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댜의 개혁군주 요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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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lm 144:2–3 NKRV
2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Psalm 146:1–2 NKRV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찬송가:420장 너 성결키 위해
2 Chronicles 34:1–13 NKRV
1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3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제십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 4 무리가 왕 앞에서 바알의 제단들을 헐었으며 왕이 또 그 제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5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6 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사면 황폐한 성읍들에도 그렇게 행하여 7 제단들을 허물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8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 지 열여덟째 해에 그 땅과 성전을 정결하게 하기를 마치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시장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 9 그들이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나아가 전에 하나님의 전에 헌금한 돈을 그에게 주니 이 돈은 문을 지키는 레위 사람들이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남아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서 거둔 것이라 10 그 돈을 여호와의 전 공사를 감독하는 자들의 손에 넘기니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 있는 일꾼들에게 주어 그 전을 수리하게 하되 11 곧 목수들과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어 다듬은 돌과 연접하는 나무를 사며 유다 왕들이 헐어버린 성전들을 위하여 들보를 만들게 하매 12 그 사람들이 성실하게 그 일을 하니라 그의 감독들은 레위 사람들 곧 므라리 자손 중 야핫과 오바댜요 그핫 자손들 중 스가랴와 무술람이라 다 그 일을 감독하고 또 악기에 익숙한 레위 사람들이 함께 하였으며 13 그들은 또 목도꾼을 감독하며 모든 공사 담당자를 감독하고 어떤 레위 사람은 서기와 관리와 문지기가 되었더라
들어가는 말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에 대한 내용을 어제 큐티 하였습니다. 특이한 점은 역대기에는 그가 앗수르에 잡혀 갔다 회개하고 돌이킨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 열왕기 21장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끝까지 악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열왕기 22장과 병행해서 살펴보면 됩니다. 요시아 왕은 유다의 미지막 개혁군주이자 선한 왕입니다, 이후로 이번 주를 끝으로 역대기를 큐티를 마치게 됩니다.
열왕기와 오늘 본문 역대기의 차이점은 요시아의 개혁에 대한 순서의 차이가 보입니다. 역대하 본문은 오늘 보시다 시피 먼저 개혁이 있고,성전보수 그리고 율법책의 발견의 순서인데 , 열왕기는 성전보수,율법책의 발견,개혁의 시작입니다. 논리의 순서를 따르면 열왕기의 순서가 맞는것 같지만 정확한 기록의 연대를 보면 역대기의 기록이 맞는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역대기는 우리가 읽은 본문에 근거하여 구체적으로 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시아는 16세에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신앙을 정립하였고,20세에 예루살렘에서 종교개혁을 시작했고 26세에 성전보수를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기 떄문입니다. 성경의 역사적 기록이 시간의 순서를 따라 기록된 것과 통전적으로 그 시대를 아울러 기록한 것으로 나뉘기 때문에 시간적 순서에 크게 혼란 스러워 할 이유는 없습니다. 열왕기와 같이 성경을 보시다 보면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 의문이 생기실 분이 있을듯 하여 말씀 드립니다.
아버지 아몬왕이 신하들의 반역으로 죽고 8세에 왕위에 오른 요시아의 정치적인 기반은 매우 취약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의 나이는 8세이다. 이후 므깃도에서 애굽왕 느고에게 죽을때의 그의 나이가 39세였으나 31년을 통치했다. 그의죽음은 비교적 빠르고 예상 못한 것이였으나 그의 삶은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정직한 왕으로 다윗과 견줄 이름을 남겼다.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이고 축복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정말 그런지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어떻게 살았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지가 중요한 것 아닌가? 히스기야-므낫세-아몬-요시야로 이어지는 계보를 보면 하나님이 아버지의 죄를 자식에게 담당하지 않는 율법을 선포하신 이유를 깨닫게 된다. 인생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선다.
3-6절까지는 요시야의 개혁의 내용이 나온다.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바알의 제단,태양상을 헐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우상의 섬기던제사장들의 무덤에 뿌렸다. 이스라엘의 황폐한 성읍에 이루기까지 가서 우상들을 찾아서 진멸했다. 한마디로 철저하게 했다. (스바냐, 예레미야,나훔의 영향권에 있었다.)
열왕기하 23:25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열왕기하 23:26 “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2 Chronicles 34:8 NKRV
8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 지 열여덟째 해에 그 땅과 성전을 정결하게 하기를 마치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시장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
이제 요시아왕 16년 26세에 성전을 보수하기 시작합니다.
