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으로 나아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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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과 노래
찬양과 노래
제가 한때 밴드활동을 했을 때, 공연을 여러번 했습니다. 한 5번정도 작은 공연장을 빌려서 사람들도 초대하고 공연하는 일들을 했었는데요, 아무래도 저희가 연주하는 노래들, 작사작곡한게 아니라 원래 있던 노래들을 열심히 연습해서 연주하는 공연을 했는데, 그 노래를 워낙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된 관중들이다 보니까 공연을 하다보면 엄청나게 열광적으로 반응합니다.
어떤 사람은 막 소리를 빽빽 지르듯이 가사를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막 머리를 흔들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야광봉 같은 것을 앞뒤로 흔들면서, 연주는 저와 제 밴드 멤버들이 하지만, 함께 있던 관중들도 함께 그 노래에 참여한다는 것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제가 문득 생각해보기를, 그렇게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표현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찬양 집회 때 찬양을 부르면 나타나는 교회의 모습이 갑자기 보이기 시작하는거예요. 그때 생각하기를 “여기 공연장에서 일어나는 일과 찬양 집회 때 열광적으로 찬양하는게 대체 뭐가 다를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무슨 말씀이냐 하면, 찬양에 ‘하나님’이 빠지면, 그건 그냥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빠진 찬양은 그냥 ‘나’를 위한 노래일 뿐이지 찬양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바로 찬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편인데요, 본문말씀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찬송은 하나님께, 즐겁게 드리는 것이 찬송입니다. 저희의 즐거움이 없는 건 아니에요. 완전히 저희 스스로를 빼놓고 하나님 얘기만 하는 것이 찬양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주제에 있어서, 마음에 있어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다함께 즐거운 찬송을 부르는 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찬송가와 CCM
찬송가와 CCM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시간에 예배라고하는 것은 하나님과 저희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소통, 마치 설날에 세배하러 웃어른을 만나뵙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렇다면, 저희가 예배에 와서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만날 때 저희가 무엇을 하죠? 인사를 합니다. 그럼 예배에 처음 와서 저희가 해야할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인사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입니다.
만안교회 주일 오전 예배가 원래는 CCM같은 곡들을 부르고 기도하고서 입례로 넘어갔었는데요, 8월에 오르간 전주로 바뀌었을 때 많은 분들이 와서 여쭤보시더라구요. “이거 왜하는 거예요? 요즘 대형교회들은 다 그렇게 찬양팀이랑 같이 CCM 부르고 예배 시작하던데 우리는 왜 이렇게 하는거예요?”라고 말씀을 하시는데요,
여기서 저희가 예배찬양과 CCM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합니다. 먼저 저희가 성경찬송에 가지고 있는 찬송가부터 조금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찬송가도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누어볼 수 있지만 크게 세가지로 나뉩니다. 마틴루터의 종교개혁 시기에 쓰여진 정통찬송가와 주로 19세기 이후에 나온 복음찬송가, 그리고 원래 있던 다른 음악에서 가사만 바꾼 콘트라팍툼으로 나뉩니다. 물론 종교개혁 때보다 훨씬 이전에 쓰여진 가사들도 있어요. 찬송가 3장 같은 경우에 가사가 2세기 때, 그러니까 거의 2천년 전에 쓰여진 가사인 경우도 있는데요. 저희 찬송가에 있는 멜로디는 대체로 종교개혁 이후에 쓰여진게 대부분입니다.
먼저 정통찬송가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에 루터가 회중들을 위해서 함께 찬양하기 위해서 작곡하기 시작한 노래로, 굉장히 간결한 멜로디와 특히 주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가사가 두드러집니다.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가 루터가 작사 작곡한 노래로도 유명하죠.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우리 주님은 강한 성이여서 방패와 병기가 되신다. 라고하는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입니다. 아니면 지난 주일에 부른 66장 “다 감사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 그 섭리 놀라워~ 온 세상 기뻐하네~” 다 하나님께 감사드리세.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세.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다 등등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것이죠.
