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높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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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베드로가 오직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말씀을 들은 고넬료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이 부어졌습니다.
성령이 부어졌다는 것을 베드로와 그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습니까? 처음에 사도들에게 성령이 부어질 때에는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모여있던 곳에서 나고 머리에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하나씩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복음을 선포할 때에는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같이 온 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랐다고 합니다. 그 말은 분명히 그들에게 성령이 부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무슨 현상이 나타났다는 뜻이지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이 부어졌을 때에 나타나는 현상을 살펴보고 우리들도 그와 같이 성령이 우리 위에 부어지기를 소망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먼저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부어진 것으로 말미암아 놀랐습니다. 성령이 부어져서 나타난 현상을 살펴보기 전에 이방인에게 성령이 부어진 것을 보고 왜 그들이 놀랐는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부어졌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임재했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셨는데, 이제 그가 이방인들에게도 임재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그와 함께 온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환상과 성령의 이끌림에 따라서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선포하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그들의,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들 가운데 임재한다는 것을 보았을 때에 또 다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는 임마누엘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것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장막을 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 진영 가운데 머무시고, 그들이 진을 멈추고 있을 때에 정 가운데 성막을 침으로써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가 아니라, 바로 유대인들에게만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셨던 것이지요.
그런 성령을 이방인들에게 부어주신 것이지요. 그리고,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령을 받는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령, 그분의 임재, 그분과 동행, 구원의 은혜는 율법의 행위나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이방인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성령을 받으라는 권면이나 기도를 행하지 않았음에도 단지 그들이 화평의 복음을 듣고 믿었을 때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요한복음 7:38–39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갈라디아서 3:14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함께 해보겠습니다.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는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요엘서에서
요엘 2:28–29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하나님의 영, 성령이 부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부어지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 성령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할 때에 우리는 안전합니다. 평강할 수 있습니다. 사단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신 후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방민족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임재해 있을 때에 그들은 참된 평강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령을 어떻게 받는다고 합니까? 믿음으로 받는다고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 복음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성령을 받았을 때 어떤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성령을 받은 후 그들이 보여준 모습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의 증거로서 방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방언을 받은 것은 성령을 받은 것의 증거가 될 수 있지만, 성령을 받은 것이 방언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주 기초 논리학입니다. A이면 B이다가 참이더라도, B이면 A이다는 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비 가 오면 땅이 젖는다는 참인 명제이지요. 그런데, 땅이 젖으면 비가 온 것이다는 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왜냐하면 누가 물을 뿌려놓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방언을 받았다면 성령을 받은 증거는 됩니다만,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꼭 방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방언을 받은 것은 귀한 일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이므로,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거나 폄하할 이유는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방언을 해야만 성령을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교만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는 것의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하나님을 높임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높였을까요? 그들의 입술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고넬료는 하나님을 섬기고 그 분을 높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하나님을 높인다는 고백은 그들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자신의 죄가 율법을 지킴으로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사해진다는 베드로의 복음선포가 그들의 마음을 울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인 자기들도 어떤 특별한 지식과 예식을 통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여진 것을 들었을 때에 그들에게는 기쁨과 감사, 할렐루야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높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찬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괜히 우리를 힘들게 예배드리고 찬양하게 만드셨다는 의미입니까? 우리가 해야할 일도 많은데, 거기에 예배까지 드리는 일을 추가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번거롭게 만드신 것입니까?
하나님을 높인다는 것은 단지 그 행위가 찬양과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죄용서를 받은 인간은 죄로 인하여 왜곡된 인간, 죄인된 인간에서 회복되어 본래의 인간으로 회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부어진 증거로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이제는 우리 삶에 부어진 부가적인 어떤 임무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예배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그들의 삶의 태도가 되고 목적이 된 것입니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여호와를 높이라 그의 이름을 함께 높이세” (시편 34:3)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이 성경구절이 명령문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회복된 온전한 인간이 당연히 할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렇게 하나님을 높이고 계신가요? 여러분들의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계신가요? 여러분들의 모습을 통해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들에게도 성령이 부어졌다. 왜냐하면 저들이 하나님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을 높이는 일에는 매우 유능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일에는 전문가가 따로 없습니다. 저도 저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인정받고 싶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그런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에 열등감과 분노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쉽게 다른 사람을 비아냥 거리고, 뒤에서 조용히 수군거리고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고, 다른 사람을 좋게 평가하지 못하고, 사랑과 긍휼의 마음보다는 깔보고 조롱하는 마음으로 함부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우리들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높이기를 소망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
그렇게 하나님을 높이는 성령을 받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기쁨 가운데 예배 중심의 삶을 살고 주를 높이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처음에 말씀드린대로 바로 믿음으로 받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주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아버지 되십니다.”
이것이 너무 길면 이렇게 짧게 해보십시오.
“예수 나의 주, 예수 나의 목자”이렇게라도 하루 중 생각날 때마다 기도하십시오.
바로 그러한 믿음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그 성령의 감화로 인하여 우리들은 나를 높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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