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기초: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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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여러분 결혼이 무엇일까요?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결혼을 바라보는 관점은 달라질 것입니다.
만약 결혼을 사람이 만들어낸 제도라고 생각한다면, 그 관점으로 결혼을 바라볼 것이고, / 반대로 결혼이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제도라고 생각한다면, 그 관점으로 결혼을 보는 방식과 태도가 결정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떤 제품을 샀을 때 메뉴얼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메뉴얼 대로 제품을 다루어야 그 제품이 잘 작동하겠죠. / 만약 메뉴얼을 무시하고, 내 맘대로 사용한다면, 그 제품은 용도와 다르게 쓰이서나, 망가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결혼이 무엇인지, 그리고, 결혼을 잘 누리려면 결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어떠한 목적과 방법으로 결혼을 만드셨는지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의 매뉴얼이죠 / 성경이 말하는 결혼의 기초가 되는 세 가지 원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 첫번째는 결혼이 무엇인가에 대해, 두번째는 결혼의 목적, 세번째는 결혼의 우선 순위입니다.
아마 여러분 대부분은 나는 어떤 배우자를 만나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 그런데, 이 고민은 결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된다면, 누구를 만나야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생길 것입니다.
기대되나요? / 벌써부터 여러분들의 눈이 반짝거려서 부담이 되는데, 옆사람 보며 이렇게 고백합시다 / “평소에 그렇게 설교 들어야지”
그렇다면 첫번째 결혼의 본질입니다.
결혼이 결혼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만약 누군가 목사의 본질이 무엇인가요 물었는데, 목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목사라고 대답한다면 어떨까요? / 틀린 말은 아니죠 / 하지만, 완전히 맞는 대답도 아닙니다. / 왜냐하면, 목사 가운 입는다고 목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그렇게 친다면 전 목사가 아니겠죠.
이러한 관점으로 결혼을 들여다 봅시다 / 여러분, 결혼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결혼을 감정적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사랑과 애정을 느끼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이죠.
또, 어떤 사람들은 “아니야 결혼은 좀더 현실적인 것이야. 결혼은 자녀를 낳고 가정을 세우기 위한 제도야”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결혼은 성적인 끌림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결혼의 본질은 아닙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감정적인 사랑이 결혼이라면 / 물론 감정은 결혼의 일부이긴 합니다만, 동물들도 감정적인 사랑을 합니다.
말이 좀 그런데, 개 같은 동물은 어떻죠? / 인간을 향한 엄청난 충성과 애정을 가지고 있죠. / 인간과 개는 서로 교감하며 서로 애정하며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목사 가운을 입었다고 다 목사가 아니듯이, 감정적인 것만이 결혼일 수는 없는 겁니다.
제가 결혼한지 17년차 되었는데, 아내를 보고 가슴이 뛸까요? 안뛸까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자녀를 낳아 가정을 세우는 것이 결혼의 본질일까요?
여러분, 토끼들도 그걸 합니다. 우리보다 훨씬 잘해요 /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이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성적인 끌림이냐. / 그것만으로 결혼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죠. / 성경은 성이 결혼의 본질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결혼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아마 여러분이 기대하는 답변이 아닐 겁니다. 그리 낭만적이지 않게 보이거든요. / 결혼의 본질은 언약입니다. 공적인 약속이에요.
여러분, 결혼식 때 결혼 서약을 할 때 어떻게 하죠? /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강건하거나 병들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게 되는 모든 경우에도 / 서로 사랑하며 살기로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서약합니다”
결혼 서약은 감정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 오히려 “감정에 상관없이 이렇게 행동하겠다”라고 말하죠.
이 서약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 법적인 계약이죠 / 이것이 바로 결혼의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결혼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여러방식으로 결혼의 목적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가장 정확한 건 근원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라고 말씀하시죠. / 성경에서 좋다 좋다 하다가 처음으로 좋지 않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여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보시고 그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결혼을 창조하셨습니다. / 아담이 하와를 보고 이렇게 노래합니다. 최초의 세레나데죠.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 고백은 이런 고백인 겁니다 / “당신은 나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성경은 아내를 가리켜 “헬퍼” / “언약의 동반자”라고 부릅니다 / 이것은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지고, 좋은 동반자가 되어 주는 것, 이것이 결혼의 목적입니다. / 결혼의 목적은 우정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우정이 좋고, 친구관계가 좋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로를 허물없이 보여줄수 있다는 겁니다. / 서로 재지 않아도 됩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나의 약점 얼마든지 보여줄수 있습니다.
서로가 깊이 이해하니깐요. 너무 좋죠 / 여러분 이것이 우정입니다.
더디사이플 친구 여러분, 저는 우리가 이러한 우정의 관계를 이루기를 축복합니다 /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세요.
자, 그렇기 때문에 결혼상대를 선택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 겁니까?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동시에, 나에게 스스럼없이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배우자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 이것은 다시 말해 서로에게 비밀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비밀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 저도 사역을 하다 보면 아내에게 모든 것을 다 얘기하진 않거든요.
하지만, 끝까지 숨기는 비밀이 있다면, 그 결혼관계는 굉장히 위험해 집니다. / 왜냐하면 결혼의 목적은 감정적으로 끌리고,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깊은 우정, 깊은 일체감, 완전한 동반자의 관계가 결혼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곧 결혼할 사람도 여기 있고, 앞으로 여러분 결혼하고 가정을 이룰텐데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부부는요 / 할 수 있는한 모든 것을 서로에게 오픈해야 합니다. 비밀이 없어야 되요.
왜냐하면, 그래야, 배우자를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배우자도 여러분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겁니다 / 깊이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인 것이죠.
그래서, 결혼을 했는데, 배우자보다 더 많이 비밀을 털어놓는 이성 관계가 있다? 굉장히 위험하죠.
특별히 사역자들이 이 부분을 주의해야 합니다 / 앞으로 여기서 사역해야 될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얘기합니다.
여러분, 제가 오랜 시간동안 청년사역을 하며 제 나름의 원칙이 있는데요. 첫째, 절대 자매들한테 터치나 스킨십 하지 않는다 둘째, 필요 이상으로 사적인 이야기, 내 힘든 감정을 개인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 물론 이게 절대원칙은 아닙니다. / 사역자마다 다를수는 있는데, 저의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저에게는 필요한 원칙을 정한 겁니다.
누군가는 말할지 모릅니다 / 아니, 내 마음을 솔직하게 열어서 서로 깊이 이해하는게 무슨 문제냐.
문제죠. 이미 결혼한 사람은요. 성적인 문제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사람과 잠자리를 하지 않았는데, 성적으로 잘 맞는지 어떻게 알죠?”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性)은 ‘좋은 의사소통의 결과’이지, 그 반대가 아닙니다.
좋은 성생활은 좋은 대화에서 비롯되지, 좋은 대화가 좋은 성생활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성적인 문제는 사실 대화의 문제입니다.
서로 말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벗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적으로 서로에게 ‘벌거벗을 수 없다면’, / 육체적으로도 ‘벌거벗는 자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럴 때 유머를 잃게 되고,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건강한 성은 웃음과 여유가 있는 관계에서만 가능합니다.
