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1장
이주혜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 viewsNotes
Transcript
사도신경, 찬송가 370장, 191장
오늘 본문 민수기 11장이 이렇게 시작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알면 오늘 본문의 말씀이 더 쉽게 들립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와 광야를 지나 시내산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약속을 세워 주세요. 중간에 금송아지 같은 큰 사고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다시 붙잡아 주십니다. 그리고 성막을 세워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함께하신다”의 눈에 보이는 표지예요.
→ 한 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사시려는 준비가 끝났다.
성막이 세워졌으니, 이제 “어떻게 같이 살지?”를 배웁니다. 그래서 레위기에서 예배 드리는 법, 깨끗하게 지내는 법, 절기 지키는 법. 한마디로 생활 매뉴얼을 받은 거예요.
→ 한 줄: ‘거룩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나서 이제 움직이는 민수기가 등장합니다. 민수기 앞부분에서 하나님이 행군 을 준비시키는 모습을 보이세요.
지파별로 자리를 정하고(동·남·서·북), 출발 순서까지 정합니다.
레위인은 장막을 어떻게 나르고 지킬지 역할을 나눕니다.
진을 깨끗하게 하는 규칙, 제사장 축복 같은 말씀으로 마음도 세워요.
구름/불기둥이 멈추면 멈추고, 움직이면 따라가도록 신호 시스템을 알려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은 나팔! 모이라, 출발하자, 경고하자—소리로 함께 움직이게 하십니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 언약궤가 앞서 가며 쉴 곳을 찾아 주십니다.
→ 한 줄: 조직, 역할, 신호—다 준비 끝. 이제 잘 가면 된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반전이 나옵니다. 사흘길 3일을 갔을 뿐인데, 진에서 불평이 시작됩니다.
“힘들다, 지겹다, 예전이 낫다…” 말이 퍼지고, 모세는 한탄하는 모습이 등장해요.
이 장면이 바로 민수기 11장이에요. 하나님 주신 시스템은 완벽했지만, 아직 백성들의 마음이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래서 민수기 11장이 그 모습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망은 “여호와의 귀에” 들리고, 보통 “진 끝”에서 번진다(1–3)
원망은 “여호와의 귀에” 들리고, 보통 “진 끝”에서 번진다(1–3)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하나님은 감사도 들으시고 푸념도 들으십니다. ‘여호와의 귀에’ 들어가면, 하나님은 반응하십니다. 여기선 불이에요. 그런데 눈여겨볼 점이 있죠. 불이 진 전체를 태우지 않고 끝부분만 스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전멸이 아니라 경각심있었어요. “지금 불평하는 그 원망을 여기서 끊어라.”라는 뜻이었어요.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니 불길이 꺼집니다(11:2). 그리고 그 다음절에 보면 이름을 붙여 남기는데 다베라(불사름/불붙음)(11:3)이라는 이름을 남깁니다. 성경은 종종 장소에 사건을 이름으로 남겨서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남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디베라 라는 장소는 “불평의 불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잊지 말라.”라는 뜻입니다.
여기 뉘앙스 하나를 더 볼텐데, 원망하매 라고 나와있는 ‘원망했다’라는 뜻이 행동만 적지 않고, 백성이 불평하는 사람/원망하는 사람들이 되었다고, 곧 상태/정체성으로 그립니다(원어 뉘앙스). 불평은 한두 번의 사건이 아니라 그들의 상태/체질이 되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공동체는 중심만 단단히 잡는다고 지켜지지 않습니다. 가장자리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곧 중심을 지키는 길입니다.
저희도 보면 대게 불평은 중심보다는 여러 가장자리에서 많이 들어납니다. 작은 불평들, 아쉬운 소리들, 진짜인지 모르는 그런 가벼운 말들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그런 행동이 반복되면 불평하는 정체성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소리를 듣고 백성들을 위해서 중보 했던 모세처럼, 중보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불이 모세의 중보로 꺼지듯이 문제가 있을 때 기도해야 합니다.
