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역까지도 고치시는 하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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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14:1-9절
호세아 14:1-9절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오늘은 ‘패역까지도 고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합니다. 하지만 어떤 실수는 ‘한 번의 잘못’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죄, 익숙해진 죄, 그리고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죄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패역(背逆) 입니다.
‘패역’이라는 말은 등을 돌리고 거꾸로 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데, 등을 보이고 다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한번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다른 길로 가버립니다. 하나님께 등을 돌려버립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은 그 패역까지도 고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호세아서의 결론인데요, 호세아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이 얼마나 완악하게 배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치 신실한 남편이 배신한 아내를 끝까지 찾아가 품는 이야기처럼, 하나님은 계속해서 “돌아오라”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배신한 자를 또다시 품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사랑은 상처보다 크고, 죄보다 깊고, 진노보다 오래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호세아서 마지막 장인데, 호세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징계와 심판의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 심판의 메시지가 가득한 본문 가운데, 늘 하나님은 회복을 이야기 하시고요, 호세아서 마지막에서도 회복에 대해 약속하십니다. 4절에 보면,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겠다” 말씀합니다. 여기서 반역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예전에 개역한글에서는 패역이라고 번역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가지냐면요, 원래 원어의 의미로는 메슈바 입니다. 이 단어는 어디서 나왔냐면, 원래는 슈브입니다. 슈브라는 말은요, 돌이키다. 돌아서다. 우리가 잘 아는 회개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합니다. 근데 슈브 앞에 뭐가 붙냐면 메 가 붙습니다. 여기서 메의 의미는 뒤로, 거꾸로라는 의미입니다. 회개는 뭐에요? 하나님께로 돌이키는게 회개인거에요. 근데 회개가 아니라 반대로 가버리는거죠. 즉 하나님께로 돌이키는게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떠나버리는 것이 메슈바입니다. 이게 바로 패역인 것입니다. 반역인 것입니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요,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반역적 태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신에게 등을 돌린 그들을 향하여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절에 보면요,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2절에도 보면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 돌아오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돌아오기를 바라는 이 하나님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예수님의 비유 중 하나는, 둘째 아들의 비유일 것입니다.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불리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유산을 가지고 등돌리고 떠난 둘째 아들을, 아버지는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매일 마다, 내 아들이 오는지 안오는지, 하염없이 그곳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발견하자 마자, 아버지는 뛰어가서 그를 알아보고 안아줍니다. 이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오기를 정말로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버지께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그 둘째 아들처럼,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아버지보다는 세상의 것이 훨씬 더 좋아보이고, 거기에 살 소망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도 보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말고, 더 좋아보이는 것, 더 의지할 만한 것들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앗수르이고요, 그들이 손으로 부어 만든 우상이었습니다. 눈에 보이고 손에 확실히 잡히는 강대국과 우상이 훨씬 더 그들에게는 좋아보였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아들도 뭐가 더 좋아보였을까요? 아버지가 가진 유산이, 아버지의 품이 아니라, 그 손에 쥔 재물이 자신의 인생에 소망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방법은요, 다른게 아닙니다. 하나님도 붙들고, 저런 눈에 보이는 것도 붙드는 것이 아니라요, 잘못된 의지처를 떠나고, 참된 의지처인 하나님만을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어쩌면 하나님보다, 더 의지할만한 것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언가가 내 삶을 지탱해주고 있다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하나님말고,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나의 삶을 책임져 줄 수 없다는 진리를 붙들기를 원합니다. 잘못된 의지처를 떠나십시오. 