성은 진지하고 무거운 ‘성과(成果)’가 아닙니다. 즐겁고, 가볍고,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벗겨질 때만 육체적으로 벗을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적으로 잘 맞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정말로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인가?”입니다.
“서로에게 완전히 취약한가?”, “정말로 이해받고 있는가?”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말씀처럼, 깊은 동반자 관계, 깊은 하나 됨입니다.
4️⃣ 결혼의 우선순위 (14:19–16:55)
14:19
마지막으로, 결혼의 우선순위(priority) 입니다.
결혼은 다른 어떤 제도와도 다릅니다.
학교는 좋은 제도지만, 인생의 ‘최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관계는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둘째, 배우자와의 관계입니다.
14:39
즉, 결혼은 인간 관계 중 최우선이어야 합니다.
결혼은 당신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힘을 가집니다.
15:10
제가 예전에 ‘결혼: 구속의 통로(Marriage: A Vehicle of Redemption)’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혼은 당신 인생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힘을 가진다.”
만약 결혼이 건강하다면, 나머지 모든 것이 약해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은 세상 속으로 ‘강한 사람’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15:37
그러나 반대로, 결혼이 약하다면,
직장이나 인간관계, 명성, 모든 것이 잘 되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은 세상 속으로 ‘약한 사람’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만큼 결혼은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은 반드시 인생에서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15:58
그 이유는, 결혼은 —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외하면 —
당신의 ‘자기 인식(self-appreciation)’을 재구성할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모두가 당신을 못생겼다고 말해도,
배우자가 “당신은 아름답다”고 말하면, 당신은 정말 아름답게 느낍니다.
반대로 모두가 당신을 칭찬해도,
배우자가 “당신은 형편없다”고 말하면, 당신은 형편없다고 느낍니다.
16:27
결혼은 그런 힘을 가집니다.
이것이 결혼의 신비입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16:55
결혼은 철기 시대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창조 때부터 하나님이 새겨 넣으신 제도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화나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
결혼의 본질은 공적인 서약,
결혼의 목적은 깊은 하나 됨과 동반자 관계,
결혼의 우선순위는 인생 전체의 방향을 정하는 최고 자리입니다.
💍 결혼의 테스트: “그 사람은 당신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가?”
17:18
좋아요, 이제까지 말한 것을 바탕으로, 이런 내용들을 몇 가지 ‘테스트’로 바꾸어 봅시다.
참고로, 제가 제 사무실 직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결혼 상대를 알아보는 데 있어 제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두 가지 자료가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수많은 책들이 있고, 기독교 서점에는 관련된 책들이 아주 많을 겁니다. 제 추측으로는 아마도 그 서점들이 이런 책들로 가득 차 있을 겁니다.
17:43
하지만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준 두 가지 자료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Walter Trobisch가 쓴 I Married You라는 오래된 책입니다. 꽤 좋은 책이고, 유익합니다. 그리고 그 책 안에는 여러 가지 테스트에 대한 섹션이 있습니다.
또 다른 것은 제 친구 두 사람, Dave Pallison과 John Yinchko가 함께 만든 Should We Get Married? (우리 결혼해야 할까?)라는 짧은 핸드아웃입니다.
그것도 매우 유용합니다.
제가 사무실 직원들에게 미안한 이유는,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그 자료 복사본을 갖고 싶다”고 할 테고, 실제로 그것은 있습니다.
18:03
좋습니다, 첫 번째로 — 결혼의 목적을 테스트로 바꿔 봅시다.
첫 번째 목적은 이것입니다.
이 사람을 바라볼 때, 그(그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이 사람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상담자(counselor)’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입니까?
이 사람이 당신 인생의 ‘가장 좋은 친구(best friend)’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다른 누구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만큼의 친구 말입니다.
18:37
이제 제가 나중에 다른 부분에서 말씀드릴 것이 있는데, 어떤 분들은 결혼을 너무 두려워하고, 또 어떤 분들은 반대로 너무 쉽게 결혼하려고 합니다.
비록 이 관계가 그렇게 준비되지 않았음에도 말입니다.
수많은 경우에, ‘적절한 이미지’를 갖춘 사람, ‘좋은 배경’을 가진 사람, ‘괜찮은 연결고리’를 가진 사람, 겉으로 봐서 괜찮아 보이는 사람에게 끌리곤 합니다.
우리가 말하길, “사랑에 빠졌다”고 하는데, 그건 단지 ‘매혹(infatuation)’된 것이며, 단순히 강한 호감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과는 결코, 어떤 면에서도 진정한 ‘최고의 친구’가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19:06
그래서 “이 사람이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인가?”라는 질문을 할 때, 몇 가지 하위 질문이 있습니다.
자, 첫 번째 항목(A) 아래의 하위 질문입니다.
1️⃣ 하위 질문 A: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입니까?
19:37
보시겠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반드시 그리스도인과 결혼하라”입니다.
그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아주 타당한 조언입니다.
모든 종교가 항상 그렇게 말해왔고, 그 안에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가톨릭은 “가톨릭과 결혼하라”고 했고, 유대교는 “유대인과 결혼하라”고 했으며,
이슬람도 “무슬림과 결혼하라”고 했습니다.
20:03
그럼 그들은 모두 편협한 사람들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매우 실질적(practical)일 뿐입니다.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두 사람이 결혼할 때 나타나는 온갖 문제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질문을 이 항목 아래에 넣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리스도인인데, 그 사람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물론, 성경 고린도후서에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20:31
역사를 돌아보면, 왜 그렇게 많은 종교들이 “같은 신앙의 사람과 결혼하라”고 했는지 명확합니다.
신앙의 불일치로 인한 갈등의 잔해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사람을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로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예수님이 당신 삶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결혼에서는, 상대방이 당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0:58
당신이 어떤 이유로 행동하고,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신 인생의 가장 큰 동기와 비전이 ‘예수님이 누구신가’와 ‘예수님이 당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가’에 있다면 —
상대가 “그건 네가 믿는 거지, 난 괜찮아. 가끔 교회도 같이 가줄게. 네가 좋아하니까 괜찮아.”라고 한다면,
그건 충분하지 않습니다.
21:20
만약 당신이 “그게 괜찮아요, 그래도 사랑하니까요”라고 말한다면,
그건 결국 ‘예수님이 당신에게 그렇게 중요한 분이 아니라는 뜻’이거나,
‘그 사람을 당신의 가장 좋은 친구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당신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어떻게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21:46
아니면 당신이 여전히 옛날식 모델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즉, 결혼상대는 ‘팔에 끼고 다닐만한 사람’, 여자는 “좋은 집안, 안정된 사람”, 남자는 “자랑스러워할 만한 외모의 아내”를 찾는 식이죠.
그런 결혼은 전통적인 결혼관입니다.
22:06
그리고 실제로 감정적 교류나 깊은 대화는 다른 사람에게서 찾습니다.
이런 결혼은 **기능적으로도 불건전(dysfunctional)**하고, **성경적으로도 가짜(counterfeit)**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 아닌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건 당신이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22:29
당신의 가장 좋은 친구들이, 만약 예수님이 당신 삶의 중심이라면,
그 또한 같은 중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걸 알 것입니다.
이게 바로 복음을 통해 얻는 엄청난 이점 중 하나입니다.
겉보기에는 단점처럼 보여도 말이죠.
