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엔딩 감사스토리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Notes
Transcript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시험이 끝이 났습니다. 아직 수능을 코앞에 둔 지체들도 있지만, 시간은 흐르고 이또한 지나갑니다. 우리는 큰 산을 넘었을 때 상황을 은혜로 받아들이며 감사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은혜와 감사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은혜와 감사를 너무나 쉽게 잃어버리는 망각의 은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은혜라는 것이 날마다 주어집니다. 하지만 이 은혜에 대한 반응은 다양합니다. 오늘 본문처럼 은혜를 선물로 받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처음 받을때는 감사함으로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은 은혜에 대한 두가지 반응을 말해줍니다.
누가복음 말씀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나병환자 열 명은 예수님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간절히 외쳤습니다(13절). 그들은 당시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된, 산 송장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이 순종하여 가는 도중에 깨끗하게 되었습니다(14절).
이것은 엄청난 기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절실했던 것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기적이 현실이 되는 순간, 아홉 명은 무엇을 했습니까? 은혜를 망각하고 각자의 갈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주체를 망각했습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이 누구시죠?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당연한 결과'로 착각합니다: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고 응답받은 후, 그 성과를 '내 노력의 대가', '내 실력' 혹은 '내 기도의 보상'으로 여깁니다. 받은 복이 너무 커서 감사가 표현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 복을 주신 분보다 복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춥니다.
은혜의 근원을 떠납니다: 나병이 나은 후, 아홉 명은 '해야 할 일'인 제사장에게 가는 의무에 충실했지만, '가장 중요한 일'인 예수님께 감사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업, 직장, 스펙... 눈앞의 급한 일에 매몰되어 가장 먼저 해야 할 예배와 감사를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다시 기억해야 할 은혜는, 나병 치유처럼 인생의 문제가 해결된 '사건'을 넘어, 그 사건을 일으키신 분, 은혜의 주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열 명 중 오직 한 사람, 멸시받던 사마리아인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감사했습니다"(15-16절).
이 사마리아인의 행동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예수님을 자신을 치유하신 인간 이상의 존재, 곧 구원자로 인정했다는 증거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입니다: 그는 치유받은 몸으로 가장 먼저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의 엎드림과 감사는 가장 진실한 예배였으며, 예수님은 이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으로 해석하셨습니다(18절). 청년의 예배는 내가 필요한 것을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시간임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돌아온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19절). 아홉 명은 육체의 치유를 얻었지만, 이 한 사람은 영혼의 구원이라는 더 크고 영원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의 감사는 치유의 은혜를 알아보는 영적인 시력이었고, 이 시력이 그를 구원으로 이끌었습니다.
은혜에 눈을 뜨면 진짜 바라봐야할 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누구이십니까? 바로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앞에선 우리는 한 분만을 위한 예배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치유를 주님으로 인해 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잠시 잠깐 내 안에 괜찮지 않았던 건강의 문제라던지 상황의 문제가 치유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치유입니다. 치유는 괜찮지 않은 것이 괜찮아 진 사건이지. 엄연히 따져보면 구원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진짜 구원은요.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한 은혜의 크기를 알기에 감사하는 인생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선언은 우리에게 주시는 초대입니다. 이제 우리는 치유받은 아홉이 아니라, 구원받은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청년 여러분, "우리는 받은 은혜"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죄인이었을때에 죽음으로 향하던 내 삶, 죽음으로 향하는 그 길은 날마나 내 삶이 소진되고 쇠약해지며 지나가는 길마다 죽음의 어두움만이 진해지는 그런 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주님께 구원을 받았고 살아 숨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죽음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걸어가게 됩니다. 내가 걸어가는 여정가운데 날마다 소진되지 않는 새 힘을 주십니다. 내가 걸어가는 걸음걸음 속에서 죽었던 영혼들이 회복되고 살아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은혜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를 '생활의 태도'로 재설정하십시오: 감사는 일회적인 절기 행사가 아닙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흔적을 찾아 감사로 고백하십시오. 우리의 작은 호흡, 건강한 몸, 관계 속의 평안, 실패를 딛고 일어설 힘, 이 모든 것이 다시 기억해야 할 은혜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세상에 흘려보내십시오: 가장 큰 은혜인 구원을 감사하는 청년은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사마리아인은 은혜에 감격하여 다시 돌아왔지만, 이제는 **"일어나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감사는 나에게서 끝나지 않고, 은혜를 잊고 사는 이웃과 세상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하는 나눔과 섬김의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다시 기억해야 할 은혜"**는 우리가 받은 은혜의 양이 아니라, 은혜의 근원을 매 순간 인정하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감사의 자세입니다.
결론: 구원의 자리로 돌아오십시오
결론: 구원의 자리로 돌아오십시오
우리의 삶을 짓눌렀던 절망과 죄악의 나병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주님께 돌아와 엎드려 감사한 한 사람처럼, 오늘 우리의 삶의 방향을 은혜의 근원이신 예수님께로 다시 돌이킵시다.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고, 감사로 충만한 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