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함과 거짓됨은 공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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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11:12-12:14
호세아 11:12-12:14
찬송가 463장 신자 되기 원합니다.
오늘은 ‘신실함과 거짓됨은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겠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주 보는 것을 닮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것을 따르고 닮아갑니다.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의 말투가 어느새 내 입에서 나옵니다. 내가 믿고 따르는 그 사람의 말이 내 입술에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표정이나 습관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스며듭니다. 부부는 사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전혀 다른 사람들인데요, 함께한 세월이 길면 어떻게 되요? 얼굴과 분위기와 많은 것들이 정말로 닮아갑니다. 자녀가 부모를 닮는 이유도 단지 유전자 때문만은 아닙니다. 매일 함께 보고 듣고 배우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믿고 따르느냐가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변해가는지를 결정합니다. 세상을 믿으면 세상의 방식을 닮아갑니다. 돈을 믿으면 계산적이 되고요, 사람의 평가를 믿으면 늘 불안하게 이리저리 휘둘리고 흔들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누구를 닮아야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을 닮아가겠죠. 성경에서 하나님은요, 신실하신 분으로 표현합니다. 그분은 믿을만하고요, 변하지 않고요, 자신이 약속하신 것을 끝까지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로 이 하나님을 믿는다면요, 우리 안에 신실함이 아니라 거짓됨이 자리할 수 있을까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면서요, 우리의 삶에 거짓과 속임수가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거짓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입술에서는 신앙의 말이 있고, 찬양이 있는 것 같았지만, 삶에는 세상의 방식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끝까지 신실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거짓됨을 발견하고, 다시금 신실하신 하나님과 닮아가는 우리의 복된 하루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11장 12절 말씀에 보면요, 이렇게 말합니다. 호세아 11:12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나를 에워쌌고 유다는 하나님 곧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꼬집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요 속임수로 나를 에워쌌다. 유다 역시, 하나님에 대하여 정함이 없다라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거역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호세아 선지자의 지적은요, 그들에게 신앙의 형식이 없다는 지적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 제사도 드렸고, 절기도 지켰습니다. 입술로도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겉으로는 신실한 것 같았지만, 실상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삶이 거짓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들의 삶이 거짓인데,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과연 신실하신 분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 모습은 그들이 잘못되었든지, 그들이 하나님을 오해했든지 둘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이 거짓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분은 거짓이 없으신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믿을만 하고요, 약속을 지키시고요, 자신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입밖으로 꺼낸 말씀을 한번도 단 한순간도 어기신적이 없습니다.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분 안에는 거짓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그분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능한 분이지만요, 그분이 거짓말은 하실 수가 없어요, 애초에 거짓이라는게 그분께 속한 속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겉으로는 믿어요, 종교적인 형식도 갖춥니다. 그런데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거짓의 삶의 방식을 택했다는거에요. 신실함과 거짓은 사실은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요, 그들이 아무리 겉으로 포장을하고, 종교적 외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요, 그 거짓됨은 반드시 들통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새하얀 옷을 입으면요, 거기에 조그마한 고춧가루 하나만 묻어도 티가나는 법입니다. 하물며 거짓이 없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작은 거짓과, 죄악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요 거짓을 미워하십니다. 그분은 거짓된 삶에서 나오는 제사보다 진실한 마음과 삶을 원하십니다. 신실하신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내면을 살피십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과 삶을 들여다보십니다. 이 아침에, 다시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그분의 신실하심과 거룩하심을. 그분의 성품을 깊이 묵상하는 이 시간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만을 닮아가는 복된 우리의 삶이 되기를 기도하는 이 시간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에 보면요, 호세아 선지자는 그들의 거짓된 삶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했듯 믿음은 마음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는대로 살아가게 되고요, 그 믿음의 진실함은 반드시 람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단순히 믿음이 약했다라는 것이 아니라요, 그들의 삶 자체가 거짓으로 번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일상, 그들의 관계, 그들의 선택 속에 거짓이 자리하고 있었다는거에요.
호세아 12:7 “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도다” 거짓된 신앙은요 결국 삶 속의 거짓 행위로 드러납니다. 부정직한 삶의 태도로 드러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높이지만, 삶에서는 무엇을 들어요? 거짓 저울을 들고, 이익을 위해 진리를 속이고요, 정직보다는 이익을 우선시 합니다.
상인이 가장 속여먹기 좋은게 바로 저울을 가지고 속이는거죠. 속인다는 것은, 거짓으로 상대를 속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행위입니다. 믿음과 삶은 동떨어져 있는게 아닙니다. 그들이 이런 거짓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뭐에요? 신실하신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인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된 신앙의 실체입니다. 겉으로는 믿음도 있는 것 같고, 종교적 형식도 갖추었지만, 삶의 방식은 세상의 방법과 다르지 않는 것입니다.
8절에 이어서 호세아 12:8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자신을 향하여 부자래요, 재물을 얻었대요, 그리고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낼 자가 없대요. 이 말이 뭐에요. 겉으로는 풍요로운거죠. 경제적으로 성공했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심지어 자신의 손으로 수고한 것 중에 불의가 없대요. 방금까지 하나님이 뭘 말하세요? 너희들 거짓 저울을 들고 속이는 것을 좋아하는 자라 말했는데, 그들 스스로는 뭐라고 해요? 나는 떳떳하다. 정직하게 일해서 벌었다. 나에게 흠이 없다라고 이야기한다는거에요.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겁니까? 하나님의 말이 맞아요? 아니면 스스로 저렇게 말하는게 맞아요? 당연히 하나님이 맞겠죠.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상인이라면 무릇 거짓 저울 쓰지 않고, 장사를 안하는 사람이 어딨겠냐. 다 거짓 저울 쓰는데, 나만 안써? 거짓 저울 쓰는게 뭐가 문제야? 라고 생각했을지 몰라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쓰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모두가 다 그 방식대로 사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중요한게 뭐에요? 하나님께서 그분의 속성과 기뻐하시는 뜻이 거짓저울을 쓰는거냐가 중요한거잖아요.
그들 스스로는 그래요. 나는 떳떳해. 안걸리는게 합법이지, 거짓 저울 쓰는게 합법이야? 남들 다 그렇게 살아가는데, 나만 바보처럼 어찌 정직하게 살아. 이게 바로 거짓된 신앙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속여놓고도, 양심에 일말 거리낌이 없는, 신실하신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 없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바로 거짓된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 호세아 선지자는 그들의 삶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은 곧 믿음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은 내가 믿는 것이 지금 누구인가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 말씀 앞에 우리의 삶을 두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이 무엇인가, 우리의 삶의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거짓이 아니라, 신실함, 정직함의 태도를 가지고, 우리의 삶을 살아가,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과 세상 앞에 증명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변함없는 은혜로 우리를 깨워 주시고,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셨습니다.
우리를 속이지 않으시고, 약속하신 말씀을 끝까지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입술로만 고백하고, 삶으로는 거짓을 따를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지 못했던 우리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마음과 삶을 주의 말씀의 빛으로 비추어 주시옵소서.
겉모습은 믿음의 사람처럼 보여도,
우리의 일상 속에는 거짓과 타협, 불성실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우리의 말과 행동, 선택 속에서도 신실함이 드러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에도
이익보다 진리를 택하게 하시고,
거짓보다 정직을, 세상의 방식보다 주님의 뜻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세상이 다 그렇게 살아간다고 해도,
우리는 주님을 닮아가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의 믿음이 말뿐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되게 하시고,
하루의 작은 순간 속에서도 주님을 닮아가는 복된 발걸음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과 진실로 살아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