입맛: 은혜는 있는데, 감사의 입맛이 사라질 때 (4–9, 10, 18–20, 31–34)
입맛: 은혜는 있는데, 감사의 입맛이 사라질 때 (4–9, 10, 18–20, 31–34)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불평의 기폭제는 4절에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탐욕을 품으면서 시작됩니다. 이 소수의 투덜거림이 10절에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장막 문에서 울게 될 만큼 집단의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내용을 잘 보면 5절에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사실 잘 보면 ‘값없’이 먹었던 것이 아니었어요. 엄청난 노동과 채찍의 값이었죠어요. 광야가 힘드니까 과거가 미화되요.
반면 하나님이 주신 만나는 어땠나? 본문이 디테일하게 설명하는데 7절에 깟씨(고수씨) 같고, 진주(11:7)같은 것인데 맷돌에 갈고, 절구에 찧고, 삶아서 과자처럼 먹을 수 있었어요(11:8).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함께 내리고(11:9), 날이 밝으면 사라집니다. 한마디로 만나는 하늘에서 오는, 필요한 만큼의, 매일의 양식이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양식이 없어서 못먹어서 불명하고, 정말 살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그런 음식이 아니라 입맛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식자, 하나님이 주신 만나의 은혜도 싱겁다고 느끼는 거예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굶주린 게 아니라 입맛이 굳어 불평이 늘어납니다. 사역도, 직장도, 가정도 은혜 그 자체가 사라진 게 아니라 ‘감사’가 멈춘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식단”이 더 맛있어 보이는 거예요. 분명 너무 힘든 노역을 지워서 부르짖는 기도의 소리가 들릴 만큼 노동과 채찍의 값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 과거의 미화된 기억으로 감사가 멈추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욕망을 그대로 허락하십니다. 20절에 보면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나왔던가 함을 들었으니 한 달 동안 보기도 싫고 냄새도 싫을 만큼 먹게 하십니다. 실제로 동풍/남풍 계열의 바람(시 78:26–27)이 불어 31절에 메추라기 떼가 진 사면에 하룻길(사방 광활한 범위)로 몰려오고, 높이는 두 규빗(약 1m)쯤 쌓였어요(11:31). 사람들이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는데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엄청난 양)을 모아 말리는데 한 호멜이 약 220이터인 것을 생각하면 굉장한 양이랍니다(11:32).
그런데 탐욕의 현장 한복판에서 재앙이 시작되요. 33절에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곳의 이름이 기브롯 핫다아와—“탐욕의 무덤”(11:34)으로 부릅니다. 불평은 결국 무덤을 남깁니다.
그래서 오늘 민수기 11장을 보면 이스라엘은 은혜가 없어서가 아니라 입맛이 변해서 무너졌습니다. 만나가 사라진 게 아니고, 감사가 사라진 거였어요. 하나님이 주시는 일용할 양식은 여전히 내려오고 있었는데, 마음이 애굽 쪽으로 돌아가니까 하늘의 음식이 싱겁게 느껴진 거죠.
그래서 오늘 기도할 때 주님, 없는 걸 달라고만 울지 않고 이미 주신 은혜의 감사를 고백하며, 비교 때문에, 과거 미화 때문에 불평으로 나아가지 않는 감사의 고백을 하는 저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나 혼자”라는 착시를 고치시는 방식 (10–17, 24–30)
“나 혼자”라는 착시를 고치시는 방식 (10–17, 24–30)
이제 모세가 하나님께 말하는 부분도 등장하는데, 여러분도 가끔 그럴 때가 있죠. 아니 교회에서도,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혼자하다보면 “나 없으면 안돌아가나?”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모세가 지금 그런 자리에 서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일을 너무 많이한다가 아니라 일을 혼자 한다라는 문제를 다룹니다.
그리고 저희가 혼자 일하게 되면 먼저 “사람 좀 더 뽑자”라는 생각을 보통 먼저 하죠.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사람만”을 더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업무만 나누면 다시 무너진다는 걸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은 ‘조직도’ 얘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확산’을 얘기입니다
모세가 참 힘들었구나 싶은 부분이 있는데, 11절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말을 보면 모세도 한계가 왔구나 싶고, 내가 애를 배어서 낳은 것도 아닌데 아이 품듯이 품고 나가게 하시냐 라는 부분에서 상한 마음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보시고 “내가 어떻게 이끌어 왔는데 너까지 불평하냐”라는 질책부터 하지 않으시고 처방부터 하세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여기 핵심은 하나님이 모세의 일을 분담시키시는데 업무(TO-DO)만 나뉜 것이 아니라 25절에 영(루아흐)을 함께 나누면서 확산시키십니다(11:25). 그래서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모세게에 말씀하실 때 70인의 장로들에게도 같이 임하게 됩니다.
