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 루터의 이야기

새벽기도회(인물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4 views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 로마서 1:17(신약 240쪽)
설교제목 : 종교개혁자 루터의 이야기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달력을 보니까요. 오늘이 10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주보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종교개혁주일’ 이는 1517년 10월 31일에 있었던 일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날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또 우리는 왜 그것을 오늘까지 기념할까요?
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1483년 독일의 아이슬레벤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아들이 가문의 영광을 높이길 원했습니다. 아들이 법률가가 되길 바랬습니다.
아들은 법학공부를 했습니다. 1505년 여름의 어느 날 그는 집으로 가던 중에 근처에 벼락이 떨어지는 것을 봅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기도했습니다. ‘나를 구해주소서, 저는 수사가 되겠습니다.’
다행히 그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약속을 지키고자 수도원에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법률가를 기대했던 아버지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갑니다.
그는 수도원에서 금식, 채찍질로 극단적인 고행을 합니다. 이는 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그의 몸부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고행에도 결코 죄책감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구절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로마서 1:17(신약 240쪽)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는 이 말씀을 통해 구원은 인간의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을 통해 이룰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다시 말해 몸에 채찍질을 하는 고행을 하더라도 인간적인 노력을 통해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그는 당시의 교회를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면죄부 더 정확히는 면벌부를 팔았습니다. 이는 당시 교회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벌을 받고 죄를 씻을 때까지 이른바 연옥에 머물러 있어합니다. 면벌부를 사면 그 벌을 면제 받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에 그는 비텐베르크 대학에 있던 성당 문에다가 95개의 항목의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면벌부 문제를 비롯하여 당시 교회가 행하고 있던 잘못된 관행을 95개나 공개적으로 비판을 한 것입니다.
이 일은 1517년 10월 31일에 일어난 일이고요. 이 일을 행했던 사람의 이름은 마르틴 루터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시작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다시 말해 개신교가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속한 곳이 바로 개신교 곧 개혁된 교회입니다. 이 출발점에 위치한 인물이 바로 마르틴 루터입니다. 해서 종교개혁은 개신교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언제가 보았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 지교회에는 3개의 생일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교회가 탄생된 생일이고요. 종교개혁은 개신교가 탄생한 생일이고요. 창립주일은 지교회가 탄생한 생일입니다.’ 이처럼 개신교 교회는 역사적으로 3개의 생일을 가집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속한 개신교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줌을 생각합니다. 사실 천주교도 개신교도 모두 기독교인 것은 맞지만요. 개신교인으로써 우리의 정체성은요. 성경 말씀을 따라 사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95개 반박문 외에도 성경번역이라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당시에는 성경이 주로 라틴어로 쓰여져 있었는데요. 당시 독일의 보통사람은 라틴어는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 성경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면서, 성경해석을 전적으로 성직자들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겁니다. 외국인과 대화를 할 때, 우리가 외국어가 유창한 경우에는 대화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통역가를 곁에 두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대화가 불가능하니까요. 그런데 통역가가 제대로 통역을 하는지 어떤지 사실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을 수 조차 없으니까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기가 힘듭니다. 그나마 그것을 통역사처럼 대신해 주는 것이 성직자들의 역할이지만요. 그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인지도 사실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덮어 놓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냥 좋은 믿음이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요. 종교개혁을 통해 탄생한 개신교는 그것을 좋은 것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자기 나라의 언어 곧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이를 통해 모두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한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에게 성경이 있고 그것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고 의미있는 일인줄 아셔야 합니다. 또한 그것이 우리가 속한 개신교의 정체성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도 말이지요.
참 놀라운 것은요. 이러한 종교개혁의 전통이 일찍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지는 방식과도 같았습니다. 1800년대 주로 전해진 복음은 처음부터 성경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중국에 있던 선교사들에게서 세례를 받고 성경을 배웠던 이들이 한문으로 된 또는 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몰래 가지고 들어가서요.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며 믿음을 키워갔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것은 기독교 선교의 역사에서 아주 특이한 일로 여겨집니다. 보통은 선교사가 그 지역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신자들을 만들게 되고요. 그것이 확장되어서 교회가 세워지거나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들어온 복음은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씀으로부터 먼저 찾아왔고 그 말씀을 통해 믿음을 가지고 변화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종교개혁주일을 기념하는 것은요.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에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요. 왜냐하면, 우리는 종교개혁을 통해 생겨난 개신교에 속해 있고요. 또 우리나라는 그 종교개혁의 핵심을 관통하는 성경을 통해 복음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면서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관해 깊이 관심해 보시길 바랍니다. 평소에는 어디에나 널리 보이고 특별해 보이지 않는 성경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요. 사실은 이 성경을 통해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바라건대, 주의 말씀인 성경을 늘 가까이 하시고 소중히 여기시길 소망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기에 우리는 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에 힘 입어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