 골로새와 라오디게아를 포함해서 그 지역 교인들이 서로 사랑으로 결속되어 마음에 격려를 받고, 깨달음에서 생기는 충만한 확신의 모든 풍요에 이르고,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2절 말씀처럼 이 지역 교인들이 서로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마음에 위안을 받고,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입니다.
복음은 이러한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시고, 영원한 생명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풍성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0:10에서도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이 애쓰는 목적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로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려함입니다. 우리의 죽은 영혼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지식과 다릅니다. 세상의 가치나 세상의 높은 지식이라 할지라도 예수께서 주시는 생명과 다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세상의 철학과 종교, 지식과는 다른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8절에 보면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여기서 말하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무엇이냐면 다른 종교와 율법, 유대교리들을 말합니다. 초등학문을 말합니다. 갈라디아 4:3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릴 때에는, 세상의 유치한 교훈 아래에서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었던 바울과 초대교회 사람들은 어릴 때에는 다 유대교의 율법을 따르던 자들이었습니다.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것이 아닌 아직도 제사를 지내고 있는 옛 사람의 전통과 초등학문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지금은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아직 제사를 드려야할 것 같은데 유대인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이제 그들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닌 구제를 하는 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물론 유월절에는 양도 굽고 누룩도 청소하고 무교병을 먹는 전통들이 있지만 예전처럼 제사를 통해 속죄하는 것이 아닌 구제와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것과 돕는 것으로 그들의 제사가 대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러한 것들이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의 철학과 종교, 전통과 초등학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르게 말하면 윤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또 8절에서 말하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지식들을 말합니다. 학식들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율법의 전통과 윤리와, 세상의 학식도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영을 살리고 풍요롭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한 것 위에 생명을 더하시는 분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것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과 전통과 윤리와 지식들을 다 가지고 계시면서 그 위에 생명을 더하십니다.
그러니 예수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제사를 구제로 바꾼 것처럼 구제는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선입니다. 율법입니다. 지식과 철학은 너무나 중요하며 함께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가 아니고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에게 있으며 예수님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6절 말씀처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로인하여서 7절 말씀처럼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 않으시고 다른 가치들을 따라가지 않으시고 예수님으로 인해, 그 하나님의 비밀을 가지고 생명을 가지고 생명을 낳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세상의 가치와 지식들이 나를 살릴 수는 없습니다. 오직 내 영을 살리시고 생명으로 풍성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살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