25절보면 이 70인이 예언도 했고(권위의 표지, 11:25), 심지어 엘닷과 메닷은 장막에 나아가지 않았는데 진영 안에서 예언을 하기도 합니다.(11:26). 여호수아는 이것을 말려야 한다고 모세에게 말하지만 모세는 29절에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수아는 이걸 막아야 한다고 봤지만, 모세는 달랐습니다. 모세는 자기 권위를 지키는 대신 하나님이 주신 여호와의 영이 더 많은 사람에게 흘러가길 바랬습니다. 이 모습이 공동체를 성숙하게 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더 넓게 보면 요엘 2:28—“모든 육체에 내 영을 부어 주리니”—를 앞서 이룬거고, 사도행전 2장 오순절에서 크게 열립니다.
하나님은 일을 나누실 때 그냥 “이건 네가 해라” 하고 일만 떼어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일을 맡기시기 전에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영을 함께 주십니다. 그래서 모세도 자기 권위를 지키려고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영이 더 많은 사람에게 흘러가도록 공동체를 넓히는 데 마음을 두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건 “모세야, 네가 너무 바쁘구나. 사람 좀 더 붙여줄게”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먼저 부르시고, 그 위에 영을 부으시고, 그다음에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영을 70명에게까지 퍼지게 하신 건, 하나님의 일을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묶어두지 않으시고, 성령의 은사가 여기저기서 살아 움직이도록 공동체 자체를 바꾸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일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성령이 흐르는 공동체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십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마무리하면 민수기 11장은 위기의 기록이지만, 더 정확히는 재설계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불평은 늘 가장자리에서 시작하지만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시고, 다 태우지 않으시고 “여기서 멈춰라”라고 경고 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만나가 없어서가 아니라 감사가 식어서 문제가 됐고,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성령의 나눔이 없어서 모세가 지친 거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함께 기도할때, 불평하는 마음을 여기서 끊게 하시고, 이미 주신 은혜를 다시 기억하며 감사하게 하시고, 일꾼만 많은 교회가 아니라 성령이 흐르는 만안교회 되기 원한다고 함께 기도하면서/
오늘 하나님의 성령충만함 안에서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 기도 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말씀 앞에 세우셔서 광야를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스라엘이 성막도 있었고 질서도 있었지만, 진 끝에서 나온 작은 불평이 온 회중으로 번졌습니다. 주님, 우리의 작고 가벼운 말도 주님의 귀에 다 들리심을 기억하게 하시고, 불평이 시작되는 그 자리에서 멈출 줄 아는 마음을 주옵소서.
주님, 만나가 끊긴 게 아니라 감사가 식었을 때 그들이 애굽 음식을 그리워했듯이, 우리도 이미 주신 은혜보다 옛것을 미화하고 남의 것을 부러워할 때가 많은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오늘 우리 입맛을 다시 은혜 쪽으로 돌리며 감사를 고백하는 예배자 되게 하옵소서.
또한 모세가 탄식하며 고백했을 때 주님이 책망보다 먼저 영을 나누어 주셨던 것처럼, 저희 만안교회도 할 일만 많아지는 교회가 아니라 기름부음이 함께 흐르는 교회 되게 하시고, 한 사람의 어깨에만 올려놓는 교회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성령으로 함께 드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했던 모세의 마음을 우리 안에 심어 주옵소서.
특별히 병중에 있는 성도들을 기억해 주옵소서. 몸이 아파 예배 자리에 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주의 임재가 병상에 임하게 하시고, 고통 위에 위로를, 두려움 위에 평안과 새 힘을 부어 주옵소서. 주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우리 자녀들을 붙들어 주시고, 비교와 불안 대신 하나님이 주시는 담대함으로 공부하며 기억력과 집중력을 지켜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성령충만함으로 이끄실 주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이 모든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