그다음에 19세기 중후반 이후에 등장하는 복음 찬송가 부류가 있는데요, 여기서부터 조금씩 하나님을 찬양하기는 하지만, 개인의 신앙 고백으로서의 가사가 조금더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얘기를 하긴 하는데, 내 얘기가 조금 더 들어간 찬양들인거죠. 찬송가 183장 “빈들에 마른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이 약속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나의 영혼, 성령을 내가 기다리네. 나에게 새생명 주옵소서 라는 가사처럼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신앙고백의 찬양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콘트라팍툼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 밖에서 유명하던 곡의 가사를 바꾼 곡들을 말하는데요, 이를테면 찬송가 64장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같은 곡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라는 베토벤의 교향곡에서 가사를 바꾼 것이고,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같은 곡은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사인이라는 곡의 가사를 바꾼 것입니다. 또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벗은 형제여~” 이 찬양이나 350장 “우리들이 싸울 것은 혈기 아니오~ 우리들이 싸울 것은 육체아니오~” 이런 곡들은 미국의 군가로 쓰이던 곡인데 가사를 바꿔서 부르는 것이죠.
이처럼 찬송가 안에도, 꼭 하나님을 찬양하기만 하는 곡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희가 이 새찬송가를 쓰는 이유가 최근에 나온 곡이라고 할지라도, 예배에 쓸만한 곡을 위주로 넣었기 때문에 예배 때에 쓰기에는 적합한 곡들이 대부분입니다. “나”의 이야기, 신앙고백이 들어가긴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고백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예배 때에 쓸 수 있는 곡들이에요.
근데 CCM은 명백하게 기능이 다릅니다. 먼저 CCM이라고 하는 뜻은요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라고 해서 현대 기독교 음악이라는 뜻입니다. 애초에 찬양이 아닙니다. 현대 음악에 기독교적인 가사가 들어간 것이 CCM이에요. 그래서 가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가 들어갈 수는 있지만, 애초에 장르부터가 CCM은 예배를 위해서 만드는게 아니라 대중음악 장르로 작곡을 하고, 기독교 가사를 입힌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재즈, 블루스, Rock이라고 하는 장르가 유행해서 그런 쪽 장르의 곡들을 차용한 것을 CCM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런 곡들은 대부분 “드럼”이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아요. 애초에 드럼 베이스 기타 피아노 같은 밴드 구성의 악기들을 주로 사용하는 곡들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찬송가 38장 “예수 우리왕이여~ 이곳에 오셔서~” 하는 곡이나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은총 받은 자녀라~”같은 곡들이 그렇습니다.
이처럼 저희가 찬송가와 CCM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봤는데요, 그럼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CCM을 교회에서 부르는게 잘못된거냐? 라는 의문인데, 당연히 잘못된 건 아니죠. CCM을 교회에서 부르는게 잘못되고 나쁜게 아니라, 주일 오전예배 때, 예배 시작할 때에 부르는게 나쁜건 아니지만, 좋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주일 예배 = 부활절
주일 예배 = 부활절
무슨 말씀이냐 하면, 여러분 저희가 왜 일요일에 교회에 모이는지 알고 계십니까? 일요일을 왜 주일이라고 하죠? 이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예수님께서 목요일 저녁, 유대인들의 유월절 만찬으로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지셨습니다. 유대교의 달력은 해질 때 하루가 시작되어서 사실상 금요일이나 마찬가지인데, 오늘날의 저희 달력으로는 목요일 해질 때 즈음인 것이죠. 그다음에 잡히셔서 거의 밤샘 심문을 당하시고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는데요,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서 장사를 지냅니다. 이 때가 금요일 해질 무렵, 유대력으로는 안식일인 토요일이 거의 다 되어가는 때였기 때문에 얼른 장사를 지내고 안식일에는 쉬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해떨어질 때부터 토요일 해떨어질때까지의 안식일 동안에는 쉬고서,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안식 후 첫날, 그러니까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 그 사이에 있는 새벽, 오늘날 저희로 따지면 주일 새벽에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보니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무덤에 계시지 않은 겁니다.
저희가 모든 예배가 사실은 다 중요합니다. 어린이들이 교육부에서 드리는 예배도 다 중요한 예배고, 오후예배도 중요하고, 수요예배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주일 오전 예배가 조금더 저희가 대예배, 본 예배라고 부르면서 더 중요시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예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겁니다. 설날에 세배드리려고 부모님 집에 찾아뵙는거랑, 반찬 떨어져서 집에 들르는 거랑, 힘든일이 생겨서 전화로 막 “나 오늘 출근했는데 상사가 왜케 이상한 사람인지 몰라~”라고 하면서 힘들었던 일 토로하는 거랑 다 부모자녀간의 관계와 소통을 나타내는 건데, 분위기와 상황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모든 예배가 중요하지만 주일 오전 예배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자리로서 저희가 설날에 세배하러 가듯이 정중한 태도를 갖추고 하나님을 만나러 오는 자리인 겁니다.
