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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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동기부여
학개 1:1-12
1. 다리우스 왕 이년 여섯째 달설교, 그 달 초하루에, 학개 예언자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서,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 유다 총독과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제사장에게 전하였다.
2.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말하기를 '때가 되지 않았다. 주님의 성전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3. 학개 예언자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다.
4. "성전이 이렇게 무너져 있는데, 지금이 너희만 잘 꾸민 집에 살고 있을 때란 말이냐?
5.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는 살아온 지난날을 곰곰이 돌이켜 보아라.
6. 너희는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했으며,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품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돈을 넣음이 되었다.
7.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는 각자의 소행을 살펴 보아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어다가 성전을 지어라. 그러면 내가 그 성전을 기껍게 여기고, 거기에서 내 영광을 드러내겠다. 나 주가 말한다.
10. 그러므로 너희 때문에 하늘은 이슬을 그치고, 땅은 소출을 그쳤다.
11. 내가 땅 위에 가뭄을 들게 하였다. 산 위에도,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 위에도, 밭에서 나는 모든 것 위에도, 사람과 짐승 위에도, 너희가 애써서 기르는 온갖 것 위에도 가뭄이 들게 하였다."
12.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제사장과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이, 주 그들의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주 하나님이 보내신 학개 예언자가 한 말을 따랐다. 백성은 주님을 두려워하였다.
서론 – 모티베이터 이야기
저는 2008년 군 복무 시절, 자기 계발을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제 인생에 가장 강한 울림을 준 책이 있었는데, 바로 KTF 부사장 출신 조서환의 《모티베이터》였습니다. 모티베이터는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저자는 군 복무 중 수류탄 사고로 오른손을 잃는 장애를 겪었습니다. 그는 면접에서 차별받고, 직장 내 평가에서도 연속 D를 받는 등 숱한 낙인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장애를 조건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결단합니다.
“내가 잃은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으로 승부하겠다.”
그는 스스로를 마케팅했고, 끝내 애경 마케팅 상무 → KTF 부사장 → 세라잼 H&B CEO를 역임했습니다. 조서환 씨는 대한민국 마케팅계의 전설이라 불리며 현재 70세임에도 불구하고 주식회사 에미맨에이 최고마케팅책임자를 밭고 있습니다. 2년 전에는 세바시 프로그램에 나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인생은 멘탈게임입니다. 피지컬 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힘입니다. 스펙도 환경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이기면 다 이깁니다. 마케팅은 브랜드의 전략이자 삶의 태도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점검하게 하고 동력을 얻어 열정으로 살아갈 수 동기부여를 하는 탁월한 마케터 혹은 모티베이터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동기 부여를 하는 모티베이터가 있는 것처럼, 신앙인들에게 빠지지 않는 탁월한 모티베이터가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마케팅은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선지자를 통해 우리를 부르시고, 그 부르심 가운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브랜딩하십니다. 그리고 그 브랜드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최고의 모티베이터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내 영혼이 동기부여가 되어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이땅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론
1) 때가 되지 않았다.
오늘 본문은 학개입니다. 학개는 예루살렘이 포로 시기에 활동하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학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한 메시지의 첫 마디가 바로 ‘때가 되지 않았다’ 였습니다.
2.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말하기를 '때가 되지 않았다. 주님의 성전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나라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두 개의 나라로 분열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이후 북이스라엘이 멸망 후 얼마 되지 않아 586년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많은 남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렇기 시간이 흘러 539년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되는데 그 때 왕이 바로 ‘고레스’ 였습니다. 이 고레스 왕은 피정복민들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는 정책을 펼쳤는데 당시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 하도록 허락하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이 칙령은 남유다 사람들에게는 마치, 우리나라가 광복을 이루는 것과 같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남유다 민족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바로, 성전을 짓고, 성벽을 짓고 무너졌던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적이 생긴 남유다 백성들에게는 생기가 돋았고, 무엇이든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바벨론이 멸망한 뒤 2년 뒤 성전 재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재건한다는 소식을 들은 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마이라 사람들은 사실 남유다 백성과 같은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이었으나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난 뒤 앗시리아의 혼합 정책에 의해 피가 섞인 혼혈민족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이렇게 되었지만, 남유다 사람들이 다시 성전을 회복한다는 말에 시기와 질투가 생겼습니다.
