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5)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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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7(화)
1~5 약속의 자녀 약속의 말씀
1~3절 동족 이스라엘을 향한 바울의 큰 근심과 고통
4~5절 이스라엘의 여덟 가지 특권
9~11장 : 자신을 이스라엘 사람들과 동일시 하며 그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한다.
9장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서 자신이 느끼는 근심과 고통
10장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향한 자신의 열망
11장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확신
오늘 본문은 일종의 문제 제기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을 모를 수 있는가?
바울이 말하고 싶은 복음은 구약과의 연속성 안에 있다. 그러면서도 이방인들을 수용한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 중에서 기독교인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유대인을 버리고 이방 민족을 선택한 것인가? 질문이 생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붙여진 호칭을 교회가 사용한다. “아브라함의 후손”(4:16), “하나님의 자녀”(8:14~17, “하나님 영광의 상속자”(8:30). 그러면 이스라엘은 버림받고, 교회가 그를 대신하는가? 바울은 이 문제를 9~11장에서 다루고 있다.
20230627(화) 롬 9:1~5
○ 상황
바울은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하는 것에 대해 크게 근심하고 고통하고 있다.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는 그들의 구원이다. 이스라엘은 양자됨, 영광, 언약, 율법, 예배, 약속, 조상, 그리고 메시아(그리스도)까지 이미 가지고 있다. 엄청난 특권과 축복을 가진 사람들임에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동족들에 대한 애타는 마음, 간절한 마음이다
○ 도전
바울의 애통하는 마음은 비참한 상태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헤아리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랑으로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복음을 필요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 복음을 거절하는 나의 가족, 이웃들을 바라보는가 돌이켜 본다. 애통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기를 갈망한다.
○ 변화
나를 대신하여, 나를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에 순종하신 예수님 마음 묵상하기
작은 형과 초등학교 동창 홍OO를 위해 기도하기
○ 기도
우리를 향한 애통하는 마음으로 아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에 감사하며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동족 유대인을 향한 바울의 애통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그 사랑에서 온 것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기 원합니다. 하나님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석교 공동체가 세상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복음을 전수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생명을 걸게 하소서.
20230628(수)
이제 바울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네 가지 질문을 하고 답을 하면서 이 문제를 풀어간다.
6~13절은 첫 번째 질문과 대답이다.
질문1.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졌는가?”(6절)
14~18절은 두 번째 질문과 대답이다.
질문2. “하나님 주권적 선택에서 불의가 있는가?”(14절)
19~29절은 세 번째 질문과 대답이다.
질문3.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책망)하시는가?”(19절)
30~33절은 네 번째 질문과 대답이다. 결론적인 질문과 대답이다.
질문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30절)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오자. 6~13절은 첫 번째 질문과 대답이다.
질문1.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졌는가?”(6절)
대답1. 그렇지 않다(6절).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셨다.
여기에서 ‘폐하여지다’는 단어는 ‘~로부터 떨어지다’는 말이다. 성경에서는 꽃이 떨어지거나 사슬에서 벗어나거나 본래 목적이나 방향에서 멀어지거나 등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반적인 말씀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특정한 말씀, 즉 언약을 의미한다.
언뜻 보기에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약속이 폐기된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다. 절대로 그들을 떠나거나 버리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복음에서 이스라엘은 멀리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여기에서 이스라엘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신학적으로 해석한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6절)라고 말함으로써, 혈통적 이스라엘, 문자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이 있음을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 이스라엘이다. 혈통적으로는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은 혈통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니다. 약속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다. 앞서(2:28~29) 말한, 육체에만 할례를 받고 마음으로는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육체의 할례는 형식적, 혈통적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마음의 할례는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울은 이 사실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구약 성경에서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하나는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 이야기이다. 아브라함의 씨(아들)는 이스마엘과 이삭이다. 바울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대로 하여 낳은 아들 이스마엘은 약속의 아들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후손이 아니라,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이야말로 약속의 아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스마엘도 육체적으로 보면, 혈통적으로 보면, 겉으로 보면 아브라함의 후손은 맞지만, 약속의 자녀가 아니다. 약속을 불신한 결과 낳은 아들이지 않은가? 이삭이야말로 약속에 의해 얻은 아들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후손이 다 같은 이스라엘의 후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삭과 리브가의 아들 에서와 야곱 이야기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나온,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 중에 하나님이 야곱을 택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린 문제였다. 에서의 잘못이 아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11절)에 의한 것이다.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 하나님의 약속이 넘어졌는가(폐하여졌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의 목적(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사)이 분명히 있다는 답을 내리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성경 말씀 두 곳을 인용한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12절, 창 25:23),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13절, 말 1:2) 전자는 태중에 있는 쌍둥이 아이들이 서로 싸우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하셨던 말씀이고, 후자는 말라기(기원전 516년 경)가 이스라엘의 멸망의 역사를 해석하면서 한 말이다.
