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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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너진 자리
1. 무너진 자리
이번주부터 3주간 QT를 따라서 ‘에스라’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에스라 1장 1절은 바사 왕 고레스 원년이라고 시기를 알려줍니다. 바사는 페르시아를 말합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하고, 남유다도 바벨론에게 망하게 됩니다. 당시 남유다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입니다. 바벨론에서 포로로 있을때 바벨론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이 전쟁을 합니다. 그때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점령하게됩니다. 남유다 사람들은 이제 페르시아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당시 남유다 사람들은 나라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진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을 잃어야 했고, 잡혀와서는 노예로 고된 노동을 했어야 합니다. 삶의 의미가 다 무너졌습니다. 또 그들에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정체성이 모두 무너졌을 겁니다. 또 바벨론 땅에서 강한 제국의 멸망을 보면서 소망도 무너졌을 거에요.
그들은 낙심과 절망이라는 삶이 무너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삶이 무너짐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 어려움을 통해 느끼는데요. 그때 우리에게 이런 질문이 듭니다. ‘하나님은 어디계시는가?’ 내가 이렇게 힘든데 도데체 하나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찾게 될 겁니다. 고통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커져가죠.
그와 함께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는가?’ 질문합니다. 절망과 낙심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해보지만 그 기도마저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만날때 절망은 더욱 큽니다.
지금 남유다 사람들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생기는 문제이고, 우리도 하나님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은 도데체 어디에 계시는가?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어떻게 듣고 이루시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절망과 낙심 가운데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 아직 절망과 낙심은 아닌 친구들은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며 믿음 안에 굳세게 세워지기를 권면합니다.
2. 온땅의 주인
2. 온땅의 주인
에스라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이 명령을 ‘고레스 칙령’이라고 부릅니다. 고레스가 적은 이 명령이 실제로 영국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성경 안에서 대표적 역사적 자료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고레스 칙령이 왕들의 연대기를 추정할때 쓰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고레스가 내린 명령은 3가지였습니다.
첫번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남유다 백성에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합니다. 포로로 잡힌지 대략 7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이제야 해방하게 된 것입니다. 엄청난 기쁨이었을 겁니다.
두번째는 성전을 다시 지으라고 명령합니다. 남유다 사람들이 믿었던 하나님을 다시 예배하고 섬기라고 명령합니다. 이런 명령을 내린 이유는 고레스가 가진 정책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는 각 나라의 신을 섬겨야 ‘안녕’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지으라 명령합니다.
세번째는 나라를 세우고, 성전을 세울 때 필요한 자원을 도와주라고 명령합니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 재건하기 위해서는 분명 자원이 필요합니다. 고레스는 상황을 잘 알았기에 다시 재건할 수 있도록 자원을 지원합니다.
고레스는 절망과 낙심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억눌렸던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고, 가난한 자에게 기쁨이 되는 소식이었습니다. 정말 선물 같은 소식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말씀은 이 명령을 고레스가 내린 명령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 명령은 고레스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리신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레스를 통하여 기쁨의 소식, 은혜의 소식을 남유다 백성에게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신음했던 사람들에게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였다’라고 선포하십니다.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까?’ 라는 질문에 ‘내가 너의 기도를 듣고 이루었다’ 선포하고 계십니다. 이 기쁨의 소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꼭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죠. 그러나 더 눈을 열어 바라본다면 하나님의 크신 손길이 우리를 돌보고 인도하고 계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아이들에게서 많이 봅니다. 아이들 너무 귀엽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릅니다. 우리 청년부 목사님 아들은 비오고 나서 생긴 웅덩이에서 세수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또 심정구 교구 목사님 아들은 뭐든지 입에 가져다 대는 버릇이 있대요. 나중에는 변기도 핥으려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자녀가 그런 행동을 할 때 부모가 자녀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자녀가 옳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아이들이 말을 듣기도 하지만 때로는 당장 자신이 할 일을 막는다고 때를 쓸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안되는건 안되는 겁니다. 변기를 핥게 놔둘 수 없잖아요. 그때는 그럼에도 막아야 합니다. 자녀의 생각과 다르지만 부모의 손이 아이를 붙잡아 가장 좋은 길, 선한 길로 가도록 도와줍니다.
