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31 금요기도회: 누가복음 21: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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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부르시고, 지난 한 주를 지켜주심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10월 마지막 날인 오늘 지난 10월 한 달동안 지켜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이 시간 되새겨 봅니다. 주님께서 저희에게 각종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선한 길로 언제나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 속에서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지금도 저희에게 은총을 베풀고 계시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저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하나님을 향한 찬송의 재료로 사용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하나님을 더 알아가기 위하여 함께 모였으니 이 자리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알려주시옵소서. 겸손한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받고, 기도로 주님과의 교제의 자리에 참여하는 저희가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21:34-38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025년 10월 마지막날인 오늘도 주님의 뜻을 이 자리 가운데서 발견하고, 오늘도 힘차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함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휴대폰을 사용하다보면 가끔 뜨는 알림이 있습니다. 다들 한번씩은 받아보셨을텐데, 바로 ‘위험! 긴급 재난 문자!’라는 경고음과 함께 재난 문자를 한번씩은 받아보셨을 겁니다. 만일 평온했던 일상 속에서 스마트폰이 울리며, ‘잠시 후 규모 7.0의 강진이 예상되오니 즉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십시오.’라는 문자가 뜬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모든 일손을 멈추고 혼란 가운데서 모두가 대피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문자를 보고도, “에이, 설마. 맨날 오던 문자인데 뭐. 별일 없을거야”하고 다시 향락이나 우리의 일상의 염려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우리는 아마 안전불감증이라고 말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겁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21장의 말씀은, 지금 이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긴급 경고 문자”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종말의 ‘그 날’이 올 때, 갑자기 올 것이며, 마치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덫이나 올무처럼 다가올 거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십니다. 이 경고를 다시 듣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무엇을 요구하실까요?
오늘 이 누가복음 21장의 말씀을 통해 종말을 살아가는 제자들의 자세에 대해 함께 깨닫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 다시 오실 때까지의 모든 기간 동안, 우리가 어떻게 박해와 세상의 유혹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도우심을 의지하여 끝까지 신실한 모습으로 구원에 이르러야 하는지 그 길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종말’이라고 할 때, 단순히 세상의 끝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 여기에 계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20세기가 끝나는 1999년에 ‘Y2K’라고 불리는 종말론이 있었습니다. 이때 컴퓨터가 오작동해 핵전쟁이 일어나는 둥 세상이 끝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중세 시대에 예언가의 예언도 이때와 맞물려 있었기 떄문에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이때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992년에 한국에 희대 사건을 남긴 ‘다미선교회’의 시한부 종말론도 1992년에 휴거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한국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보통 ‘종말’하면 어떤 한 시기에 일어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이 ‘종말의 때’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후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의 모든 기간을 포함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에도 예수님이 경고하신 종말에 일어날 일들은 단순히 어떤 한 시점에만 일어나지 않았기 떄문입니다. 같은 장인 21장 10절 이하만 보더라도 인류 전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의 징조, 그 징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어떤 한 시점에 종말이 일어날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징조를 보고 이처럼 자신이 갑자기 재림할 것이니 깨어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성경의 종말은 어떤 한 시점에 일어날 일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초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초림과 재림 때까지의 이 기간 동안 제자들이 겪게 될 박해와 천체의 혼란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종말은 반드시 온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심지어 오늘 읽진 않았지만 33절에 보면 하늘과 땅이 없어지는 것보다 예수님의 말씀이 없어지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씀하시며,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하십니다. 이러한 종말의 기간은 제자들에게 매우 곤란한 시기일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극심한 박해를 받고, 제자들은 고난과 압박으로부터 오는 유혹을 반드시 견뎌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받고, 세상의 향락과 쾌릭이 제자들을 끊임없이 유혹할 것입니다.
