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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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형상이고 모든 만물의 첫태생이십니다.

오늘의 본문에 앞서 우리는 13,14절을 다시 보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이 13절이고 우리는 계속해서 사도바울이 설명하는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바울이 정리한 예수님은 첫째, 우리를 죄의 영역에서 의의 영역으로 옮기신 분이시고 둘째, 그렇기 하게 하기 위하여 댓가를 지불하신 분이시고, 셋째 거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예수님의 본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최대한 골로새 교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접근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바로 역사적 인물이셨던 예수님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로마 시대의 사람들은 감각적이고 시각적인 것을 현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보이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볼 수 있었던 역사적 인물인 예수님이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이미지라고 한 것입니다. 보이는 예수님을 통해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한수이신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보인다 라고 하는 현상에 대해 생각해볼 문제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기술의 발전이 시각의 한계를 정확하게 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보인다 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기준 즉 인간의 한계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 특별히 에이아이의 발전으로 우리가 보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심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면 보인다 라고 하는 것은 보편적인 동의 즉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그렇게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볼 수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눈에 보여야 그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지금 바울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에 의해 보일 수 없는 하나님, 인간의 시각 밖에 분명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하나님을 인간 수준에서 인식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하나님을 보고도 하나님이라고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못 보는 것은 시각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본다 한들 그렇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셨던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그분의 행동 그분의 말씀 그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보이도록 나타난 현실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보고 배워야 합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예수님이 모든 만물의 첫태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만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자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때 창조되신 것도 아니고 인간 역사에서 봐도 첫번째로 나온 분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예수님이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라고 할까요?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분명한 포인트는 바울은 예수님에 대해 상당한 이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지만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 이후로 바울은 영적으로 보이지 않는 예수님과 동행했습니다. 즉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알아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누구보다 예수님에 대한 깊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 중 가장 처음이다 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가 아는 이 세상의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깊게 알고 이해한 바울이 영적인 기준에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우리가 아는 세상적인 상식과 기준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바울은 인간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고 보일 수도 없고 인간의 한계로는 경험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이신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보이도록 나타나신 예수님도 사실은 우리의 한계 밖에 존재하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한계 안에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선물이신 성령님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세계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그에 의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이 창조 되었습니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것이 왕의 자리이든 권력이든 다스리는 사람이든 권위를 가진 사람이든 모든 것이 그를 통해 나왔고 그를 위해 존재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통해 처음으로 나왔고 예수님이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인간의 지식과 학문으로 받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나오는 모든 바울의 말씀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식 상식으로 바울의 말씀을 대어보면 맞지도 않고 이해되지도 않습니다.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바울이 이해했던 예수님을 보고 경험해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보았던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의 중심이고 원동력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빼놓고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이 세상은 그렇게 창조되었는데, 죄가 들어와 그 모든 관계가 틀어지고 끊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다시 세상에 오셨을 때, 원래는 예수님이 중심이셨는데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분을 불편해 하고 배척하고 버리고 죽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십자가에서 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님께서 이 모든 일의 중심으로 다시 회복하신 것입니다. 다만 이제 이 세상은 예수님의 관심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예수님의 세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로 모신 우리들의 중심은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만물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만물 중 우리도 속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심이요 모든 것이 되십니다.

그리고 그가 모든 것에 앞서시고 그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함께 돌아갑니다.

바울은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바울이 회심을 한 뒤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서 그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완벽하게 협업을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삼위일체라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러분들께서 인정하셔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세계를 우리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가 우리가 사는 물리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이것을 설명하느라 애를 쓸 필요가 사실상 없습니다. 어짜피 설명이 안되는 거라서요. 우리가 알아야 하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것 중 으뜸이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모든 만물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예수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 안에서 이러한 원리들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확인해야 합니다. 바울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가 알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께 계속해서 질문하고 그분에 대해 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매일 매일이 기회요 열려있는 문과 같습니다. 우리의 육체의 생명이 다할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그분을 알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드린 찬양과 같이 모퉁이돌 되신 예수님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우리는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열린 결말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함께 지어져갑니다. 그 여정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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