참된 피난처 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또 한 가지 이유는 바로 그 아버지께 면목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자녀들에게 늘 돌아오라 돌아오라, 나에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까요? 돌아갈 면목이 없는거에요. 잘못해서 뉘우치고 돌이키는 것도 한두번이지, 또 잘못하고, 또 똑같은 일로 실수하고, 또 넘어지는데 어떻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또 하나님께 돌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게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 탕자의 비유에서도 사실 그렇습니다. 둘째 아들이요, 이미 타국에 나가서, 모든 유산을 다 탕진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곧바로 아버지께 돌아갈 수가 있습니까? 못가죠. 무슨 낯짝으로 아버지께 돌아가요. 내가 말도안되는 요구를 했어도 아버지는 나를 믿고 돈을 내어준건데, 그거 다 까먹고 어찌 돌아갑니까? 그래서 뭘해요? 돼지 농장에서 일을해요. 뭘한거에요? 어찌어찌 내 힘으로 그 부끄러움과 수치를 해결해보고자, 애를 쓴거죠. 노력을 해본거에요. 그런데 하다하다 이게 되요 안되요? 이게 안되는겁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거에요. 물론 정말로 회개해서, 다시는 그런 일을 벌이지 않으면 좋겠지요. 그게 제일 베스트인 모습이겠죠.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그게 정말로 쉬운 문제 입니까? 모든 죄의 문제를 끊어낼 수 있는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그런거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해야되는 것은 뭐에요? 말씀 앞에서, 부끄럽고,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한거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요, 그래 니 힘으로 니 열심으로 최선을 다해봐라, 최선을 다해서, 스스로의 인생을 바로 세워바라 이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무너진 그 자리에서, 또 실수하고 또 넘어진 그 자리에서, 또 나에게 돌아와라, 또 나에게 돌이키라, 나에게 와서 긍휼을 구하라 말씀하시는거에요. 우리의 삶에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있지만요, 하나님 앞에 염치 없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요, 그런 부분까지라도, 우리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새벽 시간이, 다시 이 하나님을 붙들 수 있는 기도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이 호세아 말씀이 주는 메시지는 더욱 더 놀랍습니다. 4절 말씀에 보면요,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겠다”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돌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하나님은요 그 반역을, 그 등돌림을 용서하는 것을 넘어서는 말을 하시는거에요. 내가 그 패역을, 그 반역을, 너의 등돌림을 고쳐버리고 기쁘게 사랑하겠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떠나버린, 그 죄성을, 그 패역함을, 반역을 어느 누가 회복시키며 고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스스로 애쓰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될까요? 아니에요. 그것을 고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은 자신에게 돌아온 자들에게, 죄로 병든 영혼을 치료하시고, 다시 살리시고, 새 생명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회복한 자들에게 나타나는 모습들을요 5절부터 보면요, 아주 아름답게 표현해요. 이스라엘의 이슬과 같을 것이다. 백합화 같이 피겠다.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히겠다. 이슬과 백합화와 백향목은요, 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새로운 생명과 아름다운 열매와 나무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 패역까지도 고치셔서, 아름다운 열매로, 회복의 증거로 나타내시겠다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자 사랑인 것입니다. 혹시 우리의 삶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떠나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을 더 의지하는 마음이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혹시,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는 면목조차 없어진 우리의 삶의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돌아와라, 다시 나에게 와라, 내가 용서하고, 내가 다시 회복시켜주고, 내가 다시 너의 삶에 풍성한 열매로 채워줄게 약속하십니다. 이 새벽 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기도의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 마무리 기도
🙏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금 하나님의 마음을 봅니다.
우리가 주님께 등을 돌리고 떠났을 때에도,
그 자리에서 여전히 “돌아오라” 부르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주님, 우리의 마음이 자주 흔들리고,
세상의 것들에 더 마음이 빼앗겨 하나님께 돌아서곤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의 말씀 앞에 다시 나아갑니다.
우리의 패역을 고치시고, 기쁘게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주님, 우리 안의 완악함을 고쳐주시고,
죄로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스스로를 바로 세울 수 없사오니,
주의 은혜의 손길로 우리를 치료하여 주옵소서.
다시 주님께로 돌아가길 원합니다.
다른 의지처를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붙드는 믿음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패역한 자리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사랑으로
오늘도 새 힘을 얻고 일어나게 하옵소서.
이 새벽에 주의 은혜의 이슬로 우리 영혼을 적셔 주시고,
메마른 마음 위에 백합화가 피어나게 하시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닮은 향기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