많은 사람들이 신앙 상담 중에 이렇게 묻습니다.
“기독교인이 되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23:00
놀라울 정도로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 맞습니다.”
짧은 대답과 긴 대답이 있는데, 짧은 대답은 “맞습니다.”
기독교인이 되면, 그렇습니다.
23:23
그러면 사람들은 “그럼 결혼 상대의 폭이 너무 좁아지네요.”라고 말하죠.
하지만 사실 그건 당신의 결혼에 대한 이해를 깊게 만들어 줍니다.
결혼을 피상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죠.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23:42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재미있는지, 함께 춤을 잘 추는지 —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짜 중요한 건 “나와 영적으로 깊이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인가?”입니다.
이 기준은 당신이 단지 ‘좋은 결혼’을 원하더라도 마땅히 가져야 할 기준입니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이건 당신을 깊이 있는 관계로 이끌도록 강제합니다.
2️⃣ 하위 질문 B: 서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가?
24:06
그래서 첫 번째 질문은 “이 사람이 나의 참된 상담자이자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가?”이고,
그 첫 번째 하위 질문은 “이 사람이 그리스도인인가?”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을 당신처럼 우선순위로 두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배제되어야 합니다.
24:25
왜냐하면, 당신은 단지 ‘연인’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진짜 ‘친구’를 원하십니까?
연인인데 친구가 아닌 관계가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건 결코 좋은 게 아닙니다.
24:37
그리고 두 번째 하위 질문입니다.
서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
즉, 당신들은 성경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24:50
서로의 갈등, 마찰, 대립의 과정을 거치면서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된 경험이 있습니까?
상대가 당신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면서, 처음엔 불편했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당신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킨 적이 있습니까?
당신도 그 사람을 그런 방식으로 돕고 있습니까?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함께 성숙해가는 관계입니까?
🕊️ 결론적으로:
결혼의 첫 번째 기준은 “이 사람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는가?”이며,
그 질문 아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중심에 두는가?
우리는 서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가?
물론입니다. 아래는 요청하신 대로 —
① 최대한 직역체,
② 시간 코드 유지,
③ 의미 단락별 소제목 추가,
④ 중간 끊김 없이 전체 연결 — 형식으로 정리한 번역입니다.
💍 결혼의 테스트 1: “그 사람은 당신의 친구가 될 수 있는가?”
25:21
서로를 날카롭게 세워 주고 있습니까?
서로 만나기 전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되었습니까?
혹은 반대로, 이 관계가 당신을 지치게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함께 해결한 문제의 목록이 여기 있어요.
그(그녀)가 나를 이렇게 변화시켰고, 나도 그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켰어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 목록을 만들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점점 더 강해지고, 그 사람이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느낍니까?
🧩 친구의 자질 – 서로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사람인가
25:51
예를 들어, 당신은 이 사람 안에서 다음과 같은 특성들을 발견합니까?
그리고 기억하세요 — 이런 특성들은 항상 ‘친구’에게서 발견되는 것들입니다.
이 사람은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유연합니까(adaptable)?
당신의 필요를 알아차리고, 당신의 바람(desire)을 이해할 줄 압니까?
이 사람은 사랑을 줄 줄 알고 받을 줄 아는 사람입니까?
자신을 이해시키고, 또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이것들은 모든 종류의 우정 속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 결혼은 ‘우정의 극대화’여야 한다
26:19
그렇다면 이러한 요소들이 결혼이라는 관계 속에서는 5배, 10배 더 강하게 존재해야 합니다.
이건 생각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정말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단지 그(그녀)가 당신 눈에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당신의 기준에는 “외모가 안 맞는” 것뿐이죠.
그래서 당신의 결혼 상대 선택의 폭이 그렇게 극도로 좁아진 것입니다.
🪞 성경적 결혼 vs 세상적 결혼관
26:49
왜냐하면 당신은 지금 “성경적 결혼”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세상이 말하는 맞춤형(designer) 배우자” 개념과 결합시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멋지고 완벽한 사람을 원하면서, 동시에 성경적인 배우자를 찾는 것이죠.
그 두 가지를 합치려고 하면, 네, 가능성은 매우 좁아집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을 수도 있고,
그래서 당신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 진정한 친구 관계의 본질: 같은 비전과 사랑
27:16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이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될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친구란 반드시 같은 비전(same vision) 과 같은 사랑(same loves) 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물론 두 사람이 항상 똑같은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공통의 중심(common center) 이 있어야 합니다.
27:31
C.S. 루이스의 책 『네 가지 사랑(The Four Loves)』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 가지 사랑이 있죠 — 애정(affection), 에로스(eros, 성적 사랑), 우정(philia), 헌신(agape).
그는 이렇게 구분합니다.
‘애정’과 ‘에로스’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을 그려야 합니다.
하지만 ‘우정’을 그린다면, 나란히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을 그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 진짜 친구란, 함께 더 큰 것을 바라보는 사람
27:43
즉, **친구란 둘 다 함께 바라보는 ‘무언가 더 큰 것’**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무엇’은 두 사람의 관계보다 더 크고, 더 중요합니다.
28:08
만약 당신이 이렇게 말한다면 —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에요.
영적인 열정(spiritual passion)은 없지만,
우린 정말 재밌게 놀아요.
관심사도 다르고, 비전도 다르고, 삶의 방향도 다르지만
춤도 잘 추고, 서로 끌림도 강하고,
성적인 화학반응(chemistry)도 완벽해요.”
28:33
그렇다면 그 사람과는 아무 관계도 맺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건 우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반드시 두 사람이 함께 바라보는 어떤 ‘공통의 중심’을 가져야 합니다.
🧭 결혼의 테스트 2: “당신들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28:49
성경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좋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테스트입니다 —
“이 사람이 내 친구이자 동반자가 될 수 있는가?”
이제 두 번째 테스트로 넘어갑시다.
두 번째 테스트는 우선순위(priority) 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몇 가지 하위 질문(sub-questions)을 드리겠습니다.
🚦 같은 방향으로 가는가? – 부르심의 조화
28:59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단순히 ‘영적으로 같은가’가 아닙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우리의 부르심(callings)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 부름받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듯, 하나님은 사람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소명과 사명을 주십니다.
서로 다른 직업, 장소, 역할,
하나님 나라의 사역 안에서 각기 다른 부분을 맡게 되는 것이죠.
29:31
여러분 중 어떤 사람은 도시형 인간(urbanite)이고,
어떤 사람은 도시 생활을 싫어하며 그 환경에 머물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교사가 되고 싶어 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등 교육을 많이 받도록 부름받았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9:52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부르심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부르심은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비록 두 사람이 모두 그리스도인이고,
문제를 성경적으로 해결할 줄 알고,
기독교적 성숙을 갖추었더라도,
부르심의 방향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 떠남과 연합 – ‘Leave & Cleave’ 질문
30:15
예를 들어, Dave Powliso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떠남(Leaving)과 연합(Cleaving)’에 관한 질문 세트가 있다.
그가 말하는 의미를 설명하자면,
“인생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은사와 사역의 관심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까?
서로 기쁘게 나란히 걸어갈 수 있습니까?
30:36
제가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 자주 보았던 예가 있습니다.