두 번째 말씀은 약간의 오해가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이 에서를 미워한다고? 이 말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가족을 미워하지 않고서는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과 같이 이해해야 한다. 히브리적 관용구로서 어떤 대상을 놓고 한쪽을 좋아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상대 쪽을 미워한다고 표현했다. 즉 우선순위를 강조할 때 하는 표현이다. 미워한다는 말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말이지 문자적으로 미워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 두 이야기에서 이스마엘과 에서는 모두 할례를 받았다.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두 이야기는 모두 “하나님의 택하심과 뜻”이 있음을 말한다. 결국 이스라엘이 지금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전체 이스라엘이 아니라, 소수의 이스라엘이 이 약속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선택받은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교만함>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무너뜨리는 것이지, 이스마엘이나 에서를 공격하려는 것이나 그들을 거부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선민사상(예정론)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스마엘이나 에서도 하나님의 선택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11절,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로마서 전체에서 핵심이 되는 구절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가 등장한다. 여기서 행위는 율법 전반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서의 행위, 즉 할례, 음식법, 절기 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외형적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서,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할례를 받고 음식법과 절기를 준수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자격이 주어졌다고 해서 약속을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달려있다.
본문이 말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유효하지만, 그 약속의 성취는 혈통(국가, 인종, 민족)에 의한 것이 아니며(7~9절), 약속에 속한 회원이라는 것과 유대적 특성을 증명해주는 행위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10~18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은 언제나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존재하지만, 그것이 혈통이나 자격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4~5절에서 말한 여덟 가지 특권과 축복을 가지고 약속을 주장할 수 없다.
바울은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인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복음인 하나님 말씀 안에서 성취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육신에 따른 이스라엘을 폐하여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그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20230628(수) 롬 9:6~13
○ 상황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거절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이 폐하여진 것이냐고 질문에 대해 그것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거나 이스라엘 민족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충족하는 행위(할례, 음식법, 절기 준수)와 같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이 참 이스라엘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참 이스라엘을 통해서 여전히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다.
○ 도전
그리스도인이 되는 외적인 형식이나 행위로 구원의 약속이 보장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깨닫는다.
○ 변화
겸손하게 나의 믿음을 점검하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 묵상하고 선포하기
○ 기도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이나 행위 때문에 교만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고 사랑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행하신 놀라운 구원 이야기를 신뢰하며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선포하겠습니다. 석교 공동체가 형식과 전통을 따르며 자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성령님과 동행하는 사람들로 채워지게 하소서.
20230629(목)
이제 바울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네 가지 질문을 하고 답을 하면서 이 문제를 풀어간다.
6~13절은 첫 번째 질문과 대답이다.
질문1.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졌는가?”(6절)
14~18절은 두 번째 질문과 대답이다.
질문2. “하나님 주권적 선택에서 불의가 있는가?”(14절)
19~29절은 세 번째 질문과 대답이다.
질문3.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책망)하시는가?”(19절)
30~33절은 네 번째 질문과 대답이다. 결론적인 질문과 대답이다.
질문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30절)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오자. 14~18절은 두 번째 질문과 대답이다.
질문2. “하나님 주권적 선택에서 불의가 있는가?”(14절)
대답2. 그렇지 않다(13절).
첫 번째 단락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폐기되는가 질문하고 아니라고 답했다. 핵심은
이 이야기를 통해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선택받은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교만함>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무너뜨리는 것이지, 이스마엘이나 에서를 공격하려는 것이나 그들을 거부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선민사상(예정론)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스마엘이나 에서도 하나님의 선택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외형적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서,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할례를 받고 음식법과 절기를 준수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자격이 주어졌다고 해서 약속을 이어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달려있다.
사람의 자격이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근거하기 때문에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버린다면, 그 하나님은 불의하신 분이 아닌가? 질문할 수 있다. 오늘 본문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불의하다’는 단어는 ‘공정하지 않다’로 읽을 수 있다. 당시 사회적 맥락에서 혈통을 무시하는 것, 장자가 상속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처사라고 여길 수 있다. 자격이 있는데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역시 구약 성경으로 답을 한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출 33:19) 이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며 어느 누구도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크신 사랑과 자비로 인간을 구원하셨다. 하나님의 선택은 긍휼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기에 구원은 자격이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16절)
바울은 이제 바로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한다.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출 9:16) 하나님은 악인 조차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사용하실 수 있음을 나타나내는 말이다. 바로의 완악함을 사용하여 구원을 이루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18절) 이 역시 구원은 사람의 행위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문제임을 설명한다.
