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 하나님을 바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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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행 : 하나님을 바라 보기
본문: 창세기 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서론
이번주에 제가 참 존경 하고 좋아하는 목사님을 만났어요.
원래 아들만 둘이 있는 집인데 최근에 딸을 낳으셔서
목사님 사모님이랑 막내 딸이랑 친구 전도사님이랑 같이 에슐리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이야기도 나눴어요.
식사를 하다가 이런 질문을 했어요.
아들이 주는 기쁨과 딸이 주는 기쁨이 다르냐고 물어봤는데,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기쁨이 더 좋은지 구체적으로는 안 물어봤어요.
하지만 아들과 딸이 주는 에너지와 기쁨은 다르다는 거에요.
저는 아직 결혼을 안해서 아기는 없지만,
만약에 누가 저에게 아이를 갖게 된다면 아들과 딸 중에 누구를 낳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딸을 낳고 싶다고 이야기 할거같아요.
딸바보라는 말 들어봤나요?
보통 딸에게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는 아버지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딸밖에 모르는 바보, 그래서 딸바보라고 부르죠.
우리는 여기서 ‘바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 의미에는 다른 무언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고있죠.
그 안에는 자녀밖에 모르는 아버지의 아름다운 사랑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성경에 참 바보같은 사람이 등장해요.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일까요?
‘노아’라는 인물입니다.
본론
여러분 노아 들어봤죠?
어느 날 노아가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산 위에 거대한 배를 만들기 시작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아는 배를 만들기 위해 준비했어요.
목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나무를 베고 손질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준비된 재료를 하나하나 산 위에 올려놨어요.
그리고 혼자 묵묵히 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배의 크기가 얼마나 했냐면,
가축을 운반하는 기차를
가축운반화차라고 하는데 569개와 맞먹는 용량이라고 합니다.
그 크기는 오늘날도 크지만 당시에도 어마어마했는데요.
4000년전에 페니키아인들은 무역선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가장 큰 배가 30미터에 불과했다고 해요.
그런데 그보다 훨씬 이전에 만든 방주의 길이가
무려 135미터라고 하니 어마어마한 크기인 것이죠.
그 배를 산 위에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뜯어 말렸을거에요.
만약에 제가 우리 교회 옥상에 중등부실과 소년부실의 의자와 책상을 지하 2층에서부터 옥상까지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간다고 하면
여러분들 저를 말릴건가요? 말릴건가요?
말리겠죠. 엘레베이터가 있는데 그런 미련한 짓은 하지 않아야죠.
더군다나 무거운 의자와 책상을 가지고 올라갈 필요도 없죠.
사람들도 처음에는 말렸을거에요.
그런데도 노아가 포기하지 않고 산 위에 배를 만드는 것을 보면서 손가락질도 했을거에요.
그런데도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배를 만들었어요.
Ccm가수 히즈윌이 부른 노래중에 ‘나도 바보처럼 살래요’라는 ccm이 있어요.
가사를 들어보면 이래요.
산 위에서 세상모르고 배만 만드는 노아
당신 참 바보 같군요 당신 정말 바보 같군요
왜 맑은 날 배를 만드나요 왜 하필 높은 산위에
당신 참 바보 같군요 당신 정말 바보 같군요
눈부신 해가 하늘 높이 뜨면 비의 약속 잊을만한데
날마다 듣는 조롱에 그 외로운 길 포기 할 만한데
당신은 어쩜 그리 묵묵히 그 길 가나요
당신은 어쩜 그리 그 자리를 지켜냈나요
당신은 어쩜 그리 묵묵히 그 길 가나요
당신은 어쩜 그리 그 자리를 지켜냈나요
당신 참 바보 같군요 당신 정말 바보 같군요
당신 참 바보 같군요 나도 바보처럼 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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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눈으로 봤을 때는 노아의 행동이 참 미련해보여요.
손가락질 할 만한 행동이에요.
그러나 오늘 노아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다른 사람의 시선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는 바보처럼 보여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고
산 꼭대기를 바라보며 묵묵히 순종하는 노아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노아의 모습을 보시며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노아를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노아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써내려가십니다.
과연 우리가 노아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산 위에 큰 배를 만들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 전에 그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노아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뒤로하고
하나님만 바보처럼 사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 성경에서 노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의인이고 완전한 자였는데,
그가 의인이고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힘썼던 사람이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동행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 선교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제가 요새 러닝을 하고 있어요.
러닝을 제대로 시작한지 두달정도 된거 같아요.
상동 호수공원을 뛰고 있는데, 공원에 뛸 수 있는 길이 있어요.
호수공원에 온 사람들은 모두 같은 길을 걸어요.
그러나, 공원을 걷거나 뛰고 있는 사람들이 동행하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아요.
