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수요/2025.11.5) 세상에서 너희가 고난 받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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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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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할렐루야!
수요예배 나오신 성도님들 /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들과 인사 나누겠습니다.
2. 우리 다같이 / 성령의 충만함을 / 소망하면서/
1) 찬송가 259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2)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3)“살아계신 주” 찬양하겠습니다.
3. 이 시간 예배를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주시옵소서.
다같이 주여 한 번 부르시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주님!
4. 대표 기도 ( 강순희 권사님)
5. 광고
6. 말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은/
베드로전서 3장 13-17절입니다.
신약성경 381면에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13–17 NKRV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서론
오늘은 영적 전쟁 시리즈 2번째 시간으로/
“너희가 세상에서 고난 받으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같이 살펴볼 말씀은 “베드로전서”입니다.
1.서론
베드로전서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쓴 편지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잘 아는 것 처럼,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수제자”였습니다.
베드로가 태어난 고향은 “벳새다” 였고,
베드로가 결혼하고 살았던 곳은
“가버나움”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장모님과 함께 살았다고
경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맨 처음에,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지?
요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는데요.
베드로가 그의 형제(동생) ‘안드레’를 따라 가서,
예수님을 만났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2절을 보시면요,
요한복음 1:42 NKRV
42 (안드레가 베드로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그러니까 안드레가 베드로를 전도를 한 것 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 새로운 이름도 지어주셨는데요.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베드로)라 불릴 것이다”
베드로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황당했을 것 같습니다.
안드레 따라 갔다가, ‘예수’라는 사람에게서/
“베드로”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받았으니까 말이죠....
그리고/ 베드로와 예수님의 이런 만남 이후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까지/ 여러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1)가나의 혼인 잔치 이적 - 요한복음 2장
2)물고기 이적 - 누가복음 5장
과 같은 ‘이적’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5:11 NKRV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이 베푸시는 “이적”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3년 동안/
정말 많은 말씀을 듣고/ 이적을 경험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7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한테 이런 말을 합니다.
마태복음 19:27 NKRV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여기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는지?
“자기 본심”을 드러냅니다.
내가 지금/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는 것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 / 계속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어부라고 알고 있는데요.
물고기 한 두 마리 잡는 그런 어부가 아니고요.
어는 정도 규모가 있는 “수산업을 하는 사업가”였습니다.
그래서 로마 정부에 “세금”도 내야 했고,
고용된 일꾼들에게 “임금”도 지불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영도교회)에도 / 사업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사업 하시는 분들의 꿈은?
사업체를 성장시키는 것일 겁니다.
안정적으로 사업체를 운영하고, 사업체를 성장시키는 것이?
사장님들의 꿈일 것 입니다.
그런데요. 복음서를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수산업을 하는 사업가로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큰 포부와 꿈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지도자”로서의 삶을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3년 동안?
그 마음속에 계속해서 이런 생각으로 따라 다닌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
베드로 자신이 /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자리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의/
이스라엘을 다시리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했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내 사업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는데...
이제 당신이(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
나에게 무엇을 줄 것입니까? 라고 예수님한테 물어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 유대인들의 지도자들 (공회)에게 잡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유대인들 앞에서/
무기력한 예수님/ 아무런 이적도 보여주지 않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마태복음 26장 74절을 보면 /
마태복음 26:74 NKRV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
라고 부인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 자신이 꿈꿔왔던 /
자신의 희망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사라졌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른다” 라고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후로/ 예수님의 십자곁에 있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5-26절을 보면,
요한복음 19:25–26 NKRV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그 현장에 /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
사랑하시는 제자 (사도 요한)은 있었지만/
베드로는 없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십자가에서 죽는 예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요/ 누가복음 24장과 고린도전서 15장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4:34 NKRV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고린도전서 15:3–5 NKRV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아마도 베드로는 굉장히 혼란스러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가 있지?
내가 본 예수님이 진짜 예수님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을 보았다는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 예수님의 부활이 확신으로 다가온 사건이/
바로 요한복음에 기록되어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시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
요한복음 21:17 NKRV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
이후에, 베드로는 / 오순절 성령의 날, 성령을 받고,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시고” /
“우리의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전하고 다닌 것 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자기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던 사람(시몬)이/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인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절을 보면,
베드로전서 1:1 NKRV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란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으로서,
예수님께 직접 부르심을 받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이 사명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지역이나 내용은 /
비교적 자세히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의 전도 사역은/
예루살렘과 사라리아 지역, 욥바 , 가이사랴 지역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바울의 서신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베드로가 어디에서 복음을 전하였는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도를 보시면,
베드로가 복음 전한 지역을 대략 알 수 있습니다.
[지도]를 보시면요.
베드로는 초창기에는 주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유다 지역에 복음을 전하였고요/
이후에 시리아 안디옥, 그리스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였고요.
튀르키예 북쪽복음을 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절을 보면, 현재 튀르키예 지역의 지명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1 NKRV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베드로가 베드로전서를 쓸 때에/
베드로는 로마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전서 5:13 NKRV
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들에게 인사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벨론”이 “로마”를 상징하는 말이라고 말합니다.