어떤 남학생이 “저는 목사가 될 사람인데,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여자는 “저는 목사 아내가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때 남자가 “괜찮아요, 당신은 내 ‘사역’을 결혼하는 게 아니라, ‘나’를 결혼하는 거예요.”라고 하죠.
그럴 때 저는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순진한 말이에요, 친구.
왜냐하면 당신은 ‘사역’을 포함한 전인(person) 과 결혼하는 거예요.”
30:59
당신이 변호사와 사랑에 빠진다면, 당신은 ‘변호사’와 결혼하는 겁니다.
“나는 법률 사무소랑 결혼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랑 결혼하는 거야.”라고 말할 수 없죠.
그 사람은 ‘변호사’인 자신을 포함해 하나의 존재입니다.
따라서 이런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 현실적인 질문들 – 돈, 교회, 가정
31:18
당신의 재정적, 물질적 기대 수준은 어떤가요?
사람마다 부르심이 매우 다릅니다.
어떤 경우엔, 어떤 사람은 **‘자발적 가난(voluntary poverty)’**으로 부름받기도 합니다.
그건 인색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그런 삶의 자리로 부르신 것입니다.
31:31
또한, 교회 참여 수준은 어떻습니까?
한 사람은 어떤 교회 전통에 속해 있고,
다른 사람은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가진 교회로 부름받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남녀의 역할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31:45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그 문제에 대한 당신의 이해는 무엇입니까?
그건 미리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문제에도 여러 ‘부르심의 형태’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건 “한 가지 방식만이 정답”이 아닙니다.
이건 또 다른 강의의 주제가 되겠지만,
핵심은 — 그 차이를 반드시 이해하고 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결혼생활의 방향: 가정, 자녀, 부모
32:11
얼마나 많은 자녀를 원합니까?
자녀를 원하지 않습니까?
이것도 ‘부르심’의 차이입니다.
또, 부모님과의 관계는 얼마나 가깝게 유지하려 합니까?
그들의 삶의 방식에 얼마나 영향을 받을 것 같습니까?
32:35
만약 배우자가 “우리 부모님이 살던 방식이 바로 우리가 가정을 운영해야 할 방식이라고 느껴요.”라고 말한다면,
그게 어떤 의미인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건 결코 사소한 이슈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결정하는 진짜 문제들입니다.
💬 마무리 – 다시 첫 번째 테스트로 돌아가며
32:52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첫 번째 테스트(동반자 관계)에 대해 제 아내 캐시(Kathy)가 와서 조금 보충할 겁니다.
“이 사람이 진정 나의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이것이 결혼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좋습니다. 위에 올려주신 영어 원문(32:58–44:44 구간)을
1️⃣ 최대한 직역체로,
2️⃣ 시간 코드 포함,
3️⃣ 소제목을 적절히 추가해,
4️⃣ 중간에 끊지 않고 전체 번역
형식으로 정리해드리겠습니다.
💍 세 번째 테스트: 결혼의 본질과 감정의 역할
32:58
두 번째는, 여러분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결혼의 본질입니다.
결혼의 본질은, 교회와 국가, 가정의 모든 권위 구조 앞에서, 그리고 모든 친구들 앞에서 서서 —
서로에게 사랑하고, 신실하고, 섬기고, 온유하고, 다정하게 하겠다고 약속하며 법적으로 자신을 묶는 것입니다.
33:27
그것은 여러분의 감정이 어떠하든지,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하든지 간에 평생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혼의 본질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를 그 정도로 사랑해서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과 결혼할 만큼 충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난 널 사랑하지만 굳이 결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냥 함께 살면 되잖아.”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말을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 “나는 너를 결혼할 만큼 사랑하지는 않아.”
33:57
“나는 너에게 그만큼 나 자신을 내어줄 만큼, 그만큼 헌신할 만큼, 그만큼 취약해지고 싶지는 않아.”
이 말이죠.
그러니까 세 번째 문제는 — 감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말한 모든 이유로 인해, 그것이 첫 번째는 아닙니다.
상대는 여러분의 가장 친한 친구여야 합니다.
부르심(소명)에도 조화가 있어야 합니다.
완전히 같을 필요는 없지만, 조화는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동반자 관계 속에서,
34:25
함께 영적 삶을 세워가며, 부르심을 구체화하는 과정 속에서,
점점 더 커져가는 애정, 욕망,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만약 그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그 이유는, 여전히 여러분의 감정이 옛날식 결혼관에 묶여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즉, “배우자는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 때문이죠.
“이 사람은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배우자처럼 생기지 않았어.”
“이 사람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아.”
34:52
이런 식으로요.
여러분의 마음과 감정이 그런 옛 결혼관에 너무 깊이 묶여 있어서,
그것이 여러분을 계속 뒤로 잡아당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그 이름대로 불러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직시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35:08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다.
이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의 오르내림은, 완전히 잘못된 동기나 병든 결혼관 때문임을 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35:23
반면에, 감정이 없는데 다른 모든 게 잘 맞는 것처럼 보일 때,
그 감정이 병든 옛 결혼관 때문이 아니라면,
그때는 이렇게 물어봐야 합니다.
“혹시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열정이나 감정이 부족한 이유가, 내가 잘 설명하지 못하는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닐까?”
35:46
“어쩌면 우리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우리의 부르심이 너무 다르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살펴봐야 합니다.
감정의 부족은, 아직 분석되지 않은 진짜 문제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멈추게 만드는 이유일 수 있죠.
💞 감정의 부재와 친구들의 조언
36:04
마지막 순간에 감정이 식는 것은 사실 드문 일이 아닙니다.
제 아내와 저는 이런 상담을 하면서 자주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 좋은 친구예요.
지금까지 사귄 사람 중 이 사람만큼 존경스러운 사람은 없었어요.
이 사람만큼 대화가 잘 통하고, 신앙이 깊은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을 사랑했을 때보다 덜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36:31
그럴 때는 이렇게 물어봐야 합니다.
“혹시 내가 예전엔 이런 좋은 사람들을 걸러내고,
그저 **‘나를 자극시키는 사람’**만 찾아다녔던 건 아닐까?”
그런 단순한 에로스적 매력으로는 2~3년은 버틸 수 있지만,
결국엔 사라집니다.
36:56
반면, 정말로 여러분을 불편하게 만드는 어떤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억지로 감정을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정직하게 그 문제를 분석해야 합니다.
그 과정은 어렵지만, 그럴 때 가장 필요한 건 —
너무 많지 않지만 의미 있는 수의 친구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37:26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여러분을 잘 아는 사람들이 “그래, 너희 둘은 서로를 성장시키는 것 같아.
서로의 부르심을 도와주는 좋은 관계야.”
이렇게 동의하지 않는다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테스트에서 — “이 사람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싶은데 왜 감정이 막히는 걸까?”
이럴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 헌신의 두려움과 믿음의 결단
37:52
특히 여러분이 이런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면요.
제가 지금 있는 곳이 맨해튼이죠.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20살 초반이 아닙니다.
대체로 성인들이죠.
38:10
혹시 여러분 중 어떤 사람은 이런 패턴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혼할 만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아무 문제가 없어 보여도 항상 얼어붙습니다.
이건 단순히 **헌신 공포증(commitment phobia)**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반복되는 패턴이죠.
항상 뭔가 핑계를 찾습니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 두려운 겁니다.