오르간 전주와 기도
오르간 전주와 기도
그렇기 때문에 주일 오전 예배의 처음 시작, 처음 부모님께 세배드리러 갔을 때, “아버지 어머니, 저희 왔어요~”라고 인사드리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 저 왔습니다~”라고 인사드리는 것이 바로 오르간 전주와 함께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CCM 부른다고 세상이 무너지고 하나님 억장이 무너지는 건 아니지만, “하나님~ 하나님 만나러 제가 왔습니다~”라고 인사하는 예를 표하는 거예요.
만약에 주일 오전 예배 때 CCM을 부르는 건 어떤 거냐, 생각해보면 어린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얼마전에 추석 때 저랑 이주혜전도사님도 양가 가족들과 친척들을 만나려고 고향에 갔는데, 저희 부모님을 만났을 때 제 누나와 매형, 그리고 그 아이 둘을 같이 만났거든요. 근데 그 조카들 눈에는 저랑 이주혜 전도사님이 안보였나봐요. 딱 만나자마자 자기들 줄 선물 사온거 알고는 선물만 뚫어져라 보는 거예요. 그래서 선물 줬더니 “감사합니다~”그런게 어딨어요 애기들인데. 그냥 “우와! 과자다!”하고 선물밖에 안보이는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애기들을 보고 “으딜 감히 삼촌이 왔는데 인사도 안하고!”같은 소리 안합니다. 그냥 그런 행동들도 아이들이 하니까 너무 귀엽잖아요.
예배전에 CCM을 부르는게 하나님 눈에는 그렇게 보일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 예배 때는 꼭 예배전에 막 신나는 찬양하고 율동하기도 하고, 청년들 예배 때도 그렇게 하고, 새롭게 하나님을 처음 만나는 새신자들이 많이 들어와서 부흥하거나 그런 믿음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는 귀에 익숙하고 신나고 따라 부르기 좋은 CCM 같은거 부르면 하나님이 아주 귀엽게 봐주실 것 같아요.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 앉아 계신 여러분들이나 아니면 주일 오전 예배 때 드리는 이 만안교회 성도 여러분들 보면 거의 아무리 적어도 10년은 신앙생활 하시고, 길면 50년도 넘게 하신 분들이 태반이신데,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와! 아기상어다! 아기 상어 뚜루루뚜루~”하고 동요부르는 것처럼 오자마자 찬양하는 것보다, 저희가 하나님을 만나러 와서 “하나님, 저 왔습니다”라고 인사하시는게 주일 오전 예배에는 더 어울린다 라는 말씀입니다.
본문말씀 3절 말씀을 보시면요,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하나님께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하나님을 만나러 나아오는 주일 오전 예배에서, 하나님께 기도로 인사드리며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왕을 만나러 백성이 왔는데 왕께 인사드리는게 우선인 것처럼 하나님께 기도로 인사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라는 것이죠.
로마서 8장 14-15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주일 오전에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인 이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시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집에 왔으니 “아빠 아버지. 저 왔어요”하고 인사하며,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바라며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입례와 기원
입례와 기원
그 다음에 저희가 살펴볼 예배 순서가 입례, 예배로 부름과 기원입니다. 본문말씀 2절 말씀을 보시면요,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하나님 앞에 노래하면서, 찬양하면서 나아갈 지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앞서서 본 오르간 전주와 함께 기도하는 것이 문열고 들어와서 “아버지 저 왔어요!”라고 하는 것이라고 하면, 입례부터는 이제 정말 신발벗고 집 안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입례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입례 때 예배 집례자, 주로 담임목사님이죠, 목사님들하고 예배 임사자들, 기도자나 성경봉독하는 사람들, 교회에 다라서는 성가대가 뒤따라서 강단을 향해서 나아가는 순서입니다.
그렇게 이 입례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나눠드린 유인물을 보시면 전주 때도 마찬가지지만 입례 때도 일어서서 진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배 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건 그 예배에 참여한 모두가 하는 겁니다. 목사님만 나가는거 아니고 성가대, 기도자들만 앞으로 나아가는게 아닙니다. 모든 예배에 참여한 회중들이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입례입니다.