종합하면,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예수님이 진짜 누구신지 알았고/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시라는것을 전하다가/
로마 네로황제 시대에 순교하였습니다.
(약 AD 64 - 67년 사이에 순교)
사도 바울도 이 시기에 순교하였습니다.
[사진1- 마메르티노 감옥]
[사진2- 이탈리아 설명]
“이 기둥은 거룩한 사도 베드로와 바울이 결박되어 있던 곳입니다. 그들은 감옥을 지키던 순교자 프로세수스와 마르티니아누스, 그리고 다른 47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하였고, 기적적으로 솟아난 이 샘의 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
2. 본론.
이렇게/ 베드로전서는 /
베드로가 이 감옥에 갇히기 전에/
튀르키에 전역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 ‘베드로’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1)그리스도의 정체성
2)그리스도인의 정결한 삶인데요.
핵심 주제: 그리스도인이 깨끗하게/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
반드시 “고난”이 필요하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우리 성도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첫째로, 우리들이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5 NKRV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이 =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은/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들만 제사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자신을 깨끗하게 구별하여서/ 희생 제사를 통하여/
자신다른 사람들의 죄를 깨끗하게 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구약의 제사장의 개념을/
그대로 “성도들”에게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모든 성도들 =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
그래서 “제사장들이 할 일”은
1)나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고/
2)주변 사람들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2장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영적 전쟁)
베드로전서 2:11 NKRV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여기서는, 거룩한 제사장을 /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낯선 사람들 ‘거류민(이방인)’ 과
거룩한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 ‘순례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제사장”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11 ESV
11 Beloved, I urge you as sojourners and exiles to abstain from the passions of the flesh, which wage war against your soul.
어떤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까?
자기 자신의 육신의 정욕과 싸우는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것을 / 다른 말로/ 영적 전쟁이라고 하는 것 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이 전쟁을 치뤄야만 하는 것 입니다.
1)첫 번째 적? 자신의 정욕입니다.
사람의 정욕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4장 2-3절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2–3 NKRV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사람의 정욕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인데요.
타락한 인간은 항상 “하나님이 정해주신 경계(한계)”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죄들 (음란, 술취함, 방탕함)이 나타나는 것 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 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들은/
“자신을 주인으로 여기고” 자신의 뜻을 따라 삽니다.
자기를 주인으로 여기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다른 신들이 자신을 섬겨주어야 합니다.
사람의 정욕의 핵심은?
“자아를 버리지 못하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 입니다.
지금 베드로가 이야기하는 것은?
성도들은 “자아를 내려놓는 전쟁”을 치루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 자신의 자아을 내려 놓은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자기 욕심과 싸우는 것
자기 자존심과 싸우는 것,
자기 높아짐과 싸우는 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움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이 과정이 힘들기 때문에.
이런 영적 전쟁을 고난이라고 하는 것 입니다.
2)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두번 째 적? 사람들의 박해입니다.
3장 14절을 보시면,
베드로전서 3:14 NKRV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여기서 “의”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복음)을 말하는 것 입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했던 말씀을 그대로 기억하고/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 산상 수훈에서 말씀했던 말입니다.
마태복음 5:10 NKRV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베드로는 육신으로 온 예수님을 직접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던 사람이고요.
부활하신 예수님도 만난 사람입니다.
자신이 / 예수님과 함께 하였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호하고 환영하였던 적도 있지만/
결국은 십자가 앞에서 모두 /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주 주일 말씀이 “오병이어의 기적”이었지 않습니까?
이때 예수님께로 왔던 사람들이 몇 명이라고 하였습니까?
네/ 여자와 어린아이를 뺀 숫자가 5,000명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4:21 NKRV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그런데 이 이야기는 슬프게 끝이 납니다.
요한복음 6장 66절을 보면,
요한복음 6:66 NKRV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한복음 6:66 ESV
66 After this many of his disciples turned back and no longer walked with him.
영어 표현으로 보면, 이 사람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등을 돌렸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았다고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때에는 어떠하였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전하다가 목숨을 잃을 뻔 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12장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사도행전 12:1–3 NKRV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헤롯 아그립바 1세가 /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도 죽이려고 하였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주의 사자를 보내어/
베드로를 감옥 밖으로 / 이끌어 내어서 / 생명을 건졌다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을 볼때에/ 베드로가 느끼기에?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적대적인 감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들이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는 예수는 원해도/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복음은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들이/
우리가 맞서야 하는 것?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박해”라는 것 입니다.
이 박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
우리의 고난이 심해지는 것 입니다.
——————————————————
그러면/ 우리는 ? 세상 사람들의 박해를 받을때에?
똑같이 칼로 맞서야 합니까?
그들이 칼로 우리를 찌를때에?
우리도 그들을 칼로 찔러야 합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3장 15절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3:15 NKRV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3장 15절은 우리가 영적 전쟁을 어떻게 치루어야 하는지?
