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05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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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425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어젯밤도 저희를 주님의 날개 아래에서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오늘 복된 새 날을 허락하시어 이른 새벽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세상의 소리가 아닌 주님의 음성을 먼저 듣기 원합니다.
이 시간 저희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주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겸손하게 '아멘'으로 받을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또한,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질병과 마음의 아픔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특별히 항암 치료 중에 있는 사모님을 기억하여 주시고, 치료의 과정 가운데 주님의 강한 손으로 붙드사 속히 회복되는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또 모든 아픈 성도들에게 주님이 함께하여 주셔서, 고난의 때를 믿음으로 잘 이겨낼 수 있는 새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귀한 예물을 구별하여 드린 손길들이 있습니다.
이 예물이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필요한 곳에 귀하게 사용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 드린 손길들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그 가정과 일터 위에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넘치도록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믿음에는 살아있는 믿음이 있고 죽은 믿음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각자의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먼저 야고보는 삶의 열매나 변화가 없는 믿음을 가리켜 '죽은 믿음'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죽은 믿음'에는 두 가지 분명한 모습이 있습니다.
첫째, 말뿐인 믿음입니다 (15-17절).
본문 15절과 16절입니다.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예를 들어 교회 공동체 안에 당장 먹을 것, 입을 것이 없는 절박한 성도가 있는데 그 사람에게 성도가 다가와 아주 영적인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형제님, 참 안타깝습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하나님이 따뜻하게, 또 배부르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힘내십시오." 이렇게 말한다면 물론 그 말 자체는 잘못되거나 틀린 말이 아닙니다. 신앙적인 축복의 말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야고보는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며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굶주리고 헐벗은 그 형제에게 아무런 실제적인 유익이나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후 17절에서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고 말합니다.
입술로만 사랑을 고백하고, 실제적인 나눔과 실천은 없고.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내 시간도, 내 물질도, 내 삶도 내어놓지 않는 믿음이라면. 살아 있는 믿음이 아니라 죽음 믿으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알기만 하는' 믿음입니다 (18-19절).
죽은 믿음의 두 번째 특징은, 머리로는 알지만 삶으로는 전혀 이어지지 않는 믿음입니다.
18절에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행함이 있다고 하리니"라고 합니다. 이는 어떤 사람들이 "나는 믿음의 은사를 받았고, 저 사람은 행함의 은사를 받았으니 서로 역할이 다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이 두 가지가 분리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 보이지 않는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행함'이라고 선언합니다.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때 우리가 그 나무가 좋은 나무임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참된 믿음 역시 '행함'이라는 열매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증명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 지식이 많고,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들을 잘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분명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지식을 머리에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오늘 나의 삶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야고보는 이런 한계를 19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야고보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귀신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사람들보다 먼저, 그리고 더 정확하게 알아봤습니다. 귀신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보'와 '지식'으로는 완벽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두렵고 전능하신 분인지 알기 때문에, 주님 앞에서 벌벌 떨기 까지 합니다.
그러나 귀신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귀신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무서워하기는 했지만, 그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신뢰하거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머리로 아는 것과 내 삶의 주인으로 따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 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많이 알고, 교리를 잘 안다고 해도, 그것이 내 삶을 바꾸지 못하고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음 믿음인 것입니다.
2. 살아있는 믿음의 두 가지 증거
2. 살아있는 믿음의 두 가지 증거
그렇다면 '살아있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야고보는 구약 성경에서 두 사람을 예로 듭니다. 한 사람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방 여인 라합입니다.
첫째, 아브라함의 믿음: 순종으로 증명되다 (21-24절).
본문 21절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독자 이삭을 제단에 바치려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함입니다.
22절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온전하게 되었다'는 말은 '완성되었다', '증명되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5장에서 이미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진짜’라는 것이 드러난 것은 훗날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자신의 믿음이 거짓이 아니라 살아 있는 믿음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시말해, 순종의 행동이 아브라함의 믿음이 진짜라는 증거가 되었고, 그 믿음을 완성시킨 것입니다.
둘째, 라합의 믿음: 환대로 증명되다 (25절).
두 번째 인물은 기생 라합입니다. 25절에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라합은 여리고성의 기생이었습니다. 이방 여인이었고,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다른 길로 피하게 했습니다. 라합의 행동은 목숨을 건 행동이었습니다. 들키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은 머릿속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라합의 행함은 라합의 믿음이 '진짜'였음을 증명하는 분명한 증거가 된 것입니다.
야고보가 아브라함과 라합을 함께 예로 든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고, 라합은 이방 여인이자 기생입니다.
다시말해 한명은 최고의 신분이고, 한명은 최악의 신분입니다.
그러나 둘 다 믿음을 행함으로 증명했고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았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신분이나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있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영혼 없는 몸, 행함 없는 믿음 (결론 및 적용)
3. 영혼 없는 몸, 행함 없는 믿음 (결론 및 적용)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야고보는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거나, 율법주의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혹시 내 믿음이 죽어있는 것은 아닌지, 정직하게 신앙의 삶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26절은 이 모든 말씀의 결론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몸에서 영혼이 떠나면 죽은 것입니다. 영혼이 떠난 몸에 이것저것을 꾸며봤자 아무런 소용없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입으로 고백하고, 성경적 지식과 교리를 많이 안다고 해도, 순종이라는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물론 우리는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구원받았기에 행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 살아있는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라는 열매를 맺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처럼 위대한 순종이 아닐지라도, 오늘 내게 주어지는 상황과 환경속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라합처럼 목숨을 건 행동이 아닐지라도, 오늘 만나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말로만 "평안히 가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작은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말로만이 아니라, 머리로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순종과 사랑의 실천으로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음'을 증명해내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은혜의 주님,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점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혹시 우리가 말로만 믿는다고 하면서 삶은 변화하지 않았다면 용서해 주시고, 오늘부터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그리하여 작은 순종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삶 전체가 주님께 드려지는 산 제사가 되게 하셔서 오늘 하루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행함으로 보여주는 성도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