유다의 관리들을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온 이스라엘에서 헌금한 돈을 보내어 성전을 보수하게 한다. 성전을 관리하는 의무와 권리가 있는 레위 사람들을 통해서 이 일을 한다. 절차적인 정당성과 명분에 맞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중심되는 말
우리는 어떤 일의 결과가 좋은면 과정도 좋다고 말합니다. 아니 그 과정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 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일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기에는 두가지 중요한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 결과는 다른 말로 하면 책임입니다. 책임을 지는 것은 직원이 아니라 사장입니다.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8절 이하를 보면 성전을 보수하는 일에 있어서 그 과정의 주체를 요시야는 레위인에게 맡깁니다. 성전을 보수하여 완성하는 일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율법에 의해서 성전을 관리하는 책임과 권리가 레위인에게 있기 떄문에 그 절차와 과정을 지켜서 결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들은 결과에 매이지 않고 모든 일에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 할 수 있을까요? 로마서 8:28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씀 합니다. 우리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가운데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신자에게 결과는 언제나 나와 있습니다. 아니 신자에게 결과는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최종결과는 승리이고 선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던지 그 과정을 즐길수 있고, 결과라는 우상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기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하지만 결과는 책임을 말합니다. 삶의 주인이 자신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은 인생에 대한 책임과 결과에 대한무거운 명애를 지고 가는 종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11:28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결과에 매이지 않고 과정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유합니다. 그리고 이 자유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 옵니다. 선순환 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종국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믿고 신뢰하고 걷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평강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로마서 11:36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는 모든것이 형통하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것이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아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분을 신뢰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125:1 “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오늘 본문을 통해 두번째 살펴 볼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곧 죄에 대한 싸움 입니다. 본문에서 요시아는 모든 우상을 부수고 가루로 만들어 빻아서 소멸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없는 곳에 이전에 세워진 우상들조차 찾아서 없애고 그 제단들을 변소로 만들어 버립니다. 당대의 것뿐만 아니라 역대 왕들의 우상 숭배의 흔적조차도 지워 버립니다. 왕하23:11-12
2 Kings 23:11–12 NKRV
11 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12 유다 여러 왕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내려서 그것들의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리고 이런 요시야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열왕기하 23:25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요시야의 이름속에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죄와 싸우지 않고 싸우는 척만 하는지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죄를 즐기는 마음이 우리에게 여전히 있습니다. 죄는 달콤한 맛이 있습니다. 귀에 속삭이는 말이 얼마나 달콤한지 모릅니다. 뒷말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이 즐겁습니다. 돈주고 사먹으면 맛이 없다고 말하는 세상 사람들의 속담은 인간이 얼마나 죄의 달콤한 유혹에 취약한지 잘 보여 줍니다. (죄란 몰래먹는 초코릿인가요? 아니면 청교도의 편견인가요?)
우상숭배는 항상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것이고, 심하지 않고 빠지지만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용한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시작은 그렇게 합니다.(1) 예배를 공예배로 드리지 않아도 한번쯤 집에서 드려도 되지 않겠나? (2)외롭고 허전한데 그리고 기쁜날인데 술 한잔 해야지! 취하지만 않으면 된다.(3) 누가 없는 사람 흉볼때 한두번 맞장구 처주는것은 인간관계 유지상 필요한 것이지! (4) 스포츠를 즐기다가 화를 냅니다. 취미를 즐기다가 취미가 주요한 삶이 됩니다. 이렇듯이 하나님 없이, 하나님 보다 내가 사랑하고 즐기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그리고 그 우상은 우리를 배반하고 포로로 삼아 이전보다 더한 쓴맛을 보게 합니다. 후회를 하고 돌이키게 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죄에게 우리 삶의 방향타를 건네주는 순간 우리는 결국 그 죄가 주는 쾌락에 빠져 버리고 맙니다. 그 쾌락의 마침은 처음 시작할때와 비교할 수 없는 허전하고 공허하고 패배감과 우울감 입니다.
에베소서 4:30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12:4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죽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8–9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야고보서 4:7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정리하는 말
요시야의 개혁은 철저했습니다. 열왕기하 23:25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그는 39세의 어찌보면 허무한 인생을 살은듯 하지만 그 어떤 왕보다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그의 이름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시야의 삶을 통해서 도전 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이 어떻게 기록되기를 원하십니까? 므낫세 같이 67세를 살며 55년을 통치했지만 열왕기하 23:26 “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삶을 살겠습니끼?
오늘도 우리 삶가운데 우리 대적들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자를 찾아 다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연합하지 못하도록 믿는 성도들을 이간질 할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죄에 빠져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이 없는 것 처럼 우리를 속일 것입니다. 로마서 8:37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최종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결과에 메몰죄지 말고 과정을 즐기면서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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