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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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수령
지휘관, 수령
오늘 본문말씀은 사실 최근에 저희가 미리 읽었던 말씀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가나안 땅을 정탐하는 일이죠. 주일 예배 때도 이전에 “광야와 믿음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담임목사님이 말씀 전해주셨을 때 언급되기도 했었는데요,
오늘 본문 말씀에 보시면 그 정탐한 사람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 거의 절반 정도를 할애하고 있습니다. 특히 2-3절 말씀을 보시면요,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냈으니 그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 된 사람이라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냈다, 라고 이야기하구요, 또한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 된 사람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중에서 특히 “수령”이라고 나오는 이 단어는요 히브리어로 로쉬(רֹאשׁ)라고 하는 단어인데, 원래 뜻은 “머리”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각 지파 중에서 우두머리인 사람들이 지금 가나안 땅을 정탐하려고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열두명의 정탐꾼 중에 모세가 좀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어요. 먼저 8절 말씀을 보시면,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요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 라고 하는데, 저희가 알고 있기로는 눈의 아들인 사람은 이름이 호세아가 아니라 여호수아라고 알고 있잖아요? 왜 이름이 호세아가 아니라 여호수아 인가 보니까, 16절 말씀에
이는 모세가 땅을 정탐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
모세가 호세아를 특별히 여호수아, 라고 불렀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원래 호세아 라고 하는 이름은 ‘구원’이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히브리어로 ‘요드’라고 불리는 알파벳, 한국어 발음으로는 “여” 혹은 “예”라고 불리는 발음이 붙으면 “여호와” 하나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 라고만 부를 때는 이를 테면 “김구원”이라고 하는 이름 처럼 불리는 거라면, 여호수아라고 불릴 때는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머리
예수님은 우리의 머리
그런데 이 여호수아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데요, 그 중에서도 저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름이 있죠.
마태복음 1장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바로 예수님의 이름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라고 하는 여호수아의 이름과 같습니다. 헬라어 발음으로 여호수아가 예수아로 발음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의 수령, 우두머리가 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저희의 우두머리가 되십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의 “머리”였지만 여호수아 자신의 “머리”는 하나님이 되심을 믿었습니다. 저희도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머리”가 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부장, 사장이 되는 것처럼 “장”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의 자리에 서게 될 때가 있을 텐데요.
그러나 그 때에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저희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저희도 살면서 누군가의 “머리”가 될 수는 있지만 저희가 머리 꼭대기에 서있는 것은 아니에요.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이끄시고, 우리의 대장되시고, 우리의 우두머리가 되셔서 저희의 삶을 이끄신 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꼭 기억해야만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끄시는 삶
예수님께서 이끄시는 삶
오늘 함께 기도하시는 여러분과 제가 바로 예수님께서 이끄시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생각으로만, 나의 머리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의 대장되심을 믿으며, 예수님의 생각을 구하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거인
거인
또한 오늘 본문말씀 28절 말씀을 보시면 아낙 자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성읍이 견고하고 클 뿐만 아니라 “아낙 자손을 보았다”라고 이야기할 만큼 정탐하고 온 지도자들이 이 아낙 자손들을 굉장히 두려워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특히 33절에는 네피림 후손인 거인들을 보았다, 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이 네피림에 대해서는 창세기에 등장합니다. 창세기 6장 4절 말씀을 보시면,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네피림이라고 하는 거인족이 땅에 있었고, 이들은 용사며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이 거인들, 네피림, 아낙 자손이라고 하는 이름들에 대해서 다른 고대 문헌들에 언급되는 바는 딱히 없습니다.
그런데 사진에 나오는 파피루스 아나스타시 1 이라고 하는 기원전 13세기의 이집트 편지를 보시면, 가나안에 키가 2미터가 넘는 아주 사나운 전사들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구요. 그리고 실제로 가나안 동쪽에 있는 요르단 지역에서 키가 2미터가 넘는 여성 해골 2구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다윗과 골리앗
아마 그때 당시의 사람들이 보면 “진짜 거인이다!”라고 여겨질만큼 키가 아주 큰 민족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 성경의 나중에도 등장하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
여호수아 11장 22절 말씀에 보시면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 이 사람들이 남게되었다, 라고 하는데요 거기가 바로 나중에 블레셋이라고 불리는 땅입니다.
