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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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육의 중요성(1-3절)
신앙교육의 중요성(1-3절)
모세는 요단 동편에서 마지막 설교를 전합니다. 그가 남긴 유언의 중심에는 “교육”이 있습니다.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1절).
하나님은 단지 지식으로서의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전해져야 할 신앙의 유산을 맡기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이 신앙교육의 명암으로 갈립니다.
여호수아 시대의 자녀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다 알았더라”(수 24:31)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그들의 믿음은 생생했습니다.
그러나 사사기로 넘어가면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삿 2:10)고 합니다.
단 한 세대 만에 신앙의 불이 꺼져버린 것입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사사기 전체를 관통하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17:6, 21:25)
이 구절은 신앙교육이 무너진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이 사라지고, ‘자기 소견’이 진리의 기준이 된 사회,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도덕적 혼란
(1) 도덕적 혼란
레위인 첩 사건(사사기 19장)은 인간의 타락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한 레위인이 베들레헴 출신 첩을 두었는데, 그 여인이 레위인을 떠나 친정으로 돌아갑니다. 4개월 후 레위인이 화해를 위해 그녀를 데리러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를 매우 반기며 며칠 동안 머물게 하였고, 결국 늦은 시각에 귀향길에 오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그 당시 여부스성)**을 지나 베냐민 지파의 성읍 기브아에 도착하여 노숙할 곳을 찾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 노인이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하룻밤을 재워줍니다.
그때 성읍의 불량배들이 몰려와 집을 에워싸고, 레위인을 끌어내어 ‘성적인 학대’를 하겠다고 요구합니다. 노인은 그들을 말리며 대신 자신의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어주겠다고 합니다. 결국 레위인은 첩을 그들에게 내줍니다.
그 여인은 밤새 폭행당하다가 새벽에 죽음 직전의 상태로 집 문 앞에 쓰러집니다. 레위인이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문턱에 엎드려 죽어 있었습니다.
그는 충격과 분노 속에 그녀의 시신을 열두 조각으로 나누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게 보냅니다. 이는 끔찍한 범죄를 고발하고 정의를 요구하는 행위였습니다. 이를 본 모든 이스라엘은 충격에 빠져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며 전쟁을 결의하게 됩니다.
성적 문란, 폭력, 집단 살인 — 그 모든 악이 “여호와를 알지 못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신앙교육이 끊긴 사회는 결국 양심이 사라진 사회로 변합니다.
(2) 세대 간 단절과 폭력의 확산
(2) 세대 간 단절과 폭력의 확산
사사기 말미에는 이스라엘 각 지파가 서로 전쟁을 벌이고,
심지어 자기 민족을 멸절시킬 정도로 잔혹한 내전이 일어납니다.
신앙이 전해지지 않으면 공동체의 유대가 끊어지고,
가정과 사회는 폭력과 경쟁의 무대로 변합니다.
신앙은 피처럼 유전되지 않습니다.
배워야 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말합니다.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가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라”(2절).
신앙교육은 단순한 교리교육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습관을 세대마다 심는 일입니다.
그것이 복을 누리는 길이며, 장수하는 길이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번영을 누리는 유일한 비밀이라고 모세는 선언합니다(3절).
2. 하나님 사랑에 관하여 (4–5절)
2. 하나님 사랑에 관하여 (4–5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고백하는 ‘쉐마’의 시작입니다.
‘들으라(쉐마)’는 단순한 청취가 아니라 순종을 전제한 경청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신앙교육의 핵심은 이 한 구절에 있습니다 —
하나님은 유일하시다.
따라서 우리의 사랑도 나뉘어서는 안 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구절은 신앙교육의 목표가 순종하는 자녀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임을 밝힙니다.
사랑이 없는 신앙은 의무로 남고, 의무로 남은 신앙은 세대를 이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그들이 마음으로, 의지로, 힘으로 하나님께 향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 사랑이야말로 신앙교육의 중심이자 목적입니다.
신앙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분입니다.
유일한 여호와시다라는 것은 신앙의 대상이 한분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십계명에도 우상숭배에 관하여 기록했는데 이것은 결혼과 같은 의미이며, 우상숭배는 바람을 피운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결혼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하지 말아라, 단 간음한 대상과는 이혼하라고 말씀했습니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하든지 하나님은 기다려주시고 믿어주시지만 다른 대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매우 심각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
이는 전심으로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이 이 마음 저 마음 두고 재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바쁘고 정신없어서 하나님 생각 못할 수 있죠.
그런데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 중심에 그 대상을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배우자를 마음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에 배우자를 항상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할 때에 항상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생각이나 행동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2. 뜻을 다해 사랑하라
이것은 ‘의지’를 이야기 합니다. 사랑하기로 작정하고 생명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어설프게 사랑한다고 해놓고 좀 마음 상하면 버리고 새 사람을 찾고,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기로 작정하고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대상을 위해 죽어야 한다면 죽어줄 수도 있겠다는 각오로 사랑하는 것이 바로 뜻을 다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3. 힘을 다해 사랑하라
나의 능력, 재산, 수단, 영향력을 포괄하는 말이 바로 ‘힘’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다 되었을 때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를 사랑하는 자녀에게 더 큰 사랑을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3. 구체적인 신앙교육 방법 (6–9절)
3. 구체적인 신앙교육 방법 (6–9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추상적 감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모세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이든지 길을 갈 때이든지
누워 있을 때이든지 일어날 때이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6–7절)
첫째, ‘마음에 새기라’ — 부모의 삶 속에서 말씀을 살아내야 합니다.
신앙교육의 시작은 교실이 아니라 부모의 심장입니다.
입술이 아닌 삶으로 전수되는 신앙,
그것이 자녀의 영혼에 각인되는 복음의 잉크입니다.
둘째, ‘부지런히 가르치라’ —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삶의 일상 속에서 말씀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합니다.
식탁의 대화가 신앙의 교실이 되고,
길 위의 대화가 신앙의 시간표가 됩니다.
신앙교육은 일상이 예배가 되는 훈련입니다.
셋째, ‘기호로 삼고 문설주에 기록하라’ —
신앙은 ‘기억’의 예술입니다.
보이는 곳마다, 드나드는 문마다 하나님 말씀을 새겨
눈과 손이 말씀을 기억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언어로 말하자면, 가정의 문화가 곧 신앙교육의 환경입니다.
말씀은 벽에 걸린 글귀가 아니라, 가족의 대화와 선택, 소비와 계획 속에 스며들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