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부: 언더커버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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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본문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도입: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오신다면?
도입: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오신다면?
여러분, 혹시 이런 상상 해본 적 있나요?
어느 날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오시는 거예요.
진짜 평범한 옷을 입고, 평범한 모습으로 새가족 등록을 하고, 맨 뒷자리에 앉아 계신 거예요.
근데 아무도 몰라요.
새가족 팀이 “끝나고 새가족 교육 있으니까 5층으로 오세요.” 하면서 교육도 시키고, 봉사도 부탁하고, “오늘 예배 어땠어요?” 하고 묻는 거죠.
상상만 해도 약간 아찔하지 않나요?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정말 그렇게 하셨어요.
그게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 빌립보서 2장 6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원래 사람이 아니셨어요.
처음부터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신 분,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어요.
본론 1: 내려오심 – 사랑 때문에
본론 1: 내려오심 – 사랑 때문에
여러분 혹시 “언더커버 보스”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 있나요?
CEO가 직원으로 위장해서 자기 회사의 밑바닥 현장에 들어가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에요.
평소엔 지시만 내리던 CEO가 직접 배달을 하고, 공장에서 땀 흘리며 일도 하죠.
그러면서 깨닫는 거예요.
“아… 내가 만든 이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나중엔 직원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거나, 상여금을 주거나, 집을 사주는 경우도 있어요.
그는 CEO지만, 직원이 되어서야 진짜 회사의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어요.
하늘의 왕이셨던 분이, 세상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오셨어요.
그런데 이유는 달랐습니다.
CEO들은 회사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내려오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내려오셨어요.
죄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진 우리를 그냥 두실 수 없어서,
우리의 문제를 직접 짊어지기 위해 오신 거예요.
본문 7–8절 말씀을 봅시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얼마 전 인스타에서 이런 글을 봤어요.
“세상의 모든 빚을 없애는 방법”이라는 게시물이었어요.
거기에서 뭐라고 했냐면,
“모든 빚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고,
그 사람을 죽여버리면 모든 빚이 사라지는 거 아냐?”
오~ 신박한데?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밑에 누가 이렇게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그거 예수님 아니냐?”
그 댓글을 보고 제가 멈췄어요.
그 말이 너무 정확한 거예요.
우리 모두는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는 존재예요.
그 빚은 죄의 빚이고, 죽음의 빚이에요.
아무도 스스로 갚을 수 없는 빚이에요..
그래서 인생이 늘 불안한 거예요.
미래가 두렵고, 마음이 불편하고, 참된 쉼이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빚을 대신 감당하셨어요.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완전히 자유롭게 하신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다 갚아졌기 때문이에요.
그 사실을 믿는 순간, 우리는 자유를 얻고, 소망을 얻고,
당당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거예요.
본론 2: 공감하심 – 완벽한 이해자
본론 2: 공감하심 – 완벽한 이해자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은,
단지 빚을 갚아주신 것으로만 끝나지 않아요.
그건 우리에게 또 하나의 위로를 전해줍니다.
바로,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공감하신다는 거예요.
히브리서 4장 15절은 이렇게 말씀해요.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화려한 궁전이 아니라, 마구간,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셨어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아기로 오신 거예요.
영원하신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태어나 본 적이 있을까요?
없죠.
성장한다는 것도 처음이셨을 거예요.
우리와 똑같이, 모든 것이 처음이고, 모든 것이 낯설으셨을 거예요.
완전하신 분이, 처음으로 배고픔을 느끼고, 외로움을 느끼고, 아픔을 느끼셨어요.
배신당하셨고, 죽음의 두려움까지 느끼셨어요.
우리와 똑같이 유혹도 받으셨죠.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피곤함, 억울함, 불안함, 죄의 연약함을 진짜로 아시는 분이에요.
여러분, 저는 쌉T입니다.
그래서 F이신 분들이, 제가 쌉T라서 공감을 잘 못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F이신 분들이
쌉T인 분들에 생각에는 공감을 잘 못하시더라고요.
오히려 쌉T들끼리 공감을 더 잘 합니다.
아니, 이미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공감하는 말을 할 필요도 없는 수준으로 서로 공감하고 있어요.
그쵸 쌉T 여러분? (저만의 착각이었나봅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누군가에게 “힘들었겠다”라고 말하며 공감하려고 하지만,
제 생각엔, 그건 진짜 공감이 아니에요.
진짜 공감은, 똑같은 일을 겪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죠.
하나님은 그 길을 걸으셨어요.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 직접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아보신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와 똑같은 경험을 해보시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아시니,
우리를 100센트 이해하시고, 공감하실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든, 어떤 상태로 하나님께 나아가든
그분은 이미 다 아십니다.
눈빛만 봐도 아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나는 너무 부족해서 하나님께 사랑받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한 적 있나요?
“하나님께 나아가기 부끄럽다”, “어차피 난 안 돼”라고 느껴본 적 있나요?
그건 거짓이에요.
예수님은 바로 그런 우리를 위해 오셨고,
그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
하나님께 그대로 가지고 나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거기서부터 진짜 회복이 시작됩니다. 할렐루야!
본론 3: 낮아짐, 그러나 진짜 승리
본론 3: 낮아짐, 그러나 진짜 승리
예수님이 우리의 빚을 갚으시고,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이 죽기까지 낮아지셨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예수님의 이야기는 십자가리는 밑바닥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9-1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어요.
바로 “그러므로”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비우시고(7절), 죽기까지 순종하셨기 때문에(8)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높이셨다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역설입니다.
낮아짐이 곧 승리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끝났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 역사를 새로 시작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은 참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며,
그분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단지 “예수님은 대단하셨다”로 끝나지 않아요.
본문 5절을 보세요.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말이에요.
세상은 끊임없이 올라가라고 말합니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많이.
하지만 예수님은 내려가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문제의 시작은 ‘높아지려는 욕망’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에요.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 했던 그 순간,
모든 관계가 깨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순히 겸손해서 낮아진 것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거꾸로 되돌리는 일이었어요.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 했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거예요.
그분은 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결론: 사랑의 질서 속으로
결론: 사랑의 질서 속으로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그건 단순히 착하게 살자는 말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보여주신 새로운 질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힘의 질서로 움직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사랑의 질서로 움직입니다.
세상은 위로 향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아래로 향합니다.
세상은 얻으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내어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질서 속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비교와 불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의 사랑으로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고, 손해를 감수하고, 섬길 때,
그건 세상 기준으로는 패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는 승리입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이에요.
그건 손해가 아니라, 쓰임받는 특권입니다.
우리가 낮아질 때 하나님이 높이시고,
우리가 비워질 때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마무리
마무리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낮아짐을 기억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낮아짐 속에서 진짜 생명과 진짜 승리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낮아지셨고, 그래서 세상이 구원받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낮아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구원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문
기도문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없는 하늘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 사랑을 깨닫게 해주시고 믿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어떠한 모습이든지 그 사랑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이제는 세상과 똑같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참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