38:35
그럴 땐 이렇게 돌아봐야 합니다.
“결국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이 사람도 하나님을 믿는다.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내 감정을 눌러두고 나아갈 수 있다.”
이럴 때가 있습니다.
물론, 누군가가 “주님이 너희 둘이 결혼하라고 말씀하셨대!”라고 강요하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38:54
그런 일, 여러분도 들어본 적 있죠?
하지만 반대로, 매번 관계가 그 지점에서 멈춘다면,
그건 여러분이 “감정을 믿지 말고 행동해야 할 때”일 수 있습니다.
39:21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
이 사람과의 결혼이 괜찮을 것도 안다.
하지만 막상 그 벼랑 끝에 서면, 나는 얼어붙는다.”
이게 매번 반복된다면, 이제는 얼음을 깨야 할 때입니다.
“나는 매일 이 사람에게 열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다.
결단하면, 헌신하면, 감정은 따라올 것이다.”
그렇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39:47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수백 명에게 똑같이 조언하기는 어렵지만,
결국 결혼의 세 가지 테스트는 이것입니다.
동반자(companionship), 부르심(calling), 그리고 **헌신의 의지(commitment)**입니다.
“내가 그 약속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것이 핵심입니다.
(이제 제 아내가 보충할 차례인 것 같네요.)
💬 케시 켈러의 보충: 결혼의 두려움과 하나님의 은혜
40:06
저도 여러 가지를 말하려 했지만, 사람들이 질문하도록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마지막 주제 — “두려움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는 문제”에 대해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40:27
사실 이것은 신앙이 깊고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더 흔한 문제입니다.
그럴수록 ‘역효과(backlash)’가 생기죠.
지혜로울수록, 세상에서 나쁜 결혼을 더 많이 봤고, 좋은 결혼이 무너지는 것도 봤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사람,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혹시 나중에 망가지는 건 아닐까?”
40:53
“이제 막 차를 샀는데, 집에 가는 길에 고장 나는 건 아닐까?”
그런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계속 점검하고, 평가하고, 완벽히 판단하려 하죠.
모든 가능성을 제거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두려움에 머무르면 안 됩니다.
물론, 지혜롭게 분별하고 친구들의 조언을 구해야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해야 합니다.
41:21
결국 여러분은 죄인과 결혼하게 됩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죄인은 반드시 죄를 짓습니다.
언젠가는 상대가 여러분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 자리에 함께할 것입니다.
41:46
저도 한때는 평생 혼자 살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80살, 90살이 될 때까지 혼자면 어떨까? 얼마나 외롭고 쓰라릴까?”
그런 상상을 해보았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상상 속에 **“가상의 은혜(imaginary grace)”**를 주시지 않습니다.
42:10
즉, 여러분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암울한 미래”에는
그때 실제로 부어주실 하나님의 은혜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여러분은 “은혜 없는 미래”를 상상하며 두려워하는 것이죠.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은 이런 결점이 있어. 나중에 더 심해지면 어떡하지?”
42:32
이렇게 상상하지만, 하나님은 그 상상 속에
그때 주실 은혜, 지혜, 인도, 공급을 넣어주시지 않습니다.
그건 실제 상황에서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결혼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통해 자신의 백성과의 관계를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43:00
성경 마지막 장면을 보세요.
역사의 절정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결혼”**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결혼 안에 많은 은혜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43:26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 “이 사람이 괜찮은데 혹시 숨겨진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조금만 더 알아보자. 2년만 더 만나보자.”
이렇게 생각할 때, 기억하세요 —
하나님은 실제 결혼 속에서, 문제 속에서 은혜를 주십니다.
43:53
예수님은 “고난을 당할 때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결혼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 다음 단계
44:10
이제 잠시 멈추고, 사람들의 질문을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
“왜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은, 그리스도인을 잘 이해하지 못할까요?”
44:44
좋은 질문입니다.
신학자들이 ‘일반 은혜(common grace)’라고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유무와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지혜와 통찰의 선물을 나누어주신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다음 부분으로 연결됩니다.)
원하신다면, 다음 부분(44:44 이후)도 같은 형식으로 계속 번역해드릴까요?
오늘부터 몇주에 걸쳐 “모던 로맨스”라는 제목으로
결혼과 연애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시리즈 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사실 이 시리즈 설교를 ‘할까 말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설교자마다 자신이 자신있어 하는 주제가 있고, 또 자신없어 하는 주제가 있는데요.
제가 제일 자신없어 하는 주제가 바로 결혼과 연애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언젠가 해야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왠만하면 안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계속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는 워낙에 전문가이시고 탁월하신 장한섭 목사님께서 운영하고 계신
데이트학교와 결혼예비학교가 있기 때문에
제가 굳이 이 주제를 가지고 설교해야 될까? 그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결혼한지 15년 정도 되었지만,
솔직히, 결혼에 대한 지침을 줄 수 있을만큼 본이 될만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 같지 않아서 망설여졌습니다.
누군가 저희 부부에게 결혼에 대한 질문을 하면, 딱히 그렇게 해줄말이 없습니다.
저희도 헤매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위에 훌륭한 분들 많으니깐, 우리 말고, 그 사람들 얘기 들어라. 라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결혼설교는 피해가고 싶었는데, 여러분 그런거 있잖아요. 상황이 저를 몰아가는 거 있죠.
얼마전 요나를 설교했지만, 다시스로 도망가려는 저를 자꾸 니느웨로 이끄시는 듯 헸습니다/
요즘 왜 이렇게 연애 소식과 결혼 소식이 넘쳐나는지, 그리고 제가 첫 주례를 해야 하는 상황도 오고요.
또 생각해 보니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뜻깊은 순간은 출생과 결혼, 죽음인데
결혼이라는 중대한 변화를 앞두고 있는 여러분에게
‘최소한 성경에 기초한 결혼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가르쳐야 겠다”라는 마음이 들어서
더 이상 도망다니지 말고 이 주제를 설교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중에는 결혼을 하지 않고 준비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고, 결혼을 앞두고 있는 분들,
그리고, 결혼을 이미 한 부부들,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상황은 다르지만, 각 상황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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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교회에서 결혼에 대한 얘기를 하면, 시대착오적이고, 고리타분하고, 앞뒤가 꽉 막혀 있을 거라고 우리는 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엠지, 여러분 세대들은 다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비혼을 기본으로 하는 추세라고 하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적인 압박과 결혼을 하면 내 꿈을 이루지 못하다는 생각, 또, 결혼을 하면 불행질 것이다라는 것이 대표적일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고 말하니깐, 여러분에게 있어서 결혼은 어떻게 보면 부담이고, 스트레스고, 압박이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이 시간을 통해서 주위를 환기시키고,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가 그리고 여러분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결혼관이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질문을 다르게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굉장한 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여러 정보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결혼관에 더 노출이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과 미디어가 말하는 결혼에 더 노출이 되어 있습니까?
아마 여러분의 결혼관은 성경이 아닌 미디어 알고리즘으로 인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작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결혼에 대해서는 깊이 살펴보지 못했으면서 너무 한쪽으로 확증편향이 되다 보니깐,
성경적이고 전통적인 결혼관은 무조건 구닥다리고, 억압적인 것이고 각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죠. 인터넷에서 검증되지 않은 떠도는 정보를 가지고 단정 지어 버리는 겁니다.
