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04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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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288장(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새벽을 깨워 주님께 첫 시간을 드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잠잠하게 하시고, 성령하나님으로 이시간을 가득 채워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주님 안에서 시작하여 주님의 뜻대로 걸어가게 하시고,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에 머물지 않고 사랑과 순종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몸과 마음이 연약한 지체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그들에게 찾아가 위로와 회복을 더하여 주셔서 몸과 마음이 이전보다 더 건강해 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예물을 드립니다. 드려진 예물 받아주시고, 이 예물이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바르고 귀하게 쓰이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예물 드리는 손길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James 1:19–27 NKRV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진짜 믿음”은 무엇인지, 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의 믿음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서 오늘 하루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경건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본론 1: 듣기는 속히, 말하기는 더디 하라 (The Posture of Faith) (19-21절)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9절 입니다.
James 1:19 NKRV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야고보는 가장 먼저 신앙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특별히 세 가지를 명령하는데, 바로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듣다’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의 의미는, 단순히 귀로 소리를 듣는 것을 넘어 ‘이해하고 순종하기 위해 듣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판단하거나 반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기 위한 자세로 경청하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말하기를 더디 하라’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 감정을 앞세워 성급하게 말하지 말 것을 경고입니다.
야고보가 이토록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할 것을, 특히 성내기를 더디하라고 권면하는 이유는 바로 다음 절인 20절에 자 나타납니다.
James 1:20 NKRV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내는 것’으로 번역된 원어의 뜻은, 순간적인 분노를 넘어 지속적이고 깊게 자리 잡은 적대감을 뜻합니다. 다시말해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분노가 아니라, 그 감정을 겉으로 터뜨리지 않고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어 응어리진 상태를 말합니다. 겉으로는 표현 하지 않을지 몰라도, 마음속에는 원망, 불만과 같이 쓴 뿌리가 계속 타오르고 있는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순간적으로 욱하는 분노도 문제이지만,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향한 미음과 쓴 뿌리를 품고 있는 그 상태는 결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응어리진 분노는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되는 것기고, 또한 우리의 마음 밭은 딱딱하게 굳게 해 말씀의 씨앗이 뿌리내리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바로 이 응어리진 분노와 쓴 뿔리를 21절에서 ‘넘치는 악’이라고 부릅니다. 이 악은 마음속에 가득 차서 밖으로 넘쳐 흐르는 악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오늘 본문 21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James 1:21 NKRV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1절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명령합니다. 첫째는 '버리는 것'이고, 둘째는 '받는 것'입니다.
먼저, 말씀을 받기 전에 우리 마음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더러운 것'은 헬라어로 ‘귀지’나 ‘더러운 옷’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교만과 고집, 혈기와 같은 영적으로 더러운 것들입니다. 그리고 '넘치는 악'은 방금 20절에서 살펴본 원망과 불만, 쓴 뿌리와 같은 마음입니다. 이것들을 '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온유함'으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이 '온유함'은 단순히 성격이 부드럽다는 뜻이 아닙니다. 원어의 의미는 '잘 길들여진 말'처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복하는 겸손한 마음 상태를 의미합니다.
교만과 쓴 뿌리 같은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온유함'으로 말씀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음이 이미 쓴 뿌리와 교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5장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울왕이 나옵니다. 당시 사울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기에 급했습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지만, 좋은 양과 소를 남겨두었습니다.
사울 왕은 '더러운 것'인 교만과, 사무엘을 향한 '넘치는 악'인 불순종의 마음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말씀을 판단했습니다.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업적과 백성들의 평판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교만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울처럼 교만한 마음이 아니라, 우리 안의 더러움과 악을 날마다 버리고, 오직 온유함으로, 겸손히 순복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야 비로소 말씀이 우리 마음에 심겨져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으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본론 2: 말씀의 실천, 행하는 자가 되라 (The Practice of Faith) (22-25절)

그렇게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았다면, 그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22절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James 1:22 NKRV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는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것을 ‘자신을 속이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다시말해 말씀을 듣고 은혜받았다고 느끼는 것만으로 신앙생활을 다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고는, 돌아서는 순간 그 모습을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다고 말합니다.
거울의 목적은 우리 모습을 비추어 더러운 것이 묻었으면 닦고, 머리가 헝클어졌으면 빗게 하는 데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비춰줍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 비뚤어진 마음을 보여줍니다. 거울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거울을 본 의미가 없는 것처럼, 말씀을 듣고도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 들음은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다릅니다. 25절에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냥 힐끗 보는 것이 아니라, ‘몸을 구부려 자세히 살펴보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며 그 뜻을 파악하려는 열심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들여다보는 것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옭아매는 율법 조문이 아니라,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곧 생명의 성령의 법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참된 성도는 이 복음의 말씀을 깊이 들여다보고, 마음에 새겨 잊지 않으며,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복은 행위의 대가가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의 과정 속에서 주어지는 열매이자 결과입니다.

본론 3: 참된 경건의 증거 (The Proof of Faith) (26-27절)

그렇다면,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야고보는 오늘 본문 26-27에서 참된 경건의 세가지 증거를 보여줍니다.
첫째, 혀를 제어하는 것입니다 (26절).
James 1:26 NKRV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여기서 말하는 경건은 보통 예배, 금식, 기도와 같은 종교적 의식을 가리킵니다. 아무리 종교적 행위에 열심이라 할지라도, 자기 혀에 ‘재갈을 물리지’ 못한다면, 다시말해 함부로 비방하고 판단하고 상처 주는 말을 쏟아낸다면 그 모든 경건은 ‘헛것’, 즉 내용물 없는 빈 껍데기라는 것입니다. 혀는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혀는, 통제되지 않는 마음의 증거입니다.
둘째, 이웃을 돌보는 것입니다 (27절 전반).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경건은 교회 안에서의 활동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교회 밖의 세상, 특히 가장 연약한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납니다. 당시 사회에서 ‘고아와 과부’는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전혀 없는 최약자 계층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돌본다’ 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 도움을 넘어, 직접 찾아가 그들의 필요를 살피고 위로하는 인격적인 돌봄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가치관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셋째,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27절 후반).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참된 경건은 이웃을 향해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다는 말은 세상과 담을 쌓고 선속으로 들어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한가운데 살면서도, 음란함과 탐욕과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과 같이 세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죄악된 가치관들에 물들지 않도록 날마다 우리 자신을 지켜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가지, 말을 조심하는 것, 어려운 이웃을 실제로 돌보는 것, 그리고 세상의 악한 문화에 물들지 않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진짜임을 보여주는 삶의 증거입니다.

결론 (Conclusion)

사랑하는 성도 여러본,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은혜로운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짜 믿음은 바로 그 다음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발걸음부터, 가족을 마주하는 그 순간부터,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는 그 자리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유혹이 찾아오는 그때 바로 거기서 우리의 믿음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쏟아지려는 말을 삼키고 한 번 더 생각하는것,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하나님께 내려놓는 것, 거울에 비친 내 부끄러운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하나씩 고쳐 나가는것, 이것이 바로 말씀을 행하는 삶입니다. 내 시간과 물질을 내어 놓아 가장 작고 약한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것, 세상이 아무리 괜찮다고 말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옳지 않을때 그것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믿음의 증거 입니다.
오늘 이 새벽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 하루동안의 우리의 말과 행동, 우리의 삶이 거룩한 삶이 되어 주님께 올려드리는 향기로운 제가가 되길 바라고 이러한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에 예수님이 증거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오늘도 말씀을 통해 저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말씀을 듣고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삶속에서 살아내게 하셔서 오늘 하루의 삶이 주님께 거룩한 산 제사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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