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보다 거룩함

Understanding_Lee
새벽예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6 views
Notes
Transcript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자 (455장)

본문

에스라 4:1–10 NKRV
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6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7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8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려 예루살렘 백성을 고발한 그 글에 9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디나 사람과 아바삿 사람과 다블래 사람과 아바새 사람과 아렉 사람과 바벨론 사람과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과 10 그 밖에 백성 곧 존귀한 오스납발이 사마리아 성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과 함께 고발한다 하였더라

I. 설교 목표

-

II. 설교 전개

1단계 : 평형 뒤집기

에스라 3장에서 성전 건축이 시작되었지만, 성전이 완성되기까지는 약 20년이 걸렸습니다. (다리오 왕 시대까지).
4:1–5절은 바로 그 지연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 유다와 베냐민의 원수들이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 4:1–3 NKRV
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왜 같이 지어준다고했는데, 성전 빨리 재건하면 좋은게 아닌가 왜 거절했을까? 힌트 1절의 ‘대적

2단계 : 모순 분석

왜 원수들이 같이 짓자고 했을까?
이건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교묘한 전략이었어요.
성경적·역사적 배경을 보면 그들의 의도(꿍꿍이) 는 분명합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주장하며 협력의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신앙적 동질성(같은 믿음) 을 가장한 정치적 접근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성전이 완성되면 예루살렘 중심의 신앙 질서가 세워질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들의 영적·정치적 영향력 상실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계산했죠.
“처음부터 우리가 참여하면,
나중에 성전과 종교 질서 안에서도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겠지.
즉,
성전 건축을 도와주면 ‘우리도 그 공동체의 일부다’라는 명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단순한 도움의 손길이 아니라,
‘영적 동등권’을 확보하려는 교묘한 시도였어요.
사마리아 사람들의 종교는 이미 타락한 혼합신앙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7:33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동시에 자기 신들도 섬겼더라.”
즉,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만 섬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성전 건축에 참여하면,
“하나님께 제사”라는 이름으로
이방 제사와 혼합된 예배가 성전 안으로 들어오게 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단호하게 거절한 거예요.
그들의 ‘돕겠다’는 제안은 거룩을 무너뜨리는 Trojan Horse(트로이 목마) 와 같았습니다.

3단계 : 해결의 실마리 드러내기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우리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권한은 너희에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차별이 아니라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결단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의 신앙은 이미 혼합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했지만, 그들의 제사 속에는 다른 신들의 이름도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유일한 주로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스룹바벨은 알았습니다.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하실 자리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속도보다 순결한 과정을 택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빨리 성장해야 한다’, ‘사역을 확장해야 한다’는 조급함 속에서
세상적 방법이나 타협을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교회문턱-거룩함을 많이 낮추기)
로버트 웨버는 오락 및 즉각적 경험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예배를 이렇게 평가한다 “현대 예배가 ‘시장 지향적’ 접근 방식으로 인해 ‘수준을 낮추고(dumbing down)’ 있다. 이 방식은 경험과 오락에 집중하며, 19세기와 20세기의 부흥적이고 경험 중심적인 예배와 유사하게 자기중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도보다 거룩함, 결과보다 진실한 동기를 보십니다.
예를 들어, 교회가 세상의 인정이나 영향력을 얻기 위해
신앙의 핵심을 흐리거나 복음의 유일성을 희생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연합이든 분별해야 합니다.
WCC(세계교회협의회)는 모든 종교와 신앙을 포괄하려는 혼합주의이지만,
WEA(세계복음연맹)는 “오직 그리스도, 오직 성경”이라는 복음의 기초를 공유합니다.
거룩한 연합은 가능하지만, 혼합된 연합은 위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편한 교회’보다 ‘거룩한 교회’에 히써야 한다>
마음이너무평안해도 거룩속에평강
죄나 심판, 회개, 순종 같은 설교를 하면 “교회 분위기가 딱딱해진다”며 피합니다.
대신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편한 신앙”만 강조합니다.
영국 리즈(leeds)에 있는 한 교회 웹사이트에 실려있는 초대 문구를 살펴보자.있는 그대로 와서 예배하세요.
우리는 당신을 공동체로 초대합니다. 그게 전부예요. 당신은 그 이상 어떤 것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결혼을 해서 자녀를 가져야 할 필요도 없고, 술을 마셔도 상관이 없어요,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상관없고, 건강하지 않아도 괜찮아며, ( 거룩   )할 필요조차 없어요.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인종적 배경과 상관없이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셨으니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효율이 아니라 거룩함으로 완성됩니다.

4단계 : 복음을 경험하기

에스라 4:4–8 NKRV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6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7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8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려 예루살렘 백성을 고발한 그 글에
사마리아인들은 거절당하자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들은 낙담한 백성을 두렵게 하고, 관리들을 매수해 성전 건축을 멈추게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인정받지 못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는데 왜 우리를 인정하지 않느냐?”
그 상처가 적대감으로 바뀐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누군가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것을 개인적인 거절로 받아들여 상처받고,
그 후에는 공동체를 방해하거나 뒤에서 불평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내가 인정받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로 판단되어야 합니다.(내가 아닐수도있음을 인정하는 겸손), 또 거룩한 방법도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게 아니면, 회개를 해야지..)
상처에서 나온 방해는 결국 하나님의 역사를 늦춥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우리는 관계의 성숙이 필요합니다.
무시당했다 느낄 때 멀어지는 대신,
“하나님이 지금 나를 어떻게 세우길 원하시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인정보다 겸손한 순종을 통해 일하십니다

5단계 : 결론

결론 1 – 편안함보다 거룩함을 선택하라

스룹바벨은 속도보다 거룩함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효율이 아니라 순결한 마음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오늘 교회도 사람을 모으는 일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빠름보다 거룩함으로 완성된다.”

결론 2 –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사마리아 사람들은 거절의 상처를 방해로 바꿨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내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관계가 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내가 인정받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로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인정보다 겸손한 순종을 기뻐하신다.

Lord’s Prayers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