저는 이게 결혼 뿐만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래서, 교회 열심히 출석하고, 신앙 있는 크리스천이지만, 완전히 세속적인 사고와 결혼관을 가지고 있어..! 이게 놀랄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모던 로맨스 시리즈를 통해 “진정한 로맨스는 무엇인지”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결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앞으로 보시면 알겠지만, 생각보다요.
성경의 가르침이 파격적이고, 설득렸있으며, 우리의 마음을 더 울린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꼭 결혼을 해야 하는가? 혼자 살면 안되는가?”라는 질문을 가지신 분들도 있을텐데, 성경은 결혼이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이고, 그래서 인류는 결혼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모두가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말고,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독신을 삶의 형식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 첫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예수님도 싱글로 사셨고, 사도 바울도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섣불리 여러분의 결혼관을 정해버리기 보단 성경이 말하는 결혼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먼저 깊이 살펴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수많은 뇌피셜로 난무한 / 1년만 지나도 없어질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말고
(그냥 참고 정도만 하고)
지금까지 인류의 삶을 인도한 수천년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을 통해 결혼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성경적인 결혼관에 입각해 연애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요. 이미 결혼한 분들에게는 보다 더 성경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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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중에 많은 청년들이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떻게 나한테 맞는 배우자를 만날 수 있을까, 어디에서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일 것입니다.
저한테도 많이 묻는 질문인데요. “눈에 불을 키고 찾아봐도 그 녀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교회 안에서 찾아야 되는건지, 교회 밖에서도 찾아도 되는건지” 아마 많은 분들이 궁금해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한테 이러한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내가 좋은 배우자로 준비될 수 있을까요?”
사실 결혼과 연애에 있어서 이 질문이 더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는 오늘 이야기는 하지 않고요. 다음주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평소보다 여러분 눈이 반짝 반짝 생기가 도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고 다음주에 결혼하기 전에 성장하기 위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요.
오늘은 기초를 다지기 위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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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결혼이 무엇일까요?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결혼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여러분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 연애를 하는 방식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써 결혼을 어떻게 보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결혼이 무엇이라고 생각할까요?
사회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시장이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원리가 너무나 강력해서 소비자 모델이 결혼을 비롯한 여러 관계들까지 파고 들었다고 말합니다. 공급자가 구매자에게 값을 받고, 구매자에게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이 거래의 관계는 역사상 항상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거래 관계는 누군가 더 낫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준다면, 기존의 거래관계를 유지할 의무가 없죠. 갈아타면 됩니다. 따라서, 거래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내 필요지 관계가 아닙니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단순히 계약 정도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유익이 되고, 나도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된다면, “오케. 계약완료” 이 관계가 유지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윤을 내지 못하고, 계속 나만 애정과 관심을 쏟아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거래 관계니깐 “손실을 줄이기 위해” 관계를 정리해 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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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창세기 2장 24절을 인용하시면서
“너희는 이것을 읽어보지 않았니?''라고 질문하시죠.
창세기 2장 24절은 성경에서 결혼에 관해서 가장 유명한 구절인데요.
“금방 없어질 떠도는 이야기 말고, 기록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너희는 읽어봤니?”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9장 4절 5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마19:5-6]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이 구절은 사도 바울도 인용한 구절이기도 한데요.
성경은 결혼이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정해진 것인데,
이것은 단순히 거래 관계 정도가 아니죠. 그 이상인 언약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합하다”라는 동사가 나오는데, 히브리 원어 의미는 무언가에 찰싹 달라붙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구속력이 있는 약속이나 맹세를 통해 누군가와 연합한다”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결혼은 언약 관계라는 것이죠.
거래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 언약관계도요. 인간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언약관계가 거래 관계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필요보다 관계를 우선시한다라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데요.
여러분, 부모가 어린 아기를 키을 때 엄청난 희생과 수고를 해서 키워도요.
이 녀석들은 돌려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저 받기만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법은 없습니다.
힘들고 보람이 없고, 나에게 유익이 되는게 하나도 없더라도 계속해서 베푸는 것이 부모입니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는 거래관계가 아닌 끝까지 책임지는 약속의 관계라는 것을
부모들은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거래 관계는 이익을 우선시하지만, 언약 관계는 관계를 중요시합니다.
결혼의 관계가 바로 이러한 언약관계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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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것을 한층 더 깊은 의미로 가져가게 되면요.
사람과 사람사이의 언약관계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간의 언약관계를 포함합니다.
[말2:14] …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
이 말씀에서 우리는 언약의 수평적인 측면과 수직적인 측면, 둘 다를 볼 수 있는데요.
“너와 서약한 아내” 남편과 아내의 수평적인 언약이죠.
그런데,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신다”라고 말합니다.
즉, 남편과 아내 사이의 언약은 하나님 앞에서 맺은 약속이므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기도 하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것이 결혼식에서 혼인 서약을 맺을 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부부로 맺어주신 줄을 믿고 /
성적 순결함으로 배우자를 대하며 / 사랑과 선행으로 남편과 아내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
그 누구보다 서로를 귀히 여기고 그의 인격을 존중하며 /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강건하거나 병들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게 되는 모든 경우에도 /
서로 사랑하며 살기로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확실히 서약하십니까?
그러면, 신랑와 신부는 “네”라고 대답을 하지만, 사실 이 대답은 상대방에게 하는 대답이 아니죠.
엄밀히 말해서 이 대답은 증인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하는 대답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 거룩한 언약이 서로의 사랑을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계약관계는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기초한 것입니다.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계약 사항을 넣고,
“이것을 행하면 나는 이 관계를 지키겠지만 / 이것을 행하지 않으면 나는 이 관계를 끝내겠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헌신과 책임을 제한합니다. 이것이 계약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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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고 동거하겠다는 것도 이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굳이 결혼해서 나중에 마음 안맞아서 헤어질 봐엔 혼인신고 없이 살아보겠다라는 것이죠.
법적으로 부부임을 증명하는 종잇조각 하나 때문에 서로 매일 필요 없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결혼이라는 법적 테두리 없이 동거를 하는 이들은요.
사랑이라는 이름의 암묵적 거래관계이기 때문에 / 매일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진실하고도, 나의 연약한 부분은 숨겨야죠.
계속해서 나를 홍보하고 마케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실한 언약 위에 맺어진 결혼 관계는 어떻습니가?
서로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언약이 서로의 사랑을 지켜주기 떄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두려움없이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수 있겠죠. 안전합니다.
좋은 모습 뿐만 아니라 연약함 모습까지도 진실되게 보여줄수 있습니다.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도, 나이가 들어 외모적인 매력이 떨어져도 안전하죠.
약속이 사랑을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드러내고도 서로 사랑한다면,
이 사랑은 더욱 풍성하고도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어주겠죠.
이것은 마치 죄인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은 이것입니다.
사랑한다면 구속하지 말라고요? 아닙니다.
인간은 서로 약속을 해서, 올바른 제약 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당신을 사랑하지만, 괜히 결혼해서 이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
난 결혼 같은 안해도 당신을 사랑해”라는 말은요.
막 비지엠 깔리고, 로맨틱한 말 같지만, 사실은 어떻다라는 말이죠?