그래서 사실 전주 때 일어서는 것은 다리가 불편하신 분들이 많으시니까 생략할 수 있는데, 입례 때는 가급적 일어서는 것이 좋기는 합니다. 아니면 최소한 일어서지는 않더라도 마음으로라도 호산나 찬양대가 입례송 부르는 것을 마음으로 함께 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자는 이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원래는 이 입례 때 Acolyte라고 해서 촛불을 점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사도행전 2장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이 성령이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에게 임한다, 라는 말씀처럼 저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입례 때에, 제가 따로 가지고 왔는데, 여기 이 촛불 점화대에 심지를 달아서 불을 가지고 함께 나아가서 성령님이 이 예배에 임재하신다, 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로 부름과 기원이 있는데요, 예배로 부름은 그 예배나 교회력에 맞는 성경 구절을 택해서 읽는 것, 다른 말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예배의 자리에 초청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기원은 하나님께서 이 예배의 자리에 임재하시기를 기원하고,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입례, 예배로 부름, 기원으로 이어지는 이 순서는 아까 전주 때에 “아버지! 저 왔어요!”라고 했다면, 이번엔 신발 벗고 들어가면서 부모님이 “아이구 우리 강아지 왔어!”라고 하면서 집 안으로 초청해주시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말씀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이들을 막지 않으시고, 찾아오는 이들을 만나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경배찬송
경배찬송
마지막으로 저희가 살펴볼 예배 순서가 경배찬송인데요, 예배로 부름과 기원 때에 저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또한 하나님께서 저희를 초청해주시는 것이라고 했다면, 이 경배찬송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불러주신 것에 감사로 응답하는 장면입니다.
여러분 혹시 눈썰미가 좋으신 분들이라면 눈치 채셨을 수도 있는데요, 저희 만안교회에서도 예배로의 부름 순서 이후에 나오는 찬송가는 대부분 앞쪽에 있는 찬송가를 쓸때가 많습니다. 주로 10번대부터 30번대까지의 찬송을 주로 쓰는데요,
화면을 보시면 여러분 찬송가에도 아마 있을 텐데 주제별로 찬송가가 분류가 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앞쪽에 1장부터 62장까지가 예배를 위한 찬양인데요, 특히 그중에서도 8번부터 17번까지가 경배, 18번부터 41번까지가 찬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경배찬송의 순서는 하나님께 감사로 하나님께 오로지 집중해서 영광을 올려드리는 순서인 겁니다. 찬송가도 그냥 고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영광돌리는 찬송가가 들어가야 하는 거예요.
제가 사역을 시작하면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보니까 잘 모르는게 많을 때가 있었는데요, 저희 부모님이 꼭 저에게 말씀해주신게, 어른들을 처음 찾아뵙고 하거나 할 때는 꼭 선물을 간단한 거라도 가져가라 라고 하시는 거였어요. 특히 제가 처음으로 사역지에 방문해서 목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명절에 인사드리러 누구를 찾아뵙거나 할 때에, 약국이나 편의점 같은데서 파는 박카스 한 박스, 주스 한박스, 홍삼 같은거를 꼭 제 손에 쥐어주시면서 가져다 드리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이 경배찬송이 바로 그런 선물과 같은 겁니다. 웃어른을 만나뵐 때 선물 하나 사들고 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희를 예배에 초청해주신 것에 대해서 그냥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감사로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이 바로 경배 찬송입니다.
본문말씀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으로 그 문에 들어가고 그 궁정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송축하자라고 하는 이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경배 찬송을 드릴 때에 우리를 예배에 초청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으로 응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예배의 전주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집중하며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각자의 가정에서 충실하게 살다가 명절에 부모님 집에 방문했을 때, “아버지, 어머니, 저희 왔어요~”라고 인사하는 것처럼, 세상 가운데 살아가다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시간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인사드리고 만남을 기대하면서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둘째, 입례와 예배로 부름과 기원은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께서 저희를 말씀으로 초청해주시는 시간입니다. 그냥 목사님과 기도자와 성가대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또한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저희를 초청해주시고, 예배의 자리에 임재하시기를 기원하는 “만남”의 순간이 바로 입례와 예배로 부름과 기원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경배찬송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로 응답하는 시간입니다. 그냥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그냥 좋은 옛날 전통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불러주신 것에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마치 부모님 만나러갈때 선물하나 챙겨가는 한국인의 정과 같이, 하나님께 감사로 응답하는 것이 바로 경배 찬송의 시간입니다.
그렇게 기도로 예배의 자리를 구별해서 하나님과 만나기를 고대하고, 하나님께서 초청하시는 예배의 자리에 함께 나아가고, 또한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자가 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