뛰는 사람도 있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걷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다면 동행은 무엇일까요?
오늘 9절에 보면 동행이라는 단어를 원어로 보면, 제 인스타 피드에도 있는데,
할라크 / הלך
이 할라크라는 단어에는 하나님과의 동행, 길을 가다, 걷다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 동행이라는 단어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는거에요.
동행이 되기 위해서는
첫번째로, 방향이 같아야합니다.
런닝을 하게 되면 저와는 반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과는 동행을 할 수 없죠.
또 중간에 화장실로 향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다면, 동행할 수 있나요? 없습니다.
동행하기 위해서는 첫번째로 방향이 같아야합니다.
할라크 /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방향을 걸어요.
이말이 무슨 말이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향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시는지, 나 혼자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물어보며 동행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도하며 여쭈어보는것이죠.
“하나님 제가 하고 싶은 삶은 이러이러한 삶입니다.
그런데 나의 인생의 항해자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꿈과 비전을 쫓아 살아갈 수 있도록 저에게 지혜를 허락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아가겠다는 것은
내 인생의 항해를 내가 조종해서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일인지 아시나요?
그러나 인생의 항해를 하나님께 내어놓는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두번째로, 동행은 속도를 맞춰서 걸어야합니다.
같이 러닝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속도를 맞춰줘야해요.
보통은 잘 달리는 사람이 속도를 맞춰주죠.
속도를 맞출 때, 동행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속도를 맞추는 사람이에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어떠한 선택을 할 때, 내 멋대로 선택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하나님과 속도를 맞추는 사람일까요? 아니에요.
하나님보다 앞서서 먼저 뛰어가는 사람이죠.
반대로 하나님께서 가자고, 함께하자고 말씀하시는데,
난 못해요. 난 안해요. 나는 쉴래요. 하나님과 속도를 맞추는 사람인가요?
아니죠.
물론 우리에게 쉼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천천히 가야할 때도 있어요.
그러나 그 결정을 불완전한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속도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속도를 맞추는 사람입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고, 하나님과 발을 맞추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세번째로 동행은 힘이 되어주는 것이에요.
제가 러닝을 할 때, 귀에 이어폰을 꽂고
꼭 듣는게 있어요.
신나는 노래도 듣고, 런데이라는 어플을 사용하는데,
그 어플을 틀면 어떤 남자가 러닝을 코치해줘요.
러닝에 대한 기초 상식부터
힘들때 쯤 시간이 얼마정도 남았으니까 좀 만 더 힘내라는 말도 해줘요.
그래서 귀에 꽂고 혼자 달리면 심심할 틈이 없어요.
노랫소리도 나오고 런데이 나레이션이 저에게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경험하는 은혜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칠 때, 힘을 주신다는 거에요.
하나님 나의 인생 어떻게 살아가나요?
하나님 오늘 하루 어떻게 버티나요?
이런 기도가 나올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거에요.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하시며,
또는 지쳐서 힘들 때, 잘하고 있다고 힘내자며 응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매일마다 매순간마다 경험하는 사람이에요.
너무나 기쁘죠.
그래서 세상에서 경험하는 어려움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소망이 더 크기에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도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요.
노아가 살았던 시대는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던 시대였죠.
그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 속에서 노아는 의인이고 완전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노아가 단순히 도덕적으로 완벽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갔다는 사람입니다.
한숨만 나오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했던 한 사람 노아,
노아야 말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뿐더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노아의 삶은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바보같은 노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써내려가셨습니다.
왜 노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셨을까요?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방향을 같이하며,
하나님과 속도를 맞추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뿐더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들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제목
오늘 노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방향을 맞추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속도를 맞추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저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이번 한 주 하나님과 동행하며, 가요대신 찬양도 열심히 듣고,
아침에 눈을 뜨면 핸드폰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자 노력하고,
잠에 들기 전, 핸드폰이 아니라, 기도하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저에게 믿음과 용기를 허락해주세요.
헌금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새 하루를 주시고, 하루의 양식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예물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주신 것임을 믿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께 드립니다.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찬양하는 우리의 마음인 줄 믿습니다.
두 렙돈을 드렸던 과부처럼 우리의 작은 정성이지만 진심을 담아 올려드리오니,
주님 기쁘게 받아주시고 귀하게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 예물이 교회의 사역과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이웃 섬김에 쓰이게 하시고,
사용되는 모든 곳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흘러가게 하소서.
우리 중등부 친구들의 삶에 물질로 인한 어려움이 없게 하시고,
오히려 나누고 베풀 수 있는 넉넉한 마음과 은혜를 허락해 주세요.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지친 친구가 있다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시고 새 힘을 주옵소서.
이번 한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믿음 안에서 당당하고 멋있게 살아가는
우리 중등부가 되도록 주님 동행하여 주세요.
사랑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