“당신을 사랑하지만, 결혼할 정도로 사랑하지는 않아” 이죠.
언제든지 감정과 기복이 있으면, 성격차이가 있고, 성적 취향이 다르면
헤어질 것을 염두해 두고 만나는 거래 관계에 머물자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언약관계는요. 훨씬 견고하고 구속력이 있죠.
어떠한 상황에 놓이든지 결혼 언약은 둘을 하나로 묶어 줍니다.
그래서, 사랑과 법은 따로 떨어져 있으면 안되는 겁니다. 함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하는 결혼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과 법이 절묘하게 어루어진 언약, 그것이 바로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로에게 반지를 주었고, 이제 목사님의 손에서 다시 반지를 받은 것처럼
사랑은 여러분에게서 오는 것이나 위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보다 높이 계시듯
사랑의 거룩함, 권리, 그리고 사랑의 약속은 높고 숭고한 것이다.
여러분의 사랑이 결혼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사랑을 지탱하는 것은 결혼이다.
- 디트리히 본회퍼, Letters and from Prison
본회퍼는 연인간의 사랑이 결혼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서약이 결혼을 지켜준다라고 말했습니다.
법이 사랑을 지켜준다라는 것이죠.
여러분 그렇죠.
처음 사랑할 때는 불타오르지만, 그 불길은 언제나 변덕스럽고, 꺼지기 일수이고
한달 아니면 기껏해야 몇년 안에 꺼질만큼 약합니다. 감정이라는 녀석은 일관성이 없습니다.
하지만, 언약은요. 이러한 변덕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의 사랑을 안전하게 지켜줍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결혼은 언약이고, 그 언약은 서로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이고,
이 언약이 사랑을 지켜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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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아 목사님 알겠는데, 그러한 사랑은 너무 기계적이고, 감정도 없는거 아닙니까?
난 뭔가 영화 같은 사랑을 하고 싶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은데,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로맨틱한 사랑을 하지 말하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하고 싶은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독교가 말하는 성과 결혼은 한물 갔다고 생각하죠.
제약만 있지, 멋이 없고, 낭만적이지 않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번 설교 시리즈 제목이 모던 로맨스인데요.
현대인들의 문화 속에 자리 잡은 믿음이 무엇이냐면, 로맨스,
즉 낭만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적이고 의무적인 관계는 낭만의 적이죠.
“서로 사랑하면 됐지, 혼인신고, 형식적인 절차, 그게 뭐가 중요하냐”라는 식입니다.
로맨틱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십시오, 너무 낭만적이고 멋지고, 아름답죠.
“아 나도 저런 사랑을 할거야”라며 영화에 나오는 낭만적인 사랑을 꿈꿉니다.
하지만, 여러분, 엄밀히 말해서 대부분의 영화가 그리고 있는 로맨스는 물론 아름답죠.
하지만, 서로 깊이 알아가기 전에 맺는 섹스까지도 아름답게 그리고 있죠.
“불꽃튀는 감정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불가항력적인 일이여서 어쩔수 없는 거다.
자신에 감정에 솔직해져라, 진짜 사랑을 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외정사, 불륜”까지도 아름답게 그리는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여러분, 무엇이 정말 멋있는 것입니까? 무엇이 정말 아름다운 것입니까?
우리는 직관적으로 무엇이 진짜 사랑이고, 낭만인지를 압니다.
예전에 탑건2가 VOD로 나왔길래 제 딸 에스더랑 같이 보다가
탐 크루즈가 옛 연인을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 겁니다. 근데, 얼마되지 않아 바로 베드씬이 나오는거에요.
이 영화가 12세이기는 하지만, 저는 혹시 제 딸이 성에 대해서 잘못 생각할까봐 노심초사했는데,
갑자기 제 딸이 황당하다는듯이 저를 쳐다보고 그러는겁니다.
“뭐야? 갑자기 저런다고????”
서로 인격적으로 깊이 알아가기 전에, 약속과 헌신없이 몸을 내어준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라는 것을 제 딸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겁니다.
영국의 소설가 G.K 체스터톤은 인간은 사랑에 빠지면 본능적으로
상대방에게 약속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하죠?
“난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할거야” 자신도 모르게 맹세나 약속을 하죠.
사랑하는 사이라면 누구나 이런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여러분 기독교는요.
어떠한 종교보다도 남녀간의 육체적인 성적 연합과 낭만적인 사랑에 대해서 찬미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위대한 사랑 노래인 아가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도장 새기듯, 임의 마음에 나를 새기세요.
도장 새기듯, 임의 팔에 나를 새기세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사랑의 시샘은 저승처럼 잔혹한 것,
사랑은 타오르는 불길, 아무도 못 끄는 거센 불길입니다.
바닷물도 그 사랑의 불길을 끄지 못하고, 강물도 그 불길을 잡지 못합니다.
(아가서 8:6-7, 표준새번역)
아가서는 강렬한 언어로 사랑을 노래합니다. 하지만, 사랑만을 노래하지 않죠.
서로에게 도장을 새기듯 사랑을 완성하는 마감재는 바로 서로를 향한 약속과 헌신임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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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인 부분에서도 그렇습니다.
고대사회에서 결혼의 목적은 가문의 지위를 확보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 커리어에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남편이 다른 데서 성적 쾌락을 구하는게 당연시 되는 사회였습니다.
결혼은 결혼이고, 성적 파트너는 따로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문화에 도전장을 내민 곳이 있었는데, 바로 교회였습니다.
기독교는 새로운 혁신적 성관념을 세상에 들여 놓았는데요.
1) 성교는 남녀간의 전폭적인 헌신의 상징이자 수단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목적으로 쓰여서는 안된다라는 거였습니다.
2) 서로에게 몸을 허락하려면 오직 혼인 언약 안에서만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죠.
3) 남편의 성은 오직 아내의 것이여만 하고, 아내의 성은 오직 남편의 것이여만 한다라는 것입니다.
배우자 따로, 연인 따로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당시 로마 사회는
배우자는 곧 연인이어야 된다는 이 새로운 성규범 앞에 충격에 휩싸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나치게 엄격한 제약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충격은 고대 사회 뿐만 아니라 날이 갈수록 성 윤리가 무너져 가고 있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혼외 정사는 없다”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세상은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일로 인해 한낱 쾌락을 제공하던 상품이었던 성교가
남녀 사이에 가장 깊은 헌신과 약속 사이에 일어나는 / 아름다운 것으로 격상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시대 때 아내가 아닌 다른 첩을 두는 축첩이라는 사회 풍습은요.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이것을 남성의 사회적 지위나 능력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교회는 오랜 세월동안 저항없이 받아들여지던 이 제도 앞에
부부간의 성적권위가 대등함을 주장함으로, 축첩이나 조혼 같은 제도를 종식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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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다시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무엇이 진정 멋진 것이고, 무엇이 진정 아름다운 것입니까? 무엇이 진정 낭만입니까?
결혼이라는 언약 아래서 한결같이 사랑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로맨스이고 진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낭만적인 사랑을 포기하고, 성경적인 결혼관을 붙들라가 아닙니다.
진정한 낭만적인 사랑을 하려면, 성경적인 결혼관으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언약적인 결혼이 로맨틱한 사랑을 완성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말했습니다.
