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장 13-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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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명에 붙잡힌 삶
제목: 사명에 붙잡힌 삶
본문: 고린도전서 9장 13-18절
본문: 고린도전서 9장 13-18절
찬송: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찬송: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오늘은 고린도전서 9장 13-18절 말씀을 가지고 '사명에 붙잡힌 삶'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사도 바울은 이 본문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의 권리와 사명에 대해 말한다. 복음 전파자에게는 정당한 권리가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복음 전파는 부득불 해야 할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명은 단순히 해야 하는 의무에 그치지 않는다. 자의로 행할 때 큰 기쁨과 상급이 된다. 오늘 이 새벽, 우리 모두에게 주신 사명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13-14절은 '복음 전파자의 정당한 권리'를 말한다.
바울은 구약의 원리를 먼저 제시한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13절). 이것은 아주 당연한 원리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일로 인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성전에서 드려진 제물 중 일부를 받아 먹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도였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먹이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준다.
바울은 이어서 말한다.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14절). 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보내실 때 같은 원리를 말씀하셨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살 권리가 있다. 이것은 정당하고 떳떳한 권리이다.
하나님의 일은 존귀한 일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세상의 어떤 일보다 귀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그 일로 인해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15-16절은 '부득불 해야 할 사명'을 말한다.
그런데 바울은 놀라운 고백을 한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15절). 바울은 복음으로 살 권리가 있었지만, 그 권리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바울은 말한다.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15절). 바울의 자랑은 무엇인가? 값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는 복음 전파가 돈이나 생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바울은 더 깊은 이유를 밝힌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16절). '부득불'이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이라는 뜻이다. 복음 전파는 바울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붙잡으셨고, 그에게 사명을 맡기셨다.
바울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16절)라고 경고한다. 이것이 사명의 무게이다. 사명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셨기에 해야 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도 사명이 있다. 어떤 이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어떤 이에게는 섬기는 사명이, 어떤 이에게는 기도하는 사명이 있다. 이 새벽에 일어나 예배하러 나온 것도 하나의 사명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한 것이다.
17-18절은 '자의로 행할 때의 상급'을 말한다.
바울은 사명의 또 다른 차원을 말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17절). '자의로'라는 말은 '스스로 원해서', '기꺼이'라는 뜻이다. 사명은 부득불 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억지로 하면 고통이 되지만, 기쁨으로 하면 상급이 된다. 같은 일도 마음먹기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된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부득불 해야 하는 사명을 기꺼이,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감당했다.
바울은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18절)라고 묻는다. 바울의 상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18절).
바울의 상은 값없이 섬기는 것 자체였다. 그는 복음을 전하되 아무것도 받지 않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다. 이것이 그의 자랑이었고, 그의 상급이었다. 진정한 섬김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섬김 자체가 기쁨이 되고 상급이 된다.
우리의 섬김도 이와 같아야 한다.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섬겨야 한다.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섬겨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기쁨이 되어야 한다. 예배드리는 것도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봉사하는 것도 짐이 아니라 특권이 되어야 한다. 같은 일도 마음에 따라 천국이 되고 지옥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억지로 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쁨으로 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때, 그것이 참된 예배가 되고 참된 섬김이 된다.
우리는 모두 사명에 붙잡힌 자들이다. 이 사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기쁨이 될 수 있다.
억지로 하면 고통이지만, 기쁨으로 하면 상급이 된다. 오늘 이 새벽에 일어나 예배하러 나온 것처럼,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하루를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이 새벽 우리를 이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으로 우리를 붙잡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값없이 섬기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 되고 상급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모든 자리에서 주님의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은혜와 평강 가운데 승리하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건강을 지켜주시고, 범사에 형통하게 하옵소서. 성도들의 기도 제목들을 들어주시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증인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