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앞에서 멘탈깨짐? 그때 필요한 건 Faith F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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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취적인
진취적인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Flex를 해본 적이 있는가? 예전에 쇼미더머니에서 랩퍼 중 염따라는 래퍼가 랩으로 돈을 번 것이 아니라 티셔츠를 팔았는데 대박이 나서 엄청나게 돈을 벌었었다. 그때 유행어가 “플렉스 해버렸지 모얌”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부를 뽐내기 위해 과소비를 하면서 SNS에 자랑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명품이나 비싼 호텔,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부러워하면서 그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SNS에 보여주기 급급한 문화가 만연했다. 실제로 돈이 많은 사람이 플렉스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것은 오히려 과소비가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 수준에 맞춰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적절하게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돈이 없는 사람이 빚을 지면서까지 생활수준을 넘어서 자랑한다고 한들, 결국 카드빚을 값느라 플렉스했던 것이 인생에 무거운 짐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처럼 돈은 한정적으로 자신의 생활수준에 맞춰서 플렉스를 할 수 있지만, 믿음은 오히려 반대로 플렉스를 하면 할수록, 다시 말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우리에게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이 넘치는 인생이 된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민수기에서 10명의 정탐꾼들의 절망적이고 아주 현실적인 소식을 듣고 좌절에 빠지며 밤새도록 통곡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떤 보고를 했었냐면, 일단 실제로 보고 온 가나안 땅은 아주 비옥한 땅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 땅에서 자란 과일들을 가져와 보여 주면서 진짜라는 사실을 증거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가나안에 사는 원주민이 피지컬이 매우 강하고 크고 절대 뚫릴 것 같지 않은 두꺼운 성벽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10명의 정탐꾼들은 이스라엘이 어떤 전략을 세워도 원주민들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 땅은 사람을 삼키는 땅이기 때문에 정복해봤자 다른 민족에게 정복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정탐꾼들이 바라본 관점이 현실적이지만 부정적인 보고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크게 요동하게 만들어버렸다. 그 땅에 대한 너무나 과장된 악평은 온 백성으로 하여금 또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이 백성들의 원망은 여호와와 모세를 버리고 새 지도자를 세워 이집트로 돌아갈 계획을 꿈꾸게 한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이들을 위하여 하신 일과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해 보면 감사를 드려도 모자랄 판에 불평과 원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민수기를 쓴 저자인 모세는 당시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반역에 동참했음을 강조하기 위해 성경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온 회중이”, “백성이”, “이스라엘 자손이” 또한, 이들이 얼마나 심하게 하나님을 원망했는가를 드러내기 위해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네 가지로 표현한다. “소리를 높여”, “곡하였더라”, “원망하며” “이르되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민수기를 쓴 모세의 관점에서 볼 때 몇 명을 제외하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죽어 마땅한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활이 어려우면 사람은 지긋지긋했던 과거마저도 동경하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성향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런 향수병을 앓고 있다.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이 뭐가 좋다고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그리워할 것이 하나도 없지만 그들의 현실에 대한 불만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모세의 리더십을 거부하고 다른 리더를 세워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려 한다.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은 영원히 금지된 행위다. 이것은 마치 결혼한 신혼부부 관계에서 신부가 이전에 자신을 늘 폭언과 데이트 폭력하는 전남친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소리와 같다. 이스라엘은 지금 최악의 선택을 하고자 한다.
이때 백성들이 말도 안되는 행동에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이 분노할만한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달았는지 이스라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다. 모세와 아론이 엎드리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 일을 똑똑히 지켜보고 계신 하나님께 두려워 한다. 도대체 이것에 대한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런 짓을 하고 있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발 그만하라는 사인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달래기 위해 엎드려지는 모습을 백성들 앞에 보여준 것이다. 사건을 지켜보던 갈렙과 여호수아가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을 달래기 위하여 가슴 아픈 수모를 당하는 것을 가만 볼 수 없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옷을 찢으며 백성들을 설득하려고 했다. 생각해보면 누가 갑자기 옷을 찢으면 갑분싸가 될 것 같다. 갈렙과 여호수아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요지는 아주 간단하다. “꾸짖을 갈!”이 아니라 “임마누엘!”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렸겠냐!”였다. 이집트를 떠나 이곳까지 온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있어서 가능했는데, 이제 와서 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약속의 땅을 주실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을 선포한다. 그러니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에 있어서 물러서지 말자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밥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우리의 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자신감의 근거는 여호수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포하니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는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죽이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마치 다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한다.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다수의 결정이 하나님이 뜻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각별히 조심해야하는 것은 우리는 다수의 결정이라 해서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럴 때에 가장 절실한 것은 그들을 설득시켜 바른 결정을 내리게 할 수 있는 리더들이다.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와 갈렙 이렇게 네 명과 지금 이스라엘의 200만명의 관점의 차이로 서로 대립하고 있다. 우리는 다수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의 가치와 반대되는 것을 주장할 때 당당하게 “NO”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말도 안되는 모습을 보고 매우 화가 나셨다. 이집트에서 1년, 그후 광야에서 1년 이상을 하나님이 이들과 함께하시면서 얼마나 많은 기적을 베풀어 주셨는지 성경에 세세하게 기록되어있다. 지금 이 순간까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보살핌 때문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백성이 어떻게 황량하고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먹고 마실 것을 구할 수 있었겠는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시고, 바람을 일으켜 메추라기를 보내주시고, 바위에서 물을 나게 하셔서 이스라엘이 살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면서도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서 깨달아야 한다. 기적은 결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만약 기적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변화되어 있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하여 결국 이렇게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했던 출애굽 1세대는 모두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약속을 의지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상상을 뛰어넘는 말도 안되는 승리를 경험하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다. 그 모든 승리의 이야기가 여호수아서에 담겨있지 않는가?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치셨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여러분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 줄 아는가? [사진] 이정도 크기이다. 제자들이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을 것도 아니다. 그 믿음을 사용할 줄 모르는 것이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고, 그 믿음을 통하여 성령님이 말씀을 깨닫게 해주신다. 우리가 믿음을 사용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첫 번째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가능하면 암송하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 돈을 많이 쓰고 싶으면 무엇을 많이 가져야 하는가? 돈을 많이 가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믿음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말씀이 내 안에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한다. 내 머리 속에, 말씀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근거가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니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과 삶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믿음을 사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두 번째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믿음으로 승리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과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은혜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두 가지 모두 잊어버렸기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도 무너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뜬 것 또한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의 생명을 허락하셨기에 우리가 숨을 쉬고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느낄 수 있을진 몰라도 누군가에겐 오늘의 하루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하루라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한다” 전도사님도 기도할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며 기도한다.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도 예레미야 33장 3절의 말씀을 암송하며 기도한다.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할 때, 당장의 상황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훗날 인생을 살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하나님이 왜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는지를 깨닫게 해주신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각자 자신이 어떤 환경에 있든지 어떤 모습에 있든지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분이시라는 임마누엘이심을 기억하시라. 믿음으로 플렉스하는 인생은 처음에는 어색하고 왠지 어려울 것 같은 것 같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대단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엄청나게 큰 믿음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 귀를 기울이고 그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신뢰하며 이해가 되지 않아도 순종하는 삶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그러니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성령을 읽고 하나님의 약속와 은혜를 기억하며 그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함으로 순종의 삶을 살아내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어가길 축복한다. 진짜 믿음은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잊으면 장애물이 커 보이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의 믿음이 커진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