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 맺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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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131:1-3(구약 900쪽)
설교제목: 기도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 맺는 것입니다.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저는 요사이에 기도에 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기도에 관한 책을 읽고요. 청년 모임을 통해 함께 기도하는 일에 힘쓰고요. 더 나아가 이것이 제가 앞으로 추구해야할 삶의 한 목표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는 기도에 관한 강의 한편을 들었습니다. 즐겨 보는 방송에 나왔던 것인데요. 미국에 와싱통사귐의 교회를 담임하시는 김영봉 목사님의 강의입니다. 제 기억으론 아마 이분의 얘기를 몇 번 소개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사귐의 기도’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분인데요. 꽤 오랫동안 기도 분야의 베스트셀러로 이른바 기도의 대가로 알려진 분입니다.
이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성경구절이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에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모습을요. 마치 아기가 엄마의 품에 안긴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편안하고 아늑하며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마치 우리가 행하는 기도가 이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 우리의 기도가 이와 같은 경험을 이루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접근하는 우리의 방식이요. 하나님과의 사귐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거래에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겁니다. 우리의 기도가 간구 곧 우리의 필요에 관해서 혹은 우리의 바람에 관해서 하나님께 내어달라는 요청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의 기도는 내 삶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만 적극적이게 되고요. 또한 하나님께서 이러한 나의 소원을 이뤄주시느냐 안 이뤄주시느냐에만 초점이 맞춰집니다. 이러한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깊어질 수 없습니다.
제가 가끔식 사용하는 비유인데요. 이는 우리가 마치 하나님을 자동판매기와 같은 모습으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자동판매기는 돈을 넣고 원하는 상품을 골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도 마치 우리가 기도라는 돈을 넣고 하나님께 우리가 필요한 상품을 달라고 요구하는 모양을 취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해서 삶의 필요들을 구할 수 있지만요. 여기에는 큰 문제점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께 요구해야지만 하나님이 들어주신다고 생각하거나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잘 모르신다는 생각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과 하나님이 우리의 행복을 원하시는다는 것을 믿지 못함을 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실 수 있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이는 우리를 세상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말해서는 안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께 우리의 크고 작은 필요와 바람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도의 유일한 목적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는 이것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닙니다.
특별히 김영봉 목사님은 이것을 사귐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는 성경에 근거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기도를 표현하는 말은 크게 두가지로 나옵니다. 헬라어로 프로슈케와 데에시스입니다. 둘 다 우리말로는 기도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요. 프로슈케의 기도는 찬양과 감사와 간구를 포함한 기도를 말합니다. 반면에 데에시스는 ‘간구’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프로슈케라는 말 속에 데에시스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기도 속에 간구가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간구가 기도의 전부가 아니라 하나의 요소입니다.
김영봉 목사님은 이와 같은 예화를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교인 중에 어떤 분이 자녀가 사고를 당해서 수술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하고서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는데요. 걱정이 되어서 안절부절 못하다가 문득 병원에 기도실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요. 그곳에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녀의 수술이 잘 되기를 또 이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수술을 잘 할 수 있기를 기도했답니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져서 그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특권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이며 자비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일까요? 물론 하나님이 만드신 사랑스러운 피조물인 것은 틀림없지만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격이 다른 존재여서요. 우리가 대면조차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원하고 하나님이 원해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마치 태양을 그냥 쳐다보면 눈이 멀어벌일 수 있는 것처럼요.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쳐다볼 수 조차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시고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은 참 놀라운 은혜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실 필요가 무엇있으며,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다고 한들 얻어질 유익이 무엇이 있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이 신경쓸 일이 더 많고 손해볼 일이 더 많을 뿐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자체가 놀라운 일이고요.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한편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이와 같은 특권을 주시는 것일까요? 이에 관해 김영봉 목사님의 답변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사귐을 이루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라고요. 다시 말해 우리가 믿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 사귐을 이루는 분이십니다. 참 신비로운 이야기인데,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의 하나님은 각각의 고유성을 지니고 있지만 또 하나됨을 이루고 계신 분입니다. 우리의 지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한 하나님의 모습이지요. 중요한 것은 그 하나님께서는 존재부터 사귐의 특성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와도 더 나아가서는 그 분께서 만드닌 모든 피조물과도 사귐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우리와의 사귐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주신 것이 기도라는 도구이자 선물입니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을 스스로 알아챌 수 없는데요. 하나님은 친히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고 때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와 사귐을 이루십니다. 이러한 교제를 이루며 사는 것이 사실 신앙생활이고요. 이것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에 관해 김영봉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해 보라는 조언을 합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시고 우리의 행복을 바라시는 분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면, 우리는 무조건적인 간구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드린 기도의 응답을 하나님께 맡겨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우리의 필요에 맞게 꼭 맞는 응답을 하십니다.
둘째로 기도에 있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운동을 할 때, 최소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시간을 갇습니다. 몸을 위한 활동에서 그렇게 시간을 들여서 하는데, 기도를 함에 있어서도 당연히 충분한 시간을 들이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와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은요. 사실 기도의 자리가 저처럼 아직은 익숙하지 않고 또는 부담스러운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간구로 채워진 기도는 5분도 길게 느껴지니까요. 그러나 사귐을 이루는 기도는 1시간도 모자란 법입니다. 그런 기억이 있으시죠. 연애할 때, 전화 통화를 하거나 대화를 하면 이상하게 시간이 빨리 흐릅니다. 1시간이 금방이고 때로는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짧게만 느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귐을 이루는 기도를 한다면 그와 같이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기도의 다양한 방법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도의 방법 외에도 다양한 기도의 방법이 있습니다. 가령, 일반적으로는 통성기도는 한국 교회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지만요. 그와 정반대로 침묵으로 기도할 수도 있고요. 우리는 기도와 말씀묵상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있지만요. 전통적으로 종교개혁가인 루터를 비롯해서 성경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전통이 있어 왔습니다. 또한 찬양을 부르고 듣고 하는 것도 기도의 한 형태이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삶의 매순간을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도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친밀해지기 위한 다양한 방법의 기도 또는 시도가 필요하고 이것이 익숙해지도록 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이렇게 기도에 관해서 공부하면서 깨닫는 것인데요. 여러 이론도 좋고 훌륭한 분들의 조언도 도움이 되지만요. 가장 중요하고 가장 확실한 것은요. 내가 지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만큼 확실하게 기도를 배우고 기도의 참 맛을 경험하는 것은 없지요. 바라기로 앞으로 남의 삶의 시간을 이렇게 기도하는 일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이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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