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온유함으로 전쟁을 치루어라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온유함”은 예수님의 온유함을 말하는 것 입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마태복음 11:29 NKRV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의 온유함은/
힘이 있지만/ 그 힘을 사용하지 않는 온유함입니다.
온유함은 단순히 성격이 부드럽다??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함은 내가 상대방을 제압할 논리와 힘이 있지만/
그것을 절제하는 성품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때 가룟 유다와 함께 / 대제사장들이 보낸 사람들이 /
칼을 들고 예수님을 잡으로 왔습니다.
여기에 같이 있었던 “베드로” 가 이것을 보고.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칼을 가지고/ 칼을 휘둘렀습니다.
요한복음 18장을 같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8:10–11 NKRV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베드로는 가지고 있던 칼을 가지고 칼을 휘둘렀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6:53–54 NKRV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내가 여기서 힘을 사용하면/ 어떻게 성경의 말씀을 이루겠느냐?
이것이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충분히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으며,
강압적으로 / 우리 주변 사람들을 제압할 수 있다고 하여도/
그 힘을 사용하지 않고/
사랑으로 이들을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두번재 태도는?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영적 전쟁을 치루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15 NKRV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이 두려움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마음으로/
예수님을 진정으로 나의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에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삶 속에서/예수님의 주님 되심을 드러내는 것이
거룩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적용]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말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주인”되어서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예시] 왜 베드로가 지금 이런 말을 할까요?
자신이 이것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 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1-22절 보시면요.
마태복음 16:21–22 NKRV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이 /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뭐라고 합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로 세웠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16:22 ESV
22 And Peter took him aside and began to rebuke him, saying, “Far be it from you, Lord! This shall never happen to you.”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 마음에 화가 나가지고/ 난리는 친 것 같습니다.
주여!!! 이 일이 절대 당신에게 일어나면 안됩니다.
베드로는 / 입으로는/ 주여!!! 주여!!!라고 하면서/
실제로 마음으로/ 행동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 입니다.
이런 뺘아픈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를 경외함”으로 영적 전쟁을 치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안에 임재하여 계신 “성령을 따라”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신것을 드러내면서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주님되심을 /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선한 양심”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3:16 NKRV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양심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2장 14-15절에서/
인간은 자기 안에 있는 양심을 따라 “선과 악을 어느정도” 분별할수 있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2:14–15 NKRV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하지만/ 인간의 죄로 인하여/
인간의 양심도 함께 부패하게 되었는데요.
인간의 양심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때에/
그 양심을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디모데전서 4:2 NKRV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에게는/
인간의 타락한 양심에서 벗어나서/
깨끗한 양심으로 회복된다고 히브리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14 NKRV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예수님의 피가 우리 성도들의 양심도 깨끗하게 회복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성도들의 영적 전쟁’의 필수적인 요소로서/
선항 양심을 이야기 하는데요.
우리가 이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살때에/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는 것이/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갈때에?
우리를 박해사는 사람들의 죄가 드러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16절입니다.
베드로전서 3:16 NKRV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한 양심을 따라 사는 삶이란?
사람들이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지 간에/
하나님 앞에서 (주님 앞에서)
내가 진실하게 / 신실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2장을 보면/
종들(일꾼들)을 위해서 권면하고 있는데요.
벧전 2장 18-19을 보시면,
베드로전서 2:18–19 NKRV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베드로가 말한 “까다로운 주인”(σκολιοῖς, skoliois) 은
‘비뚤어진’, ‘불합리한’, ‘불공평한’이라는 뜻이에요.
→ 오늘날 말로 하면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상사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사람들앞에서도/ 깨끗한 양심으로/
이들이 인정을 해주던지 해주지 않던지/
진실하게/ 신실하게 일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되지 않을때에 우리는 낙심이 되고 /
힘이 빠지고/ 실망이 됩니다.
하지만/ 베드로를 통하여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알아주던지/ 알아주지 않던지/
성령과 함께 /깨끗한 양심으로/
진실하게 / 신실하게/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성도들이 치루어야 하는 영적 전쟁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이 죄악된 세상에서 우리를 불러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베드로전서 3:17 NKRV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거룩한 영적 전쟁을 통하여/ 거룩한 제사장으로 사는 것이 =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지금 세상 속에서 고난을 견디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을 사랑으로 절제하고,
또한 선한 양심을 따라 /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죽음 이후의 부활을 알 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지금 이런 영적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것 처럼,
우리도 부활하여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다”는
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패한 양심을 가지고/ 주님 앞에 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교만을 가지고, 우리의 자존심을 가지고 /
주님 앞에 갈 수 없습니다 .
이 땅에서/ 우리는 영적 전쟁을 치루면서/ 고난 받으면서
우리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이 땅 가운데에 당하는 고난은 헛되지 않습니다.
그 고난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제사장으로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여기 계신 저와 여러분이/
더 정결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 자신이 더 깨끗해지길 원합니다.
그리고 /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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