이 블레셋 가드 사람 중에 여러분이 잘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바로 골리앗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인이다! 그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메뚜기나 다름없어!”라고 했던 아낙 자손들이 옮겨간 블레셋의 가드 사람이었어요.
결국에 골리앗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다가 그것을 다윗이 들었고,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그렇게 으스대느냐?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운다! 하나님게서 너를 내 손에 넘기셨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 코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모욕하고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로 처음 가나안땅 목전에 있던 사람들은 두 명을 제외하고는 다 죽게되고 그 자손들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던 골리앗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웠던 다윗은 돌팔매질 한번으로 그 키큰 거인과 같은 골리앗을 한번에 해치우게 됩니다.
저희 앞에 두렵고 떨리는 일이 있을때, 우리를 힘겹게하고 넘어뜨리는 일이 있을 때,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맞서 싸우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중요한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원망하면 엎드러집니다. 반면에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어서게 될 때에는 아무리 큰 환란도 하나님께서 저희를 위하여서 싸워주시고, 저희를 일으켜 세우시는 분인줄 믿습니다.
정탐하라, 담대하라
정탐하라, 담대하라
마지막으로 본문말씀 18절부터 보시면요 모세가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라고 말하면서 정탐꾼들에게 무엇을 해야하는지 말하고 있는데요,
그 땅 사람들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 땅이 좋은지 나쁜지 사는 땅이 요새처럼 되어 있는지 아니면 들판에 텐트치고 사는지 등등을 알아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왜 정탐을 해야했을까요? 아니 그냥 하나님이 제일 쎈거 알면, 정탐이고 뭐고 그냥 들이박으면 되는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굳이 정탐을 한다는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싸운다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여러분 사실 이 정탐에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모세가 죽고나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여리고성을 정복하러 나갔을 때에도 두 명의 정탐꾼을 여리고 성에 보냅니다.
그때에 라합이라고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숙박하다가, 여리고 왕이 이스라엘의 정탐꾼이 온줄 알고 사람을 보내서 잡아오라고 명령하는데요, 여기서 라합이 이 정탐꾼들을 숨기고 지켜줍니다. 그리고 정탐꾼들이 라합과 그녀의 가정을 살려주겠다고 약속을 하는데요,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결국에 그 기생 라합과 그 가족들은 모두 살아남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만약에 정탐하지 않고 그냥 여리고성에 하나님이 시키신대로 나팔불고 해서 성을 무너뜨렸다면 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라합과 그 가족들도 살아남지 못했을 거예요.
선교
선교
이 한반도 땅에 복음이 뿌리내린지가 벌써 150년이 훨씬 지났습니다. 그때에 이 땅에 들어왔던 선교사들이 그냥 예수님의 이름만, 그냥 복음의 내용만 ‘띡’ 전하고 “우린 전했으니까 할일 다했어”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이 땅에서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병원을 세우고, 돈이 없어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학교를 세우고, 또한 교회에서 양반 쌍놈의 경계가 없이 신분차이 없이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헌신하고, 또한 이름도 한국식 이름으로 바꾸면서 정말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겼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그 심겨진 복음이 널리 열매 맺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정탐’하는 것, 그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구원을 원하는지, 어떤 영적이고 육적인 필요가 있는지 살펴보고 들어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정탐꾼들을 통해서 라합의 가정으 구원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살펴보고 들어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것을 행함
모든 것을 행함
고린도전서 9장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사도바울이 “내가 유대인처럼 된건 유대인을 얻고자 하고, 율법 없는 이방인처럼 된건 이방인을 얻고자 하고, 약한 자들에게 약한 모습으로 되는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정탐꾼들을 통해서 라합의 가정이 구원받은 것처럼 저희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들어주는 것에서 구원이 시작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했다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담대하게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