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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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5:1-7]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선생님들께서 든든히 예배의 자리를 지켜주신 덕분에 마음편히 6박 8일의 일정으로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을 잘 다녀왔습니다. 아내를 예뻐해주시는 몇몇 만학도 전도사님들이 계셔서 여행 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신혼여행으로 발리를 간다고 하자, 그곳은 우상숭배가 많은 곳이다. 가면 영적 전쟁을 치뤄야한다.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정말로 어딜가든 힌두교의 수많은 우상들이 즐비해있었습니다. 시바, 크리슈나, 가네샤 등등 이름은 들어본 신들도 있었고 정말 다양하게 수천개의 우상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아 신혼여행지를 조금 잘못왔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며칠 지내며 몇몇 가이드나 혹은 현지인들과 조금씩 대화를 해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참으로 놀랐던 것은 그들이 “크리스챤” 혹은 “처치”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겁니다. 제 발음 탓이 아니었어요. 핸드폰으로 직접 써서 보여줘도 이해를 못했어요. 비록 수많은 서양인 관광객들이 그곳을 점령하고 있으나, 정작 그곳의 현지인 중 90%가 넘는 사람들은 힌두교를 믿고, 믿어왔기 때문에 전혀 기독교를 접해보지 못한 것이었어요. 참으로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 그날 저녁 저희는 그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우상이 너무 많아서 조금은 마음의 거리를 두고 시작한 여행이지만, 알면 알수록 이곳에 이들이 참으로 불쌍하다. 과연 주님을 알지도 못하여 잡신이나 섬기고 있는 이들을 보며 하나님은 진노하실까? 아니면 불쌍히 여기실까? 그 땅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가득차길 함께 기도했습니다.
오늘 설교시간은 누가복음 15장의 잃은 양을 찾은 목자 비유와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 비유를 함께 전하게 됩니다. 본문은 사회에서 멸시받고 소외받던 세리와 또 죄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곁에서 함께 음식을 먹으며 자리하고 있는 예수님도 함께 그려지고 있습니다. 또 그런 모습을 보며 모세의 정결법을 따르지 않고 죄인을 곁에 두었다며 수근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비유를 들려 주십니다.
한 목자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를 잃으면 너희는 아흔 아홉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을 찾아나서지 않겠느냐? 질문하십니다. 그리고 그 양을 찾아냈을 때에 그를 어깨에 메고 돌아와 잔치를 벌이며 기뻐하지 않겠느냐? 물어보십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죄인 한사람의 회개를 위하여 오셨음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들으면 마치 내가 주님을 잃었다가 다시만난 그 길 잃은 어린양처럼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잃은 양을 찾아 목자가 떠나버린 그 들판에 남겨진 아흔 아홉마리의 양중 하나처럼 느껴지십니까? 그러나 오늘 주님은 그 모두가 아닌 여러분을 이 목자의 정체성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 목자가 너희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주님은 그렇게 물어보고 계십니다.
여전히 길 잃은 어린양에 머무르지 말고, 혹은 그들을 보며 시기하는 유대인들과 같이 되지말고 이들 모두를 보며 사랑하고 섬기는 그 목자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직 잃은 양일 때에,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따뜻하게 안아주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들판에 남겨진 아흔아홉마리의 양일 때에, 그가 베푸신 모든 푸른 초장을 누비며 평안함과 자유함을 누릴 수 있던 주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닮아 그 사랑으로 맡겨진 모든 양들을 돌보는 목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선교주일로 ‘스위스’에 대하여 배우게 됩니다. 스위스하면 너무나도 아이러니 하실겁니다. 저 또한 그랬어요. 너무나도 잘 사는 나라고, 무엇하나 걱정과 염려가 없을 것같은 나라인데 우리가 왜 그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가? 또 스위스는 우리 개신교에게 너무나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 나라입니다.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은 바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운동을 했던 ‘장 깔뱅’의 신학적 토대위에 세워졌습니다. 또 양대산맥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칼뱅보다 앞서서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츠빙글리’ 역시 스위스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런 개신교의 발생지라 할 수 있는 스위스에는 급격한 속도로 잃은 양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 개신교 49%, 가톨릭 47%로 거의 모든 인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던 곳입니다. 그런데, 비교적 가톨릭은 여전히 34%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개신교는 22%로 크게 급락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제 무신론자의 비율이 31%나 된다고 하죠.
오늘 주님과 같은 목자의 심령으로 부름받은 우리는 이땅 곳곳에 잃어버린 영혼들을 바라보며 애통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도 그 사랑을 전하며 살아가는 우리 유치부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