“실제로 결혼은 로맨틱한 사랑을 위축시키지는커녕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남편과 아내가 상대방에게 보여 주는 윤리적 헌신은 정확히 로맨틱한 사랑의 자발성을 끌어내어
안정성과 지속성을 성취하게 해준다”
- 쇠렌 키르케고르
할 말이 많은 데, 다음 시간을 위해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를 내리겠습니다. [반주]
(다른 때는 안그런거 같은데, 여러분 눈동자를 보니깐 아쉬워하는거 같습니다.)
진짜 멋지고 아름답고 낭만적인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제가 아끼는 글인데요.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알렉산더 슈메만이라는 신학자의 글입니다.
영화와 잡지에서 결혼의 "아이콘"은 늘 어떤 젊은 부부들이다.
그러나 전에 나는 파리의 한 초라한 공원 벤치에서,
가을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앉아 있는 어느 가난한 노부부를 본 적이 있다.
서로 손을 잡고 있던 그들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계절의 마지막 온기를, 그 옅어져 가는 빛을 즐기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이제 모든 할 말은 다 했고, 모든 열정은 소진되었으며, 모든 폭풍은 다 가라 앉았다.
이제 그들은 삶의 모든 것을 뒤로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은 그 순간 그 모든 것은 그들에게 현존하고 있었다. 그 침묵, 그 빛, 그 온기, 그 말없이 잡은 두 손에서 말이다.
그렇다. 그것들은 참으로 현존하며, 영원한 기쁨을 맞을 차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은 지금도 내게 결혼과, 그 천상적 아름다움에 대한 비전으로 남아 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뜨거운 열정은 결혼을 약속하게 했지만, 잔잔한 애정은 세월이 갈수록 그 약속이 더 풍성하고 깊어지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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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아내가 결혼한지 어느덧 15주년에 되었는데요. 가끔 아내가 저한테 묻습니다.
“나보다 더 낫고, 매력적인 자매들 많은데, 왜 나랑 결혼했죠?”
그러면 늘상 대답하는 게 있는데요.
여러분 전 오랜 시간 기도해서 하나님이 응답 주셔서 아내랑 결혼한게 아닙니다. 사랑해서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아내를 만난 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신혼 때의 감정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오직 서로를 사랑하기로 한 약속 안에서
여러 세월을 거치면서 저와 아내와의 관계는요. 더 깊어지고, 풍성해지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요.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구원하시고, 끝까지 우리를 신실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를 알게끔 해줍니다.
그래서, 결혼은 더 나아가서 언약을 지키시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영광을 드러냅니다.
더디사이플공동체 여러분,
결혼은 언약이고, 이 언약은 서로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이고, 이 언약이 사랑을 지켜줍니다.
그리고, 이 언약이 진정한 낭만적 사랑을 완성시켜 줍니다.
낭만적인 사랑을 포기하고, 성경적인 결혼관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낭만적인 사랑을 하기 위해, 성경적인 결혼관을 비전으로 삼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시간 두 사람에게 권면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너무나 축하하고 또 축복합니다.
저는 혜성교회에서 청년부 담당 목사로 우리 종훈 형제와 함께 오랜 시간동안 사역의 자리에 있었는데요.
종훈 형제가 언뜻보면 말수도 적고, 내향적인 성격인 것 같지만,
오랜 시간 동안 종훈 형제를 보면서 제가 느낀 것은 “아, 이 사람은 정말 진국이다’라는 거였습니다.
삶의 굴곡이 있고, 바뀌는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쉽게 흔들리기 마련인데
종훈 형제는 항상 꾸준하게 있어야 될 자리를 지키고,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묵묵히 감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고요.
이런 진국인 종훈 형제가 누구와 결혼을 할까 궁금했는데,
너무나 귀한 소영 자매를 만나서 이렇게 결혼식을 올리게 되니 너무나 기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의 첫 주례를 종훈형제에게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가 소영 자매를 몇번 만나서 식사 자리에서 대화도 해보았는데요.
자칫하면 너무나 진지하고 진중해서, 무거워질 수 있는 종훈 형제를 (너무 진국이어도 부담스러울수 있잖아요)
그래서, 너무 무겁지 않게 끌어낼 수 있는 밝고 활기 있는 성격을 소영 자매가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커플은 서로의 장점을 가지고 서로를 보완하면서 성장하는 아름다운 커플이 되겠구나’라는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 시간 두 사람에게 “결혼은 언약이다”라는 제목으로 잠시 권면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보통 ‘결혼은 사랑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인류 최초의 결혼식 때 사용했던 창세기 말씀을 인용하면서
결혼은 두 사람이 부모를 떠나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합하다’라는 히브리 원어의 의미는
“구속력이 있는 약속이나 맹세를 통해 누군가와 연합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결혼은 언약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언약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언약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이기도 합니다.
구약 성경 말라기 말씀을 보게 되면
아내와 남편이 서약할 때 그 사이에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신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두 사람 이제 권면의 말씀에 이어 결혼 서약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서약의 질문을 물으면, 두 사람은 “네”라고 대답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답은 서로에게 하는 대답은 동시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하는 것이고요.
더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는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서로에게 반지를 주었고, 이제 목사님의 손에서 다시 반지를 받은 것처럼
사랑은 여러분에게서 오는 것이나 위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보다 높이 계시듯
사랑의 거룩함, 권리, 그리고 사랑의 약속은 높고 숭고한 것이다.
여러분의 사랑이 결혼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사랑을 지탱하는 것은 결혼이다.
사랑이 결혼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 사랑을 지켜준다라고 말합니다.
즉, 결혼식 때의 서로에게 하는 서약이 사랑을 지켜준다라는 것입니다.
🎵 찬양
🎵 찬양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순종의 눈물
온 세상 다시 빛나게 한 생명의 눈물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 죽어야 살게 되고
져야만 승리하는 놀랍고 영원한 신비
지으신 그대로 회복시킨 우리의 창조주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로 아버지 뜻 이루셨네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
이제 우리에게 맡겨진 그 소망 그 사랑 그 생명
아름답고 눈부신 십자가의 길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갈 이유
들으소서 내 기도를 / 예수님을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베푸소서 주 자비를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구하는 주의 뜻 이뤄지리니
예수 이름 의지하여 기도합니다
🙏 통성 기도 제목
🙏 통성 기도 제목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삶의 중심에 있습니까?
혹시 하나님을 여전히 ‘주변부’에 두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시대 속에서,
그분을 다시 삶의 중심으로 모셔왔습니다.
그 열정이 결국 한 나라를 변화시켰고, 백성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 내 삶의 중심으로 모셔오길 원합니다.
그리고 기쁨과 감사로 드릴 뿐인,‘헌신자’로 서길 원합니다.
🌾 봉헌기도
🌾 봉헌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를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시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 뜻대로 이루어주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는 자로 만들어 주옵소서.
이 시간 드려지는 우리의 예물이 마음의 예배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향한 사랑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이 헌금이 교회와 세상을 살리는 복음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어두운 곳에 하나님의 빛과 사랑이 흘러가게 하는 귀한 도구로 사용되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축도
🙌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대로 기도하며, 삶으로 살아내기를 원하는
이곳에 모인 청년들에게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