한가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 원래 선한데 버림받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인간은 완전히 타락했고 거기에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순종하지 않도록 만드신 것이 아니다. 이미 불순종의 영에 사로잡힌 상태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기에 모든 사람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기회를 이용하지 않는다. 이들의 마음은 점점 더 완악해진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방치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다. 불의함 가운데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가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 선택되어 구원을 얻는다면 오직 하나님의 자비 때문이지, 그의 공로 때문이 아니다.
결국 바울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그 크신 사랑’이다.
20230629(목) 롬 9:14~18
○ 상황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은 누군가를 선택하지 않게 되니 불의한 것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한다. 구약 성경을 인용하면서 선택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행동이라고 말한다. 선택하지 않았다면 비참한 상태에서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도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나를 구원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내가 뭔가 자격이 있거나 그럴만한 공로가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 사실로 인해 교만해지거나 자기 의에 빠지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정죄하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사랑 없는 자격과 공로, 사랑 없는 지식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인다.
○ 변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묵상하고 찬양하기(그 사랑)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 기도
연약하고 부족한 저를 부르시고 구원으로 초대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을 기억하고 실천하게 하소서. 석교 공동체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안에서 한 몸 공동체를 이루고 온 세상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하여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고 선포하게 하소서.
20230630(금)
19~29에서 바울은 세 번째 질문을 제기하고 답을 내린다. 만일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왜 책망하고 심판하느냐? 질문할 수 있다.
바울은 피조물이 창조자에게 질문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20~21절. 하나님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 권한을 가지신 분이다.
이 단락은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인 차이를 강조한다. 하나님은 창조자, 우리는 피조물이다. 피조물이 감히 하나님께 따져 물을 수 없다. 바울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반대하는 자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창조자로서가 아니라, 도덕적 통치자로서의 주권을 말한다. 죄된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 논점이 아니라, 죄된 인간을 심판할 수 있거나 용서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22~23절. 하나님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계시하시는 분이다.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영광을 받기로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신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하나님의 진노와 인내, 영광과 긍휼은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드러낸다.
24~29절. 하나님은 이것을 이미 성경에서 말씀하셨다.
호세아의 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이미 약속된 것임을 말한다. 하나님의 약속에 이방인이 포함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바로 복음의 성취임을 말한다.
이사야의 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통해서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가심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유대인들 중 소수만이 구원의 약속을 이어받는 자가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20230630(금) 로마서 9:19~29
○ 상황
바울은 계속해서 구원의 주도권이 우리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을 선택하는 것도, 이방인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 반대로 이스라엘을 버리는 것도, 이방인을 버리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다.
○ 도전
하나님의 주도적인 사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주도권 때문에 우리가 살아간다. 하나님의 주도권과 우리가 피조물됨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살아가자.
○ 변화
내가 하나님이 되고 싶은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기
하나님의 주도적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찬양하기
○ 기도
나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기억하고 오직 하나님만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창조되고 구원을 선물로 받은 피조물로서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 뜻을 행하게 하소서. 우리 석교 공동체가 우리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주도적인 사랑을 나타내게 하소서.
20230703(월)
9~11장은 모두 이스라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것 때문입니다. 9장에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에 따른 하나님의 뜻을 강조하였습니다. 10장에서는 인간의 역할, 즉 복음을 이해하고 선포하고 믿음으로 반응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제 10 장
1~4절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먼저 1절에서는 9장 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구원을 향한 바울 자신의 갈망을 표현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음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이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버리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비해서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더디거나 복음을 거부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구원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애통해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은 애통하는 마음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기 위한 열심은 있으나 방법을 모르고 있다고 안타까워합니다. 이 열심은 아마도 자신이 회심하기 전에 갖고 있었던 열심과 같은 것입니다. 복음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데 열심이고, 자신들이 가진 율법 때문에,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음식법과 절기를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모든 사람을 그런 율법을 소유하는 사람들, 즉 유대인들로 만들려는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문제는 지식이 없는 열심이었습니다. 잘못된 방향의 열심이었습니다. 방법이 잘못된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열심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열정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지식입니다. 구원에 관한 올바른 지식,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지식,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올바른 지식, 자신에 관한 올바른 지식, 세상에 관한 올바른 지식입니다. 잠언 기자는 말합니다.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다.”(잠 19:2) 열심과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올바른 지식이 없는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켜서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그 열심은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그들이 받은 언약적 의가 자신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도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것임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완성)이 되셨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즉 유대인들만을 위한 율법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율법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만을 위한 언약적 의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언약적 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5~13절에서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와 반대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처럼 도달할 수 없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늘로 올라갈 필요도, 무저갱에 내려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는 이미 우리에게 오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그를 입술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믿음으로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들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 구원을 얻습니다. 그를 부른다는 것은 믿기 때문입니다. 믿는 것은 들었기 때문입니다. 들었다는 것은 전파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파한 것은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파하는 자의 발은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전파하는 사람, 보냄을 받은 사람으로 역할을 다 하고 있습니까?