4. 이 말을 들은 그 땅 백성은 성전 짓는 일을 방해하여, 유다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5. 그들은 고문관들을 매수하면서까지 성전을 짓지 못하게 하였다. 이러한 방해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다스리던 모든 기간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가 통치하던 때까지 이어졌다. 에스라 4:4-5
그들은 지속적으로 방해했고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고문관까지 매수했고 집착하듯이 방해를 일삼았습니다. 처음 그들의 방해를 이겨내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방해는 일회성이 아니었습니다. 지속적으로 자신들을 괴롭혔습니다. 그 때부터 남유다 사람들에게 생겼던 동기부여는 사라지고 마음이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는 생각이상이었고, 그들이 성전을 재건한다는 것은 허왕된 꿈 중에 하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방해한 시기는 1대 왕 고레스부터, 4대 왕 다리우스 시기 무려 16년 기간이나 방해했던 것입니다.
결국 성전을 재건하고자 했던 꿈을 포기하고 다시 일상을 돌아가서 먹고 살기 위해 살기 시자했습니다. 누군가 성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습관적으로 나온 말이
“성전 지어야지.. 그런데 때가 되지 않았어.. 아직 성전 지을 때가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빴습니다. 그들에게 꿈이 사라지니, 목적이 사라지니 삶에 에너지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는 이유를 잘 모르겠고,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때로는 아니 이렇게 사는게 정말로 맞나? 라고 고민하면서도 현실에 먹고 살기에 바빠 마음 한켠에 덮어놓고 일상을 살았습니다. 그 때 우리의 모티베이터 되시는 하나님께서 학개라는 선지자를 통하여서 남유다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4. "성전이 이렇게 무너져 있는데, 지금이 너희만 잘 꾸민 집에 살고 있을 때란 말이냐?
5.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는 살아온 지난날을 곰곰이 돌이켜 보아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말로 성전이 무너진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제 그 열정있던 너의 모습은 어디있느냐? 성전이 이렇게 황폐화 된 것을 보고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네들이 살아온 지난난을 곰곰이 돌아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이 어떤 말일까요? 과거에 주셨던 지난 날의 은혜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라는 의미가 아닌 성전이 무너진 상태로 너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 보라는 것, 내 마음속에 무너져 있는 하나님 자리를 그대로 방치고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그러한 삶이 무엇일까요? 6절에 나타납니다.
6. 너희는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했으며,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품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돈을 넣음이 되었다.
씨앗을 뿌려도 얻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마셔도 만족함이 없고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고 품삯을 받아도 쌓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삶을 이루어 나가지만 그 결과는 오직 한 가지 ‘부족’함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는 내 육체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 한켠에 ‘공허함’이 쌓이게 됩니다.
돈을 모아보아도, 명예를 얻어보아도, 보람을 얻어보아도 결국 마음 남는 것은 공허밖에 없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이 공허의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십니다.
9. 너희가 많이 거두기를 바랐으나 얼마 거두지 못했고, 너희가 집으로 거두어 들였으나 내가 그것을 흩어 버렸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나의 집은 이렇게 무너져 있는데, 너희는 저마다 제집 일에만 바쁘기 때문이다.
2절에 처음에 말씀하셨던 반문이 그들에게 삶의 공허함의 본질적인 ‘이유’임을 알려줍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 또는 나만의 이기심으로 인해서 무너져 있는 성전을 무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전은 그들의 마음의 열정을 일으키는 곳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의 열정을 일으키는 ‘꿈’이 있습니까? 꿈을 꾸면서 마음이 두근거리고, 열정으로 준비하거나 그 일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운동선수가 되는 꿈, 하늘을 나는 파일럿이 되는 꿈, 인기 있는 유명인이 되는 꿈, 돈을 정말 많이 버는 경제인이 되는게 꿈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마음이 설레게 하는 인생의 꿈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성전재건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성전 재건은 꿈이었습니다. 이를 신학적 언어로 비전, 사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꿈을 가진 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수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꿈이 없는 자는 목적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짓는 꿈을 방해로 인해 미루기 시작했고, 때가 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재건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비전이 무엇입니까? 혹시 내가 받았던 비전이 성전 재건을 하라는 하나님의 16년 전 이야기처럼 가물가물하지 않습니까?
그런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삶을 곰곰이 돌이켜 보아라.”
내 삶을 돌아 볼 때 꿈은 이제 사치가 되었고, 그저 현실에 먹고 살기 위해 바쁘지 않나요? 어린이들을 꿈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때엔 대통령이 된다고 하고, 축구선수 된다하고, 소방관이 된다 했다가 이리저리 바뀝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생기가 있는 이유는 ‘꿈’이 있기 떄문입니다. 꿈이 사라지면 생기도 사라지게 됩니다.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꿈이 없는 삶이 더 익숙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갈 때 내 삶에 ‘공허’는 여전히 찾아옵니다.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내가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이게 맞는지 모르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어다가 성전을 지어라. 그러면 내가 그 성전을 기껍게 여기고, 거기에서 내 영광을 드러내겠다. 나 주가 말한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 꿈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비전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라고 합니다. 나를 위한 우선순위를 내려놓고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기에 힘쓰라고 합니다. 내가 애써서 노력해도 가뭄과 메마름밖에 남지 않게 되니,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그곳을 재건하도록 말씀하십니다.