그리고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의 이 기간, 바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 역시 종말의 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어려운 시기에 대한 대책, 즉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를 오늘 말씀 통해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스스로 조심하고 깨어 있으라고 권고하시며, 우리가 이 종말의 때를 어떻게 견디고 구원에 이르러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첫째로는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면서 인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박해 가운데서도 항상 제자들이 신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제자, 곧 예수님께 변함없이 신실한 제자들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박해 중에 힘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제자들은 분명 나중에 예수님을 전할 때 법정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서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같이 어떤 범죄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는지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이 법정에서 증언하거나 박해를 받을 때, 이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의지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36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항상 기도”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기도를 통해 박해와 종말의 압박으로부터 오는 유혹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끝까지 견딘 신실한 제자들은 궁극적인 구원을 통해 36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자 앞에 서는 것”, 즉 예수님 앞에서 인정을 받게 되어 궁극적인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종말의 때를 견디고 구원에 이르는 방법의 두 번재로 경계하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경계한다는 것은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34절에서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종말의 사건에 제자들이 “에이, 그냥 지나가는 일이지”하면서 무관심해서는 안 되며, 그 날이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둔하게 만드는 것들을 멀리하고 경계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둔하여지고, 분별력을 무디게 하는 것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만드는 것들을 34절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는 향락과 술 마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정신적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것으로 향락과 음주가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의 향락에 끌려 그것에 몰두하는 생활을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로는 생계에 대한 지나친 염려가 마음을 둔하게 만듭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도 없는 생활은 이 세상에서 어떤 마음을 가장 먼저 품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과도한 걱정은 종말을 살아간다는 생각을 지워버리게 만듭니다. 이러한 생계에 대한 지나친 염려를 제자들은 경계해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극도로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은 예고하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오기 때문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34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덫과 올무와 같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와 위태롭게 만들 것입니다. 덫이라는 것은 내가 대비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닥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대비한 자에게는 미리 예상된 순간이겠지만, 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덫이나 올무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예고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온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갑자기 임할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어떻게 종말을 대비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두 가지 핵심적인 자세를 제자들에게 요구하셨습니다.
첫째로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6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할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종말의 사건들이 일어나는지 언제나 주의 깊게 지켜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현재 명령형으로 “너희는 꺠어 있어라”라고 명령하시면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정확한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날을 대비하여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재로는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는 권면과 더불어, 예수님은 또한 기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가 유혹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줍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제자들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종종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신실한 삶을 살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모든 박해와 유혹, 그리고 시련을 잘 견디며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할 수 있도록 제자들은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기도는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능과 힘을 받아 박해와 유혹 가운데서도 굴복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됨을 가르치십니다. 바로 이 깨어 있는 기도가 종말의 때를 대비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따라서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종말의 때를 대비할 것을 말씀하신 이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이 세운 우리 교회에게도 똑같이 주신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교회 역시도 예수님의 이 가르침에 따라 종말을 대비하는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종말은 반드시 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둔하게 만드는 유혹들을 경계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36절까지의 말씀을 하신 후에 어떤 행보를 보이셨는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22장에 가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비록 자신을 향한 어두운 그림자, 즉 수난 사건들이 검은 구름과 같이 사정없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언제나 자신의 사역에 충실하셨습니다.
보십시오. 37절에서는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낮에는 줄곧 백성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백성들을 가르치는 행위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자극하여 수난 사건이 다가온다는 것을 아심에도, 그분은 계속해서 백성의 귀를 사로잡는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감람산에서 밤을 지내며, 다시 이른 아침부터 백성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가르침을 들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신이 죽을 날이 다가옴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역을 결코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땅에서의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곧, 오늘 말씀에 따라 세상의 유혹을 경계하며 항상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을 의지하여 박해와 유혹을 끝까지 견디는 신실한 제자도를 걸어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요약하면 우리의 구원은 이미 이루어졌지만, 이것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니 종말론적인 신앙을 따라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이 존속하는 것보다 자신의 재림이 더 확실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셨습니다. 비록 예수님은 잠시 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여전히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지키시고 돌보신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말을 두려움이 아닌, 소망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를 굳게 붙잡고, 항상 깨어서 기도함으로 인자 앞에 설 수 있는 신실한 제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종말의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교회, 이미와 아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교회는 주님이 미리 알려주신 징조를 보고 이 종말의 때에 우리가 어떻게 대비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초점을 두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깨어서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이 시간 함께 오늘 말씀을 두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이 세상의 향락과 먹고 사는 염려에서 벗어나 종말을 대비해야 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을 받아 제자들이 세운 이 교회도 오늘 주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오늘 말씀에 따라 깨어서 항상 기도함으로 종말을 대비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구별되어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러한 삶을 살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 때 박해와 유혹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함으로 결코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교회와 각자의 삶에서 살아내는 신자로 살아가도록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