2020703(월) 로마서 10:1~15
○ 상황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지만, 올바른 지식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한다. 그러나 구원은 열심히 있다고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우리 마음과 입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말씀이 전해져야 한다.
○ 도전
이스라엘의 문제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문제로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열심과 확신, 자격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목회자로서 나 자신이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연구하며, 성도들이 올바른 지식을 갖도록 잘 가르쳐야겠다.
○ 변화
하나님의 의를 입고 사랑을 받을만하다고 여겨지는 행동들과 자격들을 내려놓기
말씀 묵상과 연구 지속하기
○ 기도
열심과 열정만이 아니라 방향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에 대하여 올바른 지식을 갖도록 말씀 묵상과 연구에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성령께서 지혜를 주셔서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할 때 깨닫게 하소서. 가르치는 은사를 더하셔서 성도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잘 전달하게 하소서. 우리 석교 공동체가 진리의 말씀을 듣고 잘 자라게 하시고 성장하여 그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게 하시고 회심한 사람들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사랑으로 돕고 본으로 보여주게 하소서.
20230704(화)
16~21 믿음과 들음과 그리스도의 말씀
보냄받은 자가 있으면 전하는 자가 있고, 전하는 자가 있으면 듣는 자가 있고 듣는 자가 있으면 믿는 자가 있는데, 어찌 이스라엘은 믿지 않는가? 그들에게는 전하는 자가 없었는가? 아니다. 그들도 분명히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다(16절). 이사야 53:1에서 말한 것처럼, 보냄을 받아 전하는 사람들이 전한 것을 그들이 믿지 않았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왜 믿지 않는가?
1. “그들이 듣지 않았는가?”(18절a) 아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들었다(18절b). 그 소리가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다(시편 19:4). 그러나 듣고서도 순종하지 않고 믿지 않았다.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들은 바가 없다, 아무도 우리에게 전하여주지 않았다’고 핑계할 수 없다.
2. “그들이 알지 못했는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모세의 율법(신 32:21)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백성 아닌 자로써 시기하게 하고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이미 이 말씀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고집이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고집으로 하나님의 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사야도 65:1,2에서 말했다.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 즉 이방인들이 나를 찾을 것이고 그들에게 내가 나타났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이 이방인을 향해 열려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 놓으셨다.
마찬가지로 순종하지 않고 거슬러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에게 ‘손을 벌리셨다’(21절)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는 발견되도록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좀 더 적극적이다. 하루 종일 손을 벌리고 내게로 오라고 간청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대인들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한다.
9장에서 이스라엘의 불신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따른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았다면, 10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의지적 거부, 부정적 반응, 불순종에 있다고 본다. 이스라엘이 넘어진 것은 이스라엘의 책임이다.
20230704(화) 로마서 10:16~21
○ 상황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들었고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거부하고 불순종했다고 말하면서도 그렇게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여전히 손을 내밀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 도전
하나님은 우리의 거절과 불순종에도 우리를 여전히 기다리고 계신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우리가 순종의 반응으로 하나님의 손을 붙잡기를 기대하신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고 계속해서 우리의 반응을 기다리신다.
○ 변화
복음을 듣고 순종하기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내하며 기다리기
○ 기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며 오래 참는 사랑이고, 인격적인 반응을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본받기 원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강제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게 하소서.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에 합당한 반응을 하게 하소서. 석교 공동체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을 잘 배우고 실천하여 온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드러내게 하소서.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순종하게 하소서.
20251031(금) 로마서 9~10(10:1~21)
○ 상황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들었고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거부하고 불순종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여전히 손을 내밀어 기다리고 계신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지만, 올바른 지식이 없어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한다.
○ 도전
하나님은 우리의 거절과 불순종에도 우리를 여전히 기다리고 계신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우리가 순종의 반응으로 하나님의 손을 붙잡기를 기대하신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고 계속해서 우리의 반응을 기다리신다.
○ 변화
하나님의 의를 입고 사랑을 받을만하다고 여겨지는 행동들과 자격들을 모두 내려놓기
사람들을 향하여 더 많이 인내하고 너그럽게 대하기
○ 기도
열심과 열정만이 아니라 방향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에 대하여 올바른 지식을 갖도록 말씀 묵상과 연구에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가르치는 은사를 더하셔서 성도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잘 전달하게 하소서. 변하지 않으며 오래 참으며 인격적인 반응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게 하소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강제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을 잘 배우고 실천하여 온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드러내는 석교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