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를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
Notes
Transcript
프랑스의 소설 레미제라블에 자베르 라는 경감이 나옵니다. 소설에서 그는 엄격하고 순수한 양심을 지녔다고 묘사가 되는 인물 이죠
그는 장발장을 쫓아다니며 극의 긴장도를 높여주고 장발장의 죄가 계속해서 그를 쫓아가는 것만 같은 기분을 들게 합니다.
자베르 경감의 시선에서는 장발장은 잡아야 하는 범죄자이고 사회의 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장발장이 회개하고 삶이 바뀌더라도 아무리 기부와 사람을 돕더라도 그의 눈에는 장발장의 본질이 악한으로 보였던 겁니다.
사람들의 시선
사람들의 시선
이렇게 우리들은 스스로의 판단으로 가장 합리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 봅니다.
예수님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는 말씀에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5: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아이가 죽은걸 우리가 알고 울고 있는데, 이 사람은 그 아이가 죽기는 커녕 자고 있다고 합니다.
선지자 같은 양반이 아이가 죽었는지도 자고 있는지도 분간이 안되는 거죠. 심지어 시간도 제때 맞추지 못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우리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기본적 사고는 합리성에 근간하고 있을 확률이 높죠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믿기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논리와 증거를 통한 과학적 방법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 자고 있는 이 소녀를 현대 의사가 진찰했어도 분명히 죽었다고 이야기 했을겁니다.
드라마나 영화에 의사들이 사망선고하는 장면 다들 아시죠. 이 소녀를 보았다면 사망선고를 하고 얼굴을 가려줬을 겁니다.
아무도 그 소녀가 자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에요.
우리는 심장이 뛰고 뇌가 활동을 하면 생명이 살아있다고 이야기를 하죠. 심장이 멈추고 뇌가 활동을 안하는 사람을 살아있다고는 절대로 안할 겁니다.
그게 우리들의 시선 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예수님 처럼 이 세상을 이면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보이는 것 안에서 해결 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가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보았을때를 보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가 보이죠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보고 생각합니다. 이야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구나!
우리는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영적인 전투를 보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보기고 추축만 하죠. 그리고 선악과의 결과는 여러분도 알다싶이 하나님과 끊어지게 되는 사건 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시선
그리스도의 시선
그럼 오늘 예수님은 자고 있다고 하는데 무엇을 보신것 일까요?
예수님은 영적인 눈을 통해 그 소녀를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 소녀가 잔다고 하셨고
‘달리다굼’ 하시며 소녀야 일어나라 하시며 아이를 깨우 십니다.
예수님의 시선을 나타나는 현상에 있지 않으셨습니다. 영적인 눈을 통해 이 일의 본질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위해 어떤 영광을 준비하셨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니 이 소녀는 죽음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광에 속했기 때문에 자고 있는 것 입니다.
예수님이 불러 일으키시면 일어날 거거든요.
우리도 많이 경험하고 있지 않아요? 아침에 알람에도 못깨면 어머니가 와서 일어나서 학교가라고 깨우지 않습니까?
오늘도 쉬는날이라 더 자고 싶은데 어머니의 호통소리로 깨어난 친구들이 있지 않나요?
우리를 깨우시는 어머니가 자고있는 우리들을 보면서 죽었다고 확신할까요? 아니죠? 자고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예수님의 시선에는 본질이 보였습니다.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보였습니다.
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여러분 아시나요? 나사로의 부활사건이죠
예수님이 죽고 나흘이 지난 나사로를 무덤앞에서 부르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기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 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왜 우셨을까요? 소녀때는 잔다고 하셔놓고 어짜피 나사로도 다시 살리실꺼면서 말이에요
예수님의 슬픔은 죽었다고 생각되는 나사로가 아니라 그를위해 울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거 였어요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통곡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믿음이 예수님을 슬픔에 빠지게 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 말을 믿지 못하는 여기 있는 사람들을 보고 그리고 우리들을 보고 우시는 겁니다.
우리의 시선을 그리스도의 시선으로
우리의 시선을 그리스도의 시선으로
사랑하는 중등부 여러분, 오늘 우리의 눈과 예수님의 시선이 얼마나 다른지 보았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세상을 봅니다. 다른 사람의 과거의 죄를 보고 단정짓고, 하와처럼 당장 먹음직 스러운 것을 보고, 오늘 이야기의 사람들 처럼 ‘죽음’이라는 현상만 보고 비웃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시선을 하나님의 영광에 고정 시켜 놓으십니다. 생명을 보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현상’만 보는 좁은 시선에서 벗어나서, 예수님 처럼 ‘본질’을 보는 넓은 시선을 가질 수 있을까요?
바로 ‘비웃는 자리’에서 벗어나서 ‘예수님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가장 먼저 무엇을 하셨는지 이곳에 나옵니다. ‘죽었다’고 단정 짓고 비웃는 무리들을 다 내보내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스도의 시선’을 갖기 위해서는 비웃는 세상의 소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먼저 분리 해야 합니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에게 영원한 죄인이라고 속삭이던 자베르의 말보다.
은식기를 훔쳤지만 용서하고 감싸준 미리엘 주교의 용서가 그를 바꿔 놓았습니다.
성도는 우리를 세상에 묶어놓으려고 하는 사단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의 소리에 집중 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웃는 자들을 내보내신 후, 오직 아이의 부모와 제자들만 데리고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
그 말을 듣고 소녀는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과 일치되기를 원한다면 유일한 방법은,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에 온전히 의지하는 것 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죽은 것’처럼 보이는 문제가 있나요? 성적이 친구관계가 가정의 상황이 절망적으로 보입니까?
그 현상을 보고 비웃고 절망하지 마세요 대신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과 함께 기도의 방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그분의 음성을 듣고 의지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디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습니까? 현상입니까? 신앙입니까?
현상, 세상의 소리들은 사망선고를 내리지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새로운 생명을 선포하십니다.
성도는 예수님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끝까지 의지하고 믿는 사람입니다.
죽음이 아니라 부활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중등부 여러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좁히지 마십시오.
안된다. 틀렸다, 죽었다고 말하는 세상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너 넓게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놓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이렇게 주님의 손에써 빼앗길 수 없는 세상이 아닌 주님의 약속을 붙드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기도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가장 귀한 생명을 허락하시고 오늘 이시간까지 모든 것을 채워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죽음이 아닌 생명을 절망이 아닌 희망을 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을 알아갑니다.
이제 우리의 좁은 시선을 버리고, 예수님의 시선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시고 죽음이 아닌 생명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비웃는 소리들로부터 떠나, 오직 주님과 함께 동행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세상적 문제들을 바라볼때에도 죽은 것처럼 보이는 모든 상황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일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며 희망을 선포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소리가 아닌 주님의 약속을 붙드는 우리 중등부 모든 지체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시고 그 손에서 결코 빼앗기지 않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봉헌기도
봉헌기도
만물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가장 귀한 생명과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오늘 생명을 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선을 배우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감사의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예물을 올려 드리오니 주님 기뻐 받아 주옵소서
주님 이 예물이 쓰이는 모든 곳마다 죽은 것과 같은 절망이 사라지고, 예수님의 생명과 희망이 선포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예물을 드리는 모든 손길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우리 중등부 모든 친구들의 삶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세상의 유혹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동행하는 거룩한 청지기로 자라게 하옵소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