성전을 짓는 곳에 하나님의 비전이 담겨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학개의 말씀은 성전재건을 촉구하는 말씀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꿈을 잃어버린, 비전을 잃어버린 자에게 다시 한번 비전을 붙잡으라는 동기부여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에서 질문이 들어옵니다.
“목사님 저는 비전이 없는데 어떻게 비전을 붙잡을까요?” 또는
“제가 지금 하는 일은 하나님의 비전과 전혀 상관이 없는데 이것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새로 시작해야 할까요?”
우리는 보통 비전을 이야기 할 때 ‘직업’과 연관하여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도 성전을 짓는 일을 하는게 비전이기에 모든 것을 제쳐놓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성전을 재건을 완성했다면, 그들의 목적은 다시 사라지는 것인가요? 그들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깁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비전을 ‘What’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꿈은 ‘who’ 다시 말해 사람에게 집중됩니다.
제가 여러군데 가면서 청소년부에게 하는 첫 설교가 요셉설교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꿈이 무엇인가요?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하는 것, 해,달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꾼게 시작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비전에 따라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는 바로 ‘족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현실과 다르게 그의 직업은 바로 ‘노예’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비전을 놓치 않았습니다. 꿈을 놓치 않으니 ‘노에’에서 ‘죄수’로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꿈을 놓치 않으니 하나님께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집트의 총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총리는 직업일 뿐이입니다. 요셉의 진정한 꿈, 하나님의 꿈은 요셉이 하나님 앞에 형통한 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대청이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의 성전을 재건하는 것, 꿈을 다시 가지는 것은 여러분의 직업을 결정하라는 의미가 아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떤 사람으로 빗어가시려고 우리를 부르셨는지를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말씀은 성전 재건하는 일을 먼저 하라 아니라, 성전을 재건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비전을 마음에 품는 자입니다. 그것은 나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내 마음에 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품는 순간 하나님은 약속해주십니다.
7. 또 내가 모든 민족을 뒤흔들어 놓겠다. 그 때에, 모든 민족의 보화가 이리로 모일 것이다. 내가 이 성전을 보물로 가득 채우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8. 은도 나의 것이요, 금도 나의 것이다.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9. 그 옛날 찬란한 그 성전보다는, 지금 짓는 이 성전이 더욱 찬란하게 될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가 바로 이 곳에 평화가 깃들게 하겠다.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학개 2:7-9
여러분 삶에 황폐하게 무너져 있는 성전, 하나님의 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무엇가 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닌, 함께 동역하는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과거에 제 비전은 ‘목사’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목사 안수를 신청하기 직전, 목사에 대해서 큰 의문이 생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왜 목사가 되려고 하지?, 목사가 되고 난 뒤 그 이후는?’ 그렇게 고민할 때 과거에 다짐했던 비전, 꿈이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첫 전도사 사역을 나간지 얼마되지 않아, 사랑했던 제자가 21살 때 뇌출혈로 쓰러졌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뇌사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자의 어머니가 저를 아셔서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그곳에서 그 아이에 손을 잡고 울면서 기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장례절차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나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될 거야, 의사가 아니라면, 영혼을 살리는 사람이 되고야 말겠어”
그 때 그 기억이 생각나면서 목사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 꿈은 영혼을 살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목사가 되지 않아도, 선교사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사랑하는 대청이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무엇이 되기보다는 여러분 자체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의 꿈인 것이죠. 그 꿈을 놓치말고 잡고 나아가십시오.
성전을 재건하십시오. 다시 한번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억하십시오. 그럴 때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에 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떠한 사람으로 부르셨는지 그것을 깨달을 때, 무슨 일을 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 살아갈 때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는지 바라는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사람으로 부르셨는지 한 주 깊이 생각해보시고,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도전하고 싶은 것은, 일주일의 일정 시간을 떼어, 다른 것 다 생각 내려놓고 핸드폰도 내려놓고 전경이 좋은 커피한잔 마시면서, 내 삶을 곰곰이 되돌아보고 숙고해보고 노트에 기록해보는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런 시간을 가질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힐링이 되어 다시 한 번 힘 얻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부르심을 발견하여 다시 한번 내 영혼의 모티베이터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삶을 더욱 힘차게 살아가는 시간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