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잘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실 때 처음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작정으로 오신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백성을 하나로 모아서 회개하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게끔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종교 지도자들, 정치 지도자들이었고,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죽일 작정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예수님의 마음을 잘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도, 삶도, 권세도, 권능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당신을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하느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계셨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관평동 성당으로 복귀한다고 했을 때, 동기 신부들, 선후배 신부들이 걱정의 말을 했습니다. ‘1년을 쉬기로 했는데, 그러면 그 기간을 채워서 몸을 더 회복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 혹시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하냐’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제 몸은 제가 잘 압니다. 시간을 들이면 회복할 수 있는 병이 있고, 시간을 들여도 회복할 수 없는 병이 있습니다. 시간을 들여서 회복할 수 있다면 쉬는 게 맞습니다. 시간을 들여도 회복할 수 없는데, 언젠가 좋아질 것을 기대하며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것만큼 무의미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교구 신부의 소명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빌려 ‘교구 신부는 소임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신 소명에 충실하셨듯이, 우리도 예수님께서 맡겨 주신 소명에 충실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