우리 삶을 바라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당장 내 힘으로 살아가는 인생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크신 손이 우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저 하늘의 구름과 이 땅에 핀 꽃 하나도 하나님께서 돌보시듯, 우리를 사랑과 선하심으로 우리를 돌보고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세상을 똑같이 바라보지만 보이지 않는 소망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시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들판에 핀 한송이 꽃에서 천국을 본다”
아주 작은 모래에서, 보잘 것 없는 들판에서 핀 꽃을 보고 우주와 천국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디서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름답지 않은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 소망이 없는 자리에서도 소망을 볼 수 있는 눈, 슬픔에 자리에서도 다시 기뻐할 수 있는 희망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저는 이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고난 앞에서도 크게 낙심하지 않습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돌보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들판에서 천국을 발견하듯 내 고난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는 겁니다. 또 반대로 아무리 좋은 일 앞에서도 크게 교만하지 않고 겸손합니다. 좋은 일에서도 누군가보다 잘난 것이 아니라, 이 일, 은혜를 통해 행하실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삶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우주와 천국을 발견하시나요? 아니면 반대로 지옥과 고통만을 바라보고 계신가요? 고통과 지옥만 보인다면 오늘 하나님에게 믿음을 구합시다. 내 삶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도로, 나를 통해 일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보게 해달라고, 또 나의 신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오늘도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손을 발견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다 말씀처럼 믿음을 구하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복된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3.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한다면 오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 독특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통해 일하셨다는 겁니다. 고레스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보통은 다니엘, 에스더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고레스를 통해 일하시고 계시다는 겁니다. 그 누구도 고레스를 통해 일할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는 이러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다른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예수님이 대표적이시죠. 예수님은 보잘것 없는 마굿간에서 태어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라는 이해되지 않는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저에게도 이런 일들에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재정이 부족할 때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채워주셨다. 이런 말을 많이 하시잖아요. 사실 저는 그런 경험을 해본적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그런 기도를 잘 못합니다. 하나님이 오늘 재정이 부족한데 저에게 재정을 채워주세요. 뭔가 하나님을 요술램프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처럼 생각이 들어서 그런 기도를 못합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 어려움이 있을 때 그런 기도를 한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뤄지겠어? 이런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근데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사람으로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더라고요. 누군가 나를 돕더라도 저분은 아닐텐데 하는 사람으로 돕는 것을 보고 제가 정말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가 다르시구나. 하나님은 나의 생각으로 담을 수 없는 더 큰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이시구나를 그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여러분도 문제를 만나면 이런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할 거야 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히려 더 큰 지혜로, 더 큰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앞에 문제를 보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질지 모르지만 더 큰 삶으로 바라보면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저번주 수요일에 목사님 한분이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셨어요. 이 목사님이 1년 전에 육종암 4기 판정을 받으셨었어요. 1년 전에도 교회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셨는데 그때 항암 중이셔서 머리, 눈썹이 다 빠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으셨더라고요. 그런데 1년만에 오셔서 정말 기적적으로 회복된 몸을 보여주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눠주셨어요. 근데 제가 1년 전에 목사님 얼굴보다 더 기억남는 한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목사님 아들이었어요. 1년 전에는 아들 얼굴이 너무 어둡더라고요. 제가 환우 가족에 마음을 좀 알아서 다 알 수 없지만 공감은 가더라고요.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어요. 근데 1년 후에 그 아들 얼굴이 너무 달라진 거에요. 너무 밝아져서 교회 탐방도 하더라고요. 집에 가기 전에 아들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당시 얼굴이 어두웠는데 오늘은 정말 밝은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 그 아들이 저에게 당시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당시에는 하나님을 전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지금 당장 아빠 병을 낫게 해달라고, 왜 내 기도를 안들어주냐고 원망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1년이 지나면서 하나님이 가족을 더 하나되게 하시고, 또 더 큰 믿음을 주시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하더라고요. 고난 속에서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했다고 은혜를 나눠주었어요.
그 친구는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사실 그게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하나님이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그 은혜의 손길을 발견했을 거에요. 그리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어느 때, 어느 방법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겁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어떤 방법인지, 어느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선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오늘도 나를 돌보시고 인도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선하심과 그 사랑이 나와 함께하십니다. 고레스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다윗이 고백하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난과 여러 문제 앞에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는 믿음이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그 믿음을 통해 내 삶이 아